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꿈과 봉사가 만난 여름
Raufarhofn near to the arctic circ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알게 된 것은 친구를 통해서였다. 부산에 사는 나로써는 정보력이 부족해 워크캠프라는 것을 몰랐지만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대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이번 여름에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어서 이 참에 북미여행하자 싶어 비행기 티켓을 끊으려는 순간 그 친구가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 나를 만나겠다고 하였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전세계 학생들이 모이는 봉사 활동 프로그램이고 친구는 양떼 목장에서 양떼 몰기를 신청하였다고 하였다. 고등학생 때 세계지리를 배우면서 화산과 빙하가 공존하는 신비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아이슬란드를 꼭 한번 가고 싶었던 나로써는 봉사 활동이라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며 그 주위 경관을 느끼는 것이 매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아이슬란드 가는 편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이 참에 미국에서 아이슬란드 가는 것도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일정을 맞추고 관심있던 분야들을 찾아보니 Raufarhofn 지역에서 하는 활동이 가장 좋았다.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마침 활동에 사진 제작도 있었고 해안가 쓰레기 줍기가 있었다. 해안가 쓰레기 주우면서 우리가 직접 치우는 쓰레기들로 인해 깨끗해진 바다와 그 주위 경관을 보면 얼마나 보람있을까 하는 기대로 부푼 마음을 안고 신청서를 작성하고 참가비 20만원을 제출하였다. 그런데 약간 마음에 걸렸던 것이 있었다. 참가비를 아이슬란드 현지에서도 150유로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봉사 활동을 하러가는 것인데, 그것도 교통도 직접 부담해서 가는 것인데 참가비라는 것을 한국에서도 지불해야하고 현지에서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고 너무 비싸서 큰 부담이 갔다. 정확히 어디에 쓰이는지 알려주지도 않아 아무리 국제워크캠프 기구라고 하더라도 약간 의심이 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2주 동안 활동하며 먹고 자는데 최소한 그만큼 든다 생각하고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합격되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기쁜 마음으로 인포싯을 보는데, 워크캠프 사무실에서 우리가 일할 장소까지 또 사비로 이동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편도에 90유로였고 왕복으로하면 180유로였다. 이미 한국에서 신청서를 제출할 때 20만원을 내고 난 뒤라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봉사활동 하러 간 것인데, 비행기 왕복 80만원, 한국에서 참가비 20만원, 현지 참가비 약 30만원, 왕복 교통비 약 30만원. 총 160만원을 들여서 봉사 활동을 하러 간 셈이었다. 참가비를 두 번 내는 것도 찝찝했는데 거기 교통비를 직접 부담해야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줬었더라면 차라리 교통비가 제일 적게 드는 곳을 선택했거나 아예 워크캠프를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께도 정말 죄송했다. 돈 주고 봉사 활동하러 가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도 샀고 참가비도 일부 낸 후라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가서 유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고 출국 준비를 하였다. 아이슬란드 가기 전에 친구와 미국 여행을 먼저 하였다. 그 친구는 이미 아이슬란드에서 워크 캠프를 하고 난 직후에 나는 만난 것이라 이런 저런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주인 아주머니를 잘 만나 일도 재밌게 하고 편하게 지내고 자유 시간에는 외국인 친구들과 짬짬이 여행도 많이 다녀 정말 좋았다고 하였다. 친구 이야기를 듣고 경비 부담은 여전히 느꼈지만 그래도 유럽, 미국과 달리 아이슬란드는 흔히들 여행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기에 매우 기대가 커졌다. 드디어 아이슬란드 출국하는 날! 친구가 지금쯤 아이슬란드는 한국의 초가을 날씨라고 하여 공항 가기 전 대충 두꺼운 청바지에 티셔츠와 그 위에 후드 집업을 입고 땡볕을 걸었다. 그리고 델타 항공을 타고 아이슬란드 도착! 