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레초, 짧지만 강렬했던 여름날의 추억
Tutto un altro campo - Arezz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지원부터 출국까지
2012년 여름,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이 되기 전에 무언가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을 찾던 중 해외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당시 지원 가능했던 워크캠프 중 <lunar 29>는 다음 학기를 휴학해야 하고 기간이 10일밖에 되지 않아 그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망설여지기도 했으나 공정무역 관련 일에 동참해보고 싶어서 1지망으로 지원하였다. 워크캠프 전후로 유럽여행도 계획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3 주 정도 워크캠프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합격 발표가 나기를 기다렸다. ‘참가합격’문구를 본 날,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과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도 못 이루고 출국 준비를 시작했다. 일주일 간의 이탈리아 여행 후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것으로 대략적인 일정은 짰지만 출국 날까지도 인포싯이 나오지 않아 워크캠프 사람들을 만나는 미팅포인트, 리더의 연락처도 알지 못한 채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첫 만남
다행히 피렌체의 숙소에서 인포싯이 담긴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팅포인트인 Arezzo역에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워크캠프라고 쓰여진 푯말을 누군가 들고 있을 줄 알았는데, 푯말은커녕 누군가 기다린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조차 없었다.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역 안을 뺑뺑 돌다가 인포싯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역 바깥 주차장 쪽에서 캠프 리더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Hello! I’m Vola”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리더는 약간 까만 피부에 푸들과 같이 풍성한 곱슬머리를 가진 마다가스카르 사람이었다. 리더의 차로 숙소로 이동하여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과 인사하는데, 한 참가자의 침대에 걸린 한국말이 적힌 수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7명 중 한국인이 두 명이라니! 얘기해보니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낯선 그 곳에서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첫날 밤은 와인과 함께 리더가 요리한 파스타를 먹는데 다들 어색해하며 음식 먹기에만 집중했다.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리더는 준비한 게임들을 소개했고, 이동하느라 지쳤을 텐데도 우리는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 12 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서로 다른 문화
둘째 날 오전에는 서로의 문화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미국인 Ann은 한류스타 말고도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들을 흥얼거렸고, 캠프리더 Vola는 김기덕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얘기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일본인 히토미는 “헐 대박”, “엄마야” 등의 감탄사도 어눌한 말투로 구사하는 것 등 전부 신기했다. IT 강국 또는 전쟁중인 나라의 이미지가 클 거라 생각했는데, 문화적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알려져 있는 듯 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자기의 문화를 소개하고 다른 문화에 대해 들으며 서로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함께 생활하면서 겪는 소소한 문화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식사 메뉴에 스프가 없다면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세제는 깨끗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세제를 잘 헹구지 않는 점, 자연은 깨끗한 것이라고 하여 음식에 흙이 좀 묻어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돗자리 개념 없이 아무데나 드러눕는 것 등등. 그러나 그들의 문화가 ‘틀림’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고 나니 서로 다른 문화가 얽혀있는 워크캠프에 적응이 훨씬 쉬워지고 나의 포용력도 크게 넓어진 듯했다.
한 번은 갑자기 Vola가 나에게 “온니!!”라고 하길래 내가 웃겨서 그게 뭔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계속 윤이가 날 부를 때 그렇게 말하길래 따라 한 거란다. 여자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다른 여자를 부를 때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했더니 모두들 폭소했다. Vola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남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인들은 상하 질서를 중시하기 때문에 나이가 중요하고 함부로 남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고 했더니 미국인인 Ann은 이렇게 답했다. “사람 많은 마트 같은 곳에 갔을 때 ‘엄마’라고 부르면 다 쳐다보잖아. 그럴 땐 ‘클레어!’라고 바로 부르는 게 합리적이지.”
-박람회 홍보와 치즈 팔이
우리의 주요 업무는 Arezzo 지역 사람들에게 이번 해의 공정무역 박람회를 홍보하는 것이었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게시판이나 벽, 각 공공기관마다 돌아다니며 붙일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우리의 포스터를 붙였다. 거의 모든 참가자들은 전단지 배포를 가장 싫어했지만, 사실 나는 전단지를 돌리며 여러 사람과 만나고 얘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가끔 이태리어로 나에게 마구 질문을 할 때는 당황스러워도, 몇 안 되는 단어로도 뜻이 통하는 게 신기했다. 물론 거절하고 타국에서 전단지 돌리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이 일 이후로 나는 누군가 전단지를 건네주면 절대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는다.
