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멕시코, 내 인생의 뜨거운 겨울
Los Chorros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1년 11월, 군대에서의 마지막 휴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군인들은 전역하기 직전에 전역 후 계획에 대해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전부터 해외봉사활동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마침 서점에 들려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관련 서적을 찾던 도중, 손보미씨가 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봉사여행’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몇 장 읽어보고 “바로 이거다!”하고 책을 구입했다. 부대 복귀해서 이 책을 하루 만에 다 읽고 바로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해외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유럽 여행할 겸해서 유럽 쪽에서 열리는 워크캠프를 가고 싶었지만, 겨울 시즌에는 비 유럽권(중남미 등)에서 열리는 워크캠프가 대부분이었다. 비 유럽권 나라들 중에서 유독 끌리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Mexico’!
굳이 끌리는 이유를 들자면, 멕시코에 개인적으로 정말 친한 친구가 있어서 만나고 싶었고,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기후와 문화를 갖고 있어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고, 지인들 중에서 멕시코는 가본 사람이 거의 없어서 희소성이 있었고, 마야 ∙ 아스텍 문명 등 훌륭한 고대 문명 유적지를 돌아다니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워크캠프는 2012년 1월 15일에 시작하는 Natate가 주관하는 ‘Los Chorros01’이다.
멕시코 Chiapas 주에 있는 Los Chorros 마을에 가서 지역 주민들의 새로운 집을 짓는데 기초 공사부터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 내용이었는데, 평소에 habitat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오랜만에 영작해서 지원서 적고 참가비 입금하고 참가확정 상태가 됐을 때, 바로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해 온갖 사이트를 검색했다. 보통 비행기 표 저렴하게 구입하려면 최소 몇 달 전에 사놨어야 됐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멕시코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저렴한 표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28일에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미국을 거쳐 멕시코 시티로 가는 왕복표를 구입했다.
워크캠프 시작하기 전까지는 여행하고 멕시코 친구 집에 방문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12월 1달 동안은 워크캠프 훈련 세미나 참석 등 워크캠프 관련 준비 및 여권 발급, ESTA 발급, 숙박 시설 예약 등 여행 준비를 병행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12월 28일 저녁, 인천 국제공항에서 어머니의 배웅 속에 시카고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 도착해서 대기하다가 멕시코 시티 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멕시코 현지 시각으로 12월 29일 새벽 5시경에 멕시코 시티에 있는 베니토 후아레즈 공항에 도착했다. 꼬박 25시간이 걸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장시간 동안 이동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약간(?) 피곤했다.
12월 29일부터 5박 6일간은 멕시코 시티와 그 주변, 탁스코, 푸에블라를 여행하고, 3박 4일은 와하카, 2박 3일은 멕시코 친구와 친구 가족들을 보기 위해 몬테레이에서 머물렀고, 2박 3일은 멕시코 제 2의 도시 과달라하라, 3박 4일은 메리다와 팔렌케, 그리고 워크캠프 시작하기 하루 전인 2012년 1월 14일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 도착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름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생각한다.
여행하면서 몬테레이에 있는 멕시코 친구 집에서 2박 3일간 머물면서 그 지역 전통 음식 먹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도 보냈고, 여행 도중 만난 좋은 외국인 친구들과 밤에 맥주 한 잔 하면서 얘기도 하고, IPS 국가경쟁력 글로벌 조사단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도 하고, 길거리에서 매일 타코 사먹고, 테오티우아칸 ∙ 치첸 이차 등 멕시코 고대 문명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장소에도 다녀오고..
지금껏 잘 안 해본 것들을 해서 그런지 모든 것들이 내게는 신기하고 좋은 경험으로 다가왔다.
여행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워크캠프!! 워크캠프 시작하기 하루 전 날에는 설레서 잠도 잘 안
왔다. 설레는 만큼 워크캠프가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인포싯에 나와 있는 약속 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 미팅 포인트에 도착했다. 미팅 포인트는 Natate 자
원봉사자 전용 숙소였다.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 Natate 자원 봉사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에 시
간적 여유가 있어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안에 있는 마야 전통 의학 박물관에 다녀오고 점심
먹고 다시 미팅 포인트에 돌아왔다. 이번 워크캠프 리더인 영국인 친구 Andy와 Natate 책임자인 Juan이
있었다. Los Chorros 프로그램에 대해서 간단하게 의논했는데, 마을 현지 축제로 인해 하루 늦게 마을로 이동한다고 했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살짝 실망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앤디와 나 그리고 다른
한국인 참가자까지 총 3명이 이번 워크캠프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소 8명쯤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국 다른 한국인 참가자 1명까지 오지 않아서 Andy와 나 둘이서 워크캠프를 하게 됐다. 캠프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뭐한…… 그리고 Los Chorros 마을에서 habitat 3일, 커피 수확 2일을 하면서 이렇게 1주일을 보내고, 나머지 1주는 다른 마을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인포싯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1주일하고 주말에는 산 크리스토발로 다시 내려와야 했기 때문에 1주일 치 식량 구매 등 준비해야 될 것에 대해 의논했다.
다음 날 아침, 시장에 가서 1주일 치 식량과 휴지 등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고 각자 짐 정리해서 Los Chorros 마을로 고고싱~ 짐을 차에 다 싣고 짐 칸에 남은 좁은 공간에 Andy와 자리 하나씩 잡고 서서 2시간 30분 정도 포장된 길과 비포장 도로를 거쳐 가니 우리가 머물 집 앞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산골 마을이다. 두메 산골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머물 장소는 Juan씨 가족의 집에 딸려있는 창고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급하게 그 창고를 정리하고 계셨다. Juan씨는 1명의 부인과 3명의 아들, 3명의 딸이 있었다. 아이들 모두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면서도 쑥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에서 순수함이 느껴졌다. Juan씨에게 집 구조 설명 듣고 짐 정리한 후에 Andy와 마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아 참! 이 마을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언어는 ‘초칠어’라는 고유 언어이다. 대부분의 마을어른들은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구사하는데, 1994년 사파티스타 원주민 농민들의 무장 투쟁이 일어났을 때, 멕시코 정부군이 진압을 위해 이 마을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이 때, 멕시코 군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스페인어를 구사할 필요성이 있었단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Andy와 Juan씨가 서로 의논하면 Andy가 내게 영어로 번역해주는 형식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마을 중심부로 가니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Wow!!! 산골 마을이라 그런지 구름과 산, 나무로 만든 집들이 조화를 이뤄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이 꽤 컸다. 조그마한 상점들도 있었고, 2페소 짜리 타코를 파는 곳도 있었다. 보통 운반 비용이 많이 드는 산골 마을에서 물건과 음식 값이 비싸기 마련인데, 시내보다 더 저렴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경제 상식을 뒤엎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마을 산책을 끝내고 주방에서 식사를 하는데, 나무를 이용해 불 땐 다음 그 위에 삼다리 같은 철판을 놓고 그 위에 프라이팬이나 냄비를 놓고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식탁도 따로 없어 조그만 나무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하는 것이었다.
