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Sirince, 낯선 곳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작성자 신일화
터키 GEN-04 · CONS/ RENO 2012. 05 - 2012. 06 Sirince

MATH VILLAG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사촌언니의 추천으로 신청하기는 했지만 워크캠프 전 유럽 여행이 고되어 취소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로 떠나는 비행기의 출발지가 어찌되었든 이스탄불인 이상 ‘갈 수 밖에 없구나, 조금만 더 버티자.’라는 심정으로 홀로 터키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터키인들의 진득하고 부담스러운 눈빛에 안 그래도 지친 정신이 더 피폐해져만 갔습니다. 결국 이스탄불 구경은 커녕 서둘러 워크캠프 집결 장소였던 사무실로 직행했고 나는 그 곳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십분 뒤, 하나 둘 씩 모여드는 참가자들. 나는 지친 마음에 그들과 대화를 수월히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돌아가지를 않아 영어가 들리지도,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 몇몇도 나와 같은 상태를 보이며 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참가자들 사이에서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모두 모인 우리는 자기소개와 함께 조금씩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함께 한 후,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탑승시간 11시간. 대기시간까지 합치면 그 보다 더 길었습니다. 안 그래도 지쳐있는데 다리 한 번 쭉 펴지 못하고 화장실 없는 버스에 앉아 제대로 잠도 못 잔 상태로 우리는 다음날 아침,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첫 날은 캠프리더의 배려로 일을 하지 않은 채 쉴 수 있었습니다. 씻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본 캠프지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꽤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저 멀리 푸른 산이 보이고 공기도 청량한데다 바람에 나무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 또한 무척이나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었으니. 캠프리더를 제외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영어를 하나도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참가자 중에 터키어를 전공하여 능숙히 말을 하는 친구가 있었기에 그녀를 통해 대화를 주고 받기는 했으나 그녀가 없으면 그저 어색하니 웃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답답했습니다.
일은 힘들 때도 있었고 쉬울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 한 일은 창고 정리와 책 개수 세기였습니다. 창고에서는 환기가 안되고 흙먼지가 많아서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는 쿠션 먼지 털기, 벽돌 세기, 부엌 벽 닦기, 나무에 방충제 칠하기(서 있기만 해도 더운 날, 그늘 없는 뙤약볕에서 보기만해도 소름이 좍좍 돋는 벌레들을 피해가며 잘 발리지 않는 방충제를 경사진 산 곳곳에 칠하기는 정말, 정말, 정말, 어려웠습니다.), 잡초 뽑기, 밭 갈기 등등. 우리는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 정해준 양과 시간보다 일을 빨리 끝마치곤 했기에 우리는 나서서 부엌일을 돕는다거나 방 청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이 끝나면 주변 산에 오르기도 하고, 근처 시린제 마을도 구경하고, 요리사 아저씨를 따라 살추크 시장에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녁을 먹고 나서는 그 곳 사람들과 게임을 한다거나 그들이 보여주는 영화도 함께 보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던 여가시간에는 주변 여행지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일하는 도중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누고 친구들에게는 한국 가요도 들려주었습니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음악은 빅뱅의 Fantastic Baby였습니다. 집에 돌아갈 때 즈음에는 다들 “Yeah, Fantastic Baby-“ 라던가 “붐 샤카라카 붐 샤카라카”를 중얼거리며 몸을 들썩이곤 했습니다.
번개가 치던 날에는 밖으로 나와 다같이 번개도 구경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층빌딩에 가려 볼 수 없었던 번개가 산 위에서는 너무나도 선명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맑은 날 밤에는 하늘에 박힌 별을 바라보면서, 북두칠성이 저기 있다며 웃고 떠들다가 난생 처음 유성을 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셨다던 아일랜드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여행이야기와 농담에 웃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그 곳의 마을 사람들과도 그 못지 않게 매우 친해졌습니다. 언어가 안 돼서 터키어를 하는 그 친구가 없을 때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찾곤 했지만 그래도 손짓, 발짓 하며 그들과 어울렸습니다.
2주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습니다. 이제 막 서로 점점 친해지려는 시기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과의 헤어짐은 너무도 아팠습니다. 물론 참가자들끼리는 언젠가는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헤어질 수 있었지만(그들 중 한 사람은 한국인이었고, 다른 둘은 한국에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과의 이별은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특히 그들과 나는 대화를 나누며 더 친해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더 안타까웠습니다. 터키어를 하나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통탄스러울 줄이야….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그 마을에 꼭 가고 싶지만 내게 앞으로 그런 기회는 찾아오기 힘들 것 같기에 나는 아직도 그 헤어지던 날의 밤을 잊지 못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된 지금, 나는 잠시 잠깐 멍하니 있을 때면 그곳에 다녀오곤 합니다. 캠프리더가 내년에 또 이 워크캠프가 열리면 오라고 했는데 나는 언젠가 또 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