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무심한 공대생, 인도에서 길을 찾다
Aurangabad – Maharashtr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봉사 활동이나 대외 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던 무심한 공대생이었던 나. 방학 동안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뭐라도 했으면 하는 어머니께서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녀석이 워크캠프라는 걸 하고 와서 너무 좋았다는 말 한 마디에 적극 추천하셔서 몇 년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들이 똑같듯이 어떤 지원도 못 받는 나에게 워크캠프에 참가하기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어영부영 4학년을 맞이했고 이대로는 어떤 경험도 없이 취업 준비만 하겠다 싶어 휴학신청을 했다. 일단 나의 목표는 유럽여행! 솔직히 봉사활동에는 취미 없던 지라 워크캠프도 한 번 해볼까 해서 유럽 여행 하면서 추억을 쌓기 위해 여름 워크캠프에 지원. 처참히 탈락.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자격증이다 뭐다 준비하고 허탈해진 기간에 꿈에 그리던 인도 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 보다 인도는 잘사는 나라였다. 솔직히 나는 아프리카에 가서 가난한 아이들 돕고 이러는 게 돈으로 지원해 주는 것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지라 그냥 애들이랑 놀아주고 우리 나라 좀 알리고 오면 되겠네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워크캠프에 참가 신청서를 넣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합격했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봉사 활동이나 대외 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던 무심한 공대생이었던 나. 방학 동안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뭐라도 했으면 하는 어머니께서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녀석이 워크캠프라는 걸 하고 와서 너무 좋았다는 말 한 마디에 적극 추천하셔서 몇 년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들이 똑같듯이 어떤 지원도 못 받는 나에게 워크캠프에 참가하기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어영부영 4학년을 맞이했고 이대로는 어떤 경험도 없이 취업 준비만 하겠다 싶어 휴학신청을 했다. 일단 나의 목표는 유럽여행! 솔직히 봉사활동에는 취미 없던 지라 워크캠프도 한 번 해볼까 해서 유럽 여행 하면서 추억을 쌓기 위해 여름 워크캠프에 지원. 처참히 탈락.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자격증이다 뭐다 준비하고 허탈해진 기간에 꿈에 그리던 인도 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 보다 인도는 잘사는 나라였다. 솔직히 나는 아프리카에 가서 가난한 아이들 돕고 이러는 게 돈으로 지원해 주는 것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지라 그냥 애들이랑 놀아주고 우리 나라 좀 알리고 오면 되겠네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워크캠프에 참가 신청서를 넣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합격했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인도에서의 여행]
인포싯이 출국하고 와서 미팅장소 준비물 파악하고 리컨펌메일 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만큼 워크캠프에 관한 준비를 많이 못했다. 여행 일정도 빡빡했기 때문에 전혀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인도에서의 스펙타클한 여행 2주를 마치고 인포싯에 써있는 미팅 장소로 향했다.
[워크 캠프 첫째 날]
내가 묵었던 숙소에서 큰 배낭을 메고 아우랑가바드 역 앞의 미팅 장소로 향했다. 리더처럼 보이는 인도 여성이 미팅 장소에 홀로 서 있었다. 헬로! 푸근한 인사로 나는 맞이해줬다. 종이에 참가자의 이름이 보였는 데 달랑 4명?? 오마이갓 나는 봉사활동 그 자체 보다는 외국인과의 교류를 중요하게 여기고 참가를 희망했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아는 한국인 참가자 3명과 대만인 1명 리더 포함해서 우리 팀은 꼴랑 5명이었다. 사실 매우 실망했었다. 여행 기간 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워크캠프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 이길 바랐는데 한국에서 봉사 활동하는 것과 다를게 뭔가. 일단 인도의 유명한 교통수단인 릭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꼴에 몇 번 릭샤 타봤다고 3인석 자리에 다섯 명이 타는데 내가 마지막에 타게 되었다. 물갈이해서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있는 상태에서 릭샤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가는 데 진짜 죽을뻔했다. 그래도 호텔에 잘 도착했고 호텔은 생각 보다 굉장히 깨끗한 편이었다. 짐을 내려놓고 다른 친구들도 힘들었었기 때문에 조금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식사를 하고 미팅을 하게 되었다.
[삼시 세끼 커리라니……]
한국에서 잘 먹지 않는 카레였다. 인도에선 커리라고 불리진 않지만 여러 향신료와 채소로 만든 노란 소스에 짜파티를 찍어 먹거나 밥과 섞어서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인도 음식 보다는 한국음식 서양음식을 주로 먹었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었다. 그러나 뭘 잘 못 먹었는지 물갈이를 하게 된 이후로 인도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중에도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우리 리더는 인도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많은 인도 음식을 권했었는데 외국인인 우리에게 그냥 커리에 짜파티, 밥이었다. 한국과는 다른 매운 맛에 굉장히 힘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채소와 고기를 반찬으로 많이 먹는데 인도에서는 항상 볶고 튀긴 음식 때문에 한국음식이 매일 생각 났었다. 하지만 며칠 뒤 물갈이 증상이 점점 낫고 열심히 활동하고 와서 먹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일 삼시 세끼 식사를 하고 난 뒤 먹는 짜이 한 잔이 너무 좋았다. 우리 멤버 모두 짜이 마시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리고 한국보다 훨씬 싸고 맛있는 과일들이 넘쳐나서 매일 과일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인도에서의 먹는 재미를 발견하게 되어서 힘든 스케줄 속에서도 너무 행복했었다.
