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덴마크, 멈춰 선 나를 일으켜 세우다

작성자 지호연
덴마크 MS09 · 환경/일반 2015. 05 - 2015. 06 Helsigor

Sustainable and Active Garden at IPC, phase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마치고도 아직 내 인생에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 덜컥 겁이나 무작정 한학기 졸업을 미루었을 때,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국제워크캠프를 참가하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하기엔 지금보다 더 좋을 타이밍도 없겠노라 생각했다. 남들처럼 여행을 갈 수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에겐 무작정 방랑하기 보다는 복잡한 머리를 비워내고 새로운 생각과 에너지를 담을 시간, 혹은 기회가 필요했던 것 같다. A4 한장 분량의 신청서를 제출하고 며칠 후 참가확정을 받았고, 출국준비를 하면서 정말 간만에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가슴 가득 설렘을 안고 덴마크의 International Peoples's College(이하 IPC) 에 도착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덴마크 워크캠프의 호스트였던 IPC는 전세계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의 교류와 이를 통한 상호 존중과 자아 실현을 추구하고자 하는 일종의 학교(folk high school)이다. 이곳에서 2명의 캠프리더를 포함하여 총 12명의 워크캠퍼들이 할 일은 이 학교의 야외 공간을 가꾸는 일이었다. 워크캠프 기간동안의 메인 태스크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하나, 숲 속의 산책로를 정비하고 둘, 호숫가에 나무 데크를 만드는 것.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지라 영 듣도 보도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스튜디오에서 종이 위에 그리는 것과 그것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사뭇 다른 일이었다. 전동 드릴이나 톱 따위의 자잘한 공구 사용법을 익히는 데에 꼬박 하루가 걸렸지만, 그 이후에 작업 일정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못을 박고 톱질을 하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쓸다보면 일이 몸에 익었고 시간도 금새 지나갔다. 안 쓰던 몸을 쓰려니 초반엔 여기저기 안 쑤신 곳이 없었지만, 몇일 지나고 적응이 되자 의외로 컴퓨터 앞에 앉아 골치 썩히느니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이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작업시간 외에도 대부분의 여가시간은 다른 캠퍼들과 보냈다. 학교가 조용한 시골 마을에 있어 3주가 길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호스트 측에서 나름 짜임새있는 익스커전을 많이 준비해두었다. 워크캠프 참가자들에 대해 많이 신경써주는 것이 느껴졌다. 당구나 탁구를 치고, 근처 해변에 수영도 하러 가고, 근처 도시로 자전거 라이딩도 다녀왔다. 이도 저도 아닌 날엔[6월의 덴마크는 여전히 서늘하고 축축했다] 맥주 한 캔씩 사다가 마시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호스트가 '학교'에서 가졌던 장점은 12명의 워크캠퍼 이외에도 100여명이 넘는 전세계의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나름의 일과를 끝내고 커먼룸에 앉아있으면 한두명씩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곤 했다. 매주 주말엔 학생들끼리 파티를 열어 온 학교가 들썩거렸고, 우리도 그 흥에 취해 같이 들썩이곤 했다. 그렇게 워크캠프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가까워지며 덴마크에서의 3주는 예상보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덴마크 워크캠프 내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IPC에서 갭 이어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부터 우리 캠프리더 중 한 명이었던 백발의 할아버지까지. 서로를 국적과 나이 또는 성별로 재단하기 보다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뭉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고 나이가 다르더라도, 이들과 '배움과 성장'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보낸 3주는 내게 큰 변화를 주었다. 꿈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는 말을 핑계삼아 흘러가는 시간에 이끌려 어느새 졸업을 앞둔 나. 어쩌면 워크캠프를 통해, 나는 먼 길을 돌아 답을 찾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답을 인정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말일 것 같다. 덴마크에서 만난 이들의 꿈을 향한 열정과 생기는 내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전공과 다르다고,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시도조차 망설여왔던 일에 이제서야 첫 걸음을 내딛었다. 실패가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한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혹시 어딘가 길을 잃고 표류하거나 헤메이는 청춘이 있다면, 무작정 워크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워크캠프에서의 인연과 작은 에피소드, 한줄의 대화가 누군가에겐 작은 위안이, 또 누군가에겐 다시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