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독일 시골 마을, 서툰 영어로 시작된 우정
LET’S PLAY ADVENTUR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국제선 비행기를 처음 타본 나는, 부푼 마음을 가지고 내 워크캠프국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였다. 워크캠프 후 40일정도 유럽여행을 계획하였고, 캠프 전, 4일 동안 독일을 여행 한 나는 개최일인 8월 24일 워크캠프 장소인 Kretszchau로 이동하였다. Kretszchau는 시골이라서 라이프치히역에서 Zeitz라는 마을로 가는 작은 기차로 갈아타고, 버스로 또 다시 갈아타야 했다. 짐이 꽤 컸던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Zeitz로 가는 기차부터 버스까지 같이 타고 온 백인남자아이 두 명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도 똑같이 Kretszchau에서 내렸다. 같은 캠프 구성원임을 직감한 나와 그 아이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Hi? Where are you from?”우리의 첫 인사였다. 하지만 영어가 매우 서툰 나는 인사 정도가 고작이었다. 아직 서로 어색하기도하고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것을 알아차린 그 아이들은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일단 캠프 숙소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15분 정도 걸어야 찾을 수 있는 숙소에 도착하자 캠프리더인 제이콥과 미라가 우리를 반겼고, 먼저 도착한, 우크라이나에서 온 알로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워크캠프의 정식 시작시간은 저녁 6시였기 때문에, 오후 3시경 도착한 우리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른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캠프에 도착하자 걱정이 앞섰다. ‘나는 영어를 무척 못하는데, 어떻게 친해지지?’ 내가 한국에서 국제워크캠프기구에 문의해봤을 때, 한국 사람은 나 뿐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모든 언어적인 문제들은 혼자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 두 명씩 친구들이 올 때마다 서로서로 친해지려 이것저것 물어보기 바쁜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것을 부러운 듯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외감이 느껴지려 던 차에 나는 일단 안 되는 영어지만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보기로 결심하였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온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부딪히고 보자’라는 생각에서였다. 가져온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고 답하였다. 못 알아 듣는 문장은 적어달라고 하기도하고, 영어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으면 잠시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한 후 영어사전을 찾아 대답을 하고,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다가갔다. 다행히 그 날 저녁 정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 친구 한 명이 도착하였다. 그녀는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학교를 통해 지원을 하였기 때문에 국제워크캠프 기구에서는 한국인이 더 있는 줄 몰랐던 것이었나 보다. 정연이는 내가 외국인 친구들과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다. 내가 못 알아 듣는 부분이 있으면 통역을 해줄 때도 있고, 내가 잘못 말한 부분이 있으면 고쳐주며 그녀와도 외국인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어갔다.
그 다음날부터 시작 된 우리의 봉사활동은 아주 쉬운 것이었다. 아마도 여자들에게 만은… 우리는 호스텔 앞에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 이미 막바지단계이기 때문에,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남자아이들은 땅을 파고, 미끄럼틀이나 시소들을 설치하는 일을 하였고, 여자아이들은 벤치를 조립하고 그 벤치를 페인트로 색칠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물론 먼저 끝나는 팀이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루에 약 5시간 가량을 일을 했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서로 친목도모를 위한 게임도하고, 영화도보고, 여행도 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오늘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었다. 우리 워크캠프의 경우 식사는 숙소에서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제공이 되었기 때문에 따로 취사를 하는 일은 없었고, 숙소도 호스텔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침대에서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는 것이 무척 불편했지만, 그 덕분에 자유시간이 찾아오면, 밖에 나가서 태닝하기, 수영, 발리볼, 탁구, 당구, 볼링 등 여러 가지 레저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레저를 많이 즐기지 않는데, 유럽친구들은 대부분 운동을 할 줄 알아 운동을 못하는 나에게 많이 알려주었다.
이제 친구들과도 꽤 친해지고, 시골인 Kretszchau에서의 생활이 적응되어 갈 무렵, 2주는 너무 빨리 흘러 이별이 성큼 다가왔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많은 것을 느낀 우리들 전부 이별을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여자아이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 울지 않는 아이들이 없었을 정도로 너무나도 애틋했다.
