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크로아티아, 이유 없는 끌림과의 만남
Croatian Music Festival (CMF) 2012 - Zabo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유럽여행을 계획할때 블로그를 보다가 우연하게 크로아티아라는 나라를 알게되었다. 그때 부터 아무 이유없이 꼭 이번 여행에 크로아티아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던것 같다. 그리고 우연히 이 워크캠프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이 워크캠프 하나를 지원했었다.
나는 유럽배낭여행 중간에 워크캠프를 참가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생각보다 유럽내에서 크로아티아로 들어가는 교통편 찾기가 어려웠엇다. 그래서 우연히 이탈리아 Ancona에서 페리로 들어갈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하루살이로 프랑스부터 이동해서 크로아티아 Split으로 들어간 후 버스를 타고 Zagreb로 이동 후 Zabok까지 기차를 타고 갔었다.
Zabok은 생각보다 작은 동네여서 처음 도착했을때 당황했던게 기억이 난다. 나름 페스티벌이라 해서 클 줄 알았는데, 동네사람들이 서로를 거이 알 정도로 작은 동네였고, 어디던 있다는 중국인 조차 없는 정말 백인 동네였다. 해외연수도 다녀오고 외국에서 일년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인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도착했을때 너무 놀랐고, 그때 돌아갈까란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또한 인포싯에 언제까지 도착하라는 안내도 없었고, 그저 그날 도착한 후 캠프리더에게 전화하라는 말 밖에 없었기에 대부분 워크캠프는 한두시쯤 거이 모인다는 말을 들어 그쯤 도착했다가 역 대합실서 5시간 정도 기다리기도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봉사자들에게 문자를 보냈었는데, 나는 로밍된 폰이라 일반방식으로 보내진 문자를 받을수가 없단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현지 담당자를 만난후에 바로 스페인 참가자가 왔었고 저녁 먹을쯤 프랑스 참가자가 왔으며, 열시쯤 스코트랜드 참가자가 왔었다. 마지막 터키 참가자는 작년에도 참가했던 참가자였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틀 후에 왔었다. 또한 캠프 시작하기 이틀 전에 폴란드 여자애 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가를 포기 했고, 이렇게 스페인참가자(Irene),프랑스 참가자(Marion), 스코트랜드 참가자(Peter), 터키 참가자(Mehmet),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 캠프리더(August) 와 나 이렇게 모였었다. 나의 워크캠프는 일반적으로 들었던 워크캠프와 많이 달랐었는데, 일단 캠프 참가자 부터 독특했었다. Mehmet은 작년 참가자였으며, Peter는 영국사람이었으며(영어가 모국어인 참가자가 많지 않다고 들었었다), 나이는 50대 후반이지만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캠프리더인 August또한 이미 현지 사람들과 잘 아는 친구 였었다. 또한 우리는 현지 담당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들의 친구들과 가족,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가 매우 많았었다.
우리의 주된 업무는 REGENERATOR라는 콘서트장을 페스티발 전과 후에 청소하고 페인트칠 하기, 페스티발 중 바에서 일하는것과 사진 찍기, 포스터 붙이기, 마지막으로 시상식때 도우미 일을 했었다. 페스티벌은 총 세번 6월2일 토요일, 6월 9일 토요일, 마지막 최종 파이널 6월 15일 금요일로 진행되었엇다. 또한 우리 의 숙소의 GREEN HALL 앞의 텃밭 가꾸기도 하고, 동네의 오래된 놀이터 두군데에 놀이기구 페인트 칠하기를 했었다. 일이 많이 고되지도 않았고, 자유시간이 많아서 캠프 참가자들과 현지 담당자, 그리고 현지인들과 많이 친해졌었다.
우리의 숙소는 GREEN HALL 이라는 동네의 어린이들을 위한 마을회관 같은 곳이었엇다. 넓고, 깨끗했으며, 화장실과 샤워실도 잘 되어있었다. 부엌시설도 잘되있어서 프랑스 참가자와 스페인 참가자와 내가 매일 점심 저녁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던게 기억이 난다.
또한 사람들이 너무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놀라기도 했었다. 한국영화도 몇가지 알고 있었으며, 기업 등 속속히는 아니여도 내가 크로아티아를 알고 있는것 보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놀랐었다. 반면에 나는 그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있던것 보다 크로아티아, 어쩌면 발칸반도 자체에 대해서 아는게 많이 없어서 그랬던 기억이 있다.
스페인 참가자와 프랑스참가자 애들은 나와 또래아이들이어서 정말 너무 많이 친해졌었다. 서로의 고민도 얘기할만큼 소중한 친구가 되었고, 현지에도 친해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꼭 찾아가기로 약속했었다. 아직도 facebook, skype와 mail로 연락하고, postcard를 보내주기도 하면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나의 워크캠프는 주위에서 들었던 워크캠프와 많이 달랐었다. 캠프 참가자 뿐만 아니라 동네 사는 현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으며, 작년 참가자들 또한 두명이나 만날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떠난 후에 몇몇 작년 참가자들이 더 올 정도로, 워크캠프를 하기위해 어쩌다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봉사로 인한 만남이 아닌 친구로써 만남이 될수 있다는게 신기했었다. 한국에 돌아왔을때 이때 이시간과 그 이후에 같이 여행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리웠고, 내 여행 기억중 가장 의미있고,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나는 유럽배낭여행 중간에 워크캠프를 참가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생각보다 유럽내에서 크로아티아로 들어가는 교통편 찾기가 어려웠엇다. 그래서 우연히 이탈리아 Ancona에서 페리로 들어갈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하루살이로 프랑스부터 이동해서 크로아티아 Split으로 들어간 후 버스를 타고 Zagreb로 이동 후 Zabok까지 기차를 타고 갔었다.
