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나를 울린 첫 유럽, 첫 봉사의 두근거림

작성자 정승수
독일 VJF 2.6 · AGRI/ENVI 2012. 08 - 2012. 09 Spreewald

Burg/Spreewal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첫 유럽여행, 첫 해외봉사…아직도 그 두근거림이 내 가슴을 울리고 있다. 캠프 직전에 6개국을 돌아다녔으며, 캠프가 시작하기 2일전, 나는 독일로 향했다. 베를린에서 이틀을 묵은 후, 캠프 장소인 Spreewald 까지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Lubben역에서 내린 뒤, 버스로 갈아타서 이동하라고 인포싯에 기재되어 있었다. 베를린에서 기차로 한 시간여를 달려서야 Lubben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에 도착한 뒤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내가 탈 버스 시간표를 보았다. 한 시간에 두 대뿐이 다니지 않는 노선이었다. 어렵사리 숙소에 도착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곳엔 리더 두 명과 프랑스 친구 한 명, 스페인 친구 한 명, 일본 친구 한 명이 먼저 도착하여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환대를 해주었다. 물론 나도 그들을 만나고 나니, ‘정확하게 도착하였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 후에 늦게 도착한 터키 친구 둘, 세르비아 친구 한 명까지 우리 캠프원 10명은 모두 숙소에서 조우하게 되었다.
우리의 숙소는 ‘Haus Am See’라는 캠핑장에 위치하였다. 건물 형태는 방갈로로써, 10개의 침대가 놓여있는 깔끔하고, 불편함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다만 조금 불편한 것이 있었다고 하면, 조금은 10명이 생활하기엔 비좁은 공간이라는 점이다. 화장실과 주방은 방갈로에서 걸어서 20m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고, 대체로 시설이 괜찮았다. 방갈로와 주방 앞에 테이블이 있어, 캠프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식사를 할 수 있었기에 좋았다. 캠핑장 바로 옆에는 호숫가가 있어서 수영을 할 수 있었으며,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공터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 캠프원은 2주간의 캠프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은 서로 생소하고 어색했기에 언행에 하나하나 조심하였다. 나와 한국인 친구는 영어가 서툴렀지만, 손짓, 발짓 다 하면서 의사표현을 하곤 했다. 물론 우리와 같이 영어를 능통하게 하지 못했던 친구들도 나와 같이 바디랭귀지를 사용하며, 의사소통을 하였다. 캠프 시작이 금요일이였기에 주말 동안은 휴식을 취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갔으며, 식사 당번, 설거지 당번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드는 등 기본 생활 틀을 만들었다.
드디어 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이 되었다. 우리가 작업하는 곳은 Spreewald 지역에서 유명한 명소인 큰 농장이였다. 그 농장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명한 곳이라고 리더는 설명하였다. 그 곳은 우리 숙소에서 자전거를 타고, 30분 거리에 위치하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경로가 매우 아름다웠다. 한국에선 자전거를 탈 일이 별로 없었는데, 독일 시골마을의 경치를 보며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재미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며 맑은 공기를 마셨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정원에 도착해서는 남자는 주로 삽으로 흙더미에서 흙을 퍼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일, 자갈을 길에다 까는 일, 잡초를 뽑는 일 등을 하였다.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들어가는 씨앗 따기, 열매 따기 등을 수행하였다. 일이 가끔은 힘들었지만, 서로가 같이 땀흘리며 웃을 수 있었기에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다른 캠프원 들이 나 하나를 통하여 한국인들의 습성, 행동들을 생각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정말 열심히 작업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생각 이지만, 나는 나 자신을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라 생각하고, 궃은 일도 마다 하지 않고 해 나가려 했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은 보통 9시에 시작하여 오전 작업을 정오에 마무리 짓고, 숙소에서 싸온 샌드위치로 점심 끼니를 때우고, 오후 작업을 시작하여 3시에서 4시 사이에 하루의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작업이 끝난 후에는 마트를 가고,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하여 도서관을 가는 등,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해 주었다. 나와 한국인 친구는 주로 마트에 가거나, 시내에 나가서 음식을 사먹곤 하였다. 시내는 숙소와 자전거로 40~50분 거리에 위치하였다.
아침 식사는 빵과 우유 등 서양식 아침 식사를 먹었고, 점심 식사는 샌드위치를 먹었다. 저녁엔 그 날 요리당번이 자기 나라에서 유명한 음식을 만들어 다른 캠프원들에게 대접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접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특히 나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미리 준비해간 불고기양념소스를 통하여 그들에게 불고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매우 만족하였고, 양념 국물까지 남김없이 쌀밥과 함께 비벼먹는 모습을 보고, 뿌듯하기도 하였다. 그들에게 음식문화를 통하여 한국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주었고, 그들은 한국 문화에 대해 굉장히 호기심을 갖고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주간의 시간이 지나가고 우리는 캠프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헤어지기로 한 마지막 전날엔, 우리가 일했던 농장에선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었고, 우리가 일했던 모습들을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추억을 되새겼다. 그러곤 숙소에 돌아와 마지막 캠프파이어를 하며 서로가 헤어지는 것에 아쉬움을 갖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캠프 기간 동안 힘들었던 것도 많았다. 일단, 내가 했던 VJF2.6 프로그램 자체에 돈이 별로 없었는지, 음식을 충분히 사지 못하였다. 때문에 캠프원들은 늘 배고픈 상태로 지내야 했고, 그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각자의 사비를 많이 쓴 기억이 난다. 또한 캠프 리더의 리더십 또한 아쉬웠다. 독일 리더 두 명은 납득하지 못할 만한 지시사항을 캠프원들에게 내렸고, 캠프원들은 이해를 못한다는 표현들을 많이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의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되며, 그 자체가 하나의 재미였지 않나 싶다. 또한 우리의 이동수단은 자전거였기에, 이틀에 한 번 꼴로 마트에서 구입한 제품들을 각자의 가방에 가득 담아서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40~50분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가져다 날랐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엔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아쉬운 점도 있지만, 나는 이 워크캠프를 좋은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캠프원들과 SNS를 통하여 소통하며 지낸다. 그들이 가끔 꿈에 나타날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었다. 이 캠프를 통하여, 한국에서만 지내왔던 나의 마인드를 세계적으로 넓힐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주변에 해외봉사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워크캠프를 추천할 것이다. 내가 앞으로 어찌될진 모르겠지만, 훗날 타국에서 워크캠프를 또 다시 참가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