다른 언어도, 다른 피부색도, 다른 문화도… 이제야 서로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나 각별한 친구들이 되었는데,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였다. 아쉬움이 클수록 추억이 많이 남는 법. 많이 아쉬웠지만 우리는 이제 각자의 길을 향하여, 누군가는 일상으로, 누군가는 남은 여행을 향해 전진하였다.
나는 그 후 40일 정도 유럽을 혼자 여행하였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워크캠프에서 만난 친구들 3명을 다시 만났으며, 아직까지도 유난히 친했던 일본인친구와는 SMS를 활발하게 주고받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친구들과도 소셜네트워크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사진도 주고받고, 그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이번 경험으로 영어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였고, 소중한 추억과 사랑하는 친구들을 얻었으며, 내 생에서 절대로 잊지 못 할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
막상 캠프에 도착하자 걱정이 앞섰다. ‘나는 영어를 무척 못하는데, 어떻게 친해지지?’ 내가 한국에서 국제워크캠프기구에 문의해봤을 때, 한국 사람은 나 뿐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모든 언어적인 문제들은 혼자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 두 명씩 친구들이 올 때마다 서로서로 친해지려 이것저것 물어보기 바쁜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것을 부러운 듯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외감이 느껴지려 던 차에 나는 일단 안 되는 영어지만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보기로 결심하였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온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부딪히고 보자’라는 생각에서였다. 가져온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고 답하였다. 못 알아 듣는 문장은 적어달라고 하기도하고, 영어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으면 잠시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한 후 영어사전을 찾아 대답을 하고,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다가갔다. 다행히 그 날 저녁 정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 친구 한 명이 도착하였다. 그녀는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학교를 통해 지원을 하였기 때문에 국제워크캠프 기구에서는 한국인이 더 있는 줄 몰랐던 것이었나 보다. 정연이는 내가 외국인 친구들과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다. 내가 못 알아 듣는 부분이 있으면 통역을 해줄 때도 있고, 내가 잘못 말한 부분이 있으면 고쳐주며 그녀와도 외국인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어갔다.
그 다음날부터 시작 된 우리의 봉사활동은 아주 쉬운 것이었다. 아마도 여자들에게 만은… 우리는 호스텔 앞에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 이미 막바지단계이기 때문에,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남자아이들은 땅을 파고, 미끄럼틀이나 시소들을 설치하는 일을 하였고, 여자아이들은 벤치를 조립하고 그 벤치를 페인트로 색칠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물론 먼저 끝나는 팀이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루에 약 5시간 가량을 일을 했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서로 친목도모를 위한 게임도하고, 영화도보고, 여행도 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오늘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었다. 우리 워크캠프의 경우 식사는 숙소에서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제공이 되었기 때문에 따로 취사를 하는 일은 없었고, 숙소도 호스텔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침대에서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는 것이 무척 불편했지만, 그 덕분에 자유시간이 찾아오면, 밖에 나가서 태닝하기, 수영, 발리볼, 탁구, 당구, 볼링 등 여러 가지 레저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레저를 많이 즐기지 않는데, 유럽친구들은 대부분 운동을 할 줄 알아 운동을 못하는 나에게 많이 알려주었다.
이제 친구들과도 꽤 친해지고, 시골인 Kretszchau에서의 생활이 적응되어 갈 무렵, 2주는 너무 빨리 흘러 이별이 성큼 다가왔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많은 것을 느낀 우리들 전부 이별을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여자아이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 울지 않는 아이들이 없었을 정도로 너무나도 애틋했다.
다른 언어도, 다른 피부색도, 다른 문화도… 이제야 서로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나 각별한 친구들이 되었는데,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였다. 아쉬움이 클수록 추억이 많이 남는 법. 많이 아쉬웠지만 우리는 이제 각자의 길을 향하여, 누군가는 일상으로, 누군가는 남은 여행을 향해 전진하였다.
나는 그 후 40일 정도 유럽을 혼자 여행하였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워크캠프에서 만난 친구들 3명을 다시 만났으며, 아직까지도 유난히 친했던 일본인친구와는 SMS를 활발하게 주고받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친구들과도 소셜네트워크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사진도 주고받고, 그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이번 경험으로 영어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였고, 소중한 추억과 사랑하는 친구들을 얻었으며, 내 생에서 절대로 잊지 못 할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