자기 전에 양동이에다가 직접 물을 길어와 그 물로 샤워를 했다. 따로 샤워하는 공간이 있긴 하지만, 바닥은 흙이라서 물 부으면 바로 진흙이 된다. 그리고 밤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찬 물로 샤워하면서 개운하긴 한데 산골 마을이라 낮에는 더워도 밤이 되면 쌀쌀했다. 정말 1960년대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차량 준비도 제대로 안되어있고, 하나부터 열까지 봉사자 2명이 다 준비해야 되고, 캠프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2명의 참가자, 제멋대로인 일정.. 그래도 Los Chorros에 온 건 잘한 선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17박 18일간의 여행과는 다른, 그리고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워크캠프 이틀 째.. 아침 7시까지 오기로 한 마을 habitat 관계자는 오지 않았다. Andy가 이곳 저곳 연락을 취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결국 Juan씨 가족이 관리하는 커피 농장에 가서 커피를 수확하기로 했다. 15일부터 계획대로 이뤄진 것이 거의 없다. Andy와 나는 짜증나긴 했지만 일단 모든 것을 즐기기로 했다.
커피 농장은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데, 추가로 커피 수확까지 한다니.. 설레는데?! 커피는 붉은색 과일처럼 생겼다. 그 붉은 색 껍질을 까서 땅콩(?)같이 생긴 커피 알맹이를 햇빛에 말린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두’였다. 커피 수확한 지 약 2시간 째.. 단순 작업이라 그런지 약간 지루해졌다. 중간에 이 지역 전통 옥수수 음료인 ‘뽀솔’을 마시면서 에너지를 보충했지만 지루한 건 매한가지.. 결국 5시간 정도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식사 준비를 했다. 흥미로운 체험이었으나 매일매일 하는 건 좀 힘들 것 같다.
나는 한국식으로 밥을 짓고, Andy는 미리 사온 피망, 토마토, 양파, 소고기 등을 이용하여 요리를 했다. 밥도 Good! 음식도 Good! 아주머니도 맛보시더니 맛있다고 더 드시기까지 했다. 그런데 주방에서 오래있다 보면 연기 때문에 눈물과 콧물이 항상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 아이들을 보면 항상 콧물을 달고 산다. 호흡기 건강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마르타, 비센테, 크리스티나, 마르코스, 앙헬, 마르셀라 이렇게 총 6명인데,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마르타에게는 미리 준비해 간 공기를 주고, 마르코스에게는 제기차기를 알려줬다. 알려주긴 했는데 내가 잘못 알려줬는지 다른 방식으로 공기와 제기차기를 갖고 놀았다. 애들이랑 사진도 찍고 했는데 사진 찍는 거 정말 좋아했다. 찍은 사진들 보여주면 정말 흥미로워했다.
셋째 날, habitat 관계자는 또 오지 않았다! 덕분에 커피 수확부터 커피 말리는 과정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오전에는 커피 수확하고 오후에는 커피 열매 껍질 까기, 커피 말리기 작업을 했다. 일일이 수작업이 요구되는데 그에 비해 커피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1kg에 41페소라고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3500원 정도인데.. 노력에 비해 제 값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끝나고 오후에는 Juan씨가 마을 구경을 시켜준다고 해서 산책을 했다. 마을 한 번 둘러보고 커피 수확할 때 보던 알프스 같은 풍경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까지 갔다. Impressive scenery!!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풍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긴 흰 수염을 갖고 계신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갑자기 Juan씨가 “저 할아버지는 연세가 120세다.”라고 말해줬다. 헉.. 진짜 120세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120세까지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오래 살고 싶으면 Los Chorros로 이사와야 할 듯..
Habitat 관계자인 마르틴씨 집에 직접 들려 인사 나누고 현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다. 뭔가 의사소통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는데.. 뭐 어찌 알겠나?! 여튼 우리의 본 봉사활동 목적인 habitat를 하기 위해 나머지 이틀 동안 일할 장소를 찾으러 다녔다. 돌아다니다가 결국 하비에르씨와 일하기로 결정했다. 정말 마을도 좋고 Juan씨 가족도 좋고 다 좋은데, 본래 목적인 봉사활동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Andy와 내가 하루하루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식이다. 그래도 이런 것도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감정적으로 동요되지는 않았다.
Los Chorros에 온 지 4일 째.. 드디어 집 짓는 일에 동참했다. 아침 먹고 전 날 미리 얘기해둔 하비에르씨 집에 가서 일을 돕기 위해 갔다. 처음에 목재 1번 나르고 1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다른 인부들과 계속 일하기만 하지, 우리에게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 Andy가 일거리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우리가 할 건 없단다. 그럼 기다리는 동안 말이라도 해주지…… 결국 전날 방문했던 페드로씨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비에르씨와 다르게 페드로 씨는 상당히 친절했다. 페드로씨 집 앞에 시멘트 섞인 모래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는데 그것을 집 안에 쌓아놓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원래 내가 희망했던 봉사활동은 집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도움을 주는 그런 형식이었는데..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있나?
한 명이 삽으로 모래를 수레에 옮겨 놓으면 다른 한 명은 수레를 끌고 가서 모래를 쌓는 식으로 일을 했다. 오랜만에(?) 삽질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같이 일하는 페드로씨와 다른 아저씨들과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전통 음료인 ‘뽀솔’도 마시고.. 정말 친절하신 분들이다. 그런데 일 다 끝나갈 페드로씨가 점심까지 대접하고 싶다고 하셔서 점심까지 얻어 먹었다. 팥 죽 같이 생긴 콩, 계란 후라이, 또르티야, 여기에 콜라까지.. 진수성찬이었다. 그런데 페드로씨는 차린 게 별로 없다면서 미안해하셨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 시골 인심을 보는 것 같았다. 점심까지 대접하셨는데 딸과 조카를 우리에게 딸려 보내 전 날 봤던 계곡까지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 짱!!!!! 덕분에 초원에서 풀 뜯어 먹고 있는 소와 말, 오렌지 나무 ∙ 커피 나무 ∙ 바나나 나무, 계곡, 맑은 하늘, 구름이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건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이다!
닷새 째, 전 날과 마찬가지로 페드로씨 집에 가서 일을 했다. 한 명이 모래를 한 삽 퍼서 그물망 위에 얹어 놓으면, 다른 한 명은 그물망을 흔들어 작은 모래입자를 걸러내는 일이었다. 약 3시간 정도 계속 반복된 일을 해서 상당히 지루하긴 했지만,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아쉬워서 더 열심히 일을 했다. Andy가 이미 모래가 걸러진 돌들을 올려놨는데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팔을 움직였을 정도다. Andy의 장난에 둘이서 서로 배꼽잡고 웃었다. 나도 Andy에게 똑 같은 방법으로 복수했는데 Andy도 속았다.
일 다 끝나고 페드로씨가 집에서 키우는 닭을 잡아 백숙 같은 음식을 점심으로 대접하셨다. 손님이라고 정말 귀한 대접을 해주셨다. 점심 먹고 헤어질 때 Andy와 내 휴대폰 번호 알려드리고 한국에서 미리 사 온 책갈피와 서울 여행 자료를 드리면서 약소하게나마 보답하고 포옹 한 번씩 했다. 정말 아쉬웠다. 내가 이 마을을 다시 찾지 않는 이상 못 볼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움마저 들었다.
