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후회에서 설렘으로
Meet us - don’t eat us (6:6)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초등학교때부터 나의 로망은 '대학생 신분으로 유럽 배낭여행가기'였다. 이 로망을 실현하고자 대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조금의 고민없이 바로 휴학계를 제출. 그리고 반년동안 열심히 여행자금을 모으고 여행계획을 짰다. 처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워크캠프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하지만 돈을 모으면 모을수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생고생해가며 번 돈으로 가는 여행인데 좀 더 의미있고 '스페셜'하게 갔다오고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다가 국제워크캠프기구를 찾게 되었다. 나의 의도는 '스페셜'하고자 함이었지만, 아이슬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그다지 스페셜하지는 않았다. 유럽 대륙 중에 외국어실력이 기본만 되면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다보니, 내(와 내 친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이슬란드밖에 없었기 때문. 이 기회가 아니면 평생 언제 아이슬란드를 가 볼수 있겠냐고 합리화하며 그렇게 나의 친구 둘과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워크캠프 시작 전날, 런던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로 날아갔다. SEED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와 내 친구들은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무슨 말인이 알아듣기 힘든 꼬부랑꼬부랑 잉글리쉬를 BGM 삼아, 우리는 심각한 후회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며 나는 대체 왜 이 곳에 있는가.' 이때는 정말 내가 워크캠프를 신청한 것을 백만번쯤 후회했었다.
그리고 워크캠프의 시작날! 역시... 나의 워크캠프는 첫만남부터 순탄치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하필 이 워캠에 함께 참가했던 나의 소울 프렌즈와 내 이름에는 모두 '영(young)'자가 들어간다. 나'영', 은'영', '영'은. 처음 캠프 동료들을 만나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한국 이름에 낯선 그들은 우리의 이름을 듣고 모두 (O_O)?이 표정을 짓더니 빵 터졌다. 우리가 '나영과 은영과 영은'의 차이를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그저 '영, 영, 영'일 뿐... 우리의 이름을 그들이 정확히 인지하기까지는 평균 3일이 걸렸으며, 프랑스에서 온 버지니라는 친구는 워크캠프가 끝날때까지 우리의 이름을 구분하지 못하였다는 후문이...
라트비아에서 온 젊은 리더이자 BEST Driver(반어법) '아그네세'("I'm 라트비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그네세. 하지만 영어에 아직 귀가뚫리지 않았던 나는 마지막날까지 그녀가 레즈비언인줄 오해했었다.), 키 크코 털 많은 야수상이지만 마지막날 가장 먼저 눈물 흘린 소년감성의 Spanish '챠비(Xavi)', 욕 잘하는 상남자 Spanish '파우(Pau)', 터키에서 온 덩치큰 귀요미 '고칸', 속 타는 여유로움을 지닌 파리지앵 Tongkko(일명 똥꼬) '도미닉', 아이슬란드의 트랜드마크 퍼핀을 닮은 Italian '로렌쏘(lorenzo)', 스칼렛 요한슨을 닮은 금발의 Polish '카롤리나', 나의 안마를 사랑한 Polish '도미니카', 너무너무너무너무 착하고 귀여운 Belgian 언니 '오흘리', 그리고 funny+lazy(주말에 밖에서 안놀고 집에서 쉬었다고 게으르단 소리들었다ㅠㅠ)+sleepy+CRAZY Korean girls 나영(본인) 은영 영은. 이렇게 13명이 이 워크캠프의 멤버들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Meet us, don't eat us!"라는 슬로건을 걸고 고래를 지키는 캠페인을 하는 것. 관광객의 입으로 들어가는 고래를 구하기 위해, 항구와 시내에서 관광객들에게 캠페인에 대해 설명하고, '아이슬란드에서 고래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얼굴에 깔) 철판과 잉글리쉬 스킬. 하지만 나를 비롯한 코리안걸들에게 있는건 철판? So so. 잉글리쉬 스킬? NO!!!!! 우리에게 있는 것은 체력과 인내심뿐.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나니... 영어가 부족한 코리안걸들은 2주 내내 20kg이 넘는 고래 코스튬을 쓰고 열심히 관광객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삐에로가 되었다. 오전 11시쯤부터 5시정도까지 항구팀, 시내팀, 버스터미널팀 총 3팀으로 나누어 캠페인을 했으며 1시정도에는 각자 싸온 꿀맛같은 샌드위치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육체적으로는 막노동급(?)으로 고단했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동물보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새로운 시각을 경험했고, 서양아이들의 개인주의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으며, 새로운 관계를 맺음에 있어 '대담함과 적극적임'을 배울수 있었던 아주 즐겁고(?) 흥미진진한(??????) 봉사활동이었다.