[인도 아이들]
우리 워크캠프의 테마는 아이들, 사회 였다. 아이들에게 영어, 위생 교육을 한다는 간단한 정보는 알고 간 상태였다. 그런데 캠프 리더가 말했다. 아이들은 슬럼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많이 가난하고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70퍼센트가 넘는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라고 했다. 학교에 방문한 첫 날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한국의 학교보단 매우 작은 학교 크기에 놀랐다. 인도에는 복 층 이상의 건물을 보기 힘들긴 했지만 학교는 단층에 교실도 네 개뿐이었다. 처음 학교에 들어섰을 때 모든 아이들이 그 주 주말에 있는 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와 마하라슈트라주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 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밝게 웃으며 어설프지만 교복도 챙겨 입고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 보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국경일 연습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가 환영인사를 받았다. 아우랑가바드에 외국인 봉사 활동자가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봉사활동 단체의 높으신 분도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방문해 주셨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엄청난 환영인사를 해 주셔서 어깨가 무거웠다. 일단 학교에서 정해준 반에 들어가 수업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14살 남짓해 보였다. ‘나마스까르’ 인사를 해주니 환영으로 보답해 주었다. 아이들은 참 예쁘고 맑고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밝았다. 인도 사람들은 national language인 힌디와 마하라슈트라 언어인 마라띠를 할 줄 알아야 해서 영어는 third language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보다 영어 문맹률이 높은 편이었다. 우리는 간단한 영어를 가르치기 전에 우리의 이름과 나라에 대한 소개를 영어로 진행했다. 한국의 위치와 국화 상징 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리고 오후엔 바깥에서의 활동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침 일곱 시 반에 학교에 와서 열 두 시 반이면 집에 가야 했다. 그래서 중간에 아침밥을 먹고 아이들을 위한 activity를 준비했다. 한국에서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게임이 인도에서도 있었다. 앞에 나간 술래가 숫자를 센 뒤 호루라기를 불면 아이들이 술래를 향해 달려가던 걸 멈추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임이었다. 아이들은 컴퓨터나 티비, 스마트폰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지라 이런 간단한 게임도 좋아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오후에 남자 아이들만큼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우리의 손을 잡고 옆에서 뛰려고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싸우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내성적이고 남의 시선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이들의 관심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순수하게 반겨주는 아이들을 보니 더욱 신이 나서 적극적으로 게임에 임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열정에 못 미치는 체력에 금새 지쳐서 숙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점심 때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때에는 모든 멤버들이 지쳐서 허겁지겁 밥을 먹기에 바빴다. 캠프 초기에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인터넷이나 친구들과 sns하기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같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운동장에서 같이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캠프 중간 중간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관한 발표]
워크캠프 인포싯에 자국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오라는 얘기가 있었다. 나는 인포싯을 보지 못하고 여행을 떠난 지라 준비를 많이 못했었다. 같은 멤버인 혜림이가 워크캠프 오기 전에 반크에 우리나라에 대한 홍보자료를 요청해서 받아온 자료를 구경했는데 세계지도와 함께 있는 우리나라 지도, 우리나라 음식, 관광지 등이 엽서처럼 예쁘게 정리 되어 있었다. 그걸 이용해서 그룹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기로 했다. 일단 나는 우리나라 음식과 설날 등을 설명하고 혜림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 즉, 위치, 기후, 국기, 국화 등을 설명했다. 다른 멤버인 정민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온돌과 한글 등을 설명했다. 발표 자료는 풍부한 편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재밌고 이해가 쉽게 전달 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일단 수업 때 보여 줄 수 있는 것들 것 최대한 활용 해보자고 하여 음식에 관한 내용을 발표할 때 우리가 가져온 고추장을 한번 맛보게 하기로 했다. 내가 가져온 고추장은 쇠고기가 포함된 고추장이라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은 맛 보여줄 수 없어서 정민이가 가져온 동물성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고추장을 보여 주기로 했다. 한국판 소스라고 소개를 하고 비빔밥과 떡볶이의 설명을 같이 한 뒤 여기에 들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소스라고 말해줬다. 아이들에게 조금씩 짜주어 맛보게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땐 인도 음식이 훨씬 짜고 매웠는데 아이들은 고추장을 조금 맛보고 매워서 물을 마구 들이켰다. 반응이 재미있었다. 좀 더 많은 것들을 준비 해와서 한국음식을 대접해 줄 걸…. 너무 아쉬웠다. 프레젠테이션 내내 영어로 발표하고 친절하신 선생님께서 마라띠로 번역하여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셨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말하고 소개하고 싶었지만 이중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사실에 최대한 간결하되 기억에 잘 남도록 발표하려고 애썼다. 두 시간 동안 우리 발표를 전해 주신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 인사를 드렸다. 드디어 발표가 끝났고 우리는 한시름 놓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정말 뜻 깊었다.
[영어로 하는 데일리 미팅]
우리는 첫째 날부터 데일리 미팅을 했었는데 영어로 진행했었다. 하루를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는데 영어로 말하는 게 두렵고 어려운 우리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나는 항상 첫 번째로 말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 그에 대한 나의 생각, 느낌, 나중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대충의 계획까지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데일리 미팅 시간이 너무 기다려 졌다. 멤버들과 도란도란 짜이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우리 조의 5명 중 3명은 한국인이어서 우리끼리 한국말로 많이 얘기했었다. 사실 한국 사람끼리 잘 되지 않는 영어로 얘기하는 건 너무 어렵고 낯 간지러운 일이라 우리끼리 워크캠프 끝나고 같이 할 여행 계획에 대해 한국어로 얘기했었는데 대만인 멤버 애나가 이점에 대해 서운하고 섭섭했는지 데일리 미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분명 워크캠프는 국제 봉사인데 한국어로 얘기하면 본인은 소외감이 든다고 했었다. 일단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고 솔직히 말해줘서 애나에게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함께 노력해서 고쳐가자고 했다. 그 후로 애나를 최대한 배려하여 잡답할 때도 영어를 쓰려고 노력했고 애나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속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인포싯이 출국하고 와서 미팅장소 준비물 파악하고 리컨펌메일 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만큼 워크캠프에 관한 준비를 많이 못했다. 여행 일정도 빡빡했기 때문에 전혀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인도에서의 스펙타클한 여행 2주를 마치고 인포싯에 써있는 미팅 장소로 향했다.