아니 그런데..날씨날 흐린 것이 또 생각보다 엄청 추웠다. 초가을 날씨는 고사하고 우리나라 겨울 날씨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매우 더운 도시에 있다가 바로 건너와서 더 적응이 안 되는 것이 당연했다. 공항에서 정신없이 나와 플라이버스를 탔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고 공항을 바라보는데… 이때까지 내가 봐왔던 공항들 중 가장 작고 아담한 공항이었다.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공항이라고 생각 못 할 정도였다. 그렇게 플라이 버스를 타며 바깥 구경을 하는데 너무 좋아서 버스 안에서 계속 바깥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서는 감히 볼 수 없는 그런 풍경들이었다. 그리고 북유럽 도시답게 깔끔한 도로와 집들이 더욱 설레게 하며 워크 캠프에 대한 기대감도 매우 높아졌다. 그러다 플라이 버스 기사 아저씨께서 여기가 워크 캠프 사무실이라며 내려주셨다. 처음엔 아저씨가 착각하신 건줄 알았는데 허름한 흰 건물 벽에 달려있는 문구 [world wide friends]가 확답을 주었다.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야캬빅에 있고 다른 건물들은 다 깔끔하고 안정된 건물들밖에 없는데 왜 worldwide friend 건물은 어느 시골에 있는 농기구 창고처럼 허름한지 화가 났다. 건물이 허름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워크 캠프 기구에서 운영하는 것이고 참가비 등 많은 돈을 받고 운영 되는 것인데 왜 건물 하나 온전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여하튼 나무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서 아무도 열어주지를 않았다. 순간 겁이 났다. 아이슬란드는 영어를 쓰지도 않을 뿐더러 생소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계속 문을 두드려서야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는 순간 내가 사무실을 제대로 찾아온 건지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사무실이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 같은 분위기였다. 거실에 쇼파와 식탁이있고 다른 방에도 쇼파와 작은 탁자 그리고 컴퓨터 한대, 부엌은 더 가관이었다. 정신없이 음식 재료들이 나뒹굴어져있고, 도대체 여기서 음식을 해 먹는 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그런 나에게 먼저 말 걸어준 한국 여자분이 있었는데 마침 같은 워크 캠프 프로그램 신청한 친구였다. 그 친구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정말 생각 의외의 워크 캠프 사무실이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거기 사무실 직원? 이라고 해야하는지 다 똑같은 리더라고 해야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거기서 일하는 사람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럼 사무직 직장인이 아닌 다 피어싱하고 머리에 휘향찬란한 염색을 하고 화장도 짙게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곳을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람들이었고 모두 자기것인마냥 부엌에서 이런저런 요리를 해 먹고 있었다. 긴 비행시간 탓이었던지 배고팠는데 한국인 친구가 거기서 요리를 해서 같이 먹었다. 우리는 짐만 거기 놔두고 얼른 밖으로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는 새벽에 사무실 도착했는데 아무도 문을 안 열어줘서 한참을 기다렸다고, 그러다가 계속 또 문을 두드리니 어떤 사람이 금방 잠에서 깬 듯이 나와 문 열어주고 다시 쇼파에서 자더라고… 둘 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 친구도 여기 날씨가 그렇게 추운지 몰라 두꺼운 옷을 안 들고왔다해서 같이 쇼핑하러 나갔다. 아이슬란드 물가는 생각보다 엄청 비쌌다. 왠만한 옷은 거의 십만원이 넘었고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I love Iceland 기념후드티셔츠도 거의 십만원을 했다. 더 저렴한 옷을 찾기위해 계속 돌아다니다가 찾은 I love Iceland 후드티셔츠를 5만원에 구입하고 저녁으로 끼니 때울 겸 케밥을 먹으러 갔는데 케밥조차 하나에 13000원 가량 하였다. 그래도 돌아다니면서 레야캬빅을 구경하고 또 다른 매력을 감상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우리 프로그램은 그 다음날부터 시작하여 첫 날 묵을 곳이 필요했는데, 우리 팀 리더가 돈은 안내고 잘 수 있는 곳을 소개하겠다고 우리를 데리고 어느 건물에 갔다. 공사중인 건물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옥상에서 침대 매트를 옮겨서 방으로 들고오고, 화장실은 공사중이었던지 여기저기 먼지며 더러운 얼룩이 잔뜩 묻었다. 