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떨림과 설렘의 시작
Gay Pride in Reykjavi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아이슬란드. 한 여름이었음에도 꽤 쌀쌀했다. 몸은 으슬으슬 떨렸지만, 심장은 두근거렸다. 첫 워크캠프가 막 시작하려고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월드와이드 프렌즈에서 하나 둘 친구들이 모였다. 두명의 코디네이터와 나머지 친구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었다. 친절한 코디네이터들과 레이캬빅을 구경하고, 설명을 들었다. 월드와이드 프렌즈의 한 사람이 우리에게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음악축제에 봉사활동자로 참가하지 않겠냐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도착한 숙소는 꽤 멀었다. 십 분에서 이십 분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유치원과 비슷한 곳이었다. 거기서 친구들과 같이 밥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별다른 스케쥴이 없었으나 처음이라서 그러려니, 하나 둘 해나가겠지 생각했다. 음악축제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서 토론이 벌어졌다. 가고 싶지 않은 몇몇의 친구들과 가고싶은 다수의 친구들. 시작부터 불안했다.
결국 대다수의 친구들의 의견에 반대할 수는 없었다. 음악축제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친구들은 결국엔 동의했다. 우리는 ‘퀴어퍼레이드’ 워크캠프를 왔으니 여기에 집중해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은 묵살되었다. 대부분 ‘퀴어퍼레이드’라는 주제보다는 ‘아이슬란드’라는 국가나 ‘즐거운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레이캬빅에 있었으면 주말에 갔을 여행을, 한번에 몰아서 갔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남단의 섬에 배를 타고 찾아갔다. 그 곳은 아름다운 섬이였고,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음악축제에서 쓰레기를 줍는 역할을 맡았다. 저녁에는 음악축제에 놀러가고, 아침에는 그 넓은 공연장의 쓰레기를 주웠다. 축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는 바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같이 바라보는 석양은 아름다웠고, 뭐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서의 시간을 보내며 친구들과는 더더욱 친해졌다. ‘퀴어퍼레이드’와 관련해서 뭔가 해야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에 성소수자들을 위한 메세지를 담은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돌아가면 어떤 것을 준비할까 토론도 했다. 각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는 식사도 즐거웠다.
음악축제에서의 봉사활동은 힘들었다. 쓰레기통 하나 없는 축제 장소의 쓰레기들을 다 주웠고, 나 말고 다른 한 명의 한국인은 결국 워크캠프를 떠났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지만,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아이슬란드 남쪽의 섬에서, 쓰레기를 줍는 상황이 마냥 좋진 않았을 것이다.
섬의 축제가 끝나고, 우린 레이캬빅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블루라군에 들려 다같이 몸을 데우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블루라군에서 레이캬빅으로 도착해서 우리는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월드와이드 프렌드는 우리가 원래 처음 머물렀던 숙소로 가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두 개의 건물에 나누어서 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처음으로 모두가 반발했다. 우리의 원래 숙소에는 짐도 있었고, 겨우 친해진 우리가 나누어 지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 앞으로 퀴어퍼레이드 준비에 힘써야하는데 이게 왠 말인가 싶었다.
우리의 반발을 코디네이터는 잘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월드와이드 프렌즈의 노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한 숙소에서는 취침을, 한 숙소에서는 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해결한 ‘하버하우스’라는 숙소는 매우 작고 어두웠고, 우리는 겨우겨우 퀴어퍼레이드 준비를 했다. 매일같이 30분을 걸어 숙소에서 숙소를 이동했고, 우리는 계속하여 식사와 취침 그리고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는 숙소를 요구하였으나 ‘최선을 다하고있다’는 대답 말고는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매일같이 숙소와 숙소를 이동하며 시간을 보내는 만큼, 우리는 그다지 체계화되지 않았다. 월드와이드 프렌즈와 퀴어퍼레이드 기획자들 간의 의사소통이 거의 없었고, 우리가 한 것은 퍼레이드 전 날, 길에 무지개 무늬의 횡단보도를 칠하는 것을 돕는 것 뿐이었다. 이마저도 비로 인해 다음 날 다 지워졌다. 우리는 퀴어퍼레이드 행사에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패스를 얻지도 못했다. 우리 스스로 생각했던 동영상 제작과, 퍼레이드를 위한 배너 만들기에만 열중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퀴어퍼레이드 당일. 우리는 준비한 배너를 들고 퍼레이드 장소로 나갔다. 전 날에서야 퍼레이드 당일 행사 도우미를 해줄 수 없냐는 기획단으로부터의 연락이 있었으나, 도우미를 하면 우리가 준비한 퍼레이드를 할 수 없어 거절했다. 퀴어퍼레이드 기획단과 연결되어 한 작업은 오직 무용으로 돌아간 횡단보도 칠하기 뿐이었다. 좋았던 것은, 퀴어퍼레이드의 행진에서 우리가 레이캬빅의 가장 핫(hot)한 게이클럽의 트럭과 함께 행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엔 월드와이드 프렌즈의 노력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준비를 보고 게이클럽에서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퀴어퍼레이드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엄청난 길의 거리를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 커스튬에,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환호를 보내주었고, 무려 교회에서 성직자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호응해주기도 하였다. 길고 긴 퍼레이드가 끝나고 워크캠프에 같이 참가한 친구들과 감동을 나누었다. 서로 정말 최고였다고, 감동적인 순간이였다고 감정을 주고 받았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 우리가 준비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레이캬빅의 가득한 무지개 깃발만큼 뿌듯함이 넘쳐났다.
