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산산이 부서진 꿈과 새로운 시작
Galbiat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년전 가을 워크캠프를 다녀온 친구와 만났다. 프랑스 브니에르로 워크캠프를 다녀온 그 친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간 동안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활동을 했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지냈는지 나에게 눈을 반짝이며 말해주었다. 그 친구와 지금은 연락을 하고 있지만, 그 친구가 나에게 눈을 반짝이며 말한 워크캠프의 설명이 9월 7일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출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터라 이탈리아로 신청을 했고, 곧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여행 경비를 위해 휴학을 하고 돈을 벌면서 기대와, 걱정이 쌓였고 곧 출국일인 9월 7일이 되었다.
첫 해외여행으로 많은 기대를 품고 비행기에 탔지만, 한국을 떠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심신이 다 지쳐버리고 말았다. 환승을 한 모스크바 공항 직원들은 불친절했고, 밀라노에 도착하자 어리버리한 동양인을 보곤 노숙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꿈꾸던 이태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밀라노 거리를 활보하는 아오이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지친 상태에서 이틀간 짧은 밀라노 관광을 마치고 워크캠프 미팅포인트인 Lecco역으로 출발했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큰 배낭과 캐리어를 끄는 작은 동양인 여자를 봤는데 ‘저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팍! 들었다. 캠프리더에게 나 말고 한국 사람이 또 있냐 물어봤는데 한 사람이 있다고 했고, 같은 기차를 타자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도착한 Lecco역엔 큰 배낭을 맨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Lecco역 주변에 초록색 백조가 그려진 노란색 깃발이 미팅포인트였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깃발이 보이지 않아 조금씩 불안해 지려는 찰나에 은색 승합차가 나타났고 노란색 깃발을 망토처럼 두른 ‘Vincent’, ‘Christian’, Sarah’, ‘Nicola’가 내렸다. 잠깐의 어색한 인사가 지나가고 곧 승합차에 올라 2주동안 묵을 숙소를 상상했지만, 상상시간이 좀 길다 싶을 때 창 밖을 보니 승합차는 깊은 산 속으로 가고 있었다. 인포싯엔 분명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혀 있었지만, 주위엔 집은 커녕 원두막도 없을 것 같은 환경이 지나자 100년 전에 지은 것 같은 한 건물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색하고, 정신도 없고, 어떻게 방을 고르고 짐을 풀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지만, 바람을 쐬러 나온 발코니에서 본 석양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산 꼭대기에 있는 호텔과, 그 산 밑에는 커다란 호수가 두 개. 주황색 석양은 그 큰 호수를 붉게 물들였고, 하나 둘씩 모인 사람들은 통성명과, 자기소개를 하는 것도 잊고 ‘beautiful’만 작게 되뇌곤 했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초를 치듯 한 건장한 사내가 “I’m starving!”하고 외치고 얼마 안돼서, 저녁이 준비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 간단하게 소개를 했다. 스탭 Italian ‘Nicola’, French ‘Vincent’, Rumanian ‘Christian’, Spanish ‘Sarah’와 참가자 Korean ‘Gahee, Samuel’, Japanese ‘Nodoka’, Russian ‘Sasha, Alina’, Czech ‘Tomas, Barbora’, Turkish ‘Gizem, Fifi’, German ‘Max’, French ‘Lorain’, Spanish ‘Belen’ 총 16명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모이게 됐다. 사람들은 저녁을 먹으며 앞에 있는 사람들과 가벼운 질문들을 나누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으려 했다. 나는 2주동안 같은 방을 써야 할 룸메이트 Max와 대화를 시작했지만, 대화는 금방 끊기곤 했다. 