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볼리비아, 불안과 설렘의 남미 첫걸음

작성자 노병현
볼리비아 TINKU-01 · ARCH/CULT 2012. 07 볼리비아

TINKU- WORLD HERITAGE VOLUNTEER INCALLAJTA THE LARGEST INCA CIT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7월 4일 UNESCO세계유산 봉사단에 참여하기 위해 페루 리마에 입국했다. 내 봉사활동 지역은 볼리비아지만, 남아메리카는 여행하기 힘든 곳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여행도 함께 해보기 위해 봉사활동 기간보다 일찍, 또 페루부터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왜냐면 보통 남미여행의 루트로 페루로 많이 시작하기도 했고, 또 현지 나라에 대한 적응도 할 생각에 페루를 시작점으로 정했다. 더욱이 나는 이 전까지 해외 다른 나라로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감과 동시에 기대감이 굉장히 컸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의 시작은 혹독하지는 않지만 약간은 기분 나쁜(?) 신고식으로 시작하였다. 페루의 경우 처음 택시비를 흥정하고 이용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처음에 부풀려진 금액을 부르기 때문이다.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페루의 현지 사정을 모르다 보니 불가피하게 돈을 더 지불해야만 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다음에 택시를 탈 때에는 물론 물건을 구입할 때 이때 배운 흥정의 기술로 흥정을 더욱 잘 할 수 있게 됬다. 페루에서의 여정은 리마로 시작하여 이카, 나스카, 쿠스코, 마추피추 순으로 여행하였다. 물론 페루에는 와라즈 트랙킹이라든지 다른 여러 볼거리가 많지만, 촉박한 일정상 페루의 주요 유명 지역을 둘러보는 걸로 정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 페루 리마부터 볼리비아 가기 전 쿠스코까지 계속해서 일정이 겹쳤던 여행사를 통해 그룹여행을 하고 있던 한국인 분들이 기억난다. 그 중에 특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스카라는 도시의 나스카 라인을 구경하기 위한 방법으로 mirador(전망대)에서 보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이카에서 나스카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 mirador가 보이자 무턱대고 내렸다. 마침 이 한국 분들이 있어 나스카 라인을 보고 나스카 도시로 들어갈 때 이 분들이 타고 오신 캠핑카를 타고 왔는데, 만약 이 분들이 없었으면 거의 반나절에서 하루는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정말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힘든 여행이 될 뻔했다. 어쨌든 페루의 자연경관은 정말 멋있었고, 그 중에서 마추피추는 최고였다. 마추피추의 전경을 보면서 그 웅장함에 잠시 할말을 잃었다. 왜 잉카인들은 이러한 곳에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을 지었을까. 왜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을 지었음에도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까. 마추피추, 그리고 페루에서의 여운은 볼리비아로 가는 버스에서도 내 머리 속을 내내 멤 돌았다.

기대 그리고 실망…
드디어 볼리비아에 들어왔다. 이 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코파카바나라는 도시에 간 것이다. 이곳은 태양의 섬이라는, 잉카문명의 탄생 설화가 담겨있는 곳이다. 이 코파카바나에는 티티카카 호수라는 곳이 있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요점만 말하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다. 물은 속이 훤히 비칠정도로 깨끗했고, 해변가 주위를 소와 함께 거닐고 있는 아이의 모습들은 정말 동화 속에나 볼 법한 풍경이였다.
코파카바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봉사활동 장소인 코차밤바라는 곳에 도착했다. 밤버스를 타고새벽 6시쯤에 도착하자마자 워크캠프 디렉터와 코디네이터와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되지 않아 우선 미팅 포인트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다행이 다음날 연락이 되어 드디어 워크캠프 코디네이터와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픽업해서 봉사활동 장소로 대려다 주는 줄 알았으나, 우리들이 직접 찾아가야 했다. 택시를 타고 대략 2시간 정도 가니 드디어 우리가 봉사활동을 할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봉사활동을 한 장소는 Incallajta라는 곳으로써 볼리비아내의 잉카 유적지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이곳에는 이미 프랑스,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참가자들과 브라질과 독일 출신인 여행가 겸 가수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3일정도 머물며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우선 유적지 주변의 쓰레기들쓰 청소하는 것. 또 유적지 근처 학교에 가서 어린이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는 활동을 했다. 특히 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은 비록 본래 봉사활동의 취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굉장히 즐겁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일과가 끝난 밤에는 가수들의 음악과 함께 볼리비아 전통 술인 치차라는 술을 마시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볼리비아에서는 술을 마시고 옆 사람에게 술잔에 술을 담아 주는 것이 전통이라 이렇게 서로서로 술을 마시며 좀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Incallajta에서 3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코차밤바 시내로 내려와 나머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한 일이 센트로 공원에 나가 우리가 한 일을 사진으로 출력하여 전시하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우리의 경험담 및 활동들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였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우리 봉사자들과 봉사활동 디렉터인 라미로와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라미로는 봉사활동에 관한 아무런 계획이 없는 사람이였다. 앞서 말한 활동들은 디렉터인 라미로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 대학교 관광학과에 다니고 있는 여러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수행된 것이다. 우리가 2주동안 생활해야 하는 숙소에는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식사는 물론 씻고, 옷을 세탁하는 데에도 문제가 많았다. 더욱이 라미로가 속한 단체는 redthinku라는 단체로써 혁명적인 분위기의 단체이다.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인줄 몰랐으나, 코차밤바 시내에 나와 라미로가 하는 행동들을 보고, 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알 수 있었다. 한국과 프랑스 등에서 온 봉사자들은 쿠차밤바 시내에서 충분히 이목을 끈다. 라미로는 이러한 이점을 이용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코차밤바 시내에 나와있는 사람들에게 하려고 할 뿐 이였다. 또한 봉사활동을 어떻게 하기 보다는 코차밤바 시내를 구경시켜 주며 돌아다니기만 했다. 물론 이런 활동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봉사활동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라미로의 태도를 보고 굉장히 화가 났다. 더욱이 라미로는 봉사활동자들과의 시간 약속도 지키자 않아 헛걸음을 한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 마침 유네스코에 소속되어 잠시 참여한 친구가 볼리비아는 처음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봉사단에 참여하게 된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말과 디렉터가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해 주었다.
어쨋거나 처음 굉장히 기대를 하고 온 봉사활동 지역, 내 생에 처음 해외 여행이자 해외봉사 지역인 이곳에서의 활동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실망감이 많이 들었다. 이 이후 남은 2주 동안은 이러한 실망감을 잊고 남은 여행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으며 코차밤바를 떠났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활동이 어떠했든지 간에 이곳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지역 사람들과의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경험 이였다.