[워크 캠프 첫째 날]
내가 묵었던 숙소에서 큰 배낭을 메고 아우랑가바드 역 앞의 미팅 장소로 향했다. 리더처럼 보이는 인도 여성이 미팅 장소에 홀로 서 있었다. 헬로! 푸근한 인사로 나는 맞이해줬다. 종이에 참가자의 이름이 보였는 데 달랑 4명?? 오마이갓 나는 봉사활동 그 자체 보다는 외국인과의 교류를 중요하게 여기고 참가를 희망했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아는 한국인 참가자 3명과 대만인 1명 리더 포함해서 우리 팀은 꼴랑 5명이었다. 사실 매우 실망했었다. 여행 기간 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워크캠프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 이길 바랐는데 한국에서 봉사 활동하는 것과 다를게 뭔가. 일단 인도의 유명한 교통수단인 릭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꼴에 몇 번 릭샤 타봤다고 3인석 자리에 다섯 명이 타는데 내가 마지막에 타게 되었다. 물갈이해서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있는 상태에서 릭샤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가는 데 진짜 죽을뻔했다. 그래도 호텔에 잘 도착했고 호텔은 생각 보다 굉장히 깨끗한 편이었다. 짐을 내려놓고 다른 친구들도 힘들었었기 때문에 조금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식사를 하고 미팅을 하게 되었다.
[삼시 세끼 커리라니……]
한국에서 잘 먹지 않는 카레였다. 인도에선 커리라고 불리진 않지만 여러 향신료와 채소로 만든 노란 소스에 짜파티를 찍어 먹거나 밥과 섞어서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인도 음식 보다는 한국음식 서양음식을 주로 먹었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었다. 그러나 뭘 잘 못 먹었는지 물갈이를 하게 된 이후로 인도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중에도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우리 리더는 인도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많은 인도 음식을 권했었는데 외국인인 우리에게 그냥 커리에 짜파티, 밥이었다. 한국과는 다른 매운 맛에 굉장히 힘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채소와 고기를 반찬으로 많이 먹는데 인도에서는 항상 볶고 튀긴 음식 때문에 한국음식이 매일 생각 났었다. 하지만 며칠 뒤 물갈이 증상이 점점 낫고 열심히 활동하고 와서 먹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일 삼시 세끼 식사를 하고 난 뒤 먹는 짜이 한 잔이 너무 좋았다. 우리 멤버 모두 짜이 마시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리고 한국보다 훨씬 싸고 맛있는 과일들이 넘쳐나서 매일 과일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인도에서의 먹는 재미를 발견하게 되어서 힘든 스케줄 속에서도 너무 행복했었다.
[인도 아이들]
우리 워크캠프의 테마는 아이들, 사회 였다. 아이들에게 영어, 위생 교육을 한다는 간단한 정보는 알고 간 상태였다. 그런데 캠프 리더가 말했다. 아이들은 슬럼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많이 가난하고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70퍼센트가 넘는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라고 했다. 학교에 방문한 첫 날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한국의 학교보단 매우 작은 학교 크기에 놀랐다. 인도에는 복 층 이상의 건물을 보기 힘들긴 했지만 학교는 단층에 교실도 네 개뿐이었다. 처음 학교에 들어섰을 때 모든 아이들이 그 주 주말에 있는 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와 마하라슈트라주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 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밝게 웃으며 어설프지만 교복도 챙겨 입고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 보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국경일 연습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가 환영인사를 받았다. 아우랑가바드에 외국인 봉사 활동자가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봉사활동 단체의 높으신 분도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방문해 주셨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엄청난 환영인사를 해 주셔서 어깨가 무거웠다. 일단 학교에서 정해준 반에 들어가 수업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14살 남짓해 보였다. ‘나마스까르’ 인사를 해주니 환영으로 보답해 주었다. 아이들은 참 예쁘고 맑고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밝았다. 인도 사람들은 national language인 힌디와 마하라슈트라 언어인 마라띠를 할 줄 알아야 해서 영어는 third language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보다 영어 문맹률이 높은 편이었다. 우리는 간단한 영어를 가르치기 전에 우리의 이름과 나라에 대한 소개를 영어로 진행했다. 한국의 위치와 국화 상징 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리고 오후엔 바깥에서의 활동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침 일곱 시 반에 학교에 와서 열 두 시 반이면 집에 가야 했다. 그래서 중간에 아침밥을 먹고 아이들을 위한 activity를 준비했다. 한국에서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게임이 인도에서도 있었다. 앞에 나간 술래가 숫자를 센 뒤 호루라기를 불면 아이들이 술래를 향해 달려가던 걸 멈추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임이었다. 아이들은 컴퓨터나 티비, 스마트폰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지라 이런 간단한 게임도 좋아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오후에 남자 아이들만큼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우리의 손을 잡고 옆에서 뛰려고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싸우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내성적이고 남의 시선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이들의 관심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순수하게 반겨주는 아이들을 보니 더욱 신이 나서 적극적으로 게임에 임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열정에 못 미치는 체력에 금새 지쳐서 숙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점심 때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때에는 모든 멤버들이 지쳐서 허겁지겁 밥을 먹기에 바빴다. 캠프 초기에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인터넷이나 친구들과 sns하기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같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운동장에서 같이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캠프 중간 중간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관한 발표]
