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 낯선 곳에서 찾은 변화의 시작
Mount Abu – Rajastha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다른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 말입니다. 봉사활동이 이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번 부딪혀 보면 나의 일부분이 바뀔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저는 인도로 갔습니다.
캠프지 까지 가는 여행 일정은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가이드북을 아무리 읽어도 처음 오는 곳이 낯선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게다가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처음인 것이 저에게 가장 힘든 점이었습니다. 인도 가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그저 궁금해서 쳐다보는 사람들에 대해 한동안 오해하기도 했었습니다. 캠프지 까지 가기 전 어딘 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이 없이 혼자 여행하려니 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캠프지에 도착했을 때 저에게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사람이냐고 물어오는 인도 캠프리더를 처음 볼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프랑스인 1명, 미국인 1명, 그리고 한국인 4명과 실제 캠프리더격인 인도사람 1명으로 구성됐습니다. 모두 모여서 2주 동안 묵을 호스텔로 이동한 뒤 식사를 기다리면서 서로 궁금한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간단히 오리엔테이션을 끝낸 뒤 모두 여행하느라 지친 탓에 첫 날은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인도에서는 그렇게 많던 아침잠이 줄어들어 항상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8시에 아침을 먹고 간단히 하루 일정을 듣고, 어제 있었던 활동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맹인학교로 출발하는 것이 우리의 2주간 아침 스케줄이었습니다. 맹인 학교로 가서 처음 만난 학생들은 제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저는 학생들이라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10대 아이들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손을 잡고 걸었던 학생은 25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같이 걸었던 사람은 30살이었습니다.
첫 날은 캠프 사람들이 눈을 가리고 맹인학생들이 이끌어 주는 대로 도착지 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눈이 안 보이는 학생들이 우리를 이끌어 준다는 건지 무척 걱정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도가 존재하지 않는 차도를 걸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께서 항상 다니는 길이니 앞이 보이는 자신들보다 더 길을 잘 알고 있다며 안심시켜 줬지만 사실 정말 걱정 됐습니다. 한 명씩 맹인학생들의 손을 잡고 도로를 걸어가는 데 저 멀리서 차오는 소리만 들리면 깜짝 깜짝 놀라기 일쑤였고 그럴수록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옆에 있는 맹인학생 한 명이었습니다.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친해지는 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을 잡고 제가 의지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말을 하게 됐고 신기하게도 금방 친구가 됐습니다. 그리고 무척 영어를 잘해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저에 대한 그리고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하니 저도 어느 날 부터는 그들과 만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학교에 가지 않았던 주말 오전에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주차 오후에 했던 페인팅 작업은 단순한 노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해 보는 작업이라 손에 익지 않아서 옷과 손에 페인트가 묻어 일주일 동안 깨끗이 지워지지 않은 채 지냈던 것도 기억합니다. 페인트 작업은 하는 동안에는 제가 한 전체를 볼 수 없어서 힘들지만 끝난 뒤에 내가 한 것을 보고 나면 흘린 땀이 값지다는 느끼게 해주는 작업이었습니다. 1주차에 했던 페인팅 작업은 그야말로 맹인학교에 벽면을 한 가지 색으로 칠하는 단순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마 그 페인팅 작업은 나중에 우리가 진짜 페인팅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밑거름 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은 호스텔 주변에 있는 Nakki 호수 주변에서 맹인학생들과 쓰레기를 주웠는데 이것이 Mount Abu 지역신문에 났습니다. 모두 신문을 메일로 받아 보고는 신기해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눴던 게 생각납니다. 모두들 각자의 나라에서 이만한 일로 신문에 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주차에 접어들어 우리는 맹인학교 학생들과 소피아 여학교에 가서 공연을 할 연극과 노래 연습을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박물관 벽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물론 방치돼 있던 박물관 벽면 상태와 의자 같은 것을 놓고 올라가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는 벽의 높이 등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흔쾌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벽에다 그리고 페인트칠을 하는 것은 의외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벽에 페인팅 작업을 한 지 두 시간 쯤 지났을 무렵 우리가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뒤에서 한 동안 장사진을 쳤습니다. 마운트 아부에 와서 델리에서 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더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친해진 지역 주민들이 옆에서 거들어 주어 페인팅 작업에 힘이 됐습니다.
내가 벽에 그릴 그림을 선택할 때 그 중에서도 단순한 그림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벽에 스케치하고 색칠해보니 이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약 5~6시간 정도의 페인트 작업을 끝내고 멀리서 내가 그리고 칠한 벽화를 바라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름과 국적을 그림아래에 쓰면서 내 미숙한 그림 실력이지만 이곳에 내가 와서 한 것을 남기고 추억할 수 있는 일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또 뿌듯해 졌습니다.
