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삭막함이 끌어당긴 아이슬란드
Raufarhofn near to the arctic circ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 “아이슬란드? 아일랜드랑은 다른 덴가?”, “거기도 나라야? 이름만 들어도 삭막하다. 춥기는 또 엄청 추울 것 아냐.” 내가 처음 아이슬란드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이러했다. 그들이 아이슬란드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사실 나의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이름에서부터 풍겨오는 으스스한 한기 외에 나를 끌어당기는 묘한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게 2012년 여름을 유럽에서 보내기로 결정하고, 거기에 2주 동안의 워크캠프로 아이슬란드에 지원하고 나니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 2012년 7월 3일, 드디어 한달 반에 이르는 유럽 여행의 첫 날이 밝았다. 서울, 두 번의 경유를 거친 후 런던, 그리고 다시 아이슬란드의 수도이자 워크캠프의 미팅 포인트가 될 레이캬비크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국내에서는 아이슬란드로 가는 직항편이 없었기에 조금은 복잡한 루트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틀 동안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밀려오는 온갖 피곤함 때문에 레이캬비크에 도착한 후에도 아이슬란드에 대한 첫인상 같은 건 감상할 겨를도 없었다는.
3. 이번 2주 간의 캠프에서 리더를 맡게 된 스페인 출신의 Laura와 한국인 Song을 주축으로, 프랑스에서 온 Melanie, 벨기에에서 온 Lauranne과 Floriane, 러시아에서 온 Katya와 Elena, 캐나다에서 온 Stephanie, 대만에서 온 Sean, 일본에서 온 Saaya, 스페인에서 온 Berta, Pat, Jordi, Joan, 그리고 한국에서 온 지산이와 재영이까지 총 17명의 캠프 동지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처음엔 모든 게 어색하기 마련. 하지만 우린 제대로 인사 할 겨를도 없이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레이캬비크에서 캠프 장소인 라우파호픈까지는 차로만 9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갈 길이 바빴던 터. 그래도 가는 길에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몸소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들에 들를 수 있다는 말에 몹시 설렜다.
4. 골든서클, 아쿠레이리를 거쳐 출발한 지 이튿날이 되어서야 최종 목적지인 라우파호픈에 도착했다. 아이슬란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있으며 200명밖에 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주된 생업은 고기잡이라는 라우파호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고 고요한 마을이었다. 해가 긴 여름이었으니 망정이지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는 겨울이었다면 을씨년스러운 황량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사람을 공격하는 ‘Kria’라는 새들 때문에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긴 나무막대기 등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주의사항은 우릴 지레 겁먹게 만들었다. 사람을 공격한다는 새가 있다니.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린 곧 사람만 보면 소름 끼치도록 울어대는 그 새들에게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름하여 ‘앵그리 버드’!
5. 밀린 피로를 풀 수 있었던 꿀맛 같은 주말을 보낸 후 본격적으로 캠프 일을 시작하게 될 월요일의 날이 밝았다. 주말 동안 캠퍼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고, 종이 접기와 공기 놀이를 가르쳐 주고,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레시피로 만든 맛난 음식들을 먹다 보니 우린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하게 된 일은 우리가 지내고 있는 건물의 청소와 보수, 그리고 데코레이션 등등의 모든 것. 2주 동안 17명이 함께 지내기엔 더없이 좋은 3층짜리의 아담한 건물이었지만, 건물 내외부적으로 우리들의 손길이 어느 정도 필요해 보였다. 각자 하나씩 일을 맡아 분담하니 금새 끝낼 수 있었다는. 오후에는 다음 날 저녁에 예정된 ‘라우파호픈 워크샵’을 위한 조별 모임을 갖고, 마을 주민들을 초대하기 위해 직접 몇몇 집들을 방문했다.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대면하게 된 라우파호픈 사람들. 이방인에 대한 반가움 혹은 낯섦은 어딜 가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인가 보다. 작년에 이 곳을 찾았던 다른 워크캠프 사람들과의 마찰과 오해 등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줄 수 있을지도 많이 걱정되었다. 과연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지 무척 궁금했다.