발음은 좋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 나와, 발음을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지만 영어는 유창한 Max는 스마트폰 메모장으로 필담을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 흡연자 몇 사람들과 발코니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저녁식사 전에 아름다운 석양이 비추던 산 아래 도시가, 믿을 수 없게 아름다운 야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 입에서 다시 “Beautiful!”, “Awesome!”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엄청난 타이밍으로 산 아래 도시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사람들 모두 발코니로 달려 나오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어색한 분위기였던 사람들이 그 불꽃놀이로 인해 조금씩 가까워 지고 있었다. 워크캠프 이후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하면서 야경이 아름다워 유명한 곳을 많이 찾아가 봤지만, 관광지도 아닌 시골 산 속 깊은 곳에서 본 야경이 유럽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야경과 아름다운 불꽃, 그 아름다운 광경은 그 장소를 공유하던 16명의 사람들만의 ‘Secret view’이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과 우리들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몇 가지 규칙은 1. 끊임없이 대화하기. 2. 서로를 존중해주기 등이었다. 첫날이라 식사는 스탭들이 준비했지만, 다음날부터 참가자들이 직접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매일 3명이 한 팀이 되어 일을 나가지 않고, 숙소에 남아서 숙소를 청소하고 팀원들의 식사를 만드는 팀을 정해야 했다. 나는 가희와 노도카와 함께 ‘Asian team’을 만들어 첫 주는 한국음식, 두 번째 주는 일본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몇 개의 규칙은 1. 끊임없이 대화하기. 2. 서로를 존중해주기 등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1. 속칭 ‘Evil plant’인(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어떤 식물을 제거하기.
2. 나무 베기.
3. 산책로 만들기 등이었다.
화요일부터 일이 시작됐고, 일이 조금 고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즐겁게 떠들며 하니 시간은 금방 갔다. 첫 주 가장 생각나는 일은 각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한국의호칭을 알려주었고, 특이 나보다 어린 여성 참가자 들에게 ‘오빠’라고 부르게 했다. 그런데 점점 호칭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그 동네 모든 사람이 나에게 ‘Opa’라고 부르게 됐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강남스타일’이 들리곤 있지만, 그 친구들에게 ‘강남스타일’을 아냐고 물어봤더니, 러시아 커플인 사샤와 알리나만 알고 나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친구들을 와이파이가 미세하게 잡히는 강당으로 유투브에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었더니 친구들 모두 빵! 터졌고, 그 뒤 각 나라에서 가장 hot한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그 강남스타일 덕에 지금도 독일 Max가 “지금 강남스타일 독일차트 1위야!”, 프랑스 로렌이 “지금 강남스타일이 계속 나와! 네 생각난다!”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싸이 덕분에 친구들이 나를 잊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Asian team’의 식사 준비가 다가오고, 우리는 불고기 덮밥, 라면, 샐러드를 하기로 했다. 가희와 내가 불고기소스를 가져왔고, 가희의 비상식량인 라면을 끓여 친구들에게 대접하기로 했다. 친구들이 매워할 것을 걱정해서 라면에 물도 엄청 많이 넣고, 나와 가희는 “밍밍하다..”라고 인상을 썼다. 하지만 우리에게 싱거웠던 것과 달리 다른 친구들은 라면을 먹고 맵다고 얼굴이 빨개졌고, 불고기 덮밥을 먹으면서 “Awesome!”을 외쳐주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성공을 외쳤다. 밝을 때는 일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와인 한 잔 후에 다같이 게임을 하고, 다같이 남은 와인을 홀짝대면서 서로와 서로의 나라에 대해 더욱 알아갔다.
