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와미 광산, 편견을 넘어선 경험

작성자 권인진
일본 NICE-12-83 · ENVI/HERI 2012. 09 일본 이와미

Iwami-ginzan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첫 워크캠프. 사실 처음엔 워크캠프의 의미도 의의도 뚜렷이 알지 못한 채 해외에서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막연히 지원했다. 하지만,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의 나는 그 전의 나와 사뭇 다른 것을 느낀다.
나는 일본의 세계유산 이와미 광산으로 갔다 왔는데, 이와미 광산은 시마네 현에 위치해있다. 현재 시마네 현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바로 그 지역이다. 워크캠프를 지원시 이와미 광산을 검색했을 때는 분명 돗토리 현에 위치해있다고 봤던 것 같은데, 막상 인포싯이 나오고 조사를 해보니 시마네 현이라는 것에 처음엔 괜시리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상, 워크캠프 시작 이틀 전에 같은 국가 멤버인 혜진 언니와 시마네 현 안에 있는 이즈모 시를 여행했을 때에도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독도(그곳 사람들은 다케시마라고 불렀지만)문제를 꼭 언급해서 언니와 나의 심기를 언짢게 만들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들과 우리의 시점에 조금 차이가 있다고 느꼈는데, 한국인은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뺏었던 땅이므로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것이 당연한 반면, 일본인은(적어도 시마네 현 주민들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그 주변 바다의 자원이나 어업의 이득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행 중에는 스쳐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런 얘기를 꺼냈을 때는 한 귀로 흘려 듣고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워크캠프가 시작하고, 번번히 TV뉴스에 나오는 영토문제(중국과의 문제를 다루는 뉴스였는데 중국인이 없어서 그런지 결국엔 독도 얘기가 나온다)나 제 3국 워크캠프 참가자의 질문으로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똑바로 대답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한 대화로 이어져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하는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아무튼 워크캠프의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워크캠프 멤버는 일본인 5명, 한국인 2명, 프랑스인 1명, 에스토니아인 1명, 미국인 1명 이렇게 총 10명이었다. 총 2주간의 워크캠프는 두 개의 테마로 나뉘어졌는데, 첫째 주는 대나무를 잘라서 자연(경관)을 지키는 일을 하고, 둘째 주는 그 주말에 있을 오다시의 축제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미팅 장소는 워크캠프 장소 근처의 역이었는데, 워낙 시골이라 전철임에도 불구하고 한 칸밖에 없는, 표도 직접 기사에게 내고 내리는 원맨카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만남과 첫 소개는 너무나도 어색하고 낯설었다. 환영 파티를 하고 다음 날,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는데 대나무를 자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자르고, 나르고, 칩으로 공정하고.. 의 작업을 일주일 동안 하고, 틈틈이 이와미 광산 관광이나 박물관을 견학하며 배경 지식을 쌓았다. 식사 준비는 세 명씩 한 팀이 되어 점심과 저녁을 만들어서 먹었는데, 매번 메뉴를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워크캠프 멤버는 리더와 미국인을 빼면 전부 여자라, 점점 식사의 질도 높아져만 갔기 때문이다. 내 팀은 일주일 동안만 참가하는 일본인 한 명과 리더와 미국인이었는데, 일본인 친구가 일주일만 하고 갔기 때문에 남자 두 명과 나의 택도없는 요리실력으로는 다른 팀의 실력을 따라잡기에는 무리였으나,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저녁식사가 있다면 바로 코리안 나이트였다. 이 제안은 우리 한국인 쪽에서 먼저 했던 것이 아니라 워크캠프 리더가 먼저 해왔다. 워크캠프 리더는 베트남과 멕시코에서 이미 워크캠프를 여러 번 한 경험이 있고, 그곳에서 많은 한국인 친구를 사귀어서, 우리에게 워크캠프 기간에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파티를 여는 것이 어떠냐고 한 것이다. 