주말에 동료들과 함께 투어를 떠났던 것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 문화에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던 동료들의 모습'이다. 공기놀이를 함께하며 나는 순발력의 천재로 거듭났고, 팅팅탱탱 후라이팬 놀이를 가르쳐주며 한국은 게임왕국이 되었다. Korean International Dinner에서 선보인 소세지&치즈 계란말이와 참치마요네즈김밥, 갈린 쇠고기로 만든(소고기는 이것 뿐이라..) 불고기, 믹스로 만든 호떡은 (그들이 말하길) 워캠중 Best 식사였다(식사시간내내 한마디 말없이 불고기를 6그릇이나 먹었던 오흘리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이를 증명해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아직 그들의 영향권에 도달하지 못했을때, 나는 그들에게 'Trouble maker'를 들려주며 장현승의 섹시한 휘파람을 전파했으며, 외국인 친구들의 피로한 어깨에 선사한 나의 코리안 안마로 나는 신의 손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우리의 아침인사는 "쟐쟈써?"가 되었다. '개고기를 먹으며 남북한이 단절되어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컬쳐쇼크를 겪기도 했지만 그들은 한국문화를 매우 즐겨주었고 이보다 더 고마운 것은 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주였지만,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영어의 어려움으로 하루가 1년 같던 첫째날부터, 1분이 1초같던 마지막날까지... 우리는 마음을 나누고 추억을 나누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그들을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2주를 함께했던 13명 모두를 다함께 다시 만나기가 평생 불가능할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복받쳤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워크캠프의 시작날! 역시... 나의 워크캠프는 첫만남부터 순탄치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하필 이 워캠에 함께 참가했던 나의 소울 프렌즈와 내 이름에는 모두 '영(young)'자가 들어간다. 나'영', 은'영', '영'은. 처음 캠프 동료들을 만나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한국 이름에 낯선 그들은 우리의 이름을 듣고 모두 (O_O)?이 표정을 짓더니 빵 터졌다. 우리가 '나영과 은영과 영은'의 차이를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그저 '영, 영, 영'일 뿐... 우리의 이름을 그들이 정확히 인지하기까지는 평균 3일이 걸렸으며, 프랑스에서 온 버지니라는 친구는 워크캠프가 끝날때까지 우리의 이름을 구분하지 못하였다는 후문이...