이등병이 나온 백일휴가처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금요일엔 니콜라의 친구들을 불러 다같이 파티를 했고, 토요일엔 호수로 나가 수영을 하고 피자를 먹었다. 프로젝트의 절반이 지나자 나와 친구들은 벌써 헤어질 시간을 아쉬워하고 서로를 위해 더 노력하는 진짜 ‘친구’가 되어있었다. 프로젝트를 하며 힘들었던 시간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우리의 두 번째 식사준비였다. 일본음식을 만들어야 했는데 모든 사람들은 ‘스시’를 기대했다. 노도카는 울상을 지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노도카는 재료부탁을 했고, 우리에게 연어가 도착했다. 니콜라가 가져온 연어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 매우 달랐다. 한국 마트에서 파는 정리가 잘 되어있는 연어가 아니라, 비린내가 나고, 가시까지 박혀있는 그런 연어였다. 그것을 본 우리들은 그야말로 ‘멘붕’이 왔고, 음식은 연어롤로 결정됐지만, 정작 일본인인 노도카는 스시를 만드는데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의외로 비위가 약한 나는 강렬한 연어의 비린내 때문에 몇 번이나 고비를 넘겨야 했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레몬즙도 뿌려보고, 와인에도 재워보고, 맥주로 씻어도 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결국 연어를 약간 익혀 간장을 발라 냄새를 최대한 없애고 김밥처럼 쌌더니 연어는 다 썼고, 밥은 산처럼 남았다. 남은 밥으로 볶음밥을 하고, 노도카는 일본식 감자고기조림을 했다. 그런데 캠프리더 니콜라가 특별한 부탁을 했다. 프로젝트의 막바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는 Monte Barro 국립공원 소장님과 직원들이 저녁식사에 오게 되었고, 식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만족스럽지 못해서 매우 심란했다. 결국 어찌어찌 적은 양과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그리고 조금 과한 와인으로 저녁시간이 지나갔을 때 내 마음은 그리 좋지 못했다. 혼자서 바깥바람을 쐬고 있었을 때 토마스가 조용히 다가와 “사무엘, 솔직히 일본음식보다 한국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아.”라고 말했고, 그 한 마디로 내 기분은 완전히 풀려버렸다.
헤어짐의 날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마지막 날 밤 저녁과 함께 조금 과하게 와인을 마시고, 조금은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여행이 나에겐 첫 여행이었어. 외국인들, 특히 유럽 사람들이 아시아 남자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과 생활한다는 것이 나에게 약간은 두려움으로 다가왔었어. 하지만 너희들은 나를 ‘동양남자’가 아닌 ‘Opa’로 대해주었고, 그것이 이 이주가 정말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줬어. 너희들 정말 고맙고 사랑해.”(속으로 연습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한다.)라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밤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약간 취기가 오른 우리들은 숨바꼭질을 했다. 왁자지껄 웃으며 놀다가 지친 우리들은 추웠지만 발코니로 나가 마지막 밤의 야경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았다. 다음날 새벽 6시 로렌이 비행기 시간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헤어져야 했다. 멤버들 가운데 특히 친했던 로렌을 배웅하기 위해 나도 역시 일찍 일어났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포옹을 하며 로렌을 눈물을 보였지만, 나보고 항상 쿨하다고 말한 로렌에게 끝까지 쿨하게 보이고 싶어서 나는 꾹 참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솔직했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정리하고, 곧 Lecco역으로 가서 니콜라와 작별인사를 하고, 다같이 기차에 올랐다. 결국 다들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가벼운 점심으로 피자를 먹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서로 못한 말들은 목구멍까지 차있겠지만, 다들 곧 볼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으로 “See you soon, good-bye!” 하고 각자의 길로 걸어갔다.