오후에는 마르코스가 안내자 역할을 맡아 Juan씨 집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폭포에 갔다. 거기서 Andy, 마르코스랑 사진도 찍고 나름 재미있게 놀았다. 마지막으로 찬 물로 샤워하고 저녁 먹고 자려고 준비하는데 Juan씨가 우리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Andy와 다음 날 산 크리스토발로 돌아갈 교통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책갈피, 연필 등 약소한 선물들을 설명해드린 후에 드렸다. 서로 1주일 동안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려는 순간, 갑자기 Juan씨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와 포옹하면서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기껏해야 커피 약간 수확하고 커피 껍질 좀 까고 커피 말려놓았던 것들 마대에 담았던 것밖에 안 했는데…… 오히려 그런 값진 경험을 하게 해주신 Juan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감사할 뿐인데…… 갑자기 우셔서 정말 당황스러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5분 뒤 직접 집에서 수확한 커피 생두를 주셨다. 정말 힘들게 생산한 커피인데…… 너무 귀한 선물을 받았다!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가족들 다 일찍 깨워서 작별인사 할 거라고 하셨는데…... 감동 그 자체였다……
Juan씨가 집으로 돌아간 후, Andy와 하늘에 있는 별 보려고 잠깐 밖에 나왔는데 Juan씨 집 쪽에서 Juan씨 울음 소리와 함께 Juan씨가 가족들에게 초칠어로 뭔가 말하는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겪었던 경험들 중 짧았지만 가장 강렬했던 5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화장실, 샤워하는 장소, 주방 둘러보고 약간 당황했었다. 그래도 도시인들과는 다른 가족들의 순수함, 인사하면 웬만하면 다 받아주는 친절한 마을사람들, 너무나 멋진 풍경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다 잊고 5박 6일을 너무나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다음 날 추위 속에서 Andy가 깨워서 간신히 일어났다. 짐 정리하고 차량 오기 전까지 주방에서 커피 한 잔하고 얘기하고 사진 찍고.. 헤어지기 전에 악수 1번씩 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정말 생각 많이 날 것 같다! 워크캠프 프로그램 자체는 엉망이었지만, 그것을 커버하고도 남을만한 경험을 하고 훈훈한 마음으로 다시 산 크리스토발로 돌아왔다.
산 크리스토발로 돌아오자마자 짐 정리하고 Natate 관계자 Juan과 프로그램의 보완점과 향후 계획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Juan이 다음주에 실시할 다른 워크캠프인 ‘Botanic garden’에 대해 소개하고 참여할건지 여부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참여한다고 했고, Andy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말에는 갑자기 몸살이 걸려서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산 크리스토발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미대로’도 갔다 오고 밤에 다른 봉사자들과 맥주도 한 잔 했다. 덕분에 몸살 기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1월 22일 일요일, 새로운 워크캠프 시작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 날 한국은 구정 당일이었기 때문에, 절 2번하고 가족 ∙ 친척들에게 인사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동생 휴대폰으로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 가족과 친척분들께서 정말 좋아하셨다는 후문이다.
‘Botanic garden’ 워크캠프에서 사용할 호스텔로 자리를 옮겼다. 숙소가 호스텔이라니.. 그리고 식사는 직접 만들어 먹지 않고 Natate 사무실이 있는 Bio-Bio라는 식당에서 3끼를 다 먹는단다! 지난 주에 찬 물로 샤워하고 연기 가득한 주방에서 식사하고 창고에서 덜덜 떨면서 잔 것을 생각하면 천국이 아닐 수 없다. 극과 극의 체험이라고나 할까…... 호스텔에서 짐 풀고 1주간 같이 워크캠프에 참여할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Botanic garden’ 담당자인 Juan씨에게 프로그램과 관련해 설명을 들었다. 노르웨이 친구 ‘헤다’, 프랑스인 친구 ‘캐롤린’, ‘마린’, 미국인 친구 ‘매그스’, ‘스튜’, 벨기에 친구 ‘죠세파’, 멕시코 친구 ‘파비올라’, 한국인 친구 ‘동현이 형’, ‘오보민’, ‘이선아’, 이렇게 총 10명의 친구들과 1주 동안 재미있게 일하게 됐다. 다들 성격이 좋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솔직히 원래 선택한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닥 정이 안가는 건 사실이나…… 이미 참여하기로 결정한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을 것이라 믿었다! 회의 끝나고 Botanic garden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떤 곳인가 봤더니, ‘Templo del Cerrito de san cristobal’ 교회 올라가는 계단 옆이었다. 산 크리스토발 도착한 첫 날 방문했던 곳인데, 이 곳이 내가 봉사활동 할 장소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Botanic garden 첫째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속이 탁 막힌 느낌이다. 몸이 계속 좋지 않았다. 솔직히 이불 속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런 것 조차 즐겨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했다. Botanic garden 펜스 설치를 위해 구덩이를 파는 일, 진흙으로 유리병 ∙ 플라스틱 병을 서로 붙여서 조그만 집 벽을 만드는 일, 쓰레기 줍는 일, 이렇게 3 영역으로 나눠 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쉬는 시간 전 후로 일을 바꿔서 했는데, 나는 계속 쓰레기만 주웠다. 점점 깨끗해지는 걸 보면서 나름 보람을 느꼈다.
봉사활동이 끝난 오후에는 돈을 내면 스페인어를 배울 수도 있었고, 살사 댄스도 배울 수 있었고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볼 수도 있었다. 주말에는 가까운 곳으로 하이킹을 가거나 사파티스타 마을 등에 방문할 수 있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스페인어가 어떤 언어인가 궁금해 스페인어 수업을 듣기로 했다.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있는 도중에 Andy가 교실로 들어와 잠깐 얘기하고 싶다고 급하게 나를 찾아왔다. 1시간 후면 와하카 쪽 바닷가로 친구 만나러 가기로 했다면서, 작별인사를 하러 왔단다.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장난도 많이 치고 개그코드도 맞아 정말 많이 친해졌는데, 아쉬웠다. 언젠가 영국이나 한국에서 꼭 보자고 약속했다!
둘째 날, 전 날보다 덜 지루하지만 훨씬 힘든 일을 했다. 전 날 쓰레기만 3시간 정도 주워서 이골이 난 상태! 스튜-매그스 부부, 죠세파, 리카르도씨, 후안씨와 함께 짐 실을 수 있는 차로 어떤 장소로 이동했다. 비닐 하우스 있는 데에서 내려서 잠깐 구경하고 차 뒤에 모래를 퍼다 날랐다. 삽 질 좀 하고 어느 정도 모래를 채웠을 때 다시 차 타고 시멘트 3포대 사서 차에 싣고 목재 사서 다른 차에 싣고.. 솔직히 이 때까지는 별로 안 힘들었다. Botanic garden 쪽에 최대한 가깝게 차 세우고 본격적으로 일 시작~!
마대에 반 정도 모래를 채워서 Botanic garden 입구 쪽에 있는 재활용품으로 만든 집 안에 모래를 나르는 일이었는데 계속 하면 할수록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리카르도씨가 나는 군대 갔다왔다고 1~2삽 정도 더 퍼주신다. ^^;; 덕분에 근육운동과 유산소 운동 병행해서 할 수 있었다!