라트비아에서 온 젊은 리더이자 BEST Driver(반어법) '아그네세'("I'm 라트비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그네세. 하지만 영어에 아직 귀가뚫리지 않았던 나는 마지막날까지 그녀가 레즈비언인줄 오해했었다.), 키 크코 털 많은 야수상이지만 마지막날 가장 먼저 눈물 흘린 소년감성의 Spanish '챠비(Xavi)', 욕 잘하는 상남자 Spanish '파우(Pau)', 터키에서 온 덩치큰 귀요미 '고칸', 속 타는 여유로움을 지닌 파리지앵 Tongkko(일명 똥꼬) '도미닉', 아이슬란드의 트랜드마크 퍼핀을 닮은 Italian '로렌쏘(lorenzo)', 스칼렛 요한슨을 닮은 금발의 Polish '카롤리나', 나의 안마를 사랑한 Polish '도미니카', 너무너무너무너무 착하고 귀여운 Belgian 언니 '오흘리', 그리고 funny+lazy(주말에 밖에서 안놀고 집에서 쉬었다고 게으르단 소리들었다ㅠㅠ)+sleepy+CRAZY Korean girls 나영(본인) 은영 영은. 이렇게 13명이 이 워크캠프의 멤버들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Meet us, don't eat us!"라는 슬로건을 걸고 고래를 지키는 캠페인을 하는 것. 관광객의 입으로 들어가는 고래를 구하기 위해, 항구와 시내에서 관광객들에게 캠페인에 대해 설명하고, '아이슬란드에서 고래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얼굴에 깔) 철판과 잉글리쉬 스킬. 하지만 나를 비롯한 코리안걸들에게 있는건 철판? So so. 잉글리쉬 스킬? NO!!!!! 우리에게 있는 것은 체력과 인내심뿐.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나니... 영어가 부족한 코리안걸들은 2주 내내 20kg이 넘는 고래 코스튬을 쓰고 열심히 관광객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삐에로가 되었다. 오전 11시쯤부터 5시정도까지 항구팀, 시내팀, 버스터미널팀 총 3팀으로 나누어 캠페인을 했으며 1시정도에는 각자 싸온 꿀맛같은 샌드위치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육체적으로는 막노동급(?)으로 고단했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동물보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새로운 시각을 경험했고, 서양아이들의 개인주의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으며, 새로운 관계를 맺음에 있어 '대담함과 적극적임'을 배울수 있었던 아주 즐겁고(?) 흥미진진한(??????) 봉사활동이었다.
주말에 동료들과 함께 투어를 떠났던 것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 문화에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던 동료들의 모습'이다. 공기놀이를 함께하며 나는 순발력의 천재로 거듭났고, 팅팅탱탱 후라이팬 놀이를 가르쳐주며 한국은 게임왕국이 되었다. Korean International Dinner에서 선보인 소세지&치즈 계란말이와 참치마요네즈김밥, 갈린 쇠고기로 만든(소고기는 이것 뿐이라..) 불고기, 믹스로 만든 호떡은 (그들이 말하길) 워캠중 Best 식사였다(식사시간내내 한마디 말없이 불고기를 6그릇이나 먹었던 오흘리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이를 증명해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아직 그들의 영향권에 도달하지 못했을때, 나는 그들에게 'Trouble maker'를 들려주며 장현승의 섹시한 휘파람을 전파했으며, 외국인 친구들의 피로한 어깨에 선사한 나의 코리안 안마로 나는 신의 손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우리의 아침인사는 "쟐쟈써?"가 되었다. '개고기를 먹으며 남북한이 단절되어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컬쳐쇼크를 겪기도 했지만 그들은 한국문화를 매우 즐겨주었고 이보다 더 고마운 것은 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주였지만,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영어의 어려움으로 하루가 1년 같던 첫째날부터, 1분이 1초같던 마지막날까지... 우리는 마음을 나누고 추억을 나누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그들을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2주를 함께했던 13명 모두를 다함께 다시 만나기가 평생 불가능할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복받쳤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워크캠프를 마치고 돌아온지 어언 반년이 지났다. 이 때의 추억을 매일매일 곱씹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때의 2주가 너무나도 그립다. 워캠기간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영어라는 장벽은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부족했던 나의 언어마저도 웃음나는 추억이 되었을 뿐. 그 짧았던 워크캠프 기간동안 내 영어실력이 향상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어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고 덕분에 나는 누구보다 당당해졌다.
이렇게 나의 첫 워크캠프는 아련하고 순수한 첫사랑 마냥 기억되어 현실에 다시 지쳐가는 나에게 작은 기쁨이 되고 있다. 아주 달콤했던 어느 날의 꿈처럼.
이렇게 나의 첫 워크캠프는 아련하고 순수한 첫사랑 마냥 기억되어 현실에 다시 지쳐가는 나에게 작은 기쁨이 되고 있다. 아주 달콤했던 어느 날의 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