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파리, 낯선 도시에서 찾은 봉사의 의미

작성자 장호민
프랑스 CONC 097 · RENO 2012. 07 Bobigny, a suburb of Paris

BOBIGN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두 번째 해외봉사 이야기를 시작한다. 작년 2011년 여름방학 때 했던 첫 번째 해외봉사는 대사협에서 주최 했는데, 이번 해외봉사가 자율적 이였다면, 첫 번째는 짜여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 이였다. 자율적에는 항공권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 해야만 하는 것 이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친구랑 같이 준비했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혼자서 했더라면, 조금은 힘들었을 것 같다.
이렇게 한국에서 항공권, 한국음식, 한국기념품 등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덧, 출국 날짜가 다 되었다. 내가 가는 곳은 프랑스 파리 보비니 지역 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친구와 나는 정말 좋은 곳에서 지냈다는 느꼈다. 우리는 처음가보는 유럽을 대비해 워크캠프 3주 후, 자율여행을 계획했고 워크캠프기간 하루 전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왜냐하면 처음 가보는 곳이고, 하루 정도 미리 가서 둘러보고, 미팅장소도 알아보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하루 전에 파리에 도착해 한인 민박에 몸을 맡기고, 미팅장소 극장을 찾아 다녔다. 극장이라고 해서 왜 여기서 모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일하는 장소는 파리 외각에 있었고, 미팅 장소는 중심부였다. 내 생각으론 여기서 모여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구나 생각했다.
워크캠프 당일이 되었다. 우리는 극장으로 갔고, 거기서 프랑스 여자 리더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몇 명의 친구들은 먼저 도착해 있었고, 점심겸 저녁을 먹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우리 숙소인 것 이였다. 극장과 기숙사가 같은 공간에 있었고 미로처럼 복잡했다. 워크캠프가 시작 되었다.
처음 느낀 것은 바로 언어의 장벽 우리가 알고 온 정보는 보통 영어를 잘 못하니 서로 몸짓으로 친해진다고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모국어가 영어인 것처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듣기는 어느 정도 듣는데 말하는데 불편함이 있어서, 몸짓으로 해야지 생각했는데, 아무도 몸짓은 하지 않았다. 영어의 중요성을 느끼는 첫 순간 이였다.
우리 팀의 구성원은 10명 리더까지 12명 프랑스, 대한민국, 러시아, 터키, 세르비아, 아르메니아, 우크라니아로 구성 되었다. 남자보단 여자가 2명 더 많았고, 봉사 장소는 숙소에서 지하철로 30분 떨어진 아파트 동네였다 하는 일은 외부 복도 페인트 칠 이였고, 봉사라기 보단 작업에 가까웠다고 생각 든다.
3주 동안의 자는 시간 빼고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글로 다 표현 할까.. 그 중 기억 남는 일들은 문화적 차이와 예를 들면 스킨십의 정도 자기 주장의 뚜렷함과 색다른 음식들이 기억에 남는다. 또 다른 워크캠프 팀들과 만나서 파티도 하고 문화도 교류 했다.
우리는 봉사를 오전에 마치고 점심때 점심을 해먹었는데, 각국의 전통 음식을 해먹었다. 입맛에 맞는 것도 있었고 아니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맛있게 먹었고, 그 느낌은 짰다. 조금은 짜게 먹는 식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낮엔 봉사를 하고 오후엔 점심과 자율 시간을 갖고 저녁에 다같이 술 한잔과 각국의 게임을 하면서 3주를 보냈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고, 헤어지는 날이 되었다. 서로 페이스북으로 연락하자고 하고, 한국에 오겠다는 친구도 있고, 눈물을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들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이 추억을 글로는 표현을 다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직접 느끼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야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히 길게는 쓰지 않았다. 누군가 나의 3주간의 꿈 같은 워크캠프 추억을 알고 싶다면 나와 만나 이야기를 해주겠다.
또 다시 기회가 된다고 가고 싶고, 새로운 친구들을 얻었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 워크캠프에 감사함을 표한다.

-2012년 8월 31일 장호민

추신. 우리는 전신 작업복을 입고 봉사활동을 해서 봉사활동 장면을 찍을 수가 없었다.
리더가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을 받지 못해서 활동 사진은 포함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