워크캠프 인포싯에 자국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오라는 얘기가 있었다. 나는 인포싯을 보지 못하고 여행을 떠난 지라 준비를 많이 못했었다. 같은 멤버인 혜림이가 워크캠프 오기 전에 반크에 우리나라에 대한 홍보자료를 요청해서 받아온 자료를 구경했는데 세계지도와 함께 있는 우리나라 지도, 우리나라 음식, 관광지 등이 엽서처럼 예쁘게 정리 되어 있었다. 그걸 이용해서 그룹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기로 했다. 일단 나는 우리나라 음식과 설날 등을 설명하고 혜림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 즉, 위치, 기후, 국기, 국화 등을 설명했다. 다른 멤버인 정민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온돌과 한글 등을 설명했다. 발표 자료는 풍부한 편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재밌고 이해가 쉽게 전달 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일단 수업 때 보여 줄 수 있는 것들 것 최대한 활용 해보자고 하여 음식에 관한 내용을 발표할 때 우리가 가져온 고추장을 한번 맛보게 하기로 했다. 내가 가져온 고추장은 쇠고기가 포함된 고추장이라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은 맛 보여줄 수 없어서 정민이가 가져온 동물성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고추장을 보여 주기로 했다. 한국판 소스라고 소개를 하고 비빔밥과 떡볶이의 설명을 같이 한 뒤 여기에 들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소스라고 말해줬다. 아이들에게 조금씩 짜주어 맛보게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땐 인도 음식이 훨씬 짜고 매웠는데 아이들은 고추장을 조금 맛보고 매워서 물을 마구 들이켰다. 반응이 재미있었다. 좀 더 많은 것들을 준비 해와서 한국음식을 대접해 줄 걸…. 너무 아쉬웠다. 프레젠테이션 내내 영어로 발표하고 친절하신 선생님께서 마라띠로 번역하여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셨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말하고 소개하고 싶었지만 이중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사실에 최대한 간결하되 기억에 잘 남도록 발표하려고 애썼다. 두 시간 동안 우리 발표를 전해 주신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 인사를 드렸다. 드디어 발표가 끝났고 우리는 한시름 놓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정말 뜻 깊었다.
[영어로 하는 데일리 미팅]
우리는 첫째 날부터 데일리 미팅을 했었는데 영어로 진행했었다. 하루를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는데 영어로 말하는 게 두렵고 어려운 우리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나는 항상 첫 번째로 말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 그에 대한 나의 생각, 느낌, 나중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대충의 계획까지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데일리 미팅 시간이 너무 기다려 졌다. 멤버들과 도란도란 짜이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우리 조의 5명 중 3명은 한국인이어서 우리끼리 한국말로 많이 얘기했었다. 사실 한국 사람끼리 잘 되지 않는 영어로 얘기하는 건 너무 어렵고 낯 간지러운 일이라 우리끼리 워크캠프 끝나고 같이 할 여행 계획에 대해 한국어로 얘기했었는데 대만인 멤버 애나가 이점에 대해 서운하고 섭섭했는지 데일리 미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분명 워크캠프는 국제 봉사인데 한국어로 얘기하면 본인은 소외감이 든다고 했었다. 일단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고 솔직히 말해줘서 애나에게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함께 노력해서 고쳐가자고 했다. 그 후로 애나를 최대한 배려하여 잡답할 때도 영어를 쓰려고 노력했고 애나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속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인도 공화국 기념일]
워크캠프 기간에 공휴일이 껴있어서 안 그래도 2주 밖에 안 되는 캠프가 더 짧아 졌다. 하지만 우리는 소수 정예! 리더 바라시는 우리의 색다른 경험을 위해 아우랑가바드 근처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잔타, 엘로라 석굴을 여행할 것을 제안했다. 인도에는 여러 공휴일이 있는 데 인도 공화국 기념일은 인도 전역에서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어서 3일동안 지속되었다. 일단 공휴일 첫째 날에는 아잔타보단 비교적 아우랑가바드에서 가까운 엘로라에 갔다. 지프차를 빌려 갔는데 9인승인데 15명이 타고 가는 진귀한 풍경! 최대 30명 정도가 탈 수 있단다. 끼이고 끼여서 도착한 엘로라에는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동아시아에는 불교인들이 많아서 한국인 관광객도 꽤 많은 편이었다. 인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원숭이와도 인사를 나누고 첫 번째 동굴부터 보려고 갔다. 동굴을 깎아서 만든 절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을 깎아 기둥을 만들어 세운 게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다 깎아 들어가서 만들었다는 것, 또 기원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꽤 좋다는 것에 놀랐다. 인도에는 입이 딱 벌어지는 멋진 석굴과 조각들이 많은 것 같았다. 제일 유명한 16번 동굴로 들어가서 멋진 석탑도 구경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안 그래도 힘든 일정을 더 힘들게 한 요인들이 있었다. 국경일을 맞이하여 놀러온 인도인들!! 특히 남자들!!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들이대는 데 처음에는 내가 연예인 된 것 같고 기분이 좋았었다. 하지만 점점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듯이 쳐다보고 진로를 방해하고 은근히 성추행 같은 것도 시도했다. 인도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많이 낮다고 하는 데 너무 짜증이 나고 싫었다. 게다가 같이 찍어준 사진도 안 좋을 곳에 쓰일 수 있다고 하여 더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호의와 환영의 의미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여자였고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엘로라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인도에서는 승차감 따위 바라지도 않지만 버스 운전과 교통체증이 안 그래도 멀미가 심한 나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공휴일 첫째 날은 매우 힘들었다.