Zabok은 생각보다 작은 동네여서 처음 도착했을때 당황했던게 기억이 난다. 나름 페스티벌이라 해서 클 줄 알았는데, 동네사람들이 서로를 거이 알 정도로 작은 동네였고, 어디던 있다는 중국인 조차 없는 정말 백인 동네였다. 해외연수도 다녀오고 외국에서 일년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인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도착했을때 너무 놀랐고, 그때 돌아갈까란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또한 인포싯에 언제까지 도착하라는 안내도 없었고, 그저 그날 도착한 후 캠프리더에게 전화하라는 말 밖에 없었기에 대부분 워크캠프는 한두시쯤 거이 모인다는 말을 들어 그쯤 도착했다가 역 대합실서 5시간 정도 기다리기도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봉사자들에게 문자를 보냈었는데, 나는 로밍된 폰이라 일반방식으로 보내진 문자를 받을수가 없단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현지 담당자를 만난후에 바로 스페인 참가자가 왔었고 저녁 먹을쯤 프랑스 참가자가 왔으며, 열시쯤 스코트랜드 참가자가 왔었다. 마지막 터키 참가자는 작년에도 참가했던 참가자였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틀 후에 왔었다. 또한 캠프 시작하기 이틀 전에 폴란드 여자애 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가를 포기 했고, 이렇게 스페인참가자(Irene),프랑스 참가자(Marion), 스코트랜드 참가자(Peter), 터키 참가자(Mehmet),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 캠프리더(August) 와 나 이렇게 모였었다. 나의 워크캠프는 일반적으로 들었던 워크캠프와 많이 달랐었는데, 일단 캠프 참가자 부터 독특했었다. Mehmet은 작년 참가자였으며, Peter는 영국사람이었으며(영어가 모국어인 참가자가 많지 않다고 들었었다), 나이는 50대 후반이지만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캠프리더인 August또한 이미 현지 사람들과 잘 아는 친구 였었다. 또한 우리는 현지 담당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들의 친구들과 가족,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가 매우 많았었다.
우리의 주된 업무는 REGENERATOR라는 콘서트장을 페스티발 전과 후에 청소하고 페인트칠 하기, 페스티발 중 바에서 일하는것과 사진 찍기, 포스터 붙이기, 마지막으로 시상식때 도우미 일을 했었다. 페스티벌은 총 세번 6월2일 토요일, 6월 9일 토요일, 마지막 최종 파이널 6월 15일 금요일로 진행되었엇다. 또한 우리 의 숙소의 GREEN HALL 앞의 텃밭 가꾸기도 하고, 동네의 오래된 놀이터 두군데에 놀이기구 페인트 칠하기를 했었다. 일이 많이 고되지도 않았고, 자유시간이 많아서 캠프 참가자들과 현지 담당자, 그리고 현지인들과 많이 친해졌었다.
우리의 숙소는 GREEN HALL 이라는 동네의 어린이들을 위한 마을회관 같은 곳이었엇다. 넓고, 깨끗했으며, 화장실과 샤워실도 잘 되어있었다. 부엌시설도 잘되있어서 프랑스 참가자와 스페인 참가자와 내가 매일 점심 저녁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던게 기억이 난다.
또한 사람들이 너무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놀라기도 했었다. 한국영화도 몇가지 알고 있었으며, 기업 등 속속히는 아니여도 내가 크로아티아를 알고 있는것 보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놀랐었다. 반면에 나는 그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있던것 보다 크로아티아, 어쩌면 발칸반도 자체에 대해서 아는게 많이 없어서 그랬던 기억이 있다.
스페인 참가자와 프랑스참가자 애들은 나와 또래아이들이어서 정말 너무 많이 친해졌었다. 서로의 고민도 얘기할만큼 소중한 친구가 되었고, 현지에도 친해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꼭 찾아가기로 약속했었다. 아직도 facebook, skype와 mail로 연락하고, postcard를 보내주기도 하면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나의 워크캠프는 주위에서 들었던 워크캠프와 많이 달랐었다. 캠프 참가자 뿐만 아니라 동네 사는 현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으며, 작년 참가자들 또한 두명이나 만날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떠난 후에 몇몇 작년 참가자들이 더 올 정도로, 워크캠프를 하기위해 어쩌다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봉사로 인한 만남이 아닌 친구로써 만남이 될수 있다는게 신기했었다. 한국에 돌아왔을때 이때 이시간과 그 이후에 같이 여행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리웠고, 내 여행 기억중 가장 의미있고,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