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크라이나, 낯선 이름이 준 선물
Poltav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유로 2012가 열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축구를 보고 싶어서, 사실은 유로 2012 거리응원 지역 안전 및 통역을 담당하는 워크캠프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탈락했고 우크라이나에 미련이 남았던 저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워크캠프를 다 찾아봤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더군요. 3가지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Poltava 라는 프로그램에 합격을 했습니다. 폴타바. 참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하면 미녀들의 나라, 셰브첸코를 아는게 전부였던 저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날씨와 환경, 치안, 교통, 물가 등 사전준비를 하던 중 제가 참여하는 캠프에 한국인 친구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간단히 전화로 통화를 하고 현지에서 만날 장소와 서로 준비해야 할 윷놀이, 제기, 불고기 양념 등 준비물들을 각자 나눠서 준비하고 각자의 여행에 안전을 기원하면서 미팅포인트에서 오후 2시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비행기를 타러 인천으로 갔습니다. 여러군데를 조사했지만, 한국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더군요. 그래서 러시아항공(가장 저렴함)을 이용하여 모스코바 국제공항에서 환승을 했고, 약 한시간 반정도 걸려서 우크라이나 보리스필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의 규모는 작았고, 스카이 버스를 이용하여 키에브로 넘어왔습니다. 독립광장도 구경하고, 여러가지 우크라이나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고,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의 가이드로 키에브 투어도 했습니다.
미팅 당일 날, 같이 만나기로 한 한국인 매튜와 감격적인 만남을 하고(우크라이나에서 아시안 보기가 참 힘듭니다. 또 사람들이 동물원 동물 보듯이 쳐다봅니다.) 미팅포인트로 갔습니다. 이미 미팅 포인트에 캠퍼들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현지리더 레나, 프랑스 18살 똑똑이 엘리, 터키 에즈기, 슬로바키아에서 온 안드레아, 일본에서 온 두 여자아이들 미키와 아키, 코리안 가이즈 저와 매튜. 한명의 친구가 도착을 못했는데, 나중에 합류하고 보니 그 친구는 15살에 사고가 나서 몸의 왼쪽부분이 모두 불편한 친구였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크리스티나.
첫만남은 어색했지만, 기차를 타고 키에브로부터 폴타바까지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약 5시간에 걸친 기차여행은 우리를 좀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푹 쉬고, 아침에 만나서 식사를 하고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 위해 현관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파라스톡 학교.
그곳에서 공원청소와 학교 유지 및 보수, 아이들과 놀아주기, 각국의 문화 알리기, 각국의 환경보전 노력에 대해서 매일 매일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도 하고 프레젠테이션 발표도 하고 전통 음식을 만들어 같이 나눠먹고,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하루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지역 유치원 건립을 위해 그 곳에서 잡초제거, 쓰레기 줍기 등을 하면서 우리 워크 캠프에 대해서 지역 방송사와 우크라이나 국영 방송사에서 취재까지 나와서, 그리고 인터뷰까지 했던 나는 정말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습니다. 또한 매일매일 즐거웠던 아이들과의 학교 생활 시간이 끝나고 오후에 자유시간이 되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고, 공원 산책도 하고, 쇼핑몰에 가서 쇼핑도 하고, 정말 하루하루가 친구들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밤엔 발코니 토크 라는 자체적인 프로그램도 만들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 그리고 내일 해야 할 일, 또 서로의 약속을 하며, 헤어지는 시간에 대한 준비를 하는 그런 시간도 가졌습니다. 약 15일. 뭔가 짧기도 하고 한 달의 반이라는 생각하면 그리 짧지도 않은 기간.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알지 못했지만, 그들과 함께한 워크캠프 기간 동안 정도 많이 들었고, 서로의 선물을 교환하고, 새벽 버스로 돌아갈 때에도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돌아가기 전 날. 우리를 위해 대학교 강의실을 빌려서 폴타바 시에서 공로장도 주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를 위한 행사가 끝나갈 즈음, 모두 즐겁게 박수를 쳤습니다. 하지만, 이별을 앞둔 모두에게서 그 웃음이란, 눈물을 감추기 위한 울지 않기 위한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웃으며 안녕 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하나 둘씩 울고, 끝내 아쉬움에, 그리고 우리는 그 고마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겨우 15일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먼저 물어보고 싶습니다. 워크캠프에 참여해 보셨냐고 말입니다. 누구에게는 15일이 겨우 짧은 기간이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평생을 안고 갈 추억을 만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시 키에브로 돌아와서, 하나 둘씩 배웅을 했습니다. 제가 가장 나중에 떠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키와 크리스티나. 울지 말라고 말해도 펑펑 우는 그 아이들은 역시나 18살 마음 여린 소녀였습니다. 에즈기. 터키에서 와서 맛있는 터키 요리를 해준 그녀. 비록 봉사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마음 넓은 한국 오빠라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안드레아. 기차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기차를 놓쳤지만, 우리 캠프에서 엄마 같은 역할을 해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안드레아 라는 마음이 편안해 지는 친구를 얻었습니다. 우리 캠프리더 레나. 맨날 우리들 데리고 다니고, 통역해주고, 리더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정말 잘 이끌어줘서 고마웠습니다. 매튜. 한국인 동생을 이곳에서 만나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그다지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저를 위해 많은 도움을 줬던 동생이라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키. 항상 저를 오빠라고 불러주던 일본 여동생. 아키가 주던 과자 맛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한국말을 배워서인지 마음이 더 잘 통했던 동생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울어서 헤어질 때 저까지 울뻔했습니다. 그리고 똑똑이 프렌치 엘리. 4개 국어나 할 줄 알고 마음도 착하고, 맥주도 잘 마시고 잘 놀던 동생. 헤어질 때 엘리가 울던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봐서 놀렸지만, 제게는 이들 모두가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제가 워크캠프를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소중한 친구들을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인생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잡게 도와준 워크캠프에게 그리고 좋은 경험을 가지게 해준 모든 분들에게, 우크라이나 동생들, 친구들 선생님들! 모두들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서 정말 찬란했던 여름을 보내게 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비행기를 타러 인천으로 갔습니다. 여러군데를 조사했지만, 한국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더군요. 그래서 러시아항공(가장 저렴함)을 이용하여 모스코바 국제공항에서 환승을 했고, 약 한시간 반정도 걸려서 우크라이나 보리스필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의 규모는 작았고, 스카이 버스를 이용하여 키에브로 넘어왔습니다. 독립광장도 구경하고, 여러가지 우크라이나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고,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의 가이드로 키에브 투어도 했습니다.