다음 날 저녁 우리가 벽화를 그렸던 박물관 앞을 지나가는데 신기하게도 다른 한 쪽 벽면에 새로운 그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했던 작업을 보고 다른 학교 학생이 와서 그리고 갔다는 사실을 인도 캠프 리더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그렸던 우리들에게만 추억되고 기억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하고 생각했던 이 작업이 공유 될 수 있는 추억의 소재가 된 것 같아서 그리고 우리가 이 곳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서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과 친해져 각 나라의 음식을 대접하는 저녁이 되자 같이 파티를 하고 그들이 만들어온 케익을 후식으로 먹으며 서로 더 친해졌습니다. 제가 페인트 작업을 하다가 핸드폰을 잊어버렸을 때도 경찰서에 같이 가서 한국에서 필요한 복잡한 서류를 작성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워크캠프는 노동을 하기 위함 보다는 교류의 목적이 더 강한 캠프였습니다. 각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Mount Abu에 오는 학생들과의 교류, 맹인학생들과의 교류, 지역 주민들과의 문화 교류 그리고 우리 캠프 내에서 캠프사람들과의 교류 등 한국에서 제가 2주 동안에 할 수 없을 일을 했습니다. 호스텔에서 지내는 동안 공용어는 영어였지만 프랑스 친구에게 프랑스어도 배우고 한국인이 많았던 특성상 한국어도 가르쳐 주어 여러 나라의 언어를 섞어 쓰며 더욱 친해졌습니다. 이렇게 작게는 캠프 내에서부터 이곳의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까지 이어진 문화교류는 제가 다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처음 인도에 대한 인상이 좋진 않았지만 인도여행을 다 끝내고 나서야 느끼는 것은 인도는 참 오묘한 나라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끝낸 뒤 여행들 좀 더 한 뒤에 홍콩에서 4일간 여행을 하고 한국에 들어 왔습니다. 인도에서 여행을 하는 동안 저는 은연중에 집에 갈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홍콩을 여행할 때는 맛있는 음식과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심의 모습이 좋아서 더 있고 싶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를 여행 한 뒤 제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건 인도였습니다. 저와 다르게 인도여행만 하고 돌아간 사람들 중에도 다시 인도여행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거기에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새기고 가니 아마도 인도가 더 생각나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인도여행을 계획 중입니다. 그리고 제가 짧게나마 봉사를 했던 곳인 Mount Abu를 다시 방문할 것입니다. 그 때 그렸던 벽화를 다시 보고 저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저의 목소리를 기억할지 모르는 맹인학교 친구들도 다시 보러 갈 것입니다. 저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기억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습니다.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다른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 말입니다. 봉사활동이 이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번 부딪혀 보면 나의 일부분이 바뀔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함께 가지고 저는 인도로 갔습니다.
캠프지 까지 가는 여행 일정은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가이드북을 아무리 읽어도 처음 오는 곳이 낯선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게다가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처음인 것이 저에게 가장 힘든 점이었습니다. 인도 가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그저 궁금해서 쳐다보는 사람들에 대해 한동안 오해하기도 했었습니다. 캠프지 까지 가기 전 어딘 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이 없이 혼자 여행하려니 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캠프지에 도착했을 때 저에게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사람이냐고 물어오는 인도 캠프리더를 처음 볼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프랑스인 1명, 미국인 1명, 그리고 한국인 4명과 실제 캠프리더격인 인도사람 1명으로 구성됐습니다. 모두 모여서 2주 동안 묵을 호스텔로 이동한 뒤 식사를 기다리면서 서로 궁금한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간단히 오리엔테이션을 끝낸 뒤 모두 여행하느라 지친 탓에 첫 날은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인도에서는 그렇게 많던 아침잠이 줄어들어 항상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8시에 아침을 먹고 간단히 하루 일정을 듣고, 어제 있었던 활동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맹인학교로 출발하는 것이 우리의 2주간 아침 스케줄이었습니다. 맹인 학교로 가서 처음 만난 학생들은 제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저는 학생들이라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10대 아이들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손을 잡고 걸었던 학생은 25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같이 걸었던 사람은 30살이었습니다.