[다울라따바드]
둘째 날은 진짜 Republic day였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기념일 축하를 아이들과 함께 했다. 인도 사람들은 참 예쁜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새삼 느낀 게 국기를 게양할 때 계양기 아래에도 색색의 모레로 예쁜 그림을 그렸다. 항상 환영의 의미로 꽃을 전달해 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마하라슈트라 노래와 국가를 연달아 불렀다. 모든 게 다 끝나고 우리는 아우랑가바드의 자랑스러운 관광지 다우라타바드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왕족이 머물렀던 성인데 아무래도 적의 침입을 막으려 했던지 매우 높은 지대에 있었다.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도시의 내음을 하나도 맡지 못할 정도로 주변은 광활한 평지와 산으로 덮여 있었다.
공휴일인지라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인도인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모여드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성을 올라가는 길도 험난한데 사람들이 더 몰려 들어 무서웠다. 일단 사람들을 피해 안전하게 오르려 했다. 중간 중간 목마르고 배고플 때 리더가 사준 라임과 오렌지를 먹었다. 오렌지는 한국에도 많기 때문에 큰 감흥은 없었지만 한국에서 라임을 먹지는 않기 때문에 인도의 라임 맛이 너무 궁금했다. 인도에서는 라임을 그냥 먹지 않고 주스로 해서 먹거나 마살라 같은 향신료를 뿌려서 먹는데 리더가 사온 라임에는 고추 기름과 향신료가 뿌려져 있는 듯 했다. 우리 멤버들은 향신료와 고추기름 때문에 많이 먹지 못했는데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향신료와 고추기름에 쩔은 부분도 맛있지만 껍질에 가까운 부분도 달고 맛있었다. 오렌지 보다 훨씬 달고 맛있어서 성에 오르는 중간에 앉아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잊고 맛있게 먹었다. 힘들게 올라간 성의 정상에는 성 아래의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그곳에서 멋있는 풍경과 함께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 사람들은 너무 붐벼서 피곤함이 두 배였지만 멋있는 풍경과 맛있는 과일과 함께 한 다울라따바드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잔타]
불교인들의 성지로 어쩌면 엘로라 보다 유명하고 큰 아잔타는 공휴일 마지막 날에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왕복 6~7시간이 걸리는 지라 여행사에 부탁해서 거금을 내고 투어를 신청했다. 버스의 시설은 한국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인도에서는 훌륭한 편이었다. 그리고 가이드까지 포함된 가격이라 맘에 들었다. 가이드를 다 알아 들을 순 없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가서 무지하게 후회 하게 될 줄이야……. 일단 아잔타도 석굴이어서 올라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석굴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1100년 동안 감춰져 있다가 사냥 중이던 영국 군인에 의해 발견 되었다고 한다. 공휴일인지라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는 데 가이드가 우리를 다 통솔하느라 힘들어 보였다. 자리를 잡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려 했으나 이건 뭐 미국영어도 아니고 영국 영어도 아니고 필리핀 영어도 아니고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발음이었다. 우리 멤버 중 한 명은 일찌감치 가이드의 설명을 포기하고 편한 자리에 앉아 혼자 감상하고 있었다. 유럽 여행을 했을 때처럼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인도의 역사를 함께 이해하려고 했으나 무리였다. 그래도 멋있는 벽화와 조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잔타의 가장 유명한 누워있는 석가모니상은 정말 멋지기도 했지만 웃는 듯 살짝 미소 지은 부처의 모습을 보니 경이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힘들게 올라간 길을 힘들게 내려와서 버스 타는 곳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관광지 근처에서는 식사 하지 말라는 여행객들의 말들이 틀리지 않았다. 비싸기만 엄청 비싸고 정말 맛 없었다. 모든 일정을 다 끝내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 왔는 데 차가 많이 막혀서 예상시간 보다 많이 늦었지만 삼일 동안 참 알찬 여행을 해서 보람차긴 했었다.
[결혼식]
인도 봉사 기관인 FSL의 멤버의 초대를 받아 상류층 결혼식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우리는 공휴일 전에 공휴일 때 입을 펀자비 드레스를 미리 사둬서 결혼식 때 약간의 화장을 하고 펀자비 드레스를 입고 갔다.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져서 총 7일 동안 열리게 되었다. 나름 꾸미고 간다고 갔는데 우리만 펀자비 드레스를 입고 다른 하객들은 모두 화려한 사리와 액세서리로 치장했다. 왠지 기가 조금 죽는 느낌이었지만 신기한 마음으로 그들의 결혼식을 구경했다. 결혼식은 솔직히 조금 지루했다. 중간에 색을 예쁘게 입힌 쌀알을 예비 부부에게 던지며 축하를 빌기도 하였다. 점심 시간이 되어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굉장히 많고 고급인 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인도 결혼식에는 외국인이 축하해주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해서 예쁘고 잘생긴 신랑 신부와 사진도 찍었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로터리 클럽 초대]
아우랑가바드의 최초 외국인 봉사자인 우리는 정말 많은 곳에서 초대를 받았다. 로터리 클럽에서 우리를 초대해서 별 하나짜리 호텔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전에 그들은 그들의 나라인 칠레에 대해 설명했고 칠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빈대에 고생하는 중에 일 성급 호텔에서 식사를 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웨스턴 스타일로 서서 식사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때도 고단했던 지라 배가 고파 구석에 앉아서 많은 음식을 먹었다. 특히!! 근 2주 동안 먹지 못했던 고기가 있어서 눈이 뒤집혀 가며 먹었다. 리더는 스페인에서 1년을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어에 능숙했다. 그래서 칠레 사람들과 조금 더 친근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조금 나눴는데 그들도 우리도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쉽게 친해지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한 분은 화공 엔지니어였는 데 우리를 위한 칠레 기념품을 선물로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같이 기념 사진도 찍고 우리를 위해 늦은 저녁에 차도 태워 보내주셨다. 인도에서 사기 당한 경험이 너무 많아 안 좋은 인식만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영광이었다.