하룻밤만 이런 곳에서 자면 된다 하는 생각으로 친구와 침대 매트위에 침낭을 깔았는데 순간 쌓여있던 먼지들이 잔뜩 휘날려 엄청난 기침들이 나왔다. 꼭 여기서 자야하나 하는 심정이었지만, 정말 돈을 조금 더 내고서 호텔이나 호스텔에서 자고싶었지만 너무나 비싼 물가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 씻지도 않고 잤다. 다음 날, 우리가 잤던 공사중인 건물 1층에서 워크캠프 참가자들이 모였다. 거기서 참가비와 돈을 걷는데, 사무실에 컴퓨터 한대 밖에 없었고, 돈도 어떤 여자가 그냥 이름체크하고 받으면서 이상한 서랍에 꿍쳐넣었다. 더 이상했던 것은 카드가 안 된다고 하였다. 도대체 왜 카드가 안되냐니까 기계가 없다 하였다. 정말 이상했지만 다같이 미니버스를 타고 달렸다. 날씨가 안 좋아 계속 비가 내려 밖을 제대로 구경 못한채로 10시간을 달린 것 같았다. 가다가 큰 마트 들려서 앞으로 우리가 2주 동안 먹을 식량을 샀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도착한 Raufarhofn 숙소. 3층짜리 건물이었다. 여기저기 페인트가 뜯겨져나간 흔적이 많고 1층에 손만 닿이는 곳에 여러 색깔로 페인트칠한 흔적이 있었다. 첫날은 오랜 이동시간에 많이 지쳐 좋고 나쁘고 느낄 여유도 없었다. 원래 있었던 워크 캠프 팀들이 있어서 우리는 방에서 잠도 못 자고 1층 시멘트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잤다. 그리고 그 다음날 원래 있던 팀들이 가고 우리가 묵을 방을 정해서 짐을 풀었다. 정말이지 최소한 필요한 것들만 갖춘 그런 방이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침대 매트가 그냥 스폰지어서 매일 자고 일어일어날 때 허리에 엄청난 고통이 왔었다. 몇 날은 자다가도 허리가 아파 중간에 깬 적도 많았다. 본격적인 프로 그램 첫날에는 각자 자기 소개하고 역할 정하고 요리 청소 파트를 나누었다. 특히 중심을 두었던 것은 사진이었다. 다들 좋은 카메라들을 들고 왔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지, 우리가 지내던 동네는 주민도 얼마 없고 집도 몇채 없었으며 자연 경관도 심심했다. 아이슬란드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또 그곳에 서식하는 새들이 매우 사나워 나갈 때 마다 나무 막대기를 들고나가 머리위로 들고 다녀 새들이 머리가 아닌 나무 막대기를 쪼도록 해야 했다.
또 해안가 청소를 하러 나가도 사람도 많이 안 살고 관광객도 없던 터라 쓰레기가 있을 리가 없어 매우 깨끗해서 딱히 청소할 거리도 없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곳 주민들이 워크 캠프가 그 동네에 지내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 어떤 날은 어른들 대신 동네 청소년들이 와서 어른들 말씀은 전해주고 갔는데, 건물 페인트 색깔이 마음이 안 든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는 봉사 활동이 필요없다고 하였다. 솔직히 그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것은 기분이 나빴지만 워크 캠프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미리 장소를 정하고 취지를 확립할 때 충분이 그 곳에 있는 주민들과 말이 오갔어야 했으며 2주 동안 활동하기에 적합한지 사전 조사가 이루어 졌어야 한 것이 당연한 것인데 전혀 그런 준비가 없었던 것 같았다. 리더도 우리에게 바깥 봉사 활동을 시킬 것이 없던 것인지 우리가 지내는 건물 꾸미를 프로젝트를 준비하였다. 내부, 외부 페인트 칠이며 의자 만들기, 액세서리 만들기 등 우리를 위한 봉사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체육의 날, 언어의 날 같은 행사를 준비하여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홍보를 하였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동네에 주민이 몇 안 살고 다들 나이 드신 분들이라 행사에 한 명도 오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였다. 정말이지 2주 동안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각 나라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음식 담당일 때는 각 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음식을 하여 소개하는 등 본래 봉사 활동 취지가 거리가 먼 활동을 하였다. 특히 나와 친구가 한국 요리를 해 줄때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좋아해서 레시피도 적어간 친구들도 많았다. 워크 캠프 활동이 끝나기 하루 전에 우리는 하루 일찍 출발하여 수도로 돌아가는 길을 1박2일로 투어를 하였다. 그 때 우리 드라이브가 현지 아이슬란드에 사는 학생이어서 여기저기 좋은 곳을 많이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중간 지점에서 다른 워크 캠프 프로그램하는 숙소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 숙소는 정말 아름다운 경관으로 둘러싸인 좋은 곳이어서 많이 샘이 났다.