6. 사실 우리가 라우파호픈에서 했던 워크캠프 일은 분명 처음 내가 인포싯을 통해 접했던 내용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진을 찍는 등의 예술적인 활동 대신,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라는 이름 하에 각 주제별로 조를 나누고 나는 아이들에게 종이 접기를 가르쳐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예상 외의 일정에 몇몇 캠퍼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던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워크샵에 많은 마을 사람들이 와주었고 나 역시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종이 접기를 하며 뜻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캠프 기간 동안 우리들이 찍은 사진 중의 일부가 라우파호픈, 그리고 워크캠프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 된다고 하니 초기 목표 또한 어느 정도 이룬 셈! 의심과 불만이 놀라움과 만족스러움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7. 처음 아이슬란드에 여행이 아닌 2주간의 생활을 위해 가기로 결정했을 때, 아이슬란드에 대한 호 불호를 떠나 과연 어떤 것들을 느끼게 될 지가 가장 궁금했다. 번잡한 대도시에서 살다가 200명도 채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지낸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그 곳이 정말 ‘세상의 끝’이 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을 지. 그 변화의 폭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단순히 차가 없고, 편의시설이 없고, 사람이 없는 불편함이 아니라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에서의 이 곳 생활은 과연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유럽 대륙에서도 저만치 북쪽으로 떨어져 있고, 그 흔한 유로화 대신 여전히 자국 통화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 여름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반대로 겨울엔 길고 긴 밤 하늘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 한 쪽에서는 화산 활동을, 또 한 쪽에서는 빙하를 관찰할 수 있는 불과 얼음의 나라.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연간 여행객이 300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하나쯤은 있을 법한 아이슬란드 여행 관련 책도 한국에선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유럽 지도에서도, 북유럽 관광 정보에서조차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이슬란드. 측은함마저 드는 이 오묘한 나라는, 누군가 이런 곳도 지구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따로 옆으로 떼어놓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아이슬란드가 변방에 위치해있는 것이 다행일지도. (결국에 불청객은 인간이 되겠지만) 앞으로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변치 않고 쭉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8. 라우파호픈에서의 마지막 밤. 떠나는 건 항상 아쉽지만 지금이 적당한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의 파티로 얻은 숙취는 여느 때와 같은 시리얼과 빵으로 달래고,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마지막으로 청소했다. 오후에는 마을 주민들은 물론 다음 캠프 참가자들도 숙소에 도착해 어느 때보다도 ‘우리들의 집’은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이제 새로운 아침 해가 밝으면 다시 레이캬비크를 향한 긴 로드 트립을 시작, 그 끝에선 정들었던 캠퍼들과의 작별 인사와 함께 2주 동안의 워크 캠프를 마무리하게 되겠지. 시간은 언제나, 늘 빠르다.
9. 3년 전 호주를 떠날 때, 그리고 1년을 머물렀던 미국을 떠날 때도 그랬듯이 다신 이런 여행 못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생각 외로 많이 힘들었지만, 그 많은 슬픔에도 또다시 이런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 건 어쩌면 나도 사람 없인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느닷없이 별안간 터져버리는 눈물에 내 감정 하나 컨트롤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또 한 번 깨달았다. 언젠간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부질 없는 약속에도 한 날 한 곳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운명, 돌이켜보면 더 없는 행복이었느니라. 그렇기에 나는 다시금 웃으며 새로운 초행길에 나설 수 있다.
2. 2012년 7월 3일, 드디어 한달 반에 이르는 유럽 여행의 첫 날이 밝았다. 서울, 두 번의 경유를 거친 후 런던, 그리고 다시 아이슬란드의 수도이자 워크캠프의 미팅 포인트가 될 레이캬비크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국내에서는 아이슬란드로 가는 직항편이 없었기에 조금은 복잡한 루트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틀 동안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밀려오는 온갖 피곤함 때문에 레이캬비크에 도착한 후에도 아이슬란드에 대한 첫인상 같은 건 감상할 겨를도 없었다는.
3. 이번 2주 간의 캠프에서 리더를 맡게 된 스페인 출신의 Laura와 한국인 Song을 주축으로, 프랑스에서 온 Melanie, 벨기에에서 온 Lauranne과 Floriane, 러시아에서 온 Katya와 Elena, 캐나다에서 온 Stephanie, 대만에서 온 Sean, 일본에서 온 Saaya, 스페인에서 온 Berta, Pat, Jordi, Joan, 그리고 한국에서 온 지산이와 재영이까지 총 17명의 캠프 동지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처음엔 모든 게 어색하기 마련. 하지만 우린 제대로 인사 할 겨를도 없이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레이캬비크에서 캠프 장소인 라우파호픈까지는 차로만 9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갈 길이 바빴던 터. 그래도 가는 길에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몸소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들에 들를 수 있다는 말에 몹시 설렜다.
4. 골든서클, 아쿠레이리를 거쳐 출발한 지 이튿날이 되어서야 최종 목적지인 라우파호픈에 도착했다. 아이슬란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있으며 200명밖에 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주된 생업은 고기잡이라는 라우파호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고 고요한 마을이었다. 해가 긴 여름이었으니 망정이지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는 겨울이었다면 을씨년스러운 황량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사람을 공격하는 ‘Kria’라는 새들 때문에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긴 나무막대기 등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주의사항은 우릴 지레 겁먹게 만들었다. 사람을 공격한다는 새가 있다니.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린 곧 사람만 보면 소름 끼치도록 울어대는 그 새들에게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름하여 ‘앵그리 버드’!
