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체코 님부르크, 낯선 곳에서 만난 인연

작성자 신예영
체코 SDA 303 · KIDS/RENO 2012. 06 - 2012. 07 체코 님부르크

Children Summer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참가 전, 나는 유럽여행을 하고 있었다. 우중충했던 서유럽의 날씨와는 다르게 프라하의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맑게 개어있었다. 아침 일찍 베를린을 떠났지만 약속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구경할 새도 없이 다시 기차를 타고 님부르크를 향해 갔다. 나와 비슷한 큰 배낭을 맨 여자아이가 언뜻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온 아이였다. 놀랍게도 18살 고등학생이었다. 베를린에 산다니 아침부터 나와 같은 기차를 타고 온 셈이다. 우리는 님부르크 역에서 현지인들에게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영어를 하지 못했다. 결국 직접 찾아가기를 포기하고 인포싯에 나온 현지 리더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삼십분쯤 뒤, 자전거를 타고 온 캠프리더는 차가워보이는 파란 눈과 시원한 차림으로 더위를 날려주었다. 조금 더 기다리자 멤버 셋이 도착했다. 우리는 짐을 매고 15분 정도 걸었다. 도착한 센터에는 이미 아일랜드에서 온 소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짐정리하고 center for all에 대한 설명과 건물안내를 받은 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센터에는 유치원 건물이 있고 마르티나, 마르타, 자넷 등 워캠을 돕는 현지센터의 사람들이 있었다.
멤버는 총 7명으로 영국에서 온 소피, 베를린에서 온 밀리나, 스페인에서 온 이라티, 카탈로냐에서 온 라우라(스페인과 카탈로냐는 엄연히 다르다고 누누이 주장했다)와 홍콩에서 온 이르윈.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또다른 한국인 유정 이렇게 총 일곱명이 멤버였다.
저녁으로는 야외 장작불에 소시지를 구워 빵과 함께 먹고 근처 펍에 가서 맥주를 한잔씩 했다.
다음날, 시리얼과 식빵, 우유로 아침을 먹고 근처에 있는 정신지체 아이들을 위한 학교 탐방을 갔다. 마침 방학하는 날이라 교장선생님이 아이들과 일일이 인사하며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 후엔 포데브라예라는 작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옛날 성벽이 남아있고, 마을의 상징인 시계가 풀밭 곳곳에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점심으로는 피자와 햄버거를 먹었다. 돌아오기 전 분수 근처에 앉아 사진도 찍고 쉬고 있는데 이르윈이 뒤로 넘어가서 분수에 빠지는 웃지못할 일이 생겼다. 이르윈은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핸드폰, 카메라까지 다 빠졌다. 이르윈은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선 채로 와야했다.
도착한 우리는 놀이터 옆 풀밭에서 한가롭게 쉬었다. 마침 유치원도 방학한 날이라 아이들은 데리러 온 부모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아이들처럼 트렘폴린에서 뛰어놀고 우노게임을 했다. 마르티나가 준비한 갖가지 채소로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에 앉아 체코 맥주에 대한 유명한 영화를 보았다.
다음날은 님부르크를 탐방했다. 강가 주변을 거닐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이번에는 마르티나와 그녀의 귀여운 아들과 딸도 함께였다. 조금씩 더위에 지치던 우리는 돌아와서 마르타가 준비한 헝가리 대표 음식인 굴라쉬를 먹었다. 오후엔 한낮의 더위를 피해 시원한 맥주공장을 탐방했다. 돌아와서는 왕년에 댄서였던 마르티나와 자넷이 준비한 춤을 보고, 도자기로 메달을 만들었다. 밤에는 차를 타고 컨트리펍에 가서 과일주, 맥주를 마시고 다같이 컨트리 춤을 추었다.
일요일, 드디어 캠프사이트로 출발하는 날이다. 이즈비체는 님부르크에서 이십분정도 차를 타고 들어간 곳에 있었다. 공사중인 마르티나의 집과 아주 큰 헛간이 있었고 텐트를 설치할 넓은 풀밭이 있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큰 헛간의 주방을 먼저 정리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먼지와 벌레, 먹다 남은 음식물, 그릇 등이 뒹굴고 있었다. 일, 월, 화, 수 , 목, 금, 토요일까지 우리는 큰 헛간을 정리하고 주변 풀밭, 공터 등을 청소하고 새롭게 단장하며 캠프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그리고 우리와 자폐 아이들의 소통을 도와줄 현지 어시스턴트들이 도착하여 소개하고 팀을 짜고, 어떤 아이를 맡을지, 또 아이들의 증세에 대한 공부도 하고 성격도 파악했다. 기본적으로 쓰는 체코어를 배우는 시간도 가졌고, 대화, 게임으로 친해졌다. 특히 이르윈과 유정은 같은 텐트를 썼기 때문에 밤이면 같이 씻으러 가고 많은 얘기를 했다.
다시 일요일. 오전에 일을 마치고 오후에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나 둘씩 도착한 아이들. 드디어 내가 맡을 다비드와 이리크도 도착했다. 둘 다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이라 키도 나보다 크고 덩치도 있었다. 일정은 주로 식사시간과 오전, 오후활동시간이었다. 만들기, 그리기, 야외활동 등 다양하게 있었다. 거의 모든 활동은 풀밭에서 이루어졌다. 날씨는 거의 맑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날들이 이어졌다. 제대로 말도 못하는 다비드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걸으면서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이 앉아있는 것, 눈을 쳐다보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이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체코파트너였던 데니사는 이리크를 맡았다. 시력이 아주 나쁜 이리크는 물체를 코 앞까지 들이밀어야만 확인할 수 있었다. 대화나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똑똑했고, 자폐 아이들 중에 상태가 아주 좋은 편에 속한다고 마르타는 말해줬다. 말과 마차를 타는 야외활동이 있을 때 나는 체코어시스턴트들에게 간단한 체코어를 배워서 이리크와 대화를 했다. 단지 눈이 나빠서가 아니라 이리크는 눈을 마주치기를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풀밭에서 미리크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천사 같은 데니사는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신경써줬다. 우리가 한 대화는 영어 같지 않게 편하고 깊어서 나는 내가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매 저녁시간 우리는 모여 앉아 하루에 대한 평가를 하고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4박5일뿐이었지만 무척 길게 느껴졌다. 내가 잘한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순간이 많았고 오히려 배운 것이 더 많았다.
떠나는 날, 나는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 따뜻한 햇살이 있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주스카는 트렘폴린에 누운 채로, 어시스턴트 미샤가 대신 뜀뛰기를 한다. 다른 친구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마냥 즐겁게 쳐다보고 있다.
이별의 순간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떠난다고 하자 이리크가 인사를 한다. 마르케타가 울며 통역해주었다. 왜 벌써 가냐고, 다음 겨울에 다시 와줄 수 있냐고 한다. 옆에서 듣던 어시스턴트 크리스티나도 인사를 해주었다. 어리지만 강하고 조용한 크리스티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말라고, 그리고 남은 여행 잘 하라고 했다.
다시 님부르크 센터로 돌아온 우리는 큰 마트에 가서 음식을 사오고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진짜 마지막날, 아침을 먹으며 나는 준비해온 선물을 모두에게 줬다. 마르티나 역시 우리에게 센터 뱃지와 아이들이 아트테라피 시간에 만든 손수건을 선물해줬다. 다같이 님부르크 역까지 걸어가는데 가랑비가 내린다. 이르윈을 콜린으로 먼저 보내고 프라하에서 다시 작별의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