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겁 많은 새내기, 워크캠프를 꿈꾸다

작성자 엄성식
프랑스 CONC 228 · RENO 2012. 07 St Ambroix

ST AMBROI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그저 겁 많던 새내기

2005년, 이미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것저것 동아리를 알아보고 있을 당시에 워크캠프의 존재를 알았다. 그러나 그 때는 어학연수나 교환학생과 같은 해외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고, 주변에 다녀온 지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덜컥 겁이 났었다.

그래도 호기심 많은 1학년인지라 대학교 내 워크캠프 동아리에 가입했었다. 이후 서울 소재 대학교 연합 오리엔테이션도 참가해서 워크캠프가 얼마나 매력적인 활동인지 직접 다녀온 선배들의 발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들과 능숙하게 생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워크캠프를 향한 꿈은 자꾸 뒤로 밀려났다. 대신 내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을 때가 되면, 워크캠프에 갈 것이라 늘 다짐하곤 했다.

실속 있는 워크캠프 전도사

그 동안 워크캠프를 한번도 다녀오진 못했지만, 워크캠프가 얼마나 좋은 활동인지 알았기에 방학을 맞이하는 친구들에게 워크캠프를 추천하곤 했었다. 실제로 나한테 소개받은 한 친구는 두 번이나 워크캠프를 다녀왔고, 게다가 외국인 친구와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워크캠프’에 대한 버리지 못하는 열정이 있었다.

벌써 찾아온, 내 생에 마지막 방학

그렇게 남들이 만드는 학점을 채우고, 토익과 토익스피킹 점수를 맞추고, 자격증을 따고, 인턴십까지 경험하면서 취업을 위한 스펙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4학년 1학기를 맞이하는 순간, 이번 여름방학이 내 대학생활의 마지막 방학이며 취업을 위한 매우 중요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동시에 내 마지막 방학에 취업을 위한 것이든 나를 위한 것이든 “지금의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도대체 갈꺼야 말꺼야?

그러나 대학생활의 마지막 방학을 취업 준비를 하는데 전념해도 벅찰 텐데, 한 달간이나 해외에 그것도 공부가 아닌 국제자원봉사라는 명목으로 외국인 친구들과 즐겁게 논다는 발상은 나한테 참으로 가혹한 것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워크캠프를 가고 싶었지만 미뤄왔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예전보다는 좋아진 편이고, 다양한 교내 외 활동을 통해 나를 충분히 단련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 차례 고민 끝에, 학교를 통해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을 한 후, 오리엔테이션까지 마쳤다.

하지만 경영학과 마케팅 학도답게, 엄청난 과제와 더불어 하루에 내가 조장인 팀 모임을 3개씩 진행했기에 도무지 워크캠프를 준비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워크캠프를 가기 위한 마지막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 때 비행기표 조차 준비하지 않은 학생은 나를 포함한 극 소수 뿐이었다. 다행히도 동문 후배가 나와 같은 상황인지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워크캠프를 위한 사전 준비를 같이 하기로 했다.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사실 보통 워크캠프를 마치고, 해당 국가에서부터 주변국으로 한동안 여행을 떠나는 것이 많은 참가자들의 2차적인 목적이다. 그런데 이미 3주라는 짧지 않은 워크캠프와 더불어 2주간 유럽여행을 한다면, 취업준비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기에 심각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열심히 나를 단련시키고자 달려왔지만, 그렇게 단련된 내가 해외에 홀로 던져졌을 때 과연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나의 삶을 깊이 되돌아보고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즉 세계 속에서 나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실히 정하고 싶었다. 결국 타지에서 ‘나’를 다시 생각해보는 충분한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마케팅 학도의 전략적 준비

이미 많은 선배 참가자들이 워크캠프를 가서 한국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나 또한 마케팅 학도로서, 홍보에 열정을 쏟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남들과 같은 일반적인 홍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은 수의 외국인이라도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인 ‘나’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의 홍보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문화를 직접 즐겁게 배움으로써 그들 또한 한국의 홍보대사로서 자연스럽게 전파시키는 것이 나의 ‘마케팅 컨셉’이었다. 이 컨셉에 맞춰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반크’를 통해 한국 홍보물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군대에서 한동안 취사병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외국의 재료를 갖고 만들기 쉬운 음식들을 미리 연습했다. 또한 한국적이면서 따라 하기 쉬운 게임들을 연습하는 등 짧은 시간 안에 치밀하게 준비했다.

Part2. Welcome to 워크캠프~!

어색하지 않은 친근함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저녁에 도착했더니, 완연한 한국의 가을밤 날씨였다. 미리 예약한 한인민박에서 짧게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에 후배와 짧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프랑스 남부로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한국 KTX의 시초인 TGV를 타고 5시간 동안 2차례 환승을 한 끝에 워크캠프지인 ‘쎙 엉브화’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기차역 플랫폼에서부터 시작된 화살표시의 벽보를 따라 5분도 안돼서 도착지에 다다랐다. 벽보를 따라가는 동안 나와 같이 자기 몸집보다 큰 배낭을 메고 힘겹게 동행하던 외국인들 모두 우리 워크캠프의 멤버들이었다. 도착하자 마자, 추석에 시골로 내려가 친척들이 반겨주는 것만큼 너무나도 친근하게 맞이해주어서 긴장감이 쉽게 사라질 수 있었다.

