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에서 펼쳐진, 용기와 성장의 기록
Keral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에게는 첫 여행이자 첫 워크캠프인 만큼 긴장 속에서 기나긴 여정은 시작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내 몸이 공중으로 뜰 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제부터 나의 모험심을 발휘하여 혼자 개척하고 결정하며 생활해야 된다는 점이 출발 전에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이륙과 동시에 매력이 공포로 바뀌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캠프신청을 늦게 하게 되어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당장 인도비자부터가 문제였다. 영어수준이 좋지 않은 나에겐 조금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항공 또한 처음 타는 비행기라 티켓발권까지도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주어진 1주일 안에 모든 것을 정신 없이 준비해나갔다. 그래서인지 인도 현지의 정보에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마 공포와 긴장을 동반한 먹구름을 뚫고 날아가는 비행기를 탄 느낌이었다.
뱅갈로르 공항에 내렸을 때는 밤 12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캠프 미팅 장소 까지는 하루 정도를 잡고 이틀 먼저 인도로 왔다. 나의 모험심은 도착과 동시에 깨어진 항아리의 물처럼 조금씩 새어 나가고 있었다. 이유는 공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아보려는 심보의 사람들이 나를 맞이 했고 또 나는 거기에 동행했던 것이다. 결국 택시비를 1300루피(약 26,000원)를 지불하는 대참사를 맞고,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숙소의 가격이 나를 맞이했다. 이는 아마 택시기사의 개략에 넘어간 나의 잘못이기도 했다. 첫날부터 주머니엔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새어나가는 돈을 주체할수 없을정도로 릭샤비, 각종 상인들, 모든 것들의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최대한 쥐어짜내며 일단 캠프리더만 만나면 이 모든 스트레스의 보호막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으로 다음날에 미팅장소로 갔다. 낯선 곳에서 멍하니 리더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들려왔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한국인은 없었다. 그렇다. 캠프리더가 한국말로 내게 인사를 건내온 것이다. 그는 수 차례 캠프리더를 해왔고 캠프에 참가한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한국말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캠프 참가자들이 한명 한명 모이기 시작했고 아시아인이 많을 거라던 한국워크캠프 기구의 말과 다르게 전부 서양사람들이었다. 아직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 또한 커다란 스트레스도 자리잡았다. 다들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데 나는 인사와 기본적인 대화 말고는 대화가 자유롭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이 정도의 상황은 예상했었지만 막상 내 눈앞에, 내 발등 위에 이 상황이 떨어지니 무거운 무쇠를 짊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고난과 역경 속에서 나의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캠프기간 중 우리는 조그만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놀며 소통하는 것과 그 학교의 놀이터를 도색 하는 일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소통을 하면서 내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치유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각박한 한국사회에서 우리아이들은 지나친 교육열에 아이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구잡이로 받아들여야 하는것이 있다. 과연 조기교육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익히는 것이, 그런 삶이 이곳의 아이들보다 행복한 삶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노동의 정도는 적당했으며 요가수업과 아유로베다 수업은 정말 유익했다. 이 수업으로 인도의 문화와 역사를 더욱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쇼크라는 프로그램으로 인도의 다양한 문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소 체험을 하니 짧은 시간에도 확실히 인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캠프참가자들과도 다양한 소통을 하며 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컸다. 짧지 않는 3주라는 시간 동안 서로 정을 쌓으며 봉사활동과 문화를 이해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참가자들에게 팁을 준다면 우리나라를 철저히 조사하고 영어로 준비함과 동시에 지루하지 않도록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해서 준비한다면 정말 한국을 많은 나라의 청년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강남스타일의 댄스를 준비해간다든지, 라면이나 호떡믹스 등 한국음식을 조금 준비해가서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사동에서 한국의 포스트카드를 여러 장 구매하여 외국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원한다면 가져도 좋다고 하면 외국친구들이 굉장히 좋아할 것이다. 더없이 좋은 경험을 보다 많은 청년들이 경험하고 사고가 넓어져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뱅갈로르 공항에 내렸을 때는 밤 12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캠프 미팅 장소 까지는 하루 정도를 잡고 이틀 먼저 인도로 왔다. 나의 모험심은 도착과 동시에 깨어진 항아리의 물처럼 조금씩 새어 나가고 있었다. 이유는 공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아보려는 심보의 사람들이 나를 맞이 했고 또 나는 거기에 동행했던 것이다. 결국 택시비를 1300루피(약 26,000원)를 지불하는 대참사를 맞고,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숙소의 가격이 나를 맞이했다. 이는 아마 택시기사의 개략에 넘어간 나의 잘못이기도 했다. 첫날부터 주머니엔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새어나가는 돈을 주체할수 없을정도로 릭샤비, 각종 상인들, 모든 것들의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최대한 쥐어짜내며 일단 캠프리더만 만나면 이 모든 스트레스의 보호막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으로 다음날에 미팅장소로 갔다. 낯선 곳에서 멍하니 리더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들려왔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한국인은 없었다. 그렇다. 캠프리더가 한국말로 내게 인사를 건내온 것이다. 그는 수 차례 캠프리더를 해왔고 캠프에 참가한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한국말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캠프 참가자들이 한명 한명 모이기 시작했고 아시아인이 많을 거라던 한국워크캠프 기구의 말과 다르게 전부 서양사람들이었다. 아직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 또한 커다란 스트레스도 자리잡았다. 다들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데 나는 인사와 기본적인 대화 말고는 대화가 자유롭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이 정도의 상황은 예상했었지만 막상 내 눈앞에, 내 발등 위에 이 상황이 떨어지니 무거운 무쇠를 짊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고난과 역경 속에서 나의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캠프기간 중 우리는 조그만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놀며 소통하는 것과 그 학교의 놀이터를 도색 하는 일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소통을 하면서 내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치유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각박한 한국사회에서 우리아이들은 지나친 교육열에 아이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구잡이로 받아들여야 하는것이 있다. 과연 조기교육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익히는 것이, 그런 삶이 이곳의 아이들보다 행복한 삶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노동의 정도는 적당했으며 요가수업과 아유로베다 수업은 정말 유익했다. 이 수업으로 인도의 문화와 역사를 더욱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쇼크라는 프로그램으로 인도의 다양한 문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소 체험을 하니 짧은 시간에도 확실히 인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캠프참가자들과도 다양한 소통을 하며 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컸다. 짧지 않는 3주라는 시간 동안 서로 정을 쌓으며 봉사활동과 문화를 이해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참가자들에게 팁을 준다면 우리나라를 철저히 조사하고 영어로 준비함과 동시에 지루하지 않도록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해서 준비한다면 정말 한국을 많은 나라의 청년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강남스타일의 댄스를 준비해간다든지, 라면이나 호떡믹스 등 한국음식을 조금 준비해가서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사동에서 한국의 포스트카드를 여러 장 구매하여 외국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원한다면 가져도 좋다고 하면 외국친구들이 굉장히 좋아할 것이다. 더없이 좋은 경험을 보다 많은 청년들이 경험하고 사고가 넓어져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