미팅 당일 날, 같이 만나기로 한 한국인 매튜와 감격적인 만남을 하고(우크라이나에서 아시안 보기가 참 힘듭니다. 또 사람들이 동물원 동물 보듯이 쳐다봅니다.) 미팅포인트로 갔습니다. 이미 미팅 포인트에 캠퍼들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현지리더 레나, 프랑스 18살 똑똑이 엘리, 터키 에즈기, 슬로바키아에서 온 안드레아, 일본에서 온 두 여자아이들 미키와 아키, 코리안 가이즈 저와 매튜. 한명의 친구가 도착을 못했는데, 나중에 합류하고 보니 그 친구는 15살에 사고가 나서 몸의 왼쪽부분이 모두 불편한 친구였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크리스티나.
첫만남은 어색했지만, 기차를 타고 키에브로부터 폴타바까지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약 5시간에 걸친 기차여행은 우리를 좀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푹 쉬고, 아침에 만나서 식사를 하고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 위해 현관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파라스톡 학교.
그곳에서 공원청소와 학교 유지 및 보수, 아이들과 놀아주기, 각국의 문화 알리기, 각국의 환경보전 노력에 대해서 매일 매일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도 하고 프레젠테이션 발표도 하고 전통 음식을 만들어 같이 나눠먹고,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하루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지역 유치원 건립을 위해 그 곳에서 잡초제거, 쓰레기 줍기 등을 하면서 우리 워크 캠프에 대해서 지역 방송사와 우크라이나 국영 방송사에서 취재까지 나와서, 그리고 인터뷰까지 했던 나는 정말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습니다. 또한 매일매일 즐거웠던 아이들과의 학교 생활 시간이 끝나고 오후에 자유시간이 되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고, 공원 산책도 하고, 쇼핑몰에 가서 쇼핑도 하고, 정말 하루하루가 친구들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밤엔 발코니 토크 라는 자체적인 프로그램도 만들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 그리고 내일 해야 할 일, 또 서로의 약속을 하며, 헤어지는 시간에 대한 준비를 하는 그런 시간도 가졌습니다. 약 15일. 뭔가 짧기도 하고 한 달의 반이라는 생각하면 그리 짧지도 않은 기간.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알지 못했지만, 그들과 함께한 워크캠프 기간 동안 정도 많이 들었고, 서로의 선물을 교환하고, 새벽 버스로 돌아갈 때에도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돌아가기 전 날. 우리를 위해 대학교 강의실을 빌려서 폴타바 시에서 공로장도 주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를 위한 행사가 끝나갈 즈음, 모두 즐겁게 박수를 쳤습니다. 하지만, 이별을 앞둔 모두에게서 그 웃음이란, 눈물을 감추기 위한 울지 않기 위한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웃으며 안녕 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하나 둘씩 울고, 끝내 아쉬움에, 그리고 우리는 그 고마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겨우 15일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먼저 물어보고 싶습니다. 워크캠프에 참여해 보셨냐고 말입니다. 누구에게는 15일이 겨우 짧은 기간이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평생을 안고 갈 추억을 만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시 키에브로 돌아와서, 하나 둘씩 배웅을 했습니다. 제가 가장 나중에 떠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키와 크리스티나. 울지 말라고 말해도 펑펑 우는 그 아이들은 역시나 18살 마음 여린 소녀였습니다. 에즈기. 터키에서 와서 맛있는 터키 요리를 해준 그녀. 비록 봉사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마음 넓은 한국 오빠라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안드레아. 기차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기차를 놓쳤지만, 우리 캠프에서 엄마 같은 역할을 해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안드레아 라는 마음이 편안해 지는 친구를 얻었습니다. 우리 캠프리더 레나. 맨날 우리들 데리고 다니고, 통역해주고, 리더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정말 잘 이끌어줘서 고마웠습니다. 매튜. 한국인 동생을 이곳에서 만나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그다지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저를 위해 많은 도움을 줬던 동생이라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키. 항상 저를 오빠라고 불러주던 일본 여동생. 아키가 주던 과자 맛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한국말을 배워서인지 마음이 더 잘 통했던 동생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울어서 헤어질 때 저까지 울뻔했습니다. 그리고 똑똑이 프렌치 엘리. 4개 국어나 할 줄 알고 마음도 착하고, 맥주도 잘 마시고 잘 놀던 동생. 헤어질 때 엘리가 울던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봐서 놀렸지만, 제게는 이들 모두가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제가 워크캠프를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소중한 친구들을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인생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잡게 도와준 워크캠프에게 그리고 좋은 경험을 가지게 해준 모든 분들에게, 우크라이나 동생들, 친구들 선생님들! 모두들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서 정말 찬란했던 여름을 보내게 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