봉사활동 그 이후…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의 봉사활동이 끝나고 각자의 여행 루트가 있기에 혼자 우유니로 내려왔다. 우유니는 나의 이번 남이 여정의 2번째 기대 장소인 곳이다. 그 기대의 걸맞게 우유니는 정말 굉장했다. 광활한 대지에 새하얀 소금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란. 우유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뒤에 곧바로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여정을 재촉했다.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 사이에 걸쳐있는 폭포로써 나의 이번 여행에서 마추피추, 우유니와 함께 가장 기대하는 장소였다. 이과수 까지 가는 길은 정말 길고 힘들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시간만 40시간은 되는 것 같다. 물론 중간중간 거치는 도시에서 쉬기도 하고, 또 여행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인연을 쌓기도 하는 등 재미있었던 순간도 많았다. 하여튼 긴 시간 버스를 타고 와서 보게 된 이과수 폭포는 이번 여행 중 최고의 풍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웅장함에 할말을 잃고 한동안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여행의 종착역인 브라질로 향할 채비를 하였다.
세계에서 5번째로 넓은 나라인 브라질을 남은 기간 내에 전부 둘러볼 수 없었기 때문에 리오 데 자니이루와 상파울로 두 곳만 들리기로 했다. 특히 리오 데 자네이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대 예수상과 코파카바나 해변(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 도시와는 다른)이 있는 곳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유쾌했고, 브라질 거리는 매력이 넘치는 곳 이였다. 다만 물가가 비싼 탓에 많은 즐길 거리들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정말 매력적인 도시에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고 또 가장 안타까웠던 지역인 파벨라라는 곳이 있었다. 모든 브라질사람들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곳. 이 곳에서는 어떤 공권력도 아무 의미가 없는 곳. 그리고 이러한 아픔 속에서도 생기가 넘치는 곳이였다. 브라질 최대의 빈민가 한 도로 건너 리오 데 자네이루에서 가장 최고급 쇼핑몰과 건물들이 있는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인 풍경이였다.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웅장한 자연 풍경들을 보았고, 웅장한 건축물들도 보았으며,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문화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좋은 경험을 준 워크캠프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낀다.

이 글을 마치며…
이번 봉사활동과 남미여행은 특히나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귀중한 경험 이였다. 이번 남미 여행을 통해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을, 또 우리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남미를 돌아다녀 보면 정말 안타까운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남미의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에 가야 할 나이의 어린이들이 그곳에서는 벌써부터 택시 앞 흥정을 해준다던가 하는 식의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유치원에 가야 되는 나이인 어린이들은 구두를 닦아주며 몇 백 원씩 받으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부모님들은 3~4살 짜리의 애기에게 도둑질을 배우게 한다. 실제로 여행 중 만났던 한국인 한 분은 이런 어린이에게 버스에서 물건을 도난 당했다고 한다. 길거리에는 어머니들이 아직 젖먹이도 채 때지 않은 애기들을 데리고 나와 구걸을 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거대하고 웅장한 교회 옆에는 수많은 거지들이 잠을 청하고 있으며, 앞에서도 말한 파벨라라는 곳에서는 약에 취한 어린이가 돈을 달라며 구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언제나 해맑고 밝은 남미 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땅넓이를 가진 나라에서 자유롭게 말을 타며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들도 역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이러한 낙천적인 성격을 본받고, 또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은 이들에 비하면 결코 심하지 않고 또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어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나에게 이러한 기회를 준 워크캠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