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꼬여버린 시작과 녹아버린 걱정

작성자 한유정
아이슬란드 WF97 · ENVI/MANU 2012. 10 Hveragerði

Hveragerði - Health and Environmen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다녀온 지도 벌써 2달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케플라빅 국제공항을 떠나던 비행기 안에서 멀어져 가는 아이슬란드를 먹먹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처음부터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지원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프랑스나 독일에서 워크캠프를 하고 싶었는데 꾸물대다 신청기간을 놓치고 그나마 내 일정과 맞아떨어지는 프로그램이 아이슬란드에 있었기에 지원했다. 런던에서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가 제대로 된 사전통보도 없이 취소되는 바람에 하루를 꼬박 공항에서 기다리고 결국 새로운 비행기표를 사야 되었다. 이렇게 내가 생애 처음으로 신청한 워크캠프의 첫 시작은 순조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워크캠프 시작도 하기 전에 정말 내가 왜 이런 걸 욕심 내서 신청했을까? 참가할 가치는 있는 걸까? 생각보다 아이슬란드가 별로이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한 채 아이슬란드에 첫발을 내 딛었다. 그리고 그 후 내 모든 생각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고 광활한, 조금 황량하기까지 한 아이슬란드의 모습이 흡사 화성과 같았던 것이다. 우연으로 단체사무실인 Worldwide Friends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같은 캠프에 참가하는 영국인 친구 Anna를 만나서 함께 오는데 점점 이번 워크캠프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갔다.
내가 신청한 이 워크캠프는 수도인 Reykjavik에서 50km 쯤 떨어진 조그만 마을 Hveragerði에 있는 헬스케어 클리닉에서 주관하는 것이었다. 지열발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린하우스 작물재배와 수확을 돕고, 클리닉에 입원한 노인 및 환자분들과 어울려 말벗이 되어드리는 일을 2주 동안 하게 되었다. 우리 워크캠프는 한국에서 온 나와 민, 영국에서 온 새침하지만 만능 스포츠맨인 Anna, 네덜란드에서 온 18살 개구쟁이 Davey, 러시아에서 온 자연을 정말 사랑하는 맏언니 Anya, 캐나다에서 온 귀엽고 배려심 많은 Liz, 마지막으로 며칠 늦게 합류했지만 분위기메이커에 성격도 호탕한 스페인인 리더 Jordi 이렇게 7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마을은 전체 주민이 2000명이 채 안 되는 정말 아담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길을 걷다가 마주치면 언제나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해주고, 길이라도 물어보면 혹시나 못 알아들었을까 손까지 끌어서 안내해주는 정 많은 아이슬란드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클리닉의 의사, 간호사, 영양사 및 직원들과, 봉사자들도 너무나 다정다감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북유럽이 전체적으로 그런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국어인 아이슬란드어 외에 영어가 공용어처럼 쓰이고 있어서 로컬 주민들과의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Hveragerði지역은 아이슬란드 내에서도 특히 지각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지역이라 지열을 이용한 화훼, 원예재배가 발달해있었고, 덕분에 극지방과 가깝고, 겨울에 가까운 추운 계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이, 토마토 등 여러 종류의 채소들과 과일, 심지어 바나나까지 재배하고 있었다. 숙소는 클리닉 내에 직원들이 이용하는 건물 한 동을 아예 통째로 자원봉사자들에게 주셔서 1인 1실의 기숙사 시설을 누릴 수 있었고, 식사는 클리닉 내의 카페테리아를 이용할 수 있어서 너무나 쾌적한 환경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아침9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일을 끝마치고 점심 및 휴식 후 1시부터 3시까지 오후 작업을 마쳤다. 우리는 그린하우스에서 익은 오이와 토마토를 수확하고, 품질에 따라 나누어 포장하는 일, 너무 웃자란 줄기를 기준선에 맞춰 잘라주고 병든 부분을 다듬어주는 일과 수확이 다 끝난 오이 밭을 다음해를 위해서 해체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 마지막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떠나기 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온 것이 조금 아쉬웠다. 중간중간 coffee break를 가지면서 함께 각자 나라의 음악도 듣고,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그린하우스를 운영하시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아이슬란드의 여러 가지 환경적 여건과 경제, 정치 상황 등을 애기해주시고 우리의 궁금증도 풀어주시려고 노력하셔서 그가 얼마나 자신의 나라를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서로의 문화를 나누려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생활 덕분에 일이 고되지 않았다. 오후 일이 끝나고 나면 남은 시간은 캠퍼들끼리 자유롭게 상의해서 다양한 activity를 즐기거나 개인여가를 가질 수 있었는데 이 헬스 클리닉이 정말 다양하고 쾌적한 시설들을 무료로 캠퍼들에게 제공하고 있어서 우리는 마음껏 실내, 실외에 갖추어진 수영장과 hot tubs, gym, 도서관과 자전거 등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내 생애 이렇게 자유롭게 자연과 어우러져서 즐겁게 운동을 즐긴 때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도로에서 2발 자전거 타는 법을 제대로 배운 것도 이번 워크캠프에서였다. 일을 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hot tub에 가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무 말 없이 그저 아이슬란드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특히 클리닉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정말 다양한 hiking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매일매일 새로운 hiking 코스를 발견해나갈 수 있었고, 러시아에서 온 Anya와 함께 러시아식 버섯요리도 만들어보았다. 그냥 노천에 있는 Hot River에 발도 담가보고... 첫째 주말에는 Excursion으로 blue lagoon이라는 아이슬란드가 자랑하는 노천온천에 놀러 갔는데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다음에는 꼭 가족들과 다시 오리라 다짐했을 정도로..그렇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 중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은 Northern light, 바로 오로라를 직접 내 눈으로 본 것 이었다. 한겨울도 아니어서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밤 hurry, hurry up!!하면서 밖으로 뛰어나가는 친구들을 따라 나간 아이슬란드 밤하늘에 너울너울 흘러가던 밝은 연녹색의 오로라..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아서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지만 눈에 가득 담아두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그때의 하루하루가 생생하게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1인 1실이었던 숙소 구조가 편하기는 했지만 더욱 활발한 교류를 방해했던 것 같아서 조금 아쉽지만 그 점 빼고는 흠잡을 데 없이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아이슬란드라는 정말 생소하고 이국적인 국가에서의 2주가 앞으로 너무 그리워질 것 같다.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고,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워크캠프에 너무 감사하다. 다음에도 다시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내 대답은 Ok, why not??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