1박 2일의 투어는 2주 동안 내가 보낸 시간 중 가장 흥미있고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각자 비행 스케쥴이 달라 바로 헤어졌고 나는 이틀간의 여유가 있어 다른 친구들과 따로 또 투어를 신청하여 geysir도 보고 유럽에서 가장 큰 폭포도 보고 유럽에서 가장 큰 빙산도 보았다. 그렇게 아이슬란드에서의 멋진 투어는 끝내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아이슬란드의 워크 캠프 프로그램은 정말 부실했으며 우리가 낸 돈을 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 괜히 많이 받아놓고 남은 돈을 자기들이 챙기는 것이 아닌지 많이 의심이 된다. 카드가 안 되는 것은 말도 안되고, 또 우리가 낸 참가비와 교통비를 현금으로 받고 그 현금을 가지고 마트에 가서 우리가 먹을 식량을 샀는데, 만약 그 식량을 사고 돈이 남으면 그 돈은 어떻게 쓰는지, 만약 돈이 부족하며 그 돈은 또 어디서 메꾸는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비록 프로그램에 대해 많이 실망하였지만, 그래도 여러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던 국가들에 대한 문화와 정치의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체감할 수 있던 부분은 좋았다. 또한 이 기회를 통해서 전 세계에 많은 친구들은 사귀고 아직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특히 공용어가 영어였는데, 우리나라 빼고 다른 나라 언어들은 영어와 같은 문장 구조를 지니고 어원도 영어와 같아 다들 영어를 무척 잘하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안 나올때마다 영어를 정말 열심히 더 잘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가 확실히 부여되어서 유익하고 좋은 시간들을 보낸 것 같다. 앞으로 워크 캠프 프로그램이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고 모두가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고 인정할 수 있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또 해안가 청소를 하러 나가도 사람도 많이 안 살고 관광객도 없던 터라 쓰레기가 있을 리가 없어 매우 깨끗해서 딱히 청소할 거리도 없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곳 주민들이 워크 캠프가 그 동네에 지내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 어떤 날은 어른들 대신 동네 청소년들이 와서 어른들 말씀은 전해주고 갔는데, 건물 페인트 색깔이 마음이 안 든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는 봉사 활동이 필요없다고 하였다. 솔직히 그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것은 기분이 나빴지만 워크 캠프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미리 장소를 정하고 취지를 확립할 때 충분이 그 곳에 있는 주민들과 말이 오갔어야 했으며 2주 동안 활동하기에 적합한지 사전 조사가 이루어 졌어야 한 것이 당연한 것인데 전혀 그런 준비가 없었던 것 같았다. 리더도 우리에게 바깥 봉사 활동을 시킬 것이 없던 것인지 우리가 지내는 건물 꾸미를 프로젝트를 준비하였다. 내부, 외부 페인트 칠이며 의자 만들기, 액세서리 만들기 등 우리를 위한 봉사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체육의 날, 언어의 날 같은 행사를 준비하여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홍보를 하였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동네에 주민이 몇 안 살고 다들 나이 드신 분들이라 행사에 한 명도 오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였다. 정말이지 2주 동안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각 나라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음식 담당일 때는 각 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음식을 하여 소개하는 등 본래 봉사 활동 취지가 거리가 먼 활동을 하였다. 특히 나와 친구가 한국 요리를 해 줄때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좋아해서 레시피도 적어간 친구들도 많았다. 워크 캠프 활동이 끝나기 하루 전에 우리는 하루 일찍 출발하여 수도로 돌아가는 길을 1박2일로 투어를 하였다. 그 때 우리 드라이브가 현지 아이슬란드에 사는 학생이어서 여기저기 좋은 곳을 많이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중간 지점에서 다른 워크 캠프 프로그램하는 숙소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 숙소는 정말 아름다운 경관으로 둘러싸인 좋은 곳이어서 많이 샘이 났다.
1박 2일의 투어는 2주 동안 내가 보낸 시간 중 가장 흥미있고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각자 비행 스케쥴이 달라 바로 헤어졌고 나는 이틀간의 여유가 있어 다른 친구들과 따로 또 투어를 신청하여 geysir도 보고 유럽에서 가장 큰 폭포도 보고 유럽에서 가장 큰 빙산도 보았다. 그렇게 아이슬란드에서의 멋진 투어는 끝내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아이슬란드의 워크 캠프 프로그램은 정말 부실했으며 우리가 낸 돈을 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 괜히 많이 받아놓고 남은 돈을 자기들이 챙기는 것이 아닌지 많이 의심이 된다. 카드가 안 되는 것은 말도 안되고, 또 우리가 낸 참가비와 교통비를 현금으로 받고 그 현금을 가지고 마트에 가서 우리가 먹을 식량을 샀는데, 만약 그 식량을 사고 돈이 남으면 그 돈은 어떻게 쓰는지, 만약 돈이 부족하며 그 돈은 또 어디서 메꾸는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비록 프로그램에 대해 많이 실망하였지만, 그래도 여러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던 국가들에 대한 문화와 정치의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체감할 수 있던 부분은 좋았다. 또한 이 기회를 통해서 전 세계에 많은 친구들은 사귀고 아직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특히 공용어가 영어였는데, 우리나라 빼고 다른 나라 언어들은 영어와 같은 문장 구조를 지니고 어원도 영어와 같아 다들 영어를 무척 잘하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안 나올때마다 영어를 정말 열심히 더 잘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가 확실히 부여되어서 유익하고 좋은 시간들을 보낸 것 같다. 앞으로 워크 캠프 프로그램이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고 모두가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고 인정할 수 있게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