일을 열심히 했는지 점심 2그릇이나 먹고 낮잠까지 잤다. 스페인어 수업 듣고 쏘칼로 쪽에 있는 ‘Kinoki’라는 카페에서 ‘LA rebellion de los colgados’라는 영화를 봤다. 1910년대 치아파스 주의 원주민들의 삶을 묘사한 영화인데, 안타깝게도 영어 자막이 없어서 내용 흐름만 이해했다. 영화 끝난 후에는 스페인어로 토론하길래, 그냥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에서 같이 방 쓰는 사람들과 맥주 1잔하고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잠들었다.
셋째 날, Bio-Bio에서 아침 식사하고 테라피스트인 매그스의 시범 아래 스트레칭을 시작했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전 날 모래 나르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뻐근했는데, 스트레칭 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맥주로 인해 얼굴 부은 건 어찌할 수 없었다. ^^;
하루 종일 펜스 기둥 박을 곳마다 40cm 정도로 구덩이를 파는 것만 했다. 삽 2개 마주보고 있는 듯한 작업도구로 땅을 파고, 파다가 돌이나 바위 있으면 곡괭이나 길다란 쇠를 이용해 부수는 그런 식이었다. 파야할 구덩이가 12개 정도 됐는데, 그 중 4~5개는 바위 지대라 한창 파다가 살짝 자리를 옮겨 다시 파기도 했다. 마치 로봇과 같이 일을 했다! 오후에는 어김없이 스페인어 수업 듣고 저녁에 살사 댄스 배우러 고고싱~! 쏘칼로 쪽에 있는 bar에서 2시간에 35페소 내고 살사 댄스 배우는 것인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돈 내고 춤 배우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처음 1시간 동안에는 좁은 공간에서 살사 음악에 맞춰 앞에 있는 강사 분 춤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머지 1시간은 강사 분이 한 동작씩 알려주고 파트너랑 기본 스텝, 자리 바꾸면서 움직이는 동작을 연습했다. 보민, 헤다, 선아랑 췄는데 손에 땀이 많이 나서 미안했다. ^^; 밤에 맥주 1잔 하면서 티아라의 ‘Bo-Peep’ 춤을 살짝 보여줬더니 외국인 친구들이 정말 좋아했다. 가슴 튕기기까지 해주면 다들 좋아라(?)했다. K-pop을 알리기 위해 노력 좀 했다.
넷째 날, 펜스 작업 마무리하고 물고기들이 살게 될 조그만 연못 만드는 것이 과제! 전 날과 마찬가지로 구덩이 파고 돌 깨고 돌 구해오고.. 구덩이 다 판 후에 준비해 온 나무 기둥 박고 구해온 돌로 고정시키고.. 시멘트로 구덩이를 매웠다. 일 끝날 때쯤 펜스 작업은 마무리했고, 연못 파는 건 다음 날 이어서 하기로 했다. 일할 때 근육을 많이 써서 그런지 근육 량이 증가한 듯. ^^
스페인어 수업 끝나고 산토 도밍고 앞에 있는 민예품 시장에서 기념품을 샀다. 지갑, T-shirts, 손목 팔찌 이렇게 샀는데, 멕시코 시티, 와하카, 메리다 등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가격이 저렴했다.
밤에는 직접 튀긴 팝콘과 함께 ‘사파티스타 운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1994년 1월 1일에 시작된 ‘사피티스타 운동’. 원주민들과 멕시코 정부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은 듯 하다. 그리고 Los Chorros에서 느낀 거지만, 원주민들의 기본적인 교육, 경제, 사회 인프라 향상을 위해 멕시코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삶과 원주민들의 삶은 극과 극이다. 집에 돌아가면 관련 자료랑 책 좀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이 날 저녁 5일만에 맥주를 마시지 않고 그냥 잠들었다.
닷새 째, 2주간의 워크캠프를 공식적으로 마치는 마지막 날이다. 1주간은 현지인들과 살면서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머지 1주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의사소통하고 봉사활동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간이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 펜스 관련 작업에만 참여했다. 구덩이 파고 돌 모으고 나무 고정시키고.. 일 다 끝났을 때 리카르도씨와 앨리씨와 사진도 찍고 작별인사를 했다. 가끔씩 한 번 생각날 것 같다.
스페인어 마지막 수업 듣고 선생님과 기념 사진 찍고.. 저녁에는 호스텔에서 캠프 친구들과 윷놀이를 했다. 동현이 형이 외국인 친구들에게 윷놀이 설명하는데 그 진지한 모습에 같이 있던 사람들 다 같이 웃었다. ^^; 나와 보민 VS 동현이 형과 선아 이렇게 한국인 두 팀으로 나누고 외국인 친구들이 각각 나눠져 윷놀이 한 판 했다. 마지막 판에 맥주 내기까지 했는데 우리 팀이 졌다. 나는 윷놀이 하는 동안 윷과 모 둘 다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인이 아닌가 싶었다.
밤에는 다 같이 나가서 맥주 한 잔 했다. 산 크리스토발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 밤이라면서 술 사주는 친구도 있었고 같이 춤추는 친구도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 솔직히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호스텔 들어가서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맥주 마시면서 느낌 가는 대로 춤 추고 그랬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춘다고 그래서 약간 민망했다. ^^; 사람들이랑 작별인사하고 호스텔 들어와서 그냥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피곤해서......
산 크리스토발에서의 마지막 날, 발을 다친 죠세파를 제외한 나머지 캠프 친구들과 사파티스타 마을 그리고 산 후안 차물라 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파티스타 마을부터 방문했다. 마을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여튼 입구부터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그리고 위병소 보초 서는 것처럼 마스크를 쓴 2명의 남성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뭔가 금단의 구역으로 들어간다는 설렘이 내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권 보여주고 마스크 쓴 남성 2명의 인솔 하에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건물마다 사파티스타 관련 그림을 그려놨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을 둘러보고 가이드 분의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사파티스타 공동체의 경제 ∙ 정치 ∙ 교육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해주셨는데,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교육에 관한 얘기였다. 멕시코 정부에서 사파티스타 공동체가 실시하고 있는 교육 제도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기껏 사파티스타 공동체에서 중등 교육을 마쳐도 대학교를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란다. 멕시코 정부에서 아직까지도 약 900만 명 정도 되는 원주민들을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후안 차물라 마을은 산 크리스토발 왔던 첫 날에 혼자 갔다 왔기 때문에 별 생각이 안 들었다.
호스텔 돌아와서 짐 정리하고 헤다가 준 노르웨이 초콜렛 먹고 캠프 친구들과 작별인사 하면서 포옹 한 번씩 했다. 친구들한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다들 내가 그리울 거라면서 꼭 연락하자고 서로 약속했다. 나도 1주일 동안 그 친구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해서 너무 그리울 것 같다. 항상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떨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발걸음을 버스 정류장으로 옮겼다.
산 크리스토발에서 멕시코 시티로 밤 버스 타고 이동해서 멕시코 시티에서 2박 3일간 더 머물렀다. 정확히 36일이라는 짧고도 긴 멕시코 여행 및 워크캠프를 잘 마치고 약 23시간이라는 장시간 여행 끝에 2012년 2월 2일 아침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날 아침은 55년 만에 강추위가 몰아 닥친 날이었다.
