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기차 놓치고 시작된 특별한 워크캠프
NOVACELL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워크 캠프 시작은 미팅 포인트인 클레르몽페랑 역(Gare de Clermont-ferrand)으로 가는 프랑스 기차(TGV)를 놓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24시간이 암담하게 길었던 그 날을 결코 잊지 못한다. 공항에 부속되어 있는 기차역까지 무사히 도착했던 나는 멍청하게 16시 40분 기차를 놓쳤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16시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차를 놓쳤던 것이다. 여유롭게 기차에서 먹을 식사거릴 사고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기다렸던 나는 기차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기차가 뒤늦게 내가 있던 아래층에서 떠나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서있던 곳이 플랫폼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가기 위한 중간지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다급하게 “HELP ME”라고 외쳤는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순간 나는 한 장편의 신파극을 찍는 기분이었다. 그 어떤 영화의 한 장면도 내가 만들어낸 장면처럼 절박하고 간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고 역무원들에게는 ‘It’s too late.’ 이라는 의미 없는 말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더 이상 클레르몽페랑으로 가는 기차가 여기 샤를드골공항에는 없었기에 나는 역무원의 설명을 들어가며 프랑스 지하철인 RER과 METRO를 무방비 상태에서 타러 가야 했다. 클레르몽페랑으로 가는 기차가 있는 다른 기차역인 BERCY역에 가기 위해서 말이다. 나보다 큰 캐리어와 짐가방을 들고 전철을 타는 건 곤혹스러웠고 전철 안은 파리 사람들과 여러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내가 BERCY역에 도착한건 18시 30분경. 이미 18시 기차는 떠난 이후였고 19시 기차를 타야만 했다. 방금 전의 괴로운 경험으로 금새 단련 되었는지 어느새 나는 기차 플랫폼을 가리키는 SORTIE라는 프랑스 어를 이해했고, 겨우겨우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싼 360도가 프랑스어로 둘러싸인 이곳은 정말 프랑스였다. 그리고 나는 프랑스어라곤 이제 겨우 “Bonjour(안녕하세요), Merci(감사합니다), Pardon(죄송합니다.), Excuse-moi(실례합니다.)” 밖에는 모르는 어설픈 존재였다. 그나마 이거라도 알고 있었기에 감사했지만 나의 이 하루는 지칠 줄 모르는지 끝날 엄두가 안보였다. 밤 열 시가 훌쩍 넘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새카만 밤에 도착한 나는 이렇게 프랑스에서의 워크캠프를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첫 어두를 길게 떼는 이유는 앞으로의 참가자들은 나와 같은 힘겨운 일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사실 실전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기차역이나 시간이 아니라 정말 내가 타야 할 플랫폼이 어디며 어느 쪽으로 가야 기차를 탈 수 있는 지와 같은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사항은 사실 직원에게 물어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어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
미팅 장소는 내가 그 전날 내린 클레르몽페랑역이었고 시간은 16시였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생각 보다 찾기 쉬웠다. 기차 시간이 아닌 같은 참가자를 찾느라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눈에 띄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서로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름과 국적을 살피고 팀장을 기다렸다. 팀장은 프랑스인 여성 한 분과 남성 한 분이었다. 나의 개인적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두 분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였다. 참가자들끼리의 소통은 무난하게 영어로 이뤄질 수 있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언어는 영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 중 몇몇 친구들이 불어를 하고 참가자 중에는 프랑스 여자애도 한 명 있었기에 팀장과 우리의 소통은 대체로 프랑스 친구의 통역을 통한 소통이었다. 나는 이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아쉽게 생각한다. 언어의 장벽을 가진 채, 개인적으로 팀장과의 친분을 쌓기란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통이 되는 영어로도 서로의 마음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데, 아무렴 제 3언어로 통해야 하는 우리에겐 조금은 버거운 것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따뜻한 팀장님들의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사로운 인연을 깊게 맺지 못했던 점은 가슴에 아직도 남는다.
