생생후기

체코, 불안한 첫인상 뒤의 소중한 경험

작성자 오혜진
체코 SDA 501 · RENO/YOGA 2012. 09 체코

Ashram Yoga Centre Zdarec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최악이었다. 체코의 첫인상은 그랬다. 그 불안은 체코에 도착하자 마자 시작했다. 프라하라는 낭만의 도시의 기대감을 안은채 도착한 체코 공항. 그러나, 워크캠프 장소까지는 프라하에서 기차타고 3시간이였고, 이 놈의 게으름 때문에 목적지까지 가는 법을 딸랑 이름 하나만 조사해왔다. 이미 포루투갈에서 워크캠프를 한번 한적이 있어서, 그때는 모든 사람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고, 오히려 모르고 간 덕분에 잘생긴 포루투갈 축구선수와 같이 여행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운이 발생하겠거니 한 나의 안이함이 문제였다. 막상, 프라하의 공항은 너무나도 불친절 했고, 어떻게 가냐고 인포메이션에 물어보면 여기는 공항 관련 문제만 알려준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낯선 남자 둘이서 자기들이 거기까지 간다며, 태워다 주겠다며 여권을 쓱 보여주더니 ‘나 경찰이야, 차에 애들도 2명 있어’ 라는데 좋은 말로 순진한 나는 땡큐!하면서 따라갔더란다. 말 그대로 차안에는 두명의 아이와 개 한마리가 있었고 차는 비좁았지만 참 인간미 넘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차에 타서 발생했다. 온갖 술이 바닥에 나뒹굴고, 아이들과 인사를 하는데.. 그 아이들 너무 지저분하다. ‘이 애들 당신 아들이에요?’라고 묻자 그렇단다 내 아들들이란다.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다 닳은 옷에 한번도 안씻긴 듯한 모습으로 데리고 다닐 수 있을까. 게다가 아무리 외국인의 눈이라지만, 너무나도 안닮았다. 그리고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가려는데, 차가 지나가지를 못한다. 그 담당자와 뭐라뭐라 말싸움아닌 말싸움을 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차를 돌려 뒷 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려고 시도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무인 티켓을 몰래 빼돌릴려고 아이들에게 내려서 가져오라고 시키고 있었다. OMG! 당황한 나는 안고 있던 가방을 들고 ‘땡큐,쏘리,바이!’하고는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버스로 앞뒤 안가리고 도망쳤다.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는 것은 3살짜리 어린아이도 알텐데, 나는 너무 프라하의 낭만만 믿고 새로운 인연이겠거니라고 생각을 했었다니. 그렇게 나를 자책하며, 이번엔 똑바르게 기차를 타고 저 멀리 시골로 향해 갔다.
체코의 이상한 교통편 때문에, 중간에 기차도 많이 갈아타고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렸다 하는 반복이였지만, 도착하자 마자 역에서 A4용지 이면지에 웰컴!이라고 쓴 손글씨로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보고는 그때서야 마음이 놓였다. 따뜻한 분위기가 차가웠던 공기도 샤르륵 바꿨던 느낌이다. 지금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해도 말이다.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다같이 숲길을 걸어 과수원을 걸어 우리가 2주동안 묵을 집 아슬람에 도착했다. 내가 꿈꾸던 그런 자연적인 삶이구나 싶었다. 독특한 흙집으로 된 큰 집에 꼭 환상 동화에서 나올 것 만같은 더덕더덕 붙어있는 창문들과 주사위와 기이한 그림들로 꾸며진 외관은 꽤 그럴 듯했다. 그러나, 우리가 묵을 방을 보고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큰 강당에 20년도 더 되보이는 깔개와 이불, 먼지 투성이에 사방에 놓인 쥐덫과 정체모를 냄새… 자고 일어나면 고양이가 들어와 내 얼굴 앞에서 자고 있다거나 말라 비틀어진 쥐와 살아 있는 쥐가 공생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기대했던 베지테리안 음식은 말 그대로 천연 베지테리안… 포루투갈에서 너무나도 화려하고 고기맛이 나는 베지테리안 음식을 먹었던 터라, 기대가 만발 했었지만 이 곳에서의 음식은 씨앗과 물과 버터를 비벼 먹거나, 근처에서 캐낸 호박과 감자와 당근을 물에 넣고 졸인 스프가 전부였다. 그나마 있는 빵도 몇개 안되었고 그 날 먹고 남은 음식은 그 다음날 다 먹을 때까지 계속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샤워실의 물은 또 어떻고. 한 명당 10분안에 샤워를 해야지 3명까지는 따뜻한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때당시 가을로 넘어가는 차디찬 시골의 날씨. 참가자 중에 한 프랑스 할아버지는 둘째날 새벽에 흔적도 없이 떠나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워크캠프. 불만 불만 불만투성이였다. 하루 종일 플럼을 따거나(이것도 전용 과수원이 아닌 정말 자연 그자체의 나무에서, 풀은 무릎까지 오는 초원에서 모든 일을 해야 했다. 가뜩이나 틱-물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벌레-를 조심하라고 하던 차였는데, 온갖 벌레가 나다니는 상황에 시한폭탄에서 일하는 기분이였다.) 흙집을 짓거나(흙집은 말 그대로 흙과 물을 섞어 벽에 계속 계속 바르면 된다. 이미 어느정도 만들어진 상태여서 벽만 바르면 되었다.) 벽돌을 나르고 장작을 패고(이 곳에서는 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밥을 먹을때도 아궁이에 나무를 넣어 불을 때곤 했다.) 풀을 베고 사과, 옥수수, 호박 등을 수확하거나 감자를 캐내기도 하였다. 정말 말그대로 시골에서의 농사일과 집짓는 일을 했다. 환경은 척박한데 일은 너무나도 고되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요가를 했고 8시에 밥을 먹고 9시부터 11시까지 자신한테 배당된 일을 하고 11시부터 12시까지는 티타임 그리고 12시부터 2시까지 다시 일, 2시부터 3시까지 점심 그리고 3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한 후에 5시부터 6시까지는 서로 따뜻한 물에서 샤워하려고 눈치껏 하나밖에 없는 샤워실에서 대기를 타거나 명상을 했고 6시에 저녁먹은 후에 7시부터는 간단한 프로젝트나 이야기, 게임 등을 하고서는 9시쯤 되면 모두들 지쳐 잠이 들었다. 정말 안아픈 사람이 없었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한 명씩 시름 시름 앓았고 나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래도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워크캠프 리더들도 아팠음에도 끝까지 내색 안하고 열심히 일했다는 것! 어쨌든 전원이 아픈 것은 사실이였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워크캠프의 불만과 불평들이다. 끝나고 나서 생각하는 워크캠프는? 최고다!