군대보다 낯선 환경

한 가지 낯선 점은 건물이 한 채있고, 건물 옆 마당에 몇 개의 텐트가 있었는데 그곳이 우리의 숙소라는 사실이었다. 이미 인포싯에 나와있어서 예견 된 상황이었지만, 현실을 인정하는데 하루가 소요되었다. 건물 안에 버젓한 주방 시설이 있었고, 세탁기와 화장실이 있었지만 ‘한 깔끔’하는 나에게 중요한 샤워실이 없었다. 그나마 걸어서 10분 거리에 수영장 밑 샤워실이 있어서 매일 샤워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먼저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한국인 2명, 터키인 3명, 체코인 1명, 대만인 1명,프랑스인 5명으로 구성된 12명의 국제 전사들은 어색하면서 친근하게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워크캠프에서의 하루 일과에서부터 일과 후 단체활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식당 당번 정하기 및 그 외에 생활 규칙 등을 정했다.


Part3. 워크캠프에서의 봉사

성 도로 예술 사업

숙소에서 올려다 보면 보이는 작지만 품격이 있는 성, 그곳이 우리가 일해야 하는 현장이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7시40분까지 토스트와 시리얼을 먹고, 많은 계단과 오르막을 지나 성으로 올라갔다. 다양한 돌들로 모양을 낸 일종의 도로예술, 프랑스어로 ‘Carade’라고 하는데 성 후문 쪽의 한 구역을 담당해서 도로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근처 강가에 가서 가장 흔한 회색의 돌부터 시작해서 빨간색, 흰색 돌까지 다양한 색깔의 돌들을 모으고 성으로 옮기는 것이 일의 가장 첫 번째 순서이었다. 이후에 땅을 평평하게 다져서 나무 틀을 세운 후, 손수 만든 시멘트를 붓고 돌을 예쁘게 그리고 단단하게 박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팔뚝만한 돌을 옮겨 심는 일만 힘이 드는 게 아니라, 일일이 어른 손 크기만한 돌을 고무망치로 박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 속, 소소한 재미들

더구나 날씨도 일과에 한 몫을 했다. 아니 큰 몫을 했다고 봐야 한다. 프랑스 남부는 서늘한 파리와 달리, 35도를 해 떨어질 때까지 일관되게 유지하는 매우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따라서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짧은 시간 안에 일과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

첫 주에는 다들 시멘트 만드는 일도 신기하고, 얘기하면서 돌을 박느라 마냥 재미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서 슬슬 체력이 떨어지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때문에 다들 조용히 땀을 뚝뚝 흘리며 일한 적도 있다. 그래도 간식 시간만 되면 다들 계란을 까면서, 일할 때 생각했던 얘기들을 하나씩 즐겁게 꺼내 놓았다. 너무 더울 때는 호스로 시원하게 단체 물 샤워를 하기도 했지만 다들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내가 만든 예술작품은 여기야

마지막 주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도로 예술작품이 윤곽을 드러나기 시작하니깐, 서로 자신이 만든 구역을 자랑하면서 한껏 사진 찍기에 바쁘기도 했다. 드디어 완성한 다음 날에는 그 동안 생필품과 자재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신 이웃주민들을 성에 초대해서 자그마한 완성 기념 파티도 가졌다. 이 때, 모든 친구들이 프랑스어로 짧은 감사 말을 준비하고, 외운 것을 읊으면서 감사의 표현을 대신하는 뜻 깊은 자리도 가졌다. 이 때, 한국에서도 신문에 나와본 적이 없는데 프랑스 지역신문에 소개되어서 일면을 장식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Part4. 워크캠프에서의 Activity~!

즐거운 에너지 충전 시간

매일 저녁에는 사전에 정한 게임 대로, 식탁에 모여 가벼운 단체 활동을 했다. 나라 수도 맞추기, 음악 듣고 제목 맞추기, 알파벳 첫 글자로 빨리 단어 맞추기, 스피드 퀴즈 등 단순하면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게임들을 했다. 심지어 한국뿐만 아니라 각 나라 별로 비슷한 게임들이 있어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각 나라 스타일 대로 게임 방식을 달리해서 진행하는 재미도 있었다.

가끔씩 일과를 마친 오후에는 마을에서 협찬해줘서 무료로 수영을 하거나 강가에서 카누도 타고, 지역 박물관을 구경하고, 지역 아이들과 운동을 하거나, 미술가 집에 초청을 받고, 시장님의 초청으로 레스토랑에서 디너를 먹는 등 매일 매일이 즐거운 이벤트의 연속 이었다.