우리의 일은 아침 8시에 시작하여 오후 2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낮은 덥기에 시원할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일을 일찍 끝내고 쉴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일은 대체로 돌을 나르고 쌓는 일이었고 시멘트를 직접 만들어보거나 필요한 물을 직접 길어오는 일들의 과정은 힘겨웠지만 돌이켜보면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워크 캠프 기간 동안 일을 할 때에도 활동에 참가할 때에도 항상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 특히 봉사 시에는 마을 가족들과도 일을 하고 또래 친구들이나 때로는 나보다도 매우 어린 아이들까지 참가하여 고된 노동이었음에도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봉사가 끝나고 나면 주로 우리는 마을에서 제공하는 여러 활동에 참가하였는데, 주로 마을의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 참가하거나 노래를 듣고 춤을 추고, 익스트림 스포츠 체험과 서바이벌 게임 등 바쁜 일정을 보냈고 한가한 주말과 같은 때에는 근처 공원이나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햇빛을 쬐는 등의 여유를 만끽하였다. 무엇보다도 의미 있었던 것은 우리는 항상 모두가 함께 했다는 점이다.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우린 항상 함께였고 게임도 함께하고 수다도 함께 떨고 마을에도 함께 갔다.
식사 같은 경우는 우리는 전부 취사를 하였는데, 두 명씩 조를 짜서 아침, 점심, 저녁을 돌아가며 만들고 설거지도 돌아가며 하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체 참가국의 요리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스페인 요리가 내 입맛에 너무 맞았고 스페인 친구는 한국 요리, 특히 고추장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이 요리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모두가 한국 요리가 있는 날에는 오늘은 밥이 맛있는 날이라고 말해주어서 요리 시간이 기다려줬고 덕분에 즐겁게 요리에 임할 수 있었다. 나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어 너무 행복했다.
나의 이번 워크 캠프는 나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꿈을 품으며 새로운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 있었던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요리를 잘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불어를 배우겠다는 꿈을 품었고 다시 이들을 찾아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프랑스 만의 여유와 아름다움 때문에 어떠한 기회를 통해서든 다시 프랑스를 방문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더불어 그 다음 번에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는 외국지역의 워크캠프에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이 워크 캠프를 통해 특별하게 결심한 것이 있는데, 그건 이번 여름 방학에 나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국에서 개최하는 워크 캠프를 참가하는 것이다. 자기 국가에서 워크캠프를 하는 프랑스 친구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나도 우리나라에 찾아준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또한 더불어 나도 우리의 문화를 좀 더 느끼고 알아 갈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도 무궁무진하게 아름다운 곳이 많고 나는 그 많은 곳의 십 분의 일도 찾아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나는 한국에서 도전해보려 한다. 왜? 이미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에는 무수한 외국인들이 있고 그들의 우리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고 나 또한 한국을 알아야 할 이유가 많다. 더욱 세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이제는 우리를 알 때가 된 것 같다. 많은 생각과 가능성과 기회를 넓혀 준 이번 워크 캠프에 감사한다.
이럴 때 우리 워크 캠프 참가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VIVA CONCORDIA.
왼쪽부터, 마지막 날 우리가 일 했던 Issangdolanges에서 마을주민들을 초대하고 파티 개최/ 지역 신문에 났던 우리들의 기사
미팅 장소는 내가 그 전날 내린 클레르몽페랑역이었고 시간은 16시였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생각 보다 찾기 쉬웠다. 기차 시간이 아닌 같은 참가자를 찾느라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눈에 띄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서로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름과 국적을 살피고 팀장을 기다렸다. 팀장은 프랑스인 여성 한 분과 남성 한 분이었다. 나의 개인적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두 분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였다. 참가자들끼리의 소통은 무난하게 영어로 이뤄질 수 있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언어는 영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 중 몇몇 친구들이 불어를 하고 참가자 중에는 프랑스 여자애도 한 명 있었기에 팀장과 우리의 소통은 대체로 프랑스 친구의 통역을 통한 소통이었다. 나는 이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아쉽게 생각한다. 언어의 장벽을 가진 채, 개인적으로 팀장과의 친분을 쌓기란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통이 되는 영어로도 서로의 마음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데, 아무렴 제 3언어로 통해야 하는 우리에겐 조금은 버거운 것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따뜻한 팀장님들의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사로운 인연을 깊게 맺지 못했던 점은 가슴에 아직도 남는다.