Work Camp는 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군대 전역하고 나름대로 방향을 잘 설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의사소통하고 같이 일하면서 내 미래를 고민하는데 도움이 됐다.
워크캠프 자체가 시작부터 순탄치는 않았지만,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었고 오히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또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워크캠프를 즐기고 싶다.
2012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굳이 끌리는 이유를 들자면, 멕시코에 개인적으로 정말 친한 친구가 있어서 만나고 싶었고,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기후와 문화를 갖고 있어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고, 지인들 중에서 멕시코는 가본 사람이 거의 없어서 희소성이 있었고, 마야 ∙ 아스텍 문명 등 훌륭한 고대 문명 유적지를 돌아다니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워크캠프는 2012년 1월 15일에 시작하는 Natate가 주관하는 ‘Los Chorros01’이다.
멕시코 Chiapas 주에 있는 Los Chorros 마을에 가서 지역 주민들의 새로운 집을 짓는데 기초 공사부터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 내용이었는데, 평소에 habitat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오랜만에 영작해서 지원서 적고 참가비 입금하고 참가확정 상태가 됐을 때, 바로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해 온갖 사이트를 검색했다. 보통 비행기 표 저렴하게 구입하려면 최소 몇 달 전에 사놨어야 됐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멕시코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저렴한 표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28일에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미국을 거쳐 멕시코 시티로 가는 왕복표를 구입했다.
워크캠프 시작하기 전까지는 여행하고 멕시코 친구 집에 방문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12월 1달 동안은 워크캠프 훈련 세미나 참석 등 워크캠프 관련 준비 및 여권 발급, ESTA 발급, 숙박 시설 예약 등 여행 준비를 병행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12월 28일 저녁, 인천 국제공항에서 어머니의 배웅 속에 시카고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 도착해서 대기하다가 멕시코 시티 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멕시코 현지 시각으로 12월 29일 새벽 5시경에 멕시코 시티에 있는 베니토 후아레즈 공항에 도착했다. 꼬박 25시간이 걸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장시간 동안 이동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약간(?) 피곤했다.
12월 29일부터 5박 6일간은 멕시코 시티와 그 주변, 탁스코, 푸에블라를 여행하고, 3박 4일은 와하카, 2박 3일은 멕시코 친구와 친구 가족들을 보기 위해 몬테레이에서 머물렀고, 2박 3일은 멕시코 제 2의 도시 과달라하라, 3박 4일은 메리다와 팔렌케, 그리고 워크캠프 시작하기 하루 전인 2012년 1월 14일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 도착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름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생각한다.
여행하면서 몬테레이에 있는 멕시코 친구 집에서 2박 3일간 머물면서 그 지역 전통 음식 먹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도 보냈고, 여행 도중 만난 좋은 외국인 친구들과 밤에 맥주 한 잔 하면서 얘기도 하고, IPS 국가경쟁력 글로벌 조사단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도 하고, 길거리에서 매일 타코 사먹고, 테오티우아칸 ∙ 치첸 이차 등 멕시코 고대 문명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장소에도 다녀오고..
지금껏 잘 안 해본 것들을 해서 그런지 모든 것들이 내게는 신기하고 좋은 경험으로 다가왔다.
여행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워크캠프!! 워크캠프 시작하기 하루 전 날에는 설레서 잠도 잘 안
왔다. 설레는 만큼 워크캠프가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인포싯에 나와 있는 약속 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 미팅 포인트에 도착했다. 미팅 포인트는 Natate 자
원봉사자 전용 숙소였다.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 Natate 자원 봉사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에 시
간적 여유가 있어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안에 있는 마야 전통 의학 박물관에 다녀오고 점심
먹고 다시 미팅 포인트에 돌아왔다. 이번 워크캠프 리더인 영국인 친구 Andy와 Natate 책임자인 Juan이
있었다. Los Chorros 프로그램에 대해서 간단하게 의논했는데, 마을 현지 축제로 인해 하루 늦게 마을로 이동한다고 했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살짝 실망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앤디와 나 그리고 다른
한국인 참가자까지 총 3명이 이번 워크캠프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소 8명쯤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국 다른 한국인 참가자 1명까지 오지 않아서 Andy와 나 둘이서 워크캠프를 하게 됐다. 캠프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뭐한…… 그리고 Los Chorros 마을에서 habitat 3일, 커피 수확 2일을 하면서 이렇게 1주일을 보내고, 나머지 1주는 다른 마을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인포싯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1주일하고 주말에는 산 크리스토발로 다시 내려와야 했기 때문에 1주일 치 식량 구매 등 준비해야 될 것에 대해 의논했다.
다음 날 아침, 시장에 가서 1주일 치 식량과 휴지 등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고 각자 짐 정리해서 Los Chorros 마을로 고고싱~ 짐을 차에 다 싣고 짐 칸에 남은 좁은 공간에 Andy와 자리 하나씩 잡고 서서 2시간 30분 정도 포장된 길과 비포장 도로를 거쳐 가니 우리가 머물 집 앞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산골 마을이다. 두메 산골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머물 장소는 Juan씨 가족의 집에 딸려있는 창고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급하게 그 창고를 정리하고 계셨다. Juan씨는 1명의 부인과 3명의 아들, 3명의 딸이 있었다. 아이들 모두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면서도 쑥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에서 순수함이 느껴졌다. Juan씨에게 집 구조 설명 듣고 짐 정리한 후에 Andy와 마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아 참! 이 마을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언어는 ‘초칠어’라는 고유 언어이다. 대부분의 마을어른들은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구사하는데, 1994년 사파티스타 원주민 농민들의 무장 투쟁이 일어났을 때, 멕시코 정부군이 진압을 위해 이 마을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이 때, 멕시코 군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스페인어를 구사할 필요성이 있었단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Andy와 Juan씨가 서로 의논하면 Andy가 내게 영어로 번역해주는 형식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마을 중심부로 가니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Wow!!! 산골 마을이라 그런지 구름과 산, 나무로 만든 집들이 조화를 이뤄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이 꽤 컸다. 조그마한 상점들도 있었고, 2페소 짜리 타코를 파는 곳도 있었다. 보통 운반 비용이 많이 드는 산골 마을에서 물건과 음식 값이 비싸기 마련인데, 시내보다 더 저렴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경제 상식을 뒤엎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마을 산책을 끝내고 주방에서 식사를 하는데, 나무를 이용해 불 땐 다음 그 위에 삼다리 같은 철판을 놓고 그 위에 프라이팬이나 냄비를 놓고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식탁도 따로 없어 조그만 나무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하는 것이었다.
자기 전에 양동이에다가 직접 물을 길어와 그 물로 샤워를 했다. 따로 샤워하는 공간이 있긴 하지만, 바닥은 흙이라서 물 부으면 바로 진흙이 된다. 그리고 밤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찬 물로 샤워하면서 개운하긴 한데 산골 마을이라 낮에는 더워도 밤이 되면 쌀쌀했다. 정말 1960년대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차량 준비도 제대로 안되어있고, 하나부터 열까지 봉사자 2명이 다 준비해야 되고, 캠프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2명의 참가자, 제멋대로인 일정.. 그래도 Los Chorros에 온 건 잘한 선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17박 18일간의 여행과는 다른, 그리고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워크캠프 이틀 째.. 아침 7시까지 오기로 한 마을 habitat 관계자는 오지 않았다. Andy가 이곳 저곳 연락을 취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결국 Juan씨 가족이 관리하는 커피 농장에 가서 커피를 수확하기로 했다. 15일부터 계획대로 이뤄진 것이 거의 없다. Andy와 나는 짜증나긴 했지만 일단 모든 것을 즐기기로 했다.
