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문화 충격과 스킨십의 2주

작성자 박민주
프랑스 JR12/206 · FEST 2012. 07 - 2012. 08 Crest

CRES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프랑스 CREST에서 있었던 2주 반은 그야말로 추억덩어리이다. 그 추억들과 내가 받았던 문화충격들을 하나하나 풀어보고자 한다.
이번 워크캠프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외국에 관광을 목적으로만 가보았지, 이렇게 오랜시간 같이 지낼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국적이 다르고 문화권이 달라서 내가 문화충격을 받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내가 참가한 캠프에는 스페인 남정네들이 5명 있었다. 동양인들은 만나자마자 껴안거나 스킨십이 조심스러운 반면에 이 스페인 친구들은 처음부터 스킨십에 조심스럽기는커녕, 나를 깜짝 놀래킬 만큼이었다. 나의 머리를 쓰담던 손이 허리에 가있지를 않나, 팔을 만지던 손이 어깨에 걸쳐져 있지를 않나. 마트에 갔더니 갑자기 껴안고 그러지를 않나. 그리고 우리 캠프리더는 여자애들에게 서비스로 윙크로 마구마구 날려주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례한 행동들이 난무한다는 인상이 내가 워크캠프에서 받은 첫 인상이다. 그 중 캠프리더는 스페인 남자 다섯 중에 가장 스킨십이 많은 친구였는데 하루는 술 먹고 내 옆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나한테 자기 손 잡아달라고 그러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해서 내가 한국에서는 너 같은 애들을 변태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엄청 반가운 표정으로 자신이 저번에 참가했던 워크캠프에 한국인 여자애들 두 명이 자신을 변태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해맑은 눈으로 그 단어의 뜻이 뭐냐고 묻는 것이었다. 역시나 한국인이라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변태에 대해 설명해주자,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캠퍼들에게 웃으면서 자신은 변태라고 소개하는 게 아닌가. 정말 유쾌한 친구다.
이 친구가 하루는 나에게 한국의 욕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를 말해보았지만 그는 갸우뚱 하면서 자기가 들은 욕은 그게 아니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알고자 했던 욕은 ‘씨발’이었다. 하여튼 이 단어를 숙지하고 우리는 어느 파티에 초대가 되었다. 댄스파티가 시작되기 전에는 좀 지루했었는데 이 친구가 나를 불렀다. 내가 왜냐고 했더니 갑자기 씩 웃으면서 ‘SIBA PARTY’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또 배꼽을 잡고 깔깔 웃었다. 남들이 못 알아듣도록 나에게 한국어를 응용해서 말하는 것이다. 참 귀여운 친구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대만, 스페인, 프랑스 친구들이 있었던 우리 캠프에는 위와 같이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교류하고 배우는 것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었다. 서로의 노래 중 한 소절씩 외워서 부르고, 친구들과 친해지기 쉬운 음주문화 중 술 마시기 전에 부르는 인트로도 배웠다. 서양 친구들이 우리나라의 언어에서 신기해 했던 것은 언니, 누나와 같이 나이에 따라 호칭도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친구들은 동갑인 나에게는 나의 이름을 호명하거나 ‘야, 민주야!’이렇게 부르고, 한 살 나이가 많았던 동행한 한국인 언니에게는 누나, 언니와 같은 호칭을 썼다. 외국인이 그런 호칭으로 불러주니 더 가족같고 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의 응원문화도 알려주고,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던 곳에서는 유튜브를 통해 우리나라의 응원문화나 콘서트문화에 대해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를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친구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어디에서나 친구를 사귈 때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을 듬뿍 보여줘야 서로 호감이 생기고 친해질 수 있듯이,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질 때에는 서로의 문화나 언어, 역사에 대한 궁금증과 배우려는 태도 하나로 금방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 사는 세상 다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경험이었다.
‘Festival‘이 내가 참가한 워크캠프의 주제였는데,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나는 술을 마실 경험이 많았다. 우리가 봉사했던 축제 ’Crest Jazz Vocal 2012‘의 마지막 날, 우리는 밤새 파티를 즐겼다. 나는 지금 이 파티에서 있었던 재미난 추억을 말하려고 한다. 캠프에서 친하던 스페인 친구가 좀 취한 채로 나에게 자기 공짜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나에게 쿠폰을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건가 해서 쿠폰을 주겠다고 했더니, 자신과 함께 부엌에 가서 와인 한 병을 가져오자는 것이었다. 악의가 없이 단지 스릴을 즐겨보자는 의미였다. 워낙 유쾌한 친구이고 착한 친구였기에 나는 동행하였다. 사실 나도 한국에서는 용기낼 수도 없는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하겠나 싶어서 따라나선 것이다. 좀 취해있던 우리는 부엌을 살폈고 Jon은 부엌에 아무도 없다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부엌에 들어가서 코너를 도는 순간, 우리는 둘 다 허걱했다. 그 안에는 부엌을 관리하시는 다른 봉사활동 분이 계셨고 우리에게 왜 부엌에 들어왔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척 당황해서 술이 다 깰 정도였는데, 임기응변에 강했던 Jon은 복숭아 하나를 가리키면서 파티에는 술 밖에 없어서 과일 좀 먹고 싶다고 그 분에게 말했다. Jon은 우리가 워크캠프에서 봉사하는 사람이란 걸 강조했고 다행히도 그 분은 허허 웃으시며 복숭아를 건내주셨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와인 프로젝트는 실패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문 밖을 얼른 나왔던 나는 뒤따라 나오는 Jon을 보았다. Jon은 나를 보고 씩 웃었고 그의 오른손에는 와인 한 병이 들려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고뭉치를 보는 거 같은 생각에 나는 또 한 번 배꼽을 잡고 웃었고 우리는 그 와인을 가지고 밖에 주상을 까고 복숭아를 먹으면서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길다고 생각했던 2주 반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렸고 어느새 헤어지기 전 날이 되어버렸다. 워크캠프에 같이 갔던 언니와 나는 우리가 준비한 선물, 정성들여 쓴 카드, 그리고 얼굴을 그려서 주었다. 한국에서는 정든 사람들과 헤어질 때 이런 선물을 주면서 고마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는데 이 친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아서 더욱 더 감동을 받았던 거 같다. 친구들이 우리의 정성에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선 나는 이게 한국인이 외국인을 감동시킬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헤어지던 날, 우리는 서로 부둥켜 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가족같이 지냈던 친구들과 기약 없이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가는 친구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더 슬프게 했었다. 하여튼 한국인만이 정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워크캠프를 다녀오고 나서 외국인들은 ‘정’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그렇지 다들 정 있다는 따뜻한 친구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와 같이 소중한 추억과 배움을 가지고 돌아온 워크캠프였다. 나의 2학년 여름방학을 더 값지게 만들어 준 워크캠프,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