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낯섦을 넘어선 설렘
Journalism and photography – Reykjavi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친구들로부터 아이슬란드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친숙하지 않았던 아이슬란드. 그렇지만 꼭 가고 싶은 나라에 관해 이야기할 때 외국친구들의 입에서 항상 나오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아이슬란드였다. 지리적으로 아이슬란드는 그린란드보다도 한국과 가까이 있는데도 심리적 거리는 낯설게 느껴졌었다. 친구들이 아이슬란드에 대해 갖고 있는 로망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슬란드란 나라가 궁금해졌었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아이슬란드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또한 교환학생을 오기 전 워크캠프에 참여했었던 친구가 워크캠프를 통해 정말 보람찬 경험을 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며 기회가 되면 워크캠프에 참가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친구의 추천을 통해 워크캠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때 이후로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었지만 워크캠프 하나 때문에 항공권을 구입하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았었다. 이번 학기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유럽에 나와 있을 때 워크캠프를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들어갔던 때가 1월말에서 2월초였던 것 같은데 때마침 아이슬란드 워크캠프가 모집 중이었고, <저널리즘 앤 포토그래피>라는 프로그램과 내가 공부하고 있는 전공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지원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인포싯에서 UNA 잡지에 관한 설명이 거의 없어서 어떤 잡지인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슬란드에 살지 않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2주라는 짧은 기간에 만드는 잡지라고 생각했을 때 전문성을 요하는 작업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어떤 이유 때문에 선택했을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아이슬란드 행 비행기를 탔다. 아이슬란드 공항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는데 운전 기사 분께서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셔서 정말 감사했었다. 그리고 미니버스로 갈아타기 전 공항버스에 내 슬리핑 백을 두고 내린 것을 미니버스를 타고 나서야 알게 되어서 미니버스 기사 분께 버스를 세워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출발 후 세울 수가 없다고 하셨고 대신 다음날 슬리핑백을 찾아 주겠다고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셨다. 워크캠프 숙소에 도착해서 다른 팀 리더들을 만났고, 핸드폰이 없어서 전화를 빌릴 수 없겠냐고 물었는데 쓸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기사 분께 직접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 운전 기사 분께서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 슬리핑백을 직접 가져다 주셔서 정말 감동받았었고, 아이슬란드 사람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워크캠프 시작일 슬리핑백도 찾고 헝가리인 팀 리더들과 참가자들을 만났다. 다양한 나라의 구성원들이 있었고 한국인 언니도 한 명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참가비를 내고 블루하우스의 4층을 쓰게 되었는데 먼지가 둥둥 떠다니고 쓰레기들이 침대 옆에 굴러다녔고 싱크대는 더러운 그릇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화장실은 단 두 개였고 한쪽 샤워실은 물이 너무 쉽게 막혀서 다른 한 쪽 화장실에서만 샤워를 해야 했다. 사실 숙소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정도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심각했다. 워크캠프 참가 전 받은 메일에 월드와이드프렌즈88(호스텔명)에 관한 설명에는 물가 비싼 레이캬빅에서 하루에 15유로의 좋은 호스텔이라고 나와있다. 이 호스텔이 돈을 받지 않았다면 만족했겠지만 현지 참가비 180유로에서 일정부분이 숙박비임을 고려한다면 몹시 불만족스러운 환경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각자 원하는 침대를 정했다. 팀원들끼리 다시 모이자 리더 두 명이 노트북을 가져온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손을 든 사람은 나 한 명뿐이었다. 인포싯에 가져와야 할 품목에 노트북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노트북을 가져온 사람이 나밖에 없자 리더들 표정이 굳으면서 왜 노트북을 가져오지 않았냐고 했다. 다음날 리더들은 각자 한 명씩 기사를 쓰고 컴퓨터가 한 대 밖에 없으니 예쁜 손 글씨를 써서 스캔을 하자고 했다. 순간 중학교 때 만들던 학급 문집이 생각났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리더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UNA 잡지에 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리더에게 UNA가 대체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여자 이름이야.’라고 대답했다. 어떤 여자냐고 다시 물었더니 ‘글쎄 우리도 몰라’ 라고 말했다. 아이슬란드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의 워크캠프를 2주씩 맡고 있기 때문에 모든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알고 있기는 분명 힘들 것이다. 그러나 리더는 참가 프로그램이 무엇인지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참가자들에게 전달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끝까지 UNA매거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내 페이지를 완성해야만 했다. 리더들이 UNA의 뜻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들이 이번 프로그램을 처음 맡은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저널리즘 앤 포토그래피>라는 프로그램은 여러 번 맡았었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지난 잡지가 아직도 미완으로 발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리더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자 리더는 다른 일 때문에 저녁식사 할 때 빼고는 잘 보이지 않아서 거의 남자 리더 혼자서 참가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통해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많은 경비를 줄일 수 있었지만, 국내 워크캠프 기구와 해외 프로그램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워크캠프를 통해 좀 더 보람찬 일을 하지 못해 아쉬웠고, 워크캠프 기구에서 단지 프로그램과 참가자를 맺어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는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참여자들이 좀 더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