[인도 가정집 방문]
로터리 클럽에서 만난 커플이 한 쌍 있었는데 우리가 봉사 활동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해서 학교에 왔었다. 봉사활동을 지켜보던 그들은 아우랑가바드의 가장 유명한 쇼핑몰 프로존 몰에 우릴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인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화인 ‘레이스2’를 보기 위해 예매를 하고 아주 아주 오랜만에 피자를 먹었다. 인도식 피자긴 했어도 너무 맛있었다. 나는 빈대약을 꾸준히 먹었어야 했으나 약을 숙소에 두고 와서 숙소에 잠깐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그 인도인 커플이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프로존 몰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탔는데 인도라 그런지 더욱 무섭긴 했어도 그들의 친절함에 너무 감사했다. 프로존 몰에서 레이스2를 보았다. 인도에서 전작이 꽤 성공했던 지라 후속편도 잘 나가고 있었다. 비록 힌디로 봤지만 객석의 사람들 덕분에 대충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고 보았다. 그리고 신기했던 건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사람들은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우리를 프로존몰에 데려다 주었던 커플의 초대를 받아 여자친구분의 집에 가보았다. 서민층이라고 들었는데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우리나라 7~80년 대 정겨운 시골의 모습과 같았다. 배달음식을 하는 집이라 식당처럼 가족 분들이 바쁘셨다. 그 와중에도 봉사 활동하러 온 외국인인 우리에게 맛있는 짜파티와 커리, 여러 디저트 등을 준비해 주셔서 참 잘 먹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환영의 의미로 꽃과 빈디와 같이 미간 사이에 빨간 분을 칠해 주셨다. 그리고 예쁜 지갑도 선물로 받았다. 우리는 준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받기만 해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나서 바로 남자친구의 집에도 초대를 받았다. 여자친구와는 대조적으로 집이 매우 근사했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집안에서는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지 마세요.” 우리는 깨달았다. 이들은 신분차이가 있었고 남자 쪽 부모님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일단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겨주시는 그의 부모님과 대리석으로 예쁘게 장식된 실내 형 사원도 구경하고 방 이곳 저곳과 옥상의 멋진 야경 뷰도 감상했다. 그는 아우랑가바드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에 우릴 데려가서 맛있는 장미 아이스크림을 맛보게 해 주었다. 정말 맛있어서 비행기 내로 싸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향긋한 장미내음에 정말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이날 하루는 정말 신기하고 고맙고 여러 체험을 많이 해볼 수 있는 너무도 뜻 깊고 흥미로웠던 날이었다.
[외국인 봉사자 자격으로 신문에 나오다]
아우랑가바드에 외국인 봉사자는 우리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봉사 활동 단체 멤버들도 와서 우릴 환영해 주고 대접해 주었다. 어느날 리더가 말했다. 마하라슈트라 주 신문에서 우릴 인터뷰 하기 위해 올 거라고 했다. 그날 저녁 짧은 인터뷰를 나누고 다음날 아침에 사진을 찍으러 학교에 갈 것이라고 해서 흔쾌히 OK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에 분주하게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대충 인터뷰를 하고 페인트 칠하는 우리를 몇 번 찍어가서 신문에 나오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수업시간에 찾아와 다시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닌 가. 정말 폐인이었는데 최대한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했고 다음날 신문을 찾아본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좋은 DSLR카메라를 갖고 우리를 정말 일에 찌든 노동자처럼 찍다니….. 우린 패닉에 빠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서로 웃었다. 마라띠로 써있어서 리더도 내용을 잘 못 읽는다고 했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본 결과 인터뷰한 내용과 우리의 신상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참된 의미]
2주는 참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빈대와 물갈이에 시달릴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 눈물이 났다. 아이들은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한국에 있으면서도 봉사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물질적 지원이 그들에게 더 큰 도움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물질적 지원마저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없었다. 봉사활동을 그저 누군가를 돕는, 내가 손해 보지만 그래도 해외 경험을 위해 하는 것 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선뜻하고자 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다녀와서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등교해 풀조차 잘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꽃을 꺾어 우리에게 주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하고 한번이라도 더 만지고 놀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내가 느낀 건 이해관계가 아닌 순수한 관계도 존재하며, 그 속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그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그들이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위해 그 추억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많은 추억들도 생겼다. 나는 그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그리워하지만 그들은 내 사진이 없어서 우리를 잊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다면 그거야 말로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도 그리고 친절했던 우리 리더, 선생님, 로터리 클럽 멤버 등 함께 했던 나날을 영원히 간직해 주길 바랄 뿐이다.
워크캠프 기간에 공휴일이 껴있어서 안 그래도 2주 밖에 안 되는 캠프가 더 짧아 졌다. 하지만 우리는 소수 정예! 리더 바라시는 우리의 색다른 경험을 위해 아우랑가바드 근처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잔타, 엘로라 석굴을 여행할 것을 제안했다. 인도에는 여러 공휴일이 있는 데 인도 공화국 기념일은 인도 전역에서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어서 3일동안 지속되었다. 일단 공휴일 첫째 날에는 아잔타보단 비교적 아우랑가바드에서 가까운 엘로라에 갔다. 지프차를 빌려 갔는데 9인승인데 15명이 타고 가는 진귀한 풍경! 최대 30명 정도가 탈 수 있단다. 끼이고 끼여서 도착한 엘로라에는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동아시아에는 불교인들이 많아서 한국인 관광객도 꽤 많은 편이었다. 인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원숭이와도 인사를 나누고 첫 번째 동굴부터 보려고 갔다. 동굴을 깎아서 만든 절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을 깎아 기둥을 만들어 세운 게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다 깎아 들어가서 만들었다는 것, 또 기원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꽤 좋다는 것에 놀랐다. 인도에는 입이 딱 벌어지는 멋진 석굴과 조각들이 많은 것 같았다. 제일 유명한 16번 동굴로 들어가서 멋진 석탑도 구경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안 그래도 힘든 일정을 더 힘들게 한 요인들이 있었다. 국경일을 맞이하여 놀러온 인도인들!! 특히 남자들!!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들이대는 데 처음에는 내가 연예인 된 것 같고 기분이 좋았었다. 하지만 점점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듯이 쳐다보고 진로를 방해하고 은근히 성추행 같은 것도 시도했다. 인도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많이 낮다고 하는 데 너무 짜증이 나고 싫었다. 게다가 같이 찍어준 사진도 안 좋을 곳에 쓰일 수 있다고 하여 더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호의와 환영의 의미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여자였고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엘로라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인도에서는 승차감 따위 바라지도 않지만 버스 운전과 교통체증이 안 그래도 멀미가 심한 나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공휴일 첫째 날은 매우 힘들었다.