박람회 둘째 날, 갑자기 리더는 우리에게 파마산 치즈 1000kg을 주며 최대한 빨리 팔아야 한다고 했다. 지진으로 저장소가 무너진 치즈들인데 이걸 팔아서 그들에게 기부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는데, 취지는 좋지만 이태리어도 못하는 우리가 적당한 판매 부스도 없이 도대체 어떻게 팔지 너무 막막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조금 터져 나왔다. 그러나 금방 다들 하나 둘씩 어떻게 판매해야 할지 아이디어를 냈고, 옆에 피자 가게에서 테이블을 빌려와 판매부스부터 만들고 치즈를 팔기 시작했다. 두세 명씩 팀을 이루어 총 세 개의 부스에서 곳곳에 치즈 판매한다는 포스터도 직접 써 붙이고, 잼도 구해와 시식가판대도 만들어 작은 치즈 한 조각에 잼 한 스푼을 1 유로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조금씩 몰려들기는 했으나 마냥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지자 나는 일어나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Parmigiano!”라고 외치며 끌어들였다. Vola와 협회 사람이었던 Bruno와 Iva도 우리 옆에서 게릴라 성으로 젬베와 하모니카, 기타를 가지고 연주 하며 모두 함께 치즈 판매를 위해 노력했다. 결국 이틀 동안 1000kg 전부 팔 수 있었고 그 날 밤 공정무역 와인으로 협회 사람들까지 다 함께 파티를 벌였다.
-짧은 만남, 긴 아쉬움
10일 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느새 참가자들과 협회사람들 모두와 너무 정이 들어 헤어질 때 눈물이 날 뻔했다. 마지막 날엔 마트에서 각자 장을 봐와서 각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는 서로 긴긴 얘기를 하며 밤을 꼴딱 새웠다. 페이스북으로 친구도 맺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매년 열리는 공정무역 캠프에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서양인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인주의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작은 것 하나도 나누어 주려 하고 누군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것 같을 땐 위로해주고 배려해주고, 어떤 의견도 무시하지 않고 서로 조정해가며 함께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캠프 사람들 이외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고, 특히 중간중간 “una pausa(좀 쉬자)”라고 말하고, 항상 힘든 하루 끝을 달콤한 휴식으로 웃으며 맺는 이탈리아인들의 행복한 에너지도 많이 받고 그 여유를 배웠다.
더 큰 세계를 알게 하고 세계 곳곳에 소중한 인연도 맺어준 이탈리아 워크캠프는 내가 올해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2012년 여름,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이 되기 전에 무언가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을 찾던 중 해외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당시 지원 가능했던 워크캠프 중 <lunar 29>는 다음 학기를 휴학해야 하고 기간이 10일밖에 되지 않아 그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망설여지기도 했으나 공정무역 관련 일에 동참해보고 싶어서 1지망으로 지원하였다. 워크캠프 전후로 유럽여행도 계획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3 주 정도 워크캠프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합격 발표가 나기를 기다렸다. ‘참가합격’문구를 본 날,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과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도 못 이루고 출국 준비를 시작했다. 일주일 간의 이탈리아 여행 후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것으로 대략적인 일정은 짰지만 출국 날까지도 인포싯이 나오지 않아 워크캠프 사람들을 만나는 미팅포인트, 리더의 연락처도 알지 못한 채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첫 만남
다행히 피렌체의 숙소에서 인포싯이 담긴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팅포인트인 Arezzo역에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워크캠프라고 쓰여진 푯말을 누군가 들고 있을 줄 알았는데, 푯말은커녕 누군가 기다린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조차 없었다.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역 안을 뺑뺑 돌다가 인포싯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역 바깥 주차장 쪽에서 캠프 리더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Hello! I’m Vola”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리더는 약간 까만 피부에 푸들과 같이 풍성한 곱슬머리를 가진 마다가스카르 사람이었다. 리더의 차로 숙소로 이동하여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과 인사하는데, 한 참가자의 침대에 걸린 한국말이 적힌 수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7명 중 한국인이 두 명이라니! 얘기해보니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낯선 그 곳에서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첫날 밤은 와인과 함께 리더가 요리한 파스타를 먹는데 다들 어색해하며 음식 먹기에만 집중했다.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리더는 준비한 게임들을 소개했고, 이동하느라 지쳤을 텐데도 우리는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 12 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서로 다른 문화
둘째 날 오전에는 서로의 문화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미국인 Ann은 한류스타 말고도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들을 흥얼거렸고, 캠프리더 Vola는 김기덕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얘기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일본인 히토미는 “헐 대박”, “엄마야” 등의 감탄사도 어눌한 말투로 구사하는 것 등 전부 신기했다. IT 강국 또는 전쟁중인 나라의 이미지가 클 거라 생각했는데, 문화적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알려져 있는 듯 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자기의 문화를 소개하고 다른 문화에 대해 들으며 서로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함께 생활하면서 겪는 소소한 문화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식사 메뉴에 스프가 없다면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세제는 깨끗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세제를 잘 헹구지 않는 점, 자연은 깨끗한 것이라고 하여 음식에 흙이 좀 묻어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돗자리 개념 없이 아무데나 드러눕는 것 등등. 그러나 그들의 문화가 ‘틀림’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고 나니 서로 다른 문화가 얽혀있는 워크캠프에 적응이 훨씬 쉬워지고 나의 포용력도 크게 넓어진 듯했다.