그렇게 퍼레이드가 끝이 나고, 우리는 하나 둘 헤어지기 시작했다. 같이 클럽에 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수영장에 가며 나눴던 친밀감이 약 10일간 우리 속에 가득 쌓여있었나 보다. 아쉬웠지만 우리는 웃으며 안녕을 외쳤다.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이폰과 노트북을 둘 다 잃어버린 친구도 있었고, 조금 불편함을 안고 돌아간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이슬란드에서 10일은 어떤 특별한 감정으로 남았다. 이는 그 어떤 것보다 좋은 친구들과 보냈던 시간이 남겨 준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다. 월드와이드 프렌즈에서 좀 더 퀴어퍼레이드 기획단과 연계를 잘 해주어 처음부터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다면 더 뿌듯했을 텐데. ‘음악축제’라는 새로운 옵션을 제공해서 처음부터 친구들과의 갈등이 없었다면 더욱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제대로 된 숙소를 제공하였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코디네이터들은 이게 ‘아이슬란드’식 이라고 말하였지만, 많은 친구들과 나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 어떤 유럽의 워크캠프보다 많은 참가비를 내는데,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불만을 가져왔다.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도 군대를 다녀왔기에 열악한 환경도 그다지 열악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힘든 10일이였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준비보다는 워크캠프 주체측의 준비가 부족했고,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다. 상상과는 많이 다른 워크캠프였다.
다음 번에는 좀 더 나은 워크캠프를 기대한다. 호화로운 숙소와 완전히 고정되고 빡빡한 스케쥴을 바라지는 않는다. 좀 더 유동적이더라도 소통이 가능하고, 준비된 워크캠프를 통해 내가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다음에는 있길 바란다. 다녀온 지 두 달이 거의 다 되었고 기억이 희미하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은 이 찝찝함이 계속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주저함으로 다가왔지만 결국 이렇게 지금 작성을 했다. 조금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 내 보고서를 통해서 다음 번 참가하는 누군가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이 제공되길 바란다.
조금 일찍 도착한 월드와이드 프렌즈에서 하나 둘 친구들이 모였다. 두명의 코디네이터와 나머지 친구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었다. 친절한 코디네이터들과 레이캬빅을 구경하고, 설명을 들었다. 월드와이드 프렌즈의 한 사람이 우리에게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음악축제에 봉사활동자로 참가하지 않겠냐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도착한 숙소는 꽤 멀었다. 십 분에서 이십 분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유치원과 비슷한 곳이었다. 거기서 친구들과 같이 밥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별다른 스케쥴이 없었으나 처음이라서 그러려니, 하나 둘 해나가겠지 생각했다. 음악축제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서 토론이 벌어졌다. 가고 싶지 않은 몇몇의 친구들과 가고싶은 다수의 친구들. 시작부터 불안했다.
결국 대다수의 친구들의 의견에 반대할 수는 없었다. 음악축제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친구들은 결국엔 동의했다. 우리는 ‘퀴어퍼레이드’ 워크캠프를 왔으니 여기에 집중해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은 묵살되었다. 대부분 ‘퀴어퍼레이드’라는 주제보다는 ‘아이슬란드’라는 국가나 ‘즐거운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레이캬빅에 있었으면 주말에 갔을 여행을, 한번에 몰아서 갔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남단의 섬에 배를 타고 찾아갔다. 그 곳은 아름다운 섬이였고,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음악축제에서 쓰레기를 줍는 역할을 맡았다. 저녁에는 음악축제에 놀러가고, 아침에는 그 넓은 공연장의 쓰레기를 주웠다. 축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는 바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같이 바라보는 석양은 아름다웠고, 뭐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서의 시간을 보내며 친구들과는 더더욱 친해졌다. ‘퀴어퍼레이드’와 관련해서 뭔가 해야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에 성소수자들을 위한 메세지를 담은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돌아가면 어떤 것을 준비할까 토론도 했다. 각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는 식사도 즐거웠다.
음악축제에서의 봉사활동은 힘들었다. 쓰레기통 하나 없는 축제 장소의 쓰레기들을 다 주웠고, 나 말고 다른 한 명의 한국인은 결국 워크캠프를 떠났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지만,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아이슬란드 남쪽의 섬에서, 쓰레기를 줍는 상황이 마냥 좋진 않았을 것이다.