우리는 갖고 온 불고기 양념소스와 소주, 큰 마트에서 조공해 온 떡볶이와 김치찌개로 한국 음식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름이 코리안 나이트이니만큼 시작된 한국의 문화(?) 술 게임. 가급적 설명하기 쉬운 게임들을 했는데, 조금 어려울 때는 게임을 변형시켜서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수박을 후루룹 먹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수박 게임’은 서양 멤버들이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먹으면서 소리를 내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에 한 번도 소리를 내본 적이 없어서 그런 소리를 낼 수 없다고 하여, 프랑스 인사말로 대체해서 게임을 했다. 코리안 나이트. 참 뜻 깊었던 밤이었다.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른 대나무의 쓰임새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휘거나 이미 말라버린 대나무는 칩처럼 잘게 가는 공정을 하여 연료로 쓰고, 곧고 두꺼운 대나무는 4미터씩 잘라서 다른 용도로 쓰이게끔 했다. 두꺼운 대나무를 자르는 데에는 역시 워크캠프 멤버만의 힘으로는 무리였기 때문에, 히로시마에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건축업에 종사하시는) 건장한 남성 세 분이 오신 적도 있었고, 또 그 주변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벼운 대나무를 나르는 데에 도움을 줬다. 우리가 교류를 한 초등학교는 총 두 곳으로, 오오모리 초등학교와 이소타케 초등학교였는데, 오오모리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이와미 광산 주변의 마을을 안내받고, 이소타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각 나라를 소개하고 요리를 선보였다. 이와미 광산 주변의 마을은 평범한 마을 같아 보였지만, 아이들의 시각에서 마을을 소개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어른의 눈에는 그냥 지나쳤을 지 모를 것들이었는데, 열심히 준비해와서 소개시켜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워크캠프 기간 중에 가장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같다. 이소타케 초등학교에서 한국팀이 가져온 비장의 무기는 ‘공기’ 였다. 초등학교 쉬는 시간 때 가장 많이 했던 공기 놀이를 소개해주고, 직접 아이들에게 체험시켜봤는데, 교류 시간이 끝나고 소감 시간에 공기에 대해 말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무척 기뻤다. 또한 요리는 맵지 않은 케찹 떡볶이를 했는데, 맵지만 맛있다고 국물까지 마신 아이들을 보고 뿌듯했다.
주말에 NPO 직원 분의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둘째주는 축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대나무를 자를 때나 축제 준비를 할 때 지역 신문에서 많이 취재를 하러 왔었는데, 내가 인터뷰를 하고, 신문에 실렸다! 비록 내 의견은 한두문장 뿐이었지만, 일본의 신문에 내 이름이 당당히 실렸다는 것이 무척이나 보람있고 뿌듯한 일이었다. 우리가 속한 NPO기구가 축제에서 담당한 것은 국제페스티발이었는데, 각 나라의 전통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었다. 한국팀이 준비할 축제 음식은 부침개. 철판에 지지미를 바로 부쳐서 한 장에 200엔씩 팔았는데, 양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성공이었다. 처음 연습으로 지지미를 만들었을 때는, 반죽이 눅눅하고 맛이 없었는데,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요리 실력에 언니도 나도 그리고 간을 봐주는 다른 워크캠프들도 기뻐했다. 축제가 끝나고 저녁에는 마지막으로 farewell party를 하고, 먼저 돌아가는 미국애를 배웅해 주었는데, 모두가 아쉬워하고, 미국애는 돌아가는 길에 눈물을 글썽일 만큼 슬퍼했다.
2주 동안의 워크캠프는 지금 돌이켜보면 참 짧은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에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이 내내 같이 생활해서 정이 들은 것이, 참 인연이란 소홀히 해서도 안되고 함부로 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느꼈다. 나는 이것이 이별이 아니라, 언젠가 모두들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보고서에 모든 기억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다시 회상해보며 써보니 나의 첫 워크캠프가 참 값진 추억이고 경험이자 배움이었던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