한 번은 갑자기 Vola가 나에게 “온니!!”라고 하길래 내가 웃겨서 그게 뭔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계속 윤이가 날 부를 때 그렇게 말하길래 따라 한 거란다. 여자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다른 여자를 부를 때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했더니 모두들 폭소했다. Vola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남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인들은 상하 질서를 중시하기 때문에 나이가 중요하고 함부로 남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고 했더니 미국인인 Ann은 이렇게 답했다. “사람 많은 마트 같은 곳에 갔을 때 ‘엄마’라고 부르면 다 쳐다보잖아. 그럴 땐 ‘클레어!’라고 바로 부르는 게 합리적이지.”
-박람회 홍보와 치즈 팔이
우리의 주요 업무는 Arezzo 지역 사람들에게 이번 해의 공정무역 박람회를 홍보하는 것이었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게시판이나 벽, 각 공공기관마다 돌아다니며 붙일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우리의 포스터를 붙였다. 거의 모든 참가자들은 전단지 배포를 가장 싫어했지만, 사실 나는 전단지를 돌리며 여러 사람과 만나고 얘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가끔 이태리어로 나에게 마구 질문을 할 때는 당황스러워도, 몇 안 되는 단어로도 뜻이 통하는 게 신기했다. 물론 거절하고 타국에서 전단지 돌리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이 일 이후로 나는 누군가 전단지를 건네주면 절대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는다.
박람회 둘째 날, 갑자기 리더는 우리에게 파마산 치즈 1000kg을 주며 최대한 빨리 팔아야 한다고 했다. 지진으로 저장소가 무너진 치즈들인데 이걸 팔아서 그들에게 기부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는데, 취지는 좋지만 이태리어도 못하는 우리가 적당한 판매 부스도 없이 도대체 어떻게 팔지 너무 막막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조금 터져 나왔다. 그러나 금방 다들 하나 둘씩 어떻게 판매해야 할지 아이디어를 냈고, 옆에 피자 가게에서 테이블을 빌려와 판매부스부터 만들고 치즈를 팔기 시작했다. 두세 명씩 팀을 이루어 총 세 개의 부스에서 곳곳에 치즈 판매한다는 포스터도 직접 써 붙이고, 잼도 구해와 시식가판대도 만들어 작은 치즈 한 조각에 잼 한 스푼을 1 유로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조금씩 몰려들기는 했으나 마냥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지자 나는 일어나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Parmigiano!”라고 외치며 끌어들였다. Vola와 협회 사람이었던 Bruno와 Iva도 우리 옆에서 게릴라 성으로 젬베와 하모니카, 기타를 가지고 연주 하며 모두 함께 치즈 판매를 위해 노력했다. 결국 이틀 동안 1000kg 전부 팔 수 있었고 그 날 밤 공정무역 와인으로 협회 사람들까지 다 함께 파티를 벌였다.
-짧은 만남, 긴 아쉬움
10일 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느새 참가자들과 협회사람들 모두와 너무 정이 들어 헤어질 때 눈물이 날 뻔했다. 마지막 날엔 마트에서 각자 장을 봐와서 각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는 서로 긴긴 얘기를 하며 밤을 꼴딱 새웠다. 페이스북으로 친구도 맺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매년 열리는 공정무역 캠프에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서양인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인주의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작은 것 하나도 나누어 주려 하고 누군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것 같을 땐 위로해주고 배려해주고, 어떤 의견도 무시하지 않고 서로 조정해가며 함께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캠프 사람들 이외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고, 특히 중간중간 “una pausa(좀 쉬자)”라고 말하고, 항상 힘든 하루 끝을 달콤한 휴식으로 웃으며 맺는 이탈리아인들의 행복한 에너지도 많이 받고 그 여유를 배웠다.
더 큰 세계를 알게 하고 세계 곳곳에 소중한 인연도 맺어준 이탈리아 워크캠프는 내가 올해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