[다울라따바드]
둘째 날은 진짜 Republic day였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기념일 축하를 아이들과 함께 했다. 인도 사람들은 참 예쁜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새삼 느낀 게 국기를 게양할 때 계양기 아래에도 색색의 모레로 예쁜 그림을 그렸다. 항상 환영의 의미로 꽃을 전달해 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마하라슈트라 노래와 국가를 연달아 불렀다. 모든 게 다 끝나고 우리는 아우랑가바드의 자랑스러운 관광지 다우라타바드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왕족이 머물렀던 성인데 아무래도 적의 침입을 막으려 했던지 매우 높은 지대에 있었다.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도시의 내음을 하나도 맡지 못할 정도로 주변은 광활한 평지와 산으로 덮여 있었다.
공휴일인지라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인도인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모여드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성을 올라가는 길도 험난한데 사람들이 더 몰려 들어 무서웠다. 일단 사람들을 피해 안전하게 오르려 했다. 중간 중간 목마르고 배고플 때 리더가 사준 라임과 오렌지를 먹었다. 오렌지는 한국에도 많기 때문에 큰 감흥은 없었지만 한국에서 라임을 먹지는 않기 때문에 인도의 라임 맛이 너무 궁금했다. 인도에서는 라임을 그냥 먹지 않고 주스로 해서 먹거나 마살라 같은 향신료를 뿌려서 먹는데 리더가 사온 라임에는 고추 기름과 향신료가 뿌려져 있는 듯 했다. 우리 멤버들은 향신료와 고추기름 때문에 많이 먹지 못했는데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향신료와 고추기름에 쩔은 부분도 맛있지만 껍질에 가까운 부분도 달고 맛있었다. 오렌지 보다 훨씬 달고 맛있어서 성에 오르는 중간에 앉아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잊고 맛있게 먹었다. 힘들게 올라간 성의 정상에는 성 아래의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그곳에서 멋있는 풍경과 함께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 사람들은 너무 붐벼서 피곤함이 두 배였지만 멋있는 풍경과 맛있는 과일과 함께 한 다울라따바드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잔타]
불교인들의 성지로 어쩌면 엘로라 보다 유명하고 큰 아잔타는 공휴일 마지막 날에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왕복 6~7시간이 걸리는 지라 여행사에 부탁해서 거금을 내고 투어를 신청했다. 버스의 시설은 한국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인도에서는 훌륭한 편이었다. 그리고 가이드까지 포함된 가격이라 맘에 들었다. 가이드를 다 알아 들을 순 없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가서 무지하게 후회 하게 될 줄이야……. 일단 아잔타도 석굴이어서 올라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석굴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1100년 동안 감춰져 있다가 사냥 중이던 영국 군인에 의해 발견 되었다고 한다. 공휴일인지라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는 데 가이드가 우리를 다 통솔하느라 힘들어 보였다. 자리를 잡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려 했으나 이건 뭐 미국영어도 아니고 영국 영어도 아니고 필리핀 영어도 아니고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발음이었다. 우리 멤버 중 한 명은 일찌감치 가이드의 설명을 포기하고 편한 자리에 앉아 혼자 감상하고 있었다. 유럽 여행을 했을 때처럼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인도의 역사를 함께 이해하려고 했으나 무리였다. 그래도 멋있는 벽화와 조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잔타의 가장 유명한 누워있는 석가모니상은 정말 멋지기도 했지만 웃는 듯 살짝 미소 지은 부처의 모습을 보니 경이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힘들게 올라간 길을 힘들게 내려와서 버스 타는 곳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관광지 근처에서는 식사 하지 말라는 여행객들의 말들이 틀리지 않았다. 비싸기만 엄청 비싸고 정말 맛 없었다. 모든 일정을 다 끝내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 왔는 데 차가 많이 막혀서 예상시간 보다 많이 늦었지만 삼일 동안 참 알찬 여행을 해서 보람차긴 했었다.