고작 2주동안의 짧은 기간이었고, 피부색과 언어가 달랐지만, 같은 느낌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정말 ‘친구’가 되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혼자서 여행을 했지만, 헤어지고 며칠도 되지 않아, 서로를 그리워하며 다들 어디에 있는지 연락을 했다. 룸메이트였던 Max와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여행을 같이했고, 시간이 맞는 토마스, 발버라, 가희와는 베네치아에서 식사를 같이했다. 프라하에서 마지막 날까지 토마스, 발버라와 함께했고, 유럽에서의 마지막 밤, 터키에 있는 Gizem, Fifi에게 왜 터키는 오지 않느냐며 볼멘소리를 들었다. 여행을 하며, 그리고 이 경험담을 쓰는 지금도 Parco Monte Barro 의 첫날밤 그 야경이 눈에 생생하다. 일이 고될 때도 있었지만, 그 고된 일은 기억이 나질 않고,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만 기억이 난다. 두 달의 여행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내 친구들이 그 시간을 기억하며 행복해하는 나처럼 친구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첫 해외여행으로 많은 기대를 품고 비행기에 탔지만, 한국을 떠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심신이 다 지쳐버리고 말았다. 환승을 한 모스크바 공항 직원들은 불친절했고, 밀라노에 도착하자 어리버리한 동양인을 보곤 노숙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꿈꾸던 이태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밀라노 거리를 활보하는 아오이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지친 상태에서 이틀간 짧은 밀라노 관광을 마치고 워크캠프 미팅포인트인 Lecco역으로 출발했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큰 배낭과 캐리어를 끄는 작은 동양인 여자를 봤는데 ‘저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팍! 들었다. 캠프리더에게 나 말고 한국 사람이 또 있냐 물어봤는데 한 사람이 있다고 했고, 같은 기차를 타자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도착한 Lecco역엔 큰 배낭을 맨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Lecco역 주변에 초록색 백조가 그려진 노란색 깃발이 미팅포인트였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깃발이 보이지 않아 조금씩 불안해 지려는 찰나에 은색 승합차가 나타났고 노란색 깃발을 망토처럼 두른 ‘Vincent’, ‘Christian’, Sarah’, ‘Nicola’가 내렸다. 잠깐의 어색한 인사가 지나가고 곧 승합차에 올라 2주동안 묵을 숙소를 상상했지만, 상상시간이 좀 길다 싶을 때 창 밖을 보니 승합차는 깊은 산 속으로 가고 있었다. 인포싯엔 분명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혀 있었지만, 주위엔 집은 커녕 원두막도 없을 것 같은 환경이 지나자 100년 전에 지은 것 같은 한 건물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색하고, 정신도 없고, 어떻게 방을 고르고 짐을 풀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지만, 바람을 쐬러 나온 발코니에서 본 석양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산 꼭대기에 있는 호텔과, 그 산 밑에는 커다란 호수가 두 개. 주황색 석양은 그 큰 호수를 붉게 물들였고, 하나 둘씩 모인 사람들은 통성명과, 자기소개를 하는 것도 잊고 ‘beautiful’만 작게 되뇌곤 했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초를 치듯 한 건장한 사내가 “I’m starving!”하고 외치고 얼마 안돼서, 저녁이 준비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 간단하게 소개를 했다. 스탭 Italian ‘Nicola’, French ‘Vincent’, Rumanian ‘Christian’, Spanish ‘Sarah’와 참가자 Korean ‘Gahee, Samuel’, Japanese ‘Nodoka’, Russian ‘Sasha, Alina’, Czech ‘Tomas, Barbora’, Turkish ‘Gizem, Fifi’, German ‘Max’, French ‘Lorain’, Spanish ‘Belen’ 총 16명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모이게 됐다. 사람들은 저녁을 먹으며 앞에 있는 사람들과 가벼운 질문들을 나누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으려 했다. 나는 2주동안 같은 방을 써야 할 룸메이트 Max와 대화를 시작했지만, 대화는 금방 끊기곤 했다. 발음은 좋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 나와, 발음을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지만 영어는 유창한 Max는 스마트폰 메모장으로 필담을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 흡연자 몇 사람들과 발코니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저녁식사 전에 아름다운 석양이 비추던 산 아래 도시가, 믿을 수 없게 아름다운 야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 입에서 다시 “Beautiful!”, “Awesome!”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엄청난 타이밍으로 산 아래 도시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사람들 모두 발코니로 달려 나오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어색한 분위기였던 사람들이 그 불꽃놀이로 인해 조금씩 가까워 지고 있었다. 워크캠프 이후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하면서 야경이 아름다워 유명한 곳을 많이 찾아가 봤지만, 관광지도 아닌 시골 산 속 깊은 곳에서 본 야경이 유럽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야경과 아름다운 불꽃, 그 아름다운 광경은 그 장소를 공유하던 16명의 사람들만의 ‘Secret view’이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과 우리들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몇 가지 규칙은 1. 끊임없이 대화하기. 2. 서로를 존중해주기 등이었다. 첫날이라 식사는 스탭들이 준비했지만, 다음날부터 참가자들이 직접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매일 3명이 한 팀이 되어 일을 나가지 않고, 숙소에 남아서 숙소를 청소하고 팀원들의 식사를 만드는 팀을 정해야 했다. 나는 가희와 노도카와 함께 ‘Asian team’을 만들어 첫 주는 한국음식, 두 번째 주는 일본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몇 개의 규칙은 1. 끊임없이 대화하기. 2. 서로를 존중해주기 등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1. 속칭 ‘Evil plant’인(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어떤 식물을 제거하기.