지역 축제 참가 번호 1번

이번 워크캠프의 계획대로, 성 도로 예술 사업 외에도 지역 축제 봉사자가 되는 일도 있었다. 어떻게 지역 축제에서 도움이 될지 서로 고민하던 차에, 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거리 행진을 하자고 리더에게 제안했다. 내 제안 대로, 지역 가게에 협찬을 받아 각자의 취향 대로 코스튬을 입고 거리 행진을 하는 일을 했다. 나는 리더의 추천으로 로빈훗의 분장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플래시를 한껏 받으며 멋지게 축제의 중요한 시작을 담당했다. 축제 기간에는 실제 록 그룹이 와서 공연을 하고, 함께 댄스 파티를 하는 등 한국에서도 쉽게 하지 못한 일들을 충분히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즐길 수 있었다.

그 다음 주에는 프랑스에서 옛 교황의 거처로 유명한 ‘아비뇽’의 축제를 보러 갔었다. 예술의 나라답게 다양한 장르의 거리 예술을 실컷 볼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상상했던 유럽의 전형적인 축제와 볼거리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파견 나온 한국의 홍보대사

반크의 회원으로서, 잔뜩 가져온 한국 홍보물을 꺼내놓으려 했지만 기회가 마땅히 찾아 오지 않았다. 같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생활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외국인 친구들에게 낯선 한국을 홍보하는 것은 거리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할 당시에, 고객 만족을 이루려면 먼저 스스로를 낮추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이 있다.

나는 이점에 착안하여, 현지 리더에게 서로의 문화를 체험하고 직접 배워보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다행히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일과 후 저녁에 모여 함께 서로의 음악, 언어, 게임 등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배워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서로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준비해 온 한국 홍보자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커다란 세계 지도를 펼쳐가며 일본과 한국에서 분쟁하고 있는 ‘독도’와 역사적인 배경까지 설명하였다. 준비해 온 멘트 대로 조금은 어리숙하지만 성실히 본연의 임무를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요리 당번일 때, 현지에서 공수한 재료로 한식을 만들고, 레시피를 만들어가며 한식을 가르치는 작은 요리교실을 개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공기로 공기놀이를 하였는데, 터키에도 유사한 놀이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공기가 없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병뚜껑이나 조약돌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3주간, 하나하나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한국적인 소일거리를 외국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Part4. 워크캠프를 마치면서…

정말 아쉬운 작별

워크캠프 마지막 전날, 그 동안 도움을 주셨던 분들을 숙소에 초청해서 파티를 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정’이라는 건 세계 공통 감정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동안 잘 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던 공기와 윷놀이를 지역 주민들에게 선보이기도 하면서 뜻 깊은 작별의 시간을 보냈다. 늦은 밤에는 함께 성에 올라가 완성한 도로에 누워, 준비해온 간식과 와인을 즐기며 야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내고, 워크캠프에 올 때처럼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타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떠났다. 떠나기 전날 밤에 현지 리더들이 기차 타고 가면서 먹으라고 정성껏 싸준 간식들을 보니, 그 작은 것에 큰 감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짧은 작별

워크캠프를 마치고 일정 대로, 우선 파리에서 4박5일간 홀로 여행을 했다. 파리가 서울보다 작긴 하지만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워크캠프에서 동거동락 했던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그 때의 반가움은 한국에서 외국으로 홀로 떠났을 때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난 기쁨과 같았다.

또 다시 시작된 워크캠프

그렇게 개인 여행을 하면서 꾸준히 Facebook으로 워크캠프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지냈다. 아예 워크캠프 지역이었던 ‘쎙 엉브화’라는 페이스북 클럽을 만들어서 그 동안 많이도 찍었던 서로의 사진을 공유하고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는 대화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페이스북으로 계속 연락하고 있기에 아직도 우리의 워크캠프는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세계 안에 ‘진정한 나’를 발견한 참 기쁨~!

왜 이제까지 워크캠프를 미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어서 더 이상 워크캠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도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바라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나는 ‘한국에 속한 나’이었기에 주변 사람들과 익숙한 환경 속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워크캠프에서는 ‘타지에서의 나’이었기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다 볼 수 있었다.

사실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지금까지 단련시켜온 나를, 타지에서도 충분히 보여줬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마케팅 학도로서, 현지의 상황에 따라 적합한 홍보 제안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다. 게다가 여행을 통해서 나의 삶을 반추해보고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어느 때보다 깊이 고민한 행복한 시간을 가졌기에, 이제는 조금 더 자신감 있게 내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워크캠프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해준 꾸밈없는 거울이었다.”


영원한 Facebook 친구들…

터키인 3인방 : 에킨, 아슬리, 발칸

유능한 체코 선생님 : 카트카

섬세한 프랑스 리더 : 새라

전문인다운 또 다른 프랑스 리더 : 에밀리

어리지만 유쾌한 프랑스 2인방 : 브랜든, 지쎄이

한 때 문제로 잊혀진 프랑스인 : 아담

서양인보다 개방적인 대만인 : 오필리아

듬직한 한국인 동생 : 이정우

성실함과 정겨움으로 승부한 또 다른 한국인 : ‘나’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