[결혼식]
인도 봉사 기관인 FSL의 멤버의 초대를 받아 상류층 결혼식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우리는 공휴일 전에 공휴일 때 입을 펀자비 드레스를 미리 사둬서 결혼식 때 약간의 화장을 하고 펀자비 드레스를 입고 갔다.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져서 총 7일 동안 열리게 되었다. 나름 꾸미고 간다고 갔는데 우리만 펀자비 드레스를 입고 다른 하객들은 모두 화려한 사리와 액세서리로 치장했다. 왠지 기가 조금 죽는 느낌이었지만 신기한 마음으로 그들의 결혼식을 구경했다. 결혼식은 솔직히 조금 지루했다. 중간에 색을 예쁘게 입힌 쌀알을 예비 부부에게 던지며 축하를 빌기도 하였다. 점심 시간이 되어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굉장히 많고 고급인 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인도 결혼식에는 외국인이 축하해주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해서 예쁘고 잘생긴 신랑 신부와 사진도 찍었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로터리 클럽 초대]
아우랑가바드의 최초 외국인 봉사자인 우리는 정말 많은 곳에서 초대를 받았다. 로터리 클럽에서 우리를 초대해서 별 하나짜리 호텔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전에 그들은 그들의 나라인 칠레에 대해 설명했고 칠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빈대에 고생하는 중에 일 성급 호텔에서 식사를 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웨스턴 스타일로 서서 식사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때도 고단했던 지라 배가 고파 구석에 앉아서 많은 음식을 먹었다. 특히!! 근 2주 동안 먹지 못했던 고기가 있어서 눈이 뒤집혀 가며 먹었다. 리더는 스페인에서 1년을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어에 능숙했다. 그래서 칠레 사람들과 조금 더 친근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조금 나눴는데 그들도 우리도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쉽게 친해지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한 분은 화공 엔지니어였는 데 우리를 위한 칠레 기념품을 선물로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같이 기념 사진도 찍고 우리를 위해 늦은 저녁에 차도 태워 보내주셨다. 인도에서 사기 당한 경험이 너무 많아 안 좋은 인식만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영광이었다.
[인도 가정집 방문]
로터리 클럽에서 만난 커플이 한 쌍 있었는데 우리가 봉사 활동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해서 학교에 왔었다. 봉사활동을 지켜보던 그들은 아우랑가바드의 가장 유명한 쇼핑몰 프로존 몰에 우릴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인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화인 ‘레이스2’를 보기 위해 예매를 하고 아주 아주 오랜만에 피자를 먹었다. 인도식 피자긴 했어도 너무 맛있었다. 나는 빈대약을 꾸준히 먹었어야 했으나 약을 숙소에 두고 와서 숙소에 잠깐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그 인도인 커플이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프로존 몰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탔는데 인도라 그런지 더욱 무섭긴 했어도 그들의 친절함에 너무 감사했다. 프로존 몰에서 레이스2를 보았다. 인도에서 전작이 꽤 성공했던 지라 후속편도 잘 나가고 있었다. 비록 힌디로 봤지만 객석의 사람들 덕분에 대충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고 보았다. 그리고 신기했던 건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사람들은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우리를 프로존몰에 데려다 주었던 커플의 초대를 받아 여자친구분의 집에 가보았다. 서민층이라고 들었는데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우리나라 7~80년 대 정겨운 시골의 모습과 같았다. 배달음식을 하는 집이라 식당처럼 가족 분들이 바쁘셨다. 그 와중에도 봉사 활동하러 온 외국인인 우리에게 맛있는 짜파티와 커리, 여러 디저트 등을 준비해 주셔서 참 잘 먹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환영의 의미로 꽃과 빈디와 같이 미간 사이에 빨간 분을 칠해 주셨다. 그리고 예쁜 지갑도 선물로 받았다. 우리는 준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받기만 해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나서 바로 남자친구의 집에도 초대를 받았다. 여자친구와는 대조적으로 집이 매우 근사했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집안에서는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지 마세요.” 우리는 깨달았다. 이들은 신분차이가 있었고 남자 쪽 부모님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일단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겨주시는 그의 부모님과 대리석으로 예쁘게 장식된 실내 형 사원도 구경하고 방 이곳 저곳과 옥상의 멋진 야경 뷰도 감상했다. 그는 아우랑가바드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에 우릴 데려가서 맛있는 장미 아이스크림을 맛보게 해 주었다. 정말 맛있어서 비행기 내로 싸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향긋한 장미내음에 정말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이날 하루는 정말 신기하고 고맙고 여러 체험을 많이 해볼 수 있는 너무도 뜻 깊고 흥미로웠던 날이었다.
[외국인 봉사자 자격으로 신문에 나오다]
아우랑가바드에 외국인 봉사자는 우리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봉사 활동 단체 멤버들도 와서 우릴 환영해 주고 대접해 주었다. 어느날 리더가 말했다. 마하라슈트라 주 신문에서 우릴 인터뷰 하기 위해 올 거라고 했다. 그날 저녁 짧은 인터뷰를 나누고 다음날 아침에 사진을 찍으러 학교에 갈 것이라고 해서 흔쾌히 OK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에 분주하게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대충 인터뷰를 하고 페인트 칠하는 우리를 몇 번 찍어가서 신문에 나오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수업시간에 찾아와 다시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닌 가. 정말 폐인이었는데 최대한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했고 다음날 신문을 찾아본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좋은 DSLR카메라를 갖고 우리를 정말 일에 찌든 노동자처럼 찍다니….. 우린 패닉에 빠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서로 웃었다. 마라띠로 써있어서 리더도 내용을 잘 못 읽는다고 했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본 결과 인터뷰한 내용과 우리의 신상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참된 의미]
2주는 참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빈대와 물갈이에 시달릴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 눈물이 났다. 아이들은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한국에 있으면서도 봉사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물질적 지원이 그들에게 더 큰 도움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물질적 지원마저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없었다. 봉사활동을 그저 누군가를 돕는, 내가 손해 보지만 그래도 해외 경험을 위해 하는 것 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선뜻하고자 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다녀와서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등교해 풀조차 잘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꽃을 꺾어 우리에게 주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하고 한번이라도 더 만지고 놀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내가 느낀 건 이해관계가 아닌 순수한 관계도 존재하며, 그 속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그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그들이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위해 그 추억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많은 추억들도 생겼다. 나는 그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그리워하지만 그들은 내 사진이 없어서 우리를 잊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다면 그거야 말로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도 그리고 친절했던 우리 리더, 선생님, 로터리 클럽 멤버 등 함께 했던 나날을 영원히 간직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