2. 나무 베기.
3. 산책로 만들기 등이었다.
화요일부터 일이 시작됐고, 일이 조금 고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즐겁게 떠들며 하니 시간은 금방 갔다. 첫 주 가장 생각나는 일은 각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한국의호칭을 알려주었고, 특이 나보다 어린 여성 참가자 들에게 ‘오빠’라고 부르게 했다. 그런데 점점 호칭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그 동네 모든 사람이 나에게 ‘Opa’라고 부르게 됐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강남스타일’이 들리곤 있지만, 그 친구들에게 ‘강남스타일’을 아냐고 물어봤더니, 러시아 커플인 사샤와 알리나만 알고 나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친구들을 와이파이가 미세하게 잡히는 강당으로 유투브에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었더니 친구들 모두 빵! 터졌고, 그 뒤 각 나라에서 가장 hot한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그 강남스타일 덕에 지금도 독일 Max가 “지금 강남스타일 독일차트 1위야!”, 프랑스 로렌이 “지금 강남스타일이 계속 나와! 네 생각난다!”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싸이 덕분에 친구들이 나를 잊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Asian team’의 식사 준비가 다가오고, 우리는 불고기 덮밥, 라면, 샐러드를 하기로 했다. 가희와 내가 불고기소스를 가져왔고, 가희의 비상식량인 라면을 끓여 친구들에게 대접하기로 했다. 친구들이 매워할 것을 걱정해서 라면에 물도 엄청 많이 넣고, 나와 가희는 “밍밍하다..”라고 인상을 썼다. 하지만 우리에게 싱거웠던 것과 달리 다른 친구들은 라면을 먹고 맵다고 얼굴이 빨개졌고, 불고기 덮밥을 먹으면서 “Awesome!”을 외쳐주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성공을 외쳤다. 밝을 때는 일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와인 한 잔 후에 다같이 게임을 하고, 다같이 남은 와인을 홀짝대면서 서로와 서로의 나라에 대해 더욱 알아갔다.