커피 농장은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데, 추가로 커피 수확까지 한다니.. 설레는데?! 커피는 붉은색 과일처럼 생겼다. 그 붉은 색 껍질을 까서 땅콩(?)같이 생긴 커피 알맹이를 햇빛에 말린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두’였다. 커피 수확한 지 약 2시간 째.. 단순 작업이라 그런지 약간 지루해졌다. 중간에 이 지역 전통 옥수수 음료인 ‘뽀솔’을 마시면서 에너지를 보충했지만 지루한 건 매한가지.. 결국 5시간 정도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식사 준비를 했다. 흥미로운 체험이었으나 매일매일 하는 건 좀 힘들 것 같다.
나는 한국식으로 밥을 짓고, Andy는 미리 사온 피망, 토마토, 양파, 소고기 등을 이용하여 요리를 했다. 밥도 Good! 음식도 Good! 아주머니도 맛보시더니 맛있다고 더 드시기까지 했다. 그런데 주방에서 오래있다 보면 연기 때문에 눈물과 콧물이 항상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 아이들을 보면 항상 콧물을 달고 산다. 호흡기 건강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마르타, 비센테, 크리스티나, 마르코스, 앙헬, 마르셀라 이렇게 총 6명인데,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마르타에게는 미리 준비해 간 공기를 주고, 마르코스에게는 제기차기를 알려줬다. 알려주긴 했는데 내가 잘못 알려줬는지 다른 방식으로 공기와 제기차기를 갖고 놀았다. 애들이랑 사진도 찍고 했는데 사진 찍는 거 정말 좋아했다. 찍은 사진들 보여주면 정말 흥미로워했다.
셋째 날, habitat 관계자는 또 오지 않았다! 덕분에 커피 수확부터 커피 말리는 과정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오전에는 커피 수확하고 오후에는 커피 열매 껍질 까기, 커피 말리기 작업을 했다. 일일이 수작업이 요구되는데 그에 비해 커피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1kg에 41페소라고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3500원 정도인데.. 노력에 비해 제 값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끝나고 오후에는 Juan씨가 마을 구경을 시켜준다고 해서 산책을 했다. 마을 한 번 둘러보고 커피 수확할 때 보던 알프스 같은 풍경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까지 갔다. Impressive scenery!!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풍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긴 흰 수염을 갖고 계신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갑자기 Juan씨가 “저 할아버지는 연세가 120세다.”라고 말해줬다. 헉.. 진짜 120세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120세까지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오래 살고 싶으면 Los Chorros로 이사와야 할 듯..
Habitat 관계자인 마르틴씨 집에 직접 들려 인사 나누고 현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다. 뭔가 의사소통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는데.. 뭐 어찌 알겠나?! 여튼 우리의 본 봉사활동 목적인 habitat를 하기 위해 나머지 이틀 동안 일할 장소를 찾으러 다녔다. 돌아다니다가 결국 하비에르씨와 일하기로 결정했다. 정말 마을도 좋고 Juan씨 가족도 좋고 다 좋은데, 본래 목적인 봉사활동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Andy와 내가 하루하루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식이다. 그래도 이런 것도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감정적으로 동요되지는 않았다.
Los Chorros에 온 지 4일 째.. 드디어 집 짓는 일에 동참했다. 아침 먹고 전 날 미리 얘기해둔 하비에르씨 집에 가서 일을 돕기 위해 갔다. 처음에 목재 1번 나르고 1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다른 인부들과 계속 일하기만 하지, 우리에게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 Andy가 일거리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우리가 할 건 없단다. 그럼 기다리는 동안 말이라도 해주지…… 결국 전날 방문했던 페드로씨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비에르씨와 다르게 페드로 씨는 상당히 친절했다. 페드로씨 집 앞에 시멘트 섞인 모래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는데 그것을 집 안에 쌓아놓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원래 내가 희망했던 봉사활동은 집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도움을 주는 그런 형식이었는데..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있나?
한 명이 삽으로 모래를 수레에 옮겨 놓으면 다른 한 명은 수레를 끌고 가서 모래를 쌓는 식으로 일을 했다. 오랜만에(?) 삽질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같이 일하는 페드로씨와 다른 아저씨들과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전통 음료인 ‘뽀솔’도 마시고.. 정말 친절하신 분들이다. 그런데 일 다 끝나갈 페드로씨가 점심까지 대접하고 싶다고 하셔서 점심까지 얻어 먹었다. 팥 죽 같이 생긴 콩, 계란 후라이, 또르티야, 여기에 콜라까지.. 진수성찬이었다. 그런데 페드로씨는 차린 게 별로 없다면서 미안해하셨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 시골 인심을 보는 것 같았다. 점심까지 대접하셨는데 딸과 조카를 우리에게 딸려 보내 전 날 봤던 계곡까지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 짱!!!!! 덕분에 초원에서 풀 뜯어 먹고 있는 소와 말, 오렌지 나무 ∙ 커피 나무 ∙ 바나나 나무, 계곡, 맑은 하늘, 구름이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건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이다!
닷새 째, 전 날과 마찬가지로 페드로씨 집에 가서 일을 했다. 한 명이 모래를 한 삽 퍼서 그물망 위에 얹어 놓으면, 다른 한 명은 그물망을 흔들어 작은 모래입자를 걸러내는 일이었다. 약 3시간 정도 계속 반복된 일을 해서 상당히 지루하긴 했지만,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아쉬워서 더 열심히 일을 했다. Andy가 이미 모래가 걸러진 돌들을 올려놨는데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팔을 움직였을 정도다. Andy의 장난에 둘이서 서로 배꼽잡고 웃었다. 나도 Andy에게 똑 같은 방법으로 복수했는데 Andy도 속았다.
일 다 끝나고 페드로씨가 집에서 키우는 닭을 잡아 백숙 같은 음식을 점심으로 대접하셨다. 손님이라고 정말 귀한 대접을 해주셨다. 점심 먹고 헤어질 때 Andy와 내 휴대폰 번호 알려드리고 한국에서 미리 사 온 책갈피와 서울 여행 자료를 드리면서 약소하게나마 보답하고 포옹 한 번씩 했다. 정말 아쉬웠다. 내가 이 마을을 다시 찾지 않는 이상 못 볼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움마저 들었다.