첫 날은 캠프 사람들이 눈을 가리고 맹인학생들이 이끌어 주는 대로 도착지 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눈이 안 보이는 학생들이 우리를 이끌어 준다는 건지 무척 걱정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도가 존재하지 않는 차도를 걸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께서 항상 다니는 길이니 앞이 보이는 자신들보다 더 길을 잘 알고 있다며 안심시켜 줬지만 사실 정말 걱정 됐습니다. 한 명씩 맹인학생들의 손을 잡고 도로를 걸어가는 데 저 멀리서 차오는 소리만 들리면 깜짝 깜짝 놀라기 일쑤였고 그럴수록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옆에 있는 맹인학생 한 명이었습니다.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친해지는 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을 잡고 제가 의지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말을 하게 됐고 신기하게도 금방 친구가 됐습니다. 그리고 무척 영어를 잘해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저에 대한 그리고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하니 저도 어느 날 부터는 그들과 만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학교에 가지 않았던 주말 오전에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주차 오후에 했던 페인팅 작업은 단순한 노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해 보는 작업이라 손에 익지 않아서 옷과 손에 페인트가 묻어 일주일 동안 깨끗이 지워지지 않은 채 지냈던 것도 기억합니다. 페인트 작업은 하는 동안에는 제가 한 전체를 볼 수 없어서 힘들지만 끝난 뒤에 내가 한 것을 보고 나면 흘린 땀이 값지다는 느끼게 해주는 작업이었습니다. 1주차에 했던 페인팅 작업은 그야말로 맹인학교에 벽면을 한 가지 색으로 칠하는 단순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마 그 페인팅 작업은 나중에 우리가 진짜 페인팅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밑거름 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은 호스텔 주변에 있는 Nakki 호수 주변에서 맹인학생들과 쓰레기를 주웠는데 이것이 Mount Abu 지역신문에 났습니다. 모두 신문을 메일로 받아 보고는 신기해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눴던 게 생각납니다. 모두들 각자의 나라에서 이만한 일로 신문에 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주차에 접어들어 우리는 맹인학교 학생들과 소피아 여학교에 가서 공연을 할 연극과 노래 연습을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박물관 벽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물론 방치돼 있던 박물관 벽면 상태와 의자 같은 것을 놓고 올라가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는 벽의 높이 등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흔쾌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벽에다 그리고 페인트칠을 하는 것은 의외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벽에 페인팅 작업을 한 지 두 시간 쯤 지났을 무렵 우리가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뒤에서 한 동안 장사진을 쳤습니다. 마운트 아부에 와서 델리에서 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더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친해진 지역 주민들이 옆에서 거들어 주어 페인팅 작업에 힘이 됐습니다.
내가 벽에 그릴 그림을 선택할 때 그 중에서도 단순한 그림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벽에 스케치하고 색칠해보니 이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약 5~6시간 정도의 페인트 작업을 끝내고 멀리서 내가 그리고 칠한 벽화를 바라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름과 국적을 그림아래에 쓰면서 내 미숙한 그림 실력이지만 이곳에 내가 와서 한 것을 남기고 추억할 수 있는 일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또 뿌듯해 졌습니다.
다음 날 저녁 우리가 벽화를 그렸던 박물관 앞을 지나가는데 신기하게도 다른 한 쪽 벽면에 새로운 그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했던 작업을 보고 다른 학교 학생이 와서 그리고 갔다는 사실을 인도 캠프 리더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그렸던 우리들에게만 추억되고 기억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하고 생각했던 이 작업이 공유 될 수 있는 추억의 소재가 된 것 같아서 그리고 우리가 이 곳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서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과 친해져 각 나라의 음식을 대접하는 저녁이 되자 같이 파티를 하고 그들이 만들어온 케익을 후식으로 먹으며 서로 더 친해졌습니다. 제가 페인트 작업을 하다가 핸드폰을 잊어버렸을 때도 경찰서에 같이 가서 한국에서 필요한 복잡한 서류를 작성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워크캠프는 노동을 하기 위함 보다는 교류의 목적이 더 강한 캠프였습니다. 각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Mount Abu에 오는 학생들과의 교류, 맹인학생들과의 교류, 지역 주민들과의 문화 교류 그리고 우리 캠프 내에서 캠프사람들과의 교류 등 한국에서 제가 2주 동안에 할 수 없을 일을 했습니다. 호스텔에서 지내는 동안 공용어는 영어였지만 프랑스 친구에게 프랑스어도 배우고 한국인이 많았던 특성상 한국어도 가르쳐 주어 여러 나라의 언어를 섞어 쓰며 더욱 친해졌습니다. 이렇게 작게는 캠프 내에서부터 이곳의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까지 이어진 문화교류는 제가 다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처음 인도에 대한 인상이 좋진 않았지만 인도여행을 다 끝내고 나서야 느끼는 것은 인도는 참 오묘한 나라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끝낸 뒤 여행들 좀 더 한 뒤에 홍콩에서 4일간 여행을 하고 한국에 들어 왔습니다. 인도에서 여행을 하는 동안 저는 은연중에 집에 갈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홍콩을 여행할 때는 맛있는 음식과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심의 모습이 좋아서 더 있고 싶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를 여행 한 뒤 제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건 인도였습니다. 저와 다르게 인도여행만 하고 돌아간 사람들 중에도 다시 인도여행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거기에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새기고 가니 아마도 인도가 더 생각나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인도여행을 계획 중입니다. 그리고 제가 짧게나마 봉사를 했던 곳인 Mount Abu를 다시 방문할 것입니다. 그 때 그렸던 벽화를 다시 보고 저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저의 목소리를 기억할지 모르는 맹인학교 친구들도 다시 보러 갈 것입니다. 저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기억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습니다.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다른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 말입니다. 봉사활동이 이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번 부딪혀 보면 나의 일부분이 바뀔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함께 가지고 저는 인도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