이등병이 나온 백일휴가처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금요일엔 니콜라의 친구들을 불러 다같이 파티를 했고, 토요일엔 호수로 나가 수영을 하고 피자를 먹었다. 프로젝트의 절반이 지나자 나와 친구들은 벌써 헤어질 시간을 아쉬워하고 서로를 위해 더 노력하는 진짜 ‘친구’가 되어있었다. 프로젝트를 하며 힘들었던 시간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우리의 두 번째 식사준비였다. 일본음식을 만들어야 했는데 모든 사람들은 ‘스시’를 기대했다. 노도카는 울상을 지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노도카는 재료부탁을 했고, 우리에게 연어가 도착했다. 니콜라가 가져온 연어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 매우 달랐다. 한국 마트에서 파는 정리가 잘 되어있는 연어가 아니라, 비린내가 나고, 가시까지 박혀있는 그런 연어였다. 그것을 본 우리들은 그야말로 ‘멘붕’이 왔고, 음식은 연어롤로 결정됐지만, 정작 일본인인 노도카는 스시를 만드는데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의외로 비위가 약한 나는 강렬한 연어의 비린내 때문에 몇 번이나 고비를 넘겨야 했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레몬즙도 뿌려보고, 와인에도 재워보고, 맥주로 씻어도 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결국 연어를 약간 익혀 간장을 발라 냄새를 최대한 없애고 김밥처럼 쌌더니 연어는 다 썼고, 밥은 산처럼 남았다. 남은 밥으로 볶음밥을 하고, 노도카는 일본식 감자고기조림을 했다. 그런데 캠프리더 니콜라가 특별한 부탁을 했다. 프로젝트의 막바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는 Monte Barro 국립공원 소장님과 직원들이 저녁식사에 오게 되었고, 식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만족스럽지 못해서 매우 심란했다. 결국 어찌어찌 적은 양과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그리고 조금 과한 와인으로 저녁시간이 지나갔을 때 내 마음은 그리 좋지 못했다. 혼자서 바깥바람을 쐬고 있었을 때 토마스가 조용히 다가와 “사무엘, 솔직히 일본음식보다 한국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아.”라고 말했고, 그 한 마디로 내 기분은 완전히 풀려버렸다.
헤어짐의 날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마지막 날 밤 저녁과 함께 조금 과하게 와인을 마시고, 조금은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여행이 나에겐 첫 여행이었어. 외국인들, 특히 유럽 사람들이 아시아 남자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과 생활한다는 것이 나에게 약간은 두려움으로 다가왔었어. 하지만 너희들은 나를 ‘동양남자’가 아닌 ‘Opa’로 대해주었고, 그것이 이 이주가 정말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줬어. 너희들 정말 고맙고 사랑해.”(속으로 연습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한다.)라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밤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약간 취기가 오른 우리들은 숨바꼭질을 했다. 왁자지껄 웃으며 놀다가 지친 우리들은 추웠지만 발코니로 나가 마지막 밤의 야경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았다. 다음날 새벽 6시 로렌이 비행기 시간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헤어져야 했다. 멤버들 가운데 특히 친했던 로렌을 배웅하기 위해 나도 역시 일찍 일어났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포옹을 하며 로렌을 눈물을 보였지만, 나보고 항상 쿨하다고 말한 로렌에게 끝까지 쿨하게 보이고 싶어서 나는 꾹 참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솔직했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정리하고, 곧 Lecco역으로 가서 니콜라와 작별인사를 하고, 다같이 기차에 올랐다. 결국 다들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가벼운 점심으로 피자를 먹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서로 못한 말들은 목구멍까지 차있겠지만, 다들 곧 볼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으로 “See you soon, good-bye!” 하고 각자의 길로 걸어갔다.
고작 2주동안의 짧은 기간이었고, 피부색과 언어가 달랐지만, 같은 느낌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정말 ‘친구’가 되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혼자서 여행을 했지만, 헤어지고 며칠도 되지 않아, 서로를 그리워하며 다들 어디에 있는지 연락을 했다. 룸메이트였던 Max와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여행을 같이했고, 시간이 맞는 토마스, 발버라, 가희와는 베네치아에서 식사를 같이했다. 프라하에서 마지막 날까지 토마스, 발버라와 함께했고, 유럽에서의 마지막 밤, 터키에 있는 Gizem, Fifi에게 왜 터키는 오지 않느냐며 볼멘소리를 들었다. 여행을 하며, 그리고 이 경험담을 쓰는 지금도 Parco Monte Barro 의 첫날밤 그 야경이 눈에 생생하다. 일이 고될 때도 있었지만, 그 고된 일은 기억이 나질 않고,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만 기억이 난다. 두 달의 여행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내 친구들이 그 시간을 기억하며 행복해하는 나처럼 친구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