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아무것도 안 한 10일

작성자 김희섭
아이슬란드 WF26 · RENO/ART 2012. 10 - 2012. 11 Reykjavík

Art and Renovation in Reykjavi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아이슬란드에는 두개의 워크캠프 단체가 있다. Seeds와 WF.
Seeds에서 워크캠프를 마치고 그날 바로 WF의 워크캠프를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WF26의 제목은 Art & Renovation. 그럴싸한 제목에, 있는 창의력 없는 창의력 다 챙겨서 전 캠프였던 SEED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한 WF 숙소로 이사를 갔다.

캠프 멤버는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 중인 한국 대학생 둘과 프랑스인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오직 4명이었다. 캠프 리더는 독일인인데 정식 봉사자는 아니고 어찌어찌한 사정에 의해 WF 단체에서 잡일을 해주고 숙식을 제공 받는 젊은이였다. 그 잡일 중 하나로 우리의 워크캠프를 맡게 된 것이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끝이 보이는 한심한 캠프였다.
정말 이 캠프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열흘이 넘는 캠프 기간 동안 정말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저 자유로운 캠프였나 하면, 그게 또 아니라, “매일 아침 어디로 집합 오늘은 무엇을 합시다.” 해놓고 무엇이 무슨 이유로 취소 되었으니 어쩌고 저쩌고…. 참을 수 없이 한심한 캠프였다. 단체는 무관심 했고 리더는 우유부단 했다.

그래도 멤버들과는 사이가 좋아 시간을 나름대로 즐기려 노력했는데, 이 캠프에 대해서 뭔가를 말하려 한다면 캠프 이외의 것들에 대해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게 낫겠다.

캠프 기간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 입장료가 5,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원봉사들에게는 무료 입장이 허용되어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수영과 사우나를 즐겼다. 한겨울에 즐기는 야외 온탕이라니. 사실 그거 하나만으로도 한심한 캠프 따위는 쉬이 잊을만 했다.
이 캠프의 기간은 우연히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음악 축제인 Air Waves 기간과 겹쳤는데, 이전엔 들어 본적이 없는 페스티벌이었으나 알고 보니 그 규모가 보통이 아닌 축제였다. 오직 이 축제를 위해서 유럽 전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음악 마니아들이 이 작은 섬나라를 찾아 오는.
콘서트 홀에서 개최되는 유료 공연도 있었지만, 레이카빅의 다운타운 거리에 헤아릴 수 없이 쭈-욱 널린 펍들에서도 매일 밤낮으로 작은 콘서트가 열렸는데, 한 손에 맥주를 들고 남은 한손으로 리듬을 맞추며 보낸 북쪽 나라의 겨울밤들이라니.

돌이켜보니 캠프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다른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아이슬란드를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차를 렌트해 교외로 놀러 가기도 하고, WF에서 지원하는 단체 소풍을 가기도 했다. 캠프가 해체된 후에는 프랑스 친구 빈센트 히치하이킹을 해 아이슬란드 최남단의 섬에 놀러 가기도 했다. 우리 말에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아이슬란드에는 워크캠프를 말아 먹더라도 너무나도 많은 잇몸이 존재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던 시간.

빈센트라는 친구와는 우연히도 다음 캠프를 또 같이 하게 되어 아이슬란드에서 한달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인연이 되었다. 이 인연으로 캠프가 끝난 후 이 친구의 프랑스 집에 방문하여 친구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의 여러지역을 함께 여행하기도 했고, 또 그로부터 한달 여가 흐른 후엔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
저 먼 땅에 베스트 프렌드를 한 명 심어 준 캠프였다.


해외 여행을 떠나는 일, 워크캠프 참가를 결정하는 일, 지원할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일.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얼마나 재밌는 지 모른다.
인생의 모든 순간들과 다르지 않게, 어디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찾아 올 지, 어떤 인연이 날 기다리고 있을 지 떠나기 전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짐작 할 수도 없다.

일단 떠나고 봅시다! 하고 말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