우리의 일은 아침 8시에 시작하여 오후 2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낮은 덥기에 시원할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일을 일찍 끝내고 쉴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일은 대체로 돌을 나르고 쌓는 일이었고 시멘트를 직접 만들어보거나 필요한 물을 직접 길어오는 일들의 과정은 힘겨웠지만 돌이켜보면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워크 캠프 기간 동안 일을 할 때에도 활동에 참가할 때에도 항상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 특히 봉사 시에는 마을 가족들과도 일을 하고 또래 친구들이나 때로는 나보다도 매우 어린 아이들까지 참가하여 고된 노동이었음에도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봉사가 끝나고 나면 주로 우리는 마을에서 제공하는 여러 활동에 참가하였는데, 주로 마을의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 참가하거나 노래를 듣고 춤을 추고, 익스트림 스포츠 체험과 서바이벌 게임 등 바쁜 일정을 보냈고 한가한 주말과 같은 때에는 근처 공원이나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햇빛을 쬐는 등의 여유를 만끽하였다. 무엇보다도 의미 있었던 것은 우리는 항상 모두가 함께 했다는 점이다.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우린 항상 함께였고 게임도 함께하고 수다도 함께 떨고 마을에도 함께 갔다.
식사 같은 경우는 우리는 전부 취사를 하였는데, 두 명씩 조를 짜서 아침, 점심, 저녁을 돌아가며 만들고 설거지도 돌아가며 하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체 참가국의 요리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스페인 요리가 내 입맛에 너무 맞았고 스페인 친구는 한국 요리, 특히 고추장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이 요리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모두가 한국 요리가 있는 날에는 오늘은 밥이 맛있는 날이라고 말해주어서 요리 시간이 기다려줬고 덕분에 즐겁게 요리에 임할 수 있었다. 나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어 너무 행복했다.
나의 이번 워크 캠프는 나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꿈을 품으며 새로운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 있었던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요리를 잘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불어를 배우겠다는 꿈을 품었고 다시 이들을 찾아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프랑스 만의 여유와 아름다움 때문에 어떠한 기회를 통해서든 다시 프랑스를 방문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더불어 그 다음 번에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는 외국지역의 워크캠프에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이 워크 캠프를 통해 특별하게 결심한 것이 있는데, 그건 이번 여름 방학에 나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국에서 개최하는 워크 캠프를 참가하는 것이다. 자기 국가에서 워크캠프를 하는 프랑스 친구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나도 우리나라에 찾아준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또한 더불어 나도 우리의 문화를 좀 더 느끼고 알아 갈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도 무궁무진하게 아름다운 곳이 많고 나는 그 많은 곳의 십 분의 일도 찾아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나는 한국에서 도전해보려 한다. 왜? 이미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에는 무수한 외국인들이 있고 그들의 우리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고 나 또한 한국을 알아야 할 이유가 많다. 더욱 세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이제는 우리를 알 때가 된 것 같다. 많은 생각과 가능성과 기회를 넓혀 준 이번 워크 캠프에 감사한다.
이럴 때 우리 워크 캠프 참가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VIVA CONCORDIA.
왼쪽부터, 마지막 날 우리가 일 했던 Issangdolanges에서 마을주민들을 초대하고 파티 개최/ 지역 신문에 났던 우리들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