오후에는 마르코스가 안내자 역할을 맡아 Juan씨 집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폭포에 갔다. 거기서 Andy, 마르코스랑 사진도 찍고 나름 재미있게 놀았다. 마지막으로 찬 물로 샤워하고 저녁 먹고 자려고 준비하는데 Juan씨가 우리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Andy와 다음 날 산 크리스토발로 돌아갈 교통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책갈피, 연필 등 약소한 선물들을 설명해드린 후에 드렸다. 서로 1주일 동안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려는 순간, 갑자기 Juan씨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와 포옹하면서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기껏해야 커피 약간 수확하고 커피 껍질 좀 까고 커피 말려놓았던 것들 마대에 담았던 것밖에 안 했는데…… 오히려 그런 값진 경험을 하게 해주신 Juan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감사할 뿐인데…… 갑자기 우셔서 정말 당황스러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5분 뒤 직접 집에서 수확한 커피 생두를 주셨다. 정말 힘들게 생산한 커피인데…… 너무 귀한 선물을 받았다!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가족들 다 일찍 깨워서 작별인사 할 거라고 하셨는데…... 감동 그 자체였다……
Juan씨가 집으로 돌아간 후, Andy와 하늘에 있는 별 보려고 잠깐 밖에 나왔는데 Juan씨 집 쪽에서 Juan씨 울음 소리와 함께 Juan씨가 가족들에게 초칠어로 뭔가 말하는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겪었던 경험들 중 짧았지만 가장 강렬했던 5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화장실, 샤워하는 장소, 주방 둘러보고 약간 당황했었다. 그래도 도시인들과는 다른 가족들의 순수함, 인사하면 웬만하면 다 받아주는 친절한 마을사람들, 너무나 멋진 풍경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다 잊고 5박 6일을 너무나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다음 날 추위 속에서 Andy가 깨워서 간신히 일어났다. 짐 정리하고 차량 오기 전까지 주방에서 커피 한 잔하고 얘기하고 사진 찍고.. 헤어지기 전에 악수 1번씩 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정말 생각 많이 날 것 같다! 워크캠프 프로그램 자체는 엉망이었지만, 그것을 커버하고도 남을만한 경험을 하고 훈훈한 마음으로 다시 산 크리스토발로 돌아왔다.
산 크리스토발로 돌아오자마자 짐 정리하고 Natate 관계자 Juan과 프로그램의 보완점과 향후 계획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Juan이 다음주에 실시할 다른 워크캠프인 ‘Botanic garden’에 대해 소개하고 참여할건지 여부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참여한다고 했고, Andy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말에는 갑자기 몸살이 걸려서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산 크리스토발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미대로’도 갔다 오고 밤에 다른 봉사자들과 맥주도 한 잔 했다. 덕분에 몸살 기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1월 22일 일요일, 새로운 워크캠프 시작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 날 한국은 구정 당일이었기 때문에, 절 2번하고 가족 ∙ 친척들에게 인사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동생 휴대폰으로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 가족과 친척분들께서 정말 좋아하셨다는 후문이다.
‘Botanic garden’ 워크캠프에서 사용할 호스텔로 자리를 옮겼다. 숙소가 호스텔이라니.. 그리고 식사는 직접 만들어 먹지 않고 Natate 사무실이 있는 Bio-Bio라는 식당에서 3끼를 다 먹는단다! 지난 주에 찬 물로 샤워하고 연기 가득한 주방에서 식사하고 창고에서 덜덜 떨면서 잔 것을 생각하면 천국이 아닐 수 없다. 극과 극의 체험이라고나 할까…... 호스텔에서 짐 풀고 1주간 같이 워크캠프에 참여할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Botanic garden’ 담당자인 Juan씨에게 프로그램과 관련해 설명을 들었다. 노르웨이 친구 ‘헤다’, 프랑스인 친구 ‘캐롤린’, ‘마린’, 미국인 친구 ‘매그스’, ‘스튜’, 벨기에 친구 ‘죠세파’, 멕시코 친구 ‘파비올라’, 한국인 친구 ‘동현이 형’, ‘오보민’, ‘이선아’, 이렇게 총 10명의 친구들과 1주 동안 재미있게 일하게 됐다. 다들 성격이 좋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솔직히 원래 선택한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닥 정이 안가는 건 사실이나…… 이미 참여하기로 결정한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을 것이라 믿었다! 회의 끝나고 Botanic garden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떤 곳인가 봤더니, ‘Templo del Cerrito de san cristobal’ 교회 올라가는 계단 옆이었다. 산 크리스토발 도착한 첫 날 방문했던 곳인데, 이 곳이 내가 봉사활동 할 장소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Botanic garden 첫째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속이 탁 막힌 느낌이다. 몸이 계속 좋지 않았다. 솔직히 이불 속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런 것 조차 즐겨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했다. Botanic garden 펜스 설치를 위해 구덩이를 파는 일, 진흙으로 유리병 ∙ 플라스틱 병을 서로 붙여서 조그만 집 벽을 만드는 일, 쓰레기 줍는 일, 이렇게 3 영역으로 나눠 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쉬는 시간 전 후로 일을 바꿔서 했는데, 나는 계속 쓰레기만 주웠다. 점점 깨끗해지는 걸 보면서 나름 보람을 느꼈다.
봉사활동이 끝난 오후에는 돈을 내면 스페인어를 배울 수도 있었고, 살사 댄스도 배울 수 있었고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볼 수도 있었다. 주말에는 가까운 곳으로 하이킹을 가거나 사파티스타 마을 등에 방문할 수 있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스페인어가 어떤 언어인가 궁금해 스페인어 수업을 듣기로 했다.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있는 도중에 Andy가 교실로 들어와 잠깐 얘기하고 싶다고 급하게 나를 찾아왔다. 1시간 후면 와하카 쪽 바닷가로 친구 만나러 가기로 했다면서, 작별인사를 하러 왔단다.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장난도 많이 치고 개그코드도 맞아 정말 많이 친해졌는데, 아쉬웠다. 언젠가 영국이나 한국에서 꼭 보자고 약속했다!
둘째 날, 전 날보다 덜 지루하지만 훨씬 힘든 일을 했다. 전 날 쓰레기만 3시간 정도 주워서 이골이 난 상태! 스튜-매그스 부부, 죠세파, 리카르도씨, 후안씨와 함께 짐 실을 수 있는 차로 어떤 장소로 이동했다. 비닐 하우스 있는 데에서 내려서 잠깐 구경하고 차 뒤에 모래를 퍼다 날랐다. 삽 질 좀 하고 어느 정도 모래를 채웠을 때 다시 차 타고 시멘트 3포대 사서 차에 싣고 목재 사서 다른 차에 싣고.. 솔직히 이 때까지는 별로 안 힘들었다. Botanic garden 쪽에 최대한 가깝게 차 세우고 본격적으로 일 시작~!
마대에 반 정도 모래를 채워서 Botanic garden 입구 쪽에 있는 재활용품으로 만든 집 안에 모래를 나르는 일이었는데 계속 하면 할수록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리카르도씨가 나는 군대 갔다왔다고 1~2삽 정도 더 퍼주신다. ^^;; 덕분에 근육운동과 유산소 운동 병행해서 할 수 있었다!
일을 열심히 했는지 점심 2그릇이나 먹고 낮잠까지 잤다. 스페인어 수업 듣고 쏘칼로 쪽에 있는 ‘Kinoki’라는 카페에서 ‘LA rebellion de los colgados’라는 영화를 봤다. 1910년대 치아파스 주의 원주민들의 삶을 묘사한 영화인데, 안타깝게도 영어 자막이 없어서 내용 흐름만 이해했다. 영화 끝난 후에는 스페인어로 토론하길래, 그냥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에서 같이 방 쓰는 사람들과 맥주 1잔하고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잠들었다.
