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예상치 못한 프랑스 워크캠프 생존기
SEMUR-EN-VALL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알게 된 것은 학교 해외연수 프로그램 설명회에서였다. 원래는 해외연수만 가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워크캠프도 가야 한다고 해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했다.
더블린에서의 해외연수를 마치고, 프랑스로 출국하여 기차역에서 처음 같이 워크캠프를 할 사람들을 만났을 때가 어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워크캠프는 그다지 유쾌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우선, 총 12명의 참가자에 리더2명, 총 14명이었던 참가자는 2명의 참가자가 아예 오지 않았고, 불어와 영어에 모두 능하고 성격도 좋았던 터키친구 시담은 참가 이틀만에 몸이 좋지않아 터키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나와 다른 한국인 친구를 제외한 모두가 불어를 할 줄 알고, 불어를 영어보다 더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우리 캠프의 공용어는 분명 영어였는데 말이다. 프랑스 소녀 마리옹은 영어를 정말 한마디도 못했지만 말은 정말 많았고, 그녀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불어를 사용했다. 나와 한국인 친구만 불어를 못 알아듣고, 그래서 우리는 한국말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파키스탄인 아바스가 우리보고 한국말 쓰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감정이 상해 너희는 불어쓰면서 우리보고 한국말 쓰지 말라는건 뭐냐고, 그럼 니네도 불어쓰지 말라고 따진 적도 있다. 그 후로는 서로 불어를 쓰던, 한국말을 쓰던 상관치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불어를 쓰는 그룹과 캠프리더와 나와 한국인 친구로 구성되는 영어를 쓰는 그룹으로 자연스럽게 그룹은 나뉘게 되었고, 그 쪽 그룹과 얘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고 싶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 일을 하는데 다른 외국인 친구들의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에 화가 많이 났었다. 우리의 테크니컬 리더인 데니스, 그리고 그룹리더인 브노아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성격도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으나, 다른 참가자들은 남들이 일하던 말던 자기가 힘들면 남들 일하는데 자고, 딴짓하고, 담배피고, 수다떠는게 일상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3주간의 작업에도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였고, 이에 캠프막판에 러시아 여자인 다리아는 ‘몇몇 사람들이 일안하고 딴짓해서 우리가 일을 다 못 끝낸거다’라고 공공연히 식사시간에 얘기했을 정도였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기억이 많지만, 물론 좋았던 기억도 있었다.
첫째, 지역주민들과의 교류 및 파티는 정말 좋았다. 지역 어르신분들은 우리를 정말 진심으로 잘 대해주셨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해주셨고, 많이는 알지 못하지만 영어를 써가면서 우리와 친해지려고 애쓰셨다. 그리고 작업 도중 쉬는 시간에 맞춰서 케이크를 만들어 오시는 분들도 계셔서, 프랑스 시골인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둘째, 세계각국의 음식을 맛 볼수 있었던 점이다. 우리는 두 명씩 짝을 지어 하루에 점심과 저녁을 요리했는데, 이탈리아음식, 터키음식, 프랑스음식 등을 매일매일 맛 볼수 있었고, 내가 가져간 호떡믹스로 만든 호떡을 친구들이 참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셋째, 한적한 프랑스의 시골마을에서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각박하게만 살아온 나로서는 프랑스의 정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의 생활은 처음에는 낯설고 힘든생활이었지만, 점점 적응이 되가면서 나에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이 밖에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삼성,현대 등의 대기업을 얘기할 때, 또 한국의 올림픽 선전에 대해 얘기할 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고, 한국에 대해 조금씩 가르쳐 주면서 왜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건지 몸소 깨달을 수도 있었다.
좋은 것도, 좋지않았던 것도 있었던 워크캠프였지만,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싶다.
데니스,브노아,다리아,아바스,딜레타,파울로,마리옹,앤드류,정다운.
이 9명의 이름은 평생토록 기억하고 싶다. 물론 좋은 기억으로만.
더블린에서의 해외연수를 마치고, 프랑스로 출국하여 기차역에서 처음 같이 워크캠프를 할 사람들을 만났을 때가 어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워크캠프는 그다지 유쾌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우선, 총 12명의 참가자에 리더2명, 총 14명이었던 참가자는 2명의 참가자가 아예 오지 않았고, 불어와 영어에 모두 능하고 성격도 좋았던 터키친구 시담은 참가 이틀만에 몸이 좋지않아 터키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나와 다른 한국인 친구를 제외한 모두가 불어를 할 줄 알고, 불어를 영어보다 더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우리 캠프의 공용어는 분명 영어였는데 말이다. 프랑스 소녀 마리옹은 영어를 정말 한마디도 못했지만 말은 정말 많았고, 그녀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불어를 사용했다. 나와 한국인 친구만 불어를 못 알아듣고, 그래서 우리는 한국말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파키스탄인 아바스가 우리보고 한국말 쓰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감정이 상해 너희는 불어쓰면서 우리보고 한국말 쓰지 말라는건 뭐냐고, 그럼 니네도 불어쓰지 말라고 따진 적도 있다. 그 후로는 서로 불어를 쓰던, 한국말을 쓰던 상관치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불어를 쓰는 그룹과 캠프리더와 나와 한국인 친구로 구성되는 영어를 쓰는 그룹으로 자연스럽게 그룹은 나뉘게 되었고, 그 쪽 그룹과 얘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고 싶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 일을 하는데 다른 외국인 친구들의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에 화가 많이 났었다. 우리의 테크니컬 리더인 데니스, 그리고 그룹리더인 브노아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성격도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으나, 다른 참가자들은 남들이 일하던 말던 자기가 힘들면 남들 일하는데 자고, 딴짓하고, 담배피고, 수다떠는게 일상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3주간의 작업에도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였고, 이에 캠프막판에 러시아 여자인 다리아는 ‘몇몇 사람들이 일안하고 딴짓해서 우리가 일을 다 못 끝낸거다’라고 공공연히 식사시간에 얘기했을 정도였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기억이 많지만, 물론 좋았던 기억도 있었다.
첫째, 지역주민들과의 교류 및 파티는 정말 좋았다. 지역 어르신분들은 우리를 정말 진심으로 잘 대해주셨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해주셨고, 많이는 알지 못하지만 영어를 써가면서 우리와 친해지려고 애쓰셨다. 그리고 작업 도중 쉬는 시간에 맞춰서 케이크를 만들어 오시는 분들도 계셔서, 프랑스 시골인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둘째, 세계각국의 음식을 맛 볼수 있었던 점이다. 우리는 두 명씩 짝을 지어 하루에 점심과 저녁을 요리했는데, 이탈리아음식, 터키음식, 프랑스음식 등을 매일매일 맛 볼수 있었고, 내가 가져간 호떡믹스로 만든 호떡을 친구들이 참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셋째, 한적한 프랑스의 시골마을에서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각박하게만 살아온 나로서는 프랑스의 정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의 생활은 처음에는 낯설고 힘든생활이었지만, 점점 적응이 되가면서 나에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이 밖에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삼성,현대 등의 대기업을 얘기할 때, 또 한국의 올림픽 선전에 대해 얘기할 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고, 한국에 대해 조금씩 가르쳐 주면서 왜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건지 몸소 깨달을 수도 있었다.
좋은 것도, 좋지않았던 것도 있었던 워크캠프였지만,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싶다.
데니스,브노아,다리아,아바스,딜레타,파울로,마리옹,앤드류,정다운.
이 9명의 이름은 평생토록 기억하고 싶다. 물론 좋은 기억으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