5. 밀린 피로를 풀 수 있었던 꿀맛 같은 주말을 보낸 후 본격적으로 캠프 일을 시작하게 될 월요일의 날이 밝았다. 주말 동안 캠퍼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고, 종이 접기와 공기 놀이를 가르쳐 주고,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레시피로 만든 맛난 음식들을 먹다 보니 우린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하게 된 일은 우리가 지내고 있는 건물의 청소와 보수, 그리고 데코레이션 등등의 모든 것. 2주 동안 17명이 함께 지내기엔 더없이 좋은 3층짜리의 아담한 건물이었지만, 건물 내외부적으로 우리들의 손길이 어느 정도 필요해 보였다. 각자 하나씩 일을 맡아 분담하니 금새 끝낼 수 있었다는. 오후에는 다음 날 저녁에 예정된 ‘라우파호픈 워크샵’을 위한 조별 모임을 갖고, 마을 주민들을 초대하기 위해 직접 몇몇 집들을 방문했다.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대면하게 된 라우파호픈 사람들. 이방인에 대한 반가움 혹은 낯섦은 어딜 가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인가 보다. 작년에 이 곳을 찾았던 다른 워크캠프 사람들과의 마찰과 오해 등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줄 수 있을지도 많이 걱정되었다. 과연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지 무척 궁금했다.
6. 사실 우리가 라우파호픈에서 했던 워크캠프 일은 분명 처음 내가 인포싯을 통해 접했던 내용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진을 찍는 등의 예술적인 활동 대신,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라는 이름 하에 각 주제별로 조를 나누고 나는 아이들에게 종이 접기를 가르쳐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예상 외의 일정에 몇몇 캠퍼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던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워크샵에 많은 마을 사람들이 와주었고 나 역시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종이 접기를 하며 뜻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캠프 기간 동안 우리들이 찍은 사진 중의 일부가 라우파호픈, 그리고 워크캠프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 된다고 하니 초기 목표 또한 어느 정도 이룬 셈! 의심과 불만이 놀라움과 만족스러움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7. 처음 아이슬란드에 여행이 아닌 2주간의 생활을 위해 가기로 결정했을 때, 아이슬란드에 대한 호 불호를 떠나 과연 어떤 것들을 느끼게 될 지가 가장 궁금했다. 번잡한 대도시에서 살다가 200명도 채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지낸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그 곳이 정말 ‘세상의 끝’이 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을 지. 그 변화의 폭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단순히 차가 없고, 편의시설이 없고, 사람이 없는 불편함이 아니라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에서의 이 곳 생활은 과연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유럽 대륙에서도 저만치 북쪽으로 떨어져 있고, 그 흔한 유로화 대신 여전히 자국 통화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 여름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반대로 겨울엔 길고 긴 밤 하늘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 한 쪽에서는 화산 활동을, 또 한 쪽에서는 빙하를 관찰할 수 있는 불과 얼음의 나라.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연간 여행객이 300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하나쯤은 있을 법한 아이슬란드 여행 관련 책도 한국에선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유럽 지도에서도, 북유럽 관광 정보에서조차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이슬란드. 측은함마저 드는 이 오묘한 나라는, 누군가 이런 곳도 지구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따로 옆으로 떼어놓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아이슬란드가 변방에 위치해있는 것이 다행일지도. (결국에 불청객은 인간이 되겠지만) 앞으로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변치 않고 쭉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8. 라우파호픈에서의 마지막 밤. 떠나는 건 항상 아쉽지만 지금이 적당한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의 파티로 얻은 숙취는 여느 때와 같은 시리얼과 빵으로 달래고,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마지막으로 청소했다. 오후에는 마을 주민들은 물론 다음 캠프 참가자들도 숙소에 도착해 어느 때보다도 ‘우리들의 집’은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이제 새로운 아침 해가 밝으면 다시 레이캬비크를 향한 긴 로드 트립을 시작, 그 끝에선 정들었던 캠퍼들과의 작별 인사와 함께 2주 동안의 워크 캠프를 마무리하게 되겠지. 시간은 언제나, 늘 빠르다.
9. 3년 전 호주를 떠날 때, 그리고 1년을 머물렀던 미국을 떠날 때도 그랬듯이 다신 이런 여행 못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생각 외로 많이 힘들었지만, 그 많은 슬픔에도 또다시 이런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 건 어쩌면 나도 사람 없인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느닷없이 별안간 터져버리는 눈물에 내 감정 하나 컨트롤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또 한 번 깨달았다. 언젠간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부질 없는 약속에도 한 날 한 곳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운명, 돌이켜보면 더 없는 행복이었느니라. 그렇기에 나는 다시금 웃으며 새로운 초행길에 나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