셋째 날, Bio-Bio에서 아침 식사하고 테라피스트인 매그스의 시범 아래 스트레칭을 시작했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전 날 모래 나르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뻐근했는데, 스트레칭 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맥주로 인해 얼굴 부은 건 어찌할 수 없었다. ^^;
하루 종일 펜스 기둥 박을 곳마다 40cm 정도로 구덩이를 파는 것만 했다. 삽 2개 마주보고 있는 듯한 작업도구로 땅을 파고, 파다가 돌이나 바위 있으면 곡괭이나 길다란 쇠를 이용해 부수는 그런 식이었다. 파야할 구덩이가 12개 정도 됐는데, 그 중 4~5개는 바위 지대라 한창 파다가 살짝 자리를 옮겨 다시 파기도 했다. 마치 로봇과 같이 일을 했다! 오후에는 어김없이 스페인어 수업 듣고 저녁에 살사 댄스 배우러 고고싱~! 쏘칼로 쪽에 있는 bar에서 2시간에 35페소 내고 살사 댄스 배우는 것인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돈 내고 춤 배우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처음 1시간 동안에는 좁은 공간에서 살사 음악에 맞춰 앞에 있는 강사 분 춤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머지 1시간은 강사 분이 한 동작씩 알려주고 파트너랑 기본 스텝, 자리 바꾸면서 움직이는 동작을 연습했다. 보민, 헤다, 선아랑 췄는데 손에 땀이 많이 나서 미안했다. ^^; 밤에 맥주 1잔 하면서 티아라의 ‘Bo-Peep’ 춤을 살짝 보여줬더니 외국인 친구들이 정말 좋아했다. 가슴 튕기기까지 해주면 다들 좋아라(?)했다. K-pop을 알리기 위해 노력 좀 했다.
넷째 날, 펜스 작업 마무리하고 물고기들이 살게 될 조그만 연못 만드는 것이 과제! 전 날과 마찬가지로 구덩이 파고 돌 깨고 돌 구해오고.. 구덩이 다 판 후에 준비해 온 나무 기둥 박고 구해온 돌로 고정시키고.. 시멘트로 구덩이를 매웠다. 일 끝날 때쯤 펜스 작업은 마무리했고, 연못 파는 건 다음 날 이어서 하기로 했다. 일할 때 근육을 많이 써서 그런지 근육 량이 증가한 듯. ^^
스페인어 수업 끝나고 산토 도밍고 앞에 있는 민예품 시장에서 기념품을 샀다. 지갑, T-shirts, 손목 팔찌 이렇게 샀는데, 멕시코 시티, 와하카, 메리다 등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가격이 저렴했다.
밤에는 직접 튀긴 팝콘과 함께 ‘사파티스타 운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1994년 1월 1일에 시작된 ‘사피티스타 운동’. 원주민들과 멕시코 정부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은 듯 하다. 그리고 Los Chorros에서 느낀 거지만, 원주민들의 기본적인 교육, 경제, 사회 인프라 향상을 위해 멕시코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삶과 원주민들의 삶은 극과 극이다. 집에 돌아가면 관련 자료랑 책 좀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이 날 저녁 5일만에 맥주를 마시지 않고 그냥 잠들었다.
닷새 째, 2주간의 워크캠프를 공식적으로 마치는 마지막 날이다. 1주간은 현지인들과 살면서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머지 1주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의사소통하고 봉사활동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간이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 펜스 관련 작업에만 참여했다. 구덩이 파고 돌 모으고 나무 고정시키고.. 일 다 끝났을 때 리카르도씨와 앨리씨와 사진도 찍고 작별인사를 했다. 가끔씩 한 번 생각날 것 같다.
스페인어 마지막 수업 듣고 선생님과 기념 사진 찍고.. 저녁에는 호스텔에서 캠프 친구들과 윷놀이를 했다. 동현이 형이 외국인 친구들에게 윷놀이 설명하는데 그 진지한 모습에 같이 있던 사람들 다 같이 웃었다. ^^; 나와 보민 VS 동현이 형과 선아 이렇게 한국인 두 팀으로 나누고 외국인 친구들이 각각 나눠져 윷놀이 한 판 했다. 마지막 판에 맥주 내기까지 했는데 우리 팀이 졌다. 나는 윷놀이 하는 동안 윷과 모 둘 다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인이 아닌가 싶었다.
밤에는 다 같이 나가서 맥주 한 잔 했다. 산 크리스토발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 밤이라면서 술 사주는 친구도 있었고 같이 춤추는 친구도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 솔직히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호스텔 들어가서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맥주 마시면서 느낌 가는 대로 춤 추고 그랬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춘다고 그래서 약간 민망했다. ^^; 사람들이랑 작별인사하고 호스텔 들어와서 그냥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피곤해서......
산 크리스토발에서의 마지막 날, 발을 다친 죠세파를 제외한 나머지 캠프 친구들과 사파티스타 마을 그리고 산 후안 차물라 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파티스타 마을부터 방문했다. 마을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여튼 입구부터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그리고 위병소 보초 서는 것처럼 마스크를 쓴 2명의 남성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뭔가 금단의 구역으로 들어간다는 설렘이 내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권 보여주고 마스크 쓴 남성 2명의 인솔 하에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건물마다 사파티스타 관련 그림을 그려놨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을 둘러보고 가이드 분의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사파티스타 공동체의 경제 ∙ 정치 ∙ 교육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해주셨는데,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교육에 관한 얘기였다. 멕시코 정부에서 사파티스타 공동체가 실시하고 있는 교육 제도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기껏 사파티스타 공동체에서 중등 교육을 마쳐도 대학교를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란다. 멕시코 정부에서 아직까지도 약 900만 명 정도 되는 원주민들을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후안 차물라 마을은 산 크리스토발 왔던 첫 날에 혼자 갔다 왔기 때문에 별 생각이 안 들었다.
호스텔 돌아와서 짐 정리하고 헤다가 준 노르웨이 초콜렛 먹고 캠프 친구들과 작별인사 하면서 포옹 한 번씩 했다. 친구들한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다들 내가 그리울 거라면서 꼭 연락하자고 서로 약속했다. 나도 1주일 동안 그 친구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해서 너무 그리울 것 같다. 항상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떨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발걸음을 버스 정류장으로 옮겼다.
산 크리스토발에서 멕시코 시티로 밤 버스 타고 이동해서 멕시코 시티에서 2박 3일간 더 머물렀다. 정확히 36일이라는 짧고도 긴 멕시코 여행 및 워크캠프를 잘 마치고 약 23시간이라는 장시간 여행 끝에 2012년 2월 2일 아침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날 아침은 55년 만에 강추위가 몰아 닥친 날이었다.
Work Camp는 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군대 전역하고 나름대로 방향을 잘 설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의사소통하고 같이 일하면서 내 미래를 고민하는데 도움이 됐다.
워크캠프 자체가 시작부터 순탄치는 않았지만,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었고 오히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또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워크캠프를 즐기고 싶다.
2012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