섬의 축제가 끝나고, 우린 레이캬빅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블루라군에 들려 다같이 몸을 데우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블루라군에서 레이캬빅으로 도착해서 우리는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월드와이드 프렌드는 우리가 원래 처음 머물렀던 숙소로 가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두 개의 건물에 나누어서 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처음으로 모두가 반발했다. 우리의 원래 숙소에는 짐도 있었고, 겨우 친해진 우리가 나누어 지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 앞으로 퀴어퍼레이드 준비에 힘써야하는데 이게 왠 말인가 싶었다.
우리의 반발을 코디네이터는 잘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월드와이드 프렌즈의 노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한 숙소에서는 취침을, 한 숙소에서는 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해결한 ‘하버하우스’라는 숙소는 매우 작고 어두웠고, 우리는 겨우겨우 퀴어퍼레이드 준비를 했다. 매일같이 30분을 걸어 숙소에서 숙소를 이동했고, 우리는 계속하여 식사와 취침 그리고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는 숙소를 요구하였으나 ‘최선을 다하고있다’는 대답 말고는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매일같이 숙소와 숙소를 이동하며 시간을 보내는 만큼, 우리는 그다지 체계화되지 않았다. 월드와이드 프렌즈와 퀴어퍼레이드 기획자들 간의 의사소통이 거의 없었고, 우리가 한 것은 퍼레이드 전 날, 길에 무지개 무늬의 횡단보도를 칠하는 것을 돕는 것 뿐이었다. 이마저도 비로 인해 다음 날 다 지워졌다. 우리는 퀴어퍼레이드 행사에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패스를 얻지도 못했다. 우리 스스로 생각했던 동영상 제작과, 퍼레이드를 위한 배너 만들기에만 열중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퀴어퍼레이드 당일. 우리는 준비한 배너를 들고 퍼레이드 장소로 나갔다. 전 날에서야 퍼레이드 당일 행사 도우미를 해줄 수 없냐는 기획단으로부터의 연락이 있었으나, 도우미를 하면 우리가 준비한 퍼레이드를 할 수 없어 거절했다. 퀴어퍼레이드 기획단과 연결되어 한 작업은 오직 무용으로 돌아간 횡단보도 칠하기 뿐이었다. 좋았던 것은, 퀴어퍼레이드의 행진에서 우리가 레이캬빅의 가장 핫(hot)한 게이클럽의 트럭과 함께 행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엔 월드와이드 프렌즈의 노력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준비를 보고 게이클럽에서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퀴어퍼레이드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엄청난 길의 거리를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 커스튬에,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환호를 보내주었고, 무려 교회에서 성직자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호응해주기도 하였다. 길고 긴 퍼레이드가 끝나고 워크캠프에 같이 참가한 친구들과 감동을 나누었다. 서로 정말 최고였다고, 감동적인 순간이였다고 감정을 주고 받았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 우리가 준비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레이캬빅의 가득한 무지개 깃발만큼 뿌듯함이 넘쳐났다.
그렇게 퍼레이드가 끝이 나고, 우리는 하나 둘 헤어지기 시작했다. 같이 클럽에 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수영장에 가며 나눴던 친밀감이 약 10일간 우리 속에 가득 쌓여있었나 보다. 아쉬웠지만 우리는 웃으며 안녕을 외쳤다.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이폰과 노트북을 둘 다 잃어버린 친구도 있었고, 조금 불편함을 안고 돌아간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이슬란드에서 10일은 어떤 특별한 감정으로 남았다. 이는 그 어떤 것보다 좋은 친구들과 보냈던 시간이 남겨 준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다. 월드와이드 프렌즈에서 좀 더 퀴어퍼레이드 기획단과 연계를 잘 해주어 처음부터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다면 더 뿌듯했을 텐데. ‘음악축제’라는 새로운 옵션을 제공해서 처음부터 친구들과의 갈등이 없었다면 더욱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제대로 된 숙소를 제공하였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코디네이터들은 이게 ‘아이슬란드’식 이라고 말하였지만, 많은 친구들과 나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 어떤 유럽의 워크캠프보다 많은 참가비를 내는데,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불만을 가져왔다.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도 군대를 다녀왔기에 열악한 환경도 그다지 열악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힘든 10일이였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준비보다는 워크캠프 주체측의 준비가 부족했고,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다. 상상과는 많이 다른 워크캠프였다.
다음 번에는 좀 더 나은 워크캠프를 기대한다. 호화로운 숙소와 완전히 고정되고 빡빡한 스케쥴을 바라지는 않는다. 좀 더 유동적이더라도 소통이 가능하고, 준비된 워크캠프를 통해 내가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다음에는 있길 바란다. 다녀온 지 두 달이 거의 다 되었고 기억이 희미하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은 이 찝찝함이 계속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주저함으로 다가왔지만 결국 이렇게 지금 작성을 했다. 조금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 내 보고서를 통해서 다음 번 참가하는 누군가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이 제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