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낯선 풍경 속 소중한 인연
Meet us - don’t eat us (3:6)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장기간의 해외 여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파리에서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짧으면 하루 길게는 2~3일 정도의 흘러가는 인연이었으므로 이주간 누군가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게 부담도 되었다. 4시간이라는 비교적 긴 비행시간을 잘 견디고 도착한 아이슬란드는 생각보다 햇살이 강했다. 공항에서 오는 길에 버스에서 잘못 내려, 꽤 먼 길을 걸어가야 했었는데 아름다운 초록의 레이캬비크 풍경에 반해 힘든 줄도 몰랐었다. 그렇게 Seeds에서 제공한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어색한 말투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 냈다.
2주간의 소중한 인연. 우리는 Seeds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모여 인사를 나누고 저녁도 나누어 먹었다.
레이캬비크 시내를 대충 둘러보고 저녁때 즈음 숙소로 돌아갔다. 세 명의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모여있었고,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날이 캠프 시작일 이여서 그랬는지 숙소에는 우리와 같은 캠프에서 지내게 될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장을 봐와서 식사도 나누어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안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있었다.
2주 동안의 캠프, 정든 우리의 보금자리. 12명이 함께 써야 할 화장실은 단 한 개!!
본격적으로 캠프를 시작할 우리의 숙소는 많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아주 좋다고 할 수도 없는 작고 아담한 집이었다. 일층에는 부엌과 거실이 있었고, 이층에는 방 두 개 그리고 하나의 화장실 겸 욕실이 있었는데, 방은 한 방당 6명이 사용하고 욕실은 12명의 친구들이 모두 함께 사용해야 했다. 이 덕에 화장실에 관련된 웃지 못할 일들도 발생하곤 했다. 캠프가 끝날 때쯤 남자아이들은 화장실이 항상 꽉 차 있어 볼일이 급할 땐 언제나 근처 카지노를 이용했다는 고백 아닌 고백도 했다.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캠프이기에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우리가 귀여운 티셔츠를 입고 해야 했던 일은. “싸인 좀 부탁 드려요! 잡상인 아닙니다!!!”
우리가 했던 일은 바로 사람들에게 고래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사인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영어가 유창하지도 않은, 겉모습도 모두 다른 우리가 달려들어 사인을 요구했을 때 가끔 잡상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 고래고기를 좋아하는 아슬란딕들의 분노를 사는 등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어떨 때는 왜 고래고기만 먹지 말라고 하냐는 비교적 어려운 질문을 받거나, 나를 일본인 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의 질타를 받기도 하는 등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나로써는 곤란한 상황도 있었으며,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공격적이었던 아이슬란딕 때문에 눈물을 훔쳤던 적도 있다. 언제나 두 명의 친구는 고래 코스프레를 해야 했는데 간혹 딱딱한 코스프레 복을 입은 친구를 공격하는 이도 있었다. 평소 사람을 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단 걸 알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모를 의욕상실도 겪었지만, 멋진 친구들 덕에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의 기록을 깨어나갔고 그 덕에 하루라는 자유시간도 갖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팀은 드림팀이였던 것 같다. 마지막 날은 사인을 모으는 대신 레이캬비크 곳곳에 “Free waffle” 이라고 크게 써놓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와플도 나눠주고 프리허그도 했다. 즐거웠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와플 노점상을 정리하고 우리가 그 동안 피땀 흘려 모은 사인카드를 전해주러 가는 길. 산처럼 쌓인 카드들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여러 문화의 융합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 캠프는 유난히 아시아계 사람들이 많았다. 12명의 캠프원중에 유럽에서 온 캠프 원은 6명이었고 나머지 6명은 아시아에서 온 캠프원이였다. 어찌 보면 이상적인 융합일지도 모르지만, 너무도 다른 우리들은 조금씩 서운한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캠프가 끝나기 고작 며칠 전의 일이다. 비교적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몇몇 아이들과 솔직한 편이 낫다고 얘기하는 몇몇 아이들은 목청을 높였다. 눈물도 보였다. 사실 그 동안의 스트레슨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캠프에 참가한걸 후회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우리가 우리의 모든 생각을 털어놓고 토론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우리 사이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친구는 네모나던 우리들이 둥글게 마모되어가고 있다고 얘기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기에 2주란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전체적으로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했던 것은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구나 라는 희망을 주었던,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슬란드를 선택했던 이유. 유명한 자연환경 그리고 캠프원들과의 아쉬운 작별인사.
캠프기간 동안 두 번의 주말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아이슬란드의 숨막히는 자연경관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기도 하고 “와 내가 이걸 내 인생에서 한 번은 볼 수 있다니..”뭐 이런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이동시간이 길어 좀 피곤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경험이었다. 이렇듯 우리 캠프 원들은 일하는 시간, 쉬는 날 까지 함께 추억을 나누었고, 서로 잡음도 많고 서운한 일도 많았지만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서운한 마음이 가장 컸다. 한 친구는 웃으며 “이제 우리 못 볼생각하니깐 슬퍼?” 하고 묻기도 했는데 그땐 웃었지만 내 마음은 정말 씁쓸했다. 우리가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거실에 널 부러져서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할 일을 하는 이런 편안한 시간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 하는 감상에 빠졌었다. 캠프가 끝나고 1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나니 모든 것이 너무도 예쁘고 즐겁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무언가를 배운 것 같아 뿌듯하다. 좀 더 일찍 캠프를 알았더라면 한번 더 도전해 볼 텐데 하는 아쉬움도 함께.