최고였다. 비록 그런 환경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하였지만, 사람들은 너무나도 좋았다. 우리 캠프 리더였던 체코에서 온 루츠카와 페드로 항상 웃은 얼굴과 먼저 나서서 일을 하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지금부터 내가 언급한 이름들은 실명이 아닐 수도있다. 나의 기억력으로 인해 얼굴은 기억하는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세바스찬, 때론 영어를 가르켜 주기도 하고 썰렁한 농담을 너무나도 자주 하였지만 언제나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고 10가지가 넘는 포크댄스를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프랑스에서 온 오롤은 헝가리에서 온 수잔나와 함께 콤비를 이루며 엉뚱한 이야기와 게임을 유도하였고, 일본에서 온 코지와 슬로바키아에서 온 펫은 온갖 일을 도맡아 묵묵히 열심히 일하였다. 딜런은 터키에서 왔는데 앙증맞은 체구에 애교가 많고 말도 많아 항상 시끌버끌한 분위기를 만들고 러시아에서 온 아나스타샤는 요가를 전문적으로 한 경험으로 가끔 우리에게 다른 방식의 요가를 가르쳐 주었다. 필란드에서 온 실비아는 제일 연장자였지만 남자가 하기 힘든 일도 내가 할게!라며 긍정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폴란드에서 온 아가는 우연히도 항상 나랑 같은 일을 하면서 나의 파트너이자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외에도 그 워크캠프, 아슬람의 주인인 아저씨는 항상 에너지의 흐름과 모든것은 자연에서 오는 것이라며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사용해야 한다며 늘 우리에게 자연의 순환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다. 그리고 거기에 일하는 우리한테는 산타클로스라고 불리는 하얀 수염으로 가득한 할아버지는 항상 우리에게 ‘퍼펙토!’ ‘굿굿!!’ 을 연발하며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칭찬해주시고 웃는 얼굴로 대해주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외에도 아슬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묵언 수행을 하는 사람, 몸에 병이 있어 자연 치료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자 오는 사람, 일상에서 벗어서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 오는 사람 등등..
처음엔 개인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지만, 나중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는 이 장소는 개인이 아닌 모든 사람이 나그네가 되어 잠시 머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구나를 알게 되고 나니 모든 일 하나하나가 뿌뜻하고 가치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람이 좋아지다 보니 나중엔 모든 밥도 맛있게 느껴지고, 숙소도 너무 안락하고 이젠 아침에 눈뜨면 내 얼굴 맡에 있던 고양이 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모두가 그렇게 활기찬 사람들은 아니였지만 언제나 차분하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인생과 가치관에서 이야기를 했고 그런 생활들은 나를 침착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가게 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했었는데 특히 기었에 남는 대화가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세바스찬은 항상 자기 이야기는 안하고 딴 이야기만 해서 하루는 우리가 물었다. ‘왜 너는 정작 니 이야기는 안해?’ 그러자 세바스찬이 ‘너희가 나에 대해서 묻질 않았잖아’ 이 말을 들은 우리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공은 뭐였는지 나이가 몇인지 등등 세번도 넘게 물었어’ 그 말을 들은 세바스찬이 하는 말 ‘직업, 나이 이런게 나니? 나는 그러한 것들이 나를 말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 최소한 너희는 나한테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뭔지에 대해서 묻질 않았잖아.’ … 순간 한대 맞은 기분이였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였을 꺼다. 살짝의 침묵이 지난 후에 우리는 말했다. 앞으론 우리도 정말 너에 대한 것을 묻도록 노력할게.
처음 사람들은 만나면 그 사람의 외적인 것만 물어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알려 주는게 아닌데도 그렇다고 믿고 있다. 나도 그랬다. 이 이후로는 나도 정말 그 사람 자체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워크캠프도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고, 모두들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원래가 사람들과 헤어질 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였는데, 이 순간은 왜이리도 아쉽고 슬프던지. 산타 할아버지가 꼭 껴안아 주시면서 손에 직접 따온 호두를 쥐어주시는데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 하나하나 안고 언젠가 또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한채 다시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돌아왔다.
물론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폴란드 친구는 기회가 되어 12월에 다시 만나기로 하였지만 나머지는, 페이스북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연락도 잘 안되는 사람도 꽤 많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서로가 느꼈던 그 모든 것을 안은채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체코에서의 워크캠프. 너무나도 좋았던 그런 시간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고마운 경험들이었다. 그 훈훈함을 안은채 나는 다음 워크캠프 장소인 아이슬란드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