2주간의 소중한 인연. 우리는 Seeds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모여 인사를 나누고 저녁도 나누어 먹었다.
레이캬비크 시내를 대충 둘러보고 저녁때 즈음 숙소로 돌아갔다. 세 명의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모여있었고,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날이 캠프 시작일 이여서 그랬는지 숙소에는 우리와 같은 캠프에서 지내게 될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장을 봐와서 식사도 나누어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안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있었다.
2주 동안의 캠프, 정든 우리의 보금자리. 12명이 함께 써야 할 화장실은 단 한 개!!
본격적으로 캠프를 시작할 우리의 숙소는 많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아주 좋다고 할 수도 없는 작고 아담한 집이었다. 일층에는 부엌과 거실이 있었고, 이층에는 방 두 개 그리고 하나의 화장실 겸 욕실이 있었는데, 방은 한 방당 6명이 사용하고 욕실은 12명의 친구들이 모두 함께 사용해야 했다. 이 덕에 화장실에 관련된 웃지 못할 일들도 발생하곤 했다. 캠프가 끝날 때쯤 남자아이들은 화장실이 항상 꽉 차 있어 볼일이 급할 땐 언제나 근처 카지노를 이용했다는 고백 아닌 고백도 했다.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캠프이기에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우리가 귀여운 티셔츠를 입고 해야 했던 일은. “싸인 좀 부탁 드려요! 잡상인 아닙니다!!!”
우리가 했던 일은 바로 사람들에게 고래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사인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영어가 유창하지도 않은, 겉모습도 모두 다른 우리가 달려들어 사인을 요구했을 때 가끔 잡상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 고래고기를 좋아하는 아슬란딕들의 분노를 사는 등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어떨 때는 왜 고래고기만 먹지 말라고 하냐는 비교적 어려운 질문을 받거나, 나를 일본인 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의 질타를 받기도 하는 등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나로써는 곤란한 상황도 있었으며,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공격적이었던 아이슬란딕 때문에 눈물을 훔쳤던 적도 있다. 언제나 두 명의 친구는 고래 코스프레를 해야 했는데 간혹 딱딱한 코스프레 복을 입은 친구를 공격하는 이도 있었다. 평소 사람을 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단 걸 알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모를 의욕상실도 겪었지만, 멋진 친구들 덕에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의 기록을 깨어나갔고 그 덕에 하루라는 자유시간도 갖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팀은 드림팀이였던 것 같다. 마지막 날은 사인을 모으는 대신 레이캬비크 곳곳에 “Free waffle” 이라고 크게 써놓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와플도 나눠주고 프리허그도 했다. 즐거웠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와플 노점상을 정리하고 우리가 그 동안 피땀 흘려 모은 사인카드를 전해주러 가는 길. 산처럼 쌓인 카드들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여러 문화의 융합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 캠프는 유난히 아시아계 사람들이 많았다. 12명의 캠프원중에 유럽에서 온 캠프 원은 6명이었고 나머지 6명은 아시아에서 온 캠프원이였다. 어찌 보면 이상적인 융합일지도 모르지만, 너무도 다른 우리들은 조금씩 서운한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캠프가 끝나기 고작 며칠 전의 일이다. 비교적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몇몇 아이들과 솔직한 편이 낫다고 얘기하는 몇몇 아이들은 목청을 높였다. 눈물도 보였다. 사실 그 동안의 스트레슨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캠프에 참가한걸 후회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우리가 우리의 모든 생각을 털어놓고 토론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우리 사이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친구는 네모나던 우리들이 둥글게 마모되어가고 있다고 얘기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기에 2주란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전체적으로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했던 것은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구나 라는 희망을 주었던,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슬란드를 선택했던 이유. 유명한 자연환경 그리고 캠프원들과의 아쉬운 작별인사.
캠프기간 동안 두 번의 주말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아이슬란드의 숨막히는 자연경관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기도 하고 “와 내가 이걸 내 인생에서 한 번은 볼 수 있다니..”뭐 이런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이동시간이 길어 좀 피곤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경험이었다. 이렇듯 우리 캠프 원들은 일하는 시간, 쉬는 날 까지 함께 추억을 나누었고, 서로 잡음도 많고 서운한 일도 많았지만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서운한 마음이 가장 컸다. 한 친구는 웃으며 “이제 우리 못 볼생각하니깐 슬퍼?” 하고 묻기도 했는데 그땐 웃었지만 내 마음은 정말 씁쓸했다. 우리가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거실에 널 부러져서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할 일을 하는 이런 편안한 시간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 하는 감상에 빠졌었다. 캠프가 끝나고 1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나니 모든 것이 너무도 예쁘고 즐겁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무언가를 배운 것 같아 뿌듯하다. 좀 더 일찍 캠프를 알았더라면 한번 더 도전해 볼 텐데 하는 아쉬움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