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간다, 삶의 깊이를 배우다
International workcamp on Construction of Bethesda International Health Centre IV -Kagoma Branch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이번 워크캠프는 나의 3번째 캠프였고, 우간다는 내 인생에 있어 첫 아프리카 나라이자, 28번째 국가였다. 그동안 다양한 해외 경험을 쌓으면서 느꼈던 캠프의 장점때문에 이번에도 고심끝에 참가를 결정하였는데, 내가 말하는 이 캠프의 장점은 바로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느끼는 그들의 삶이었다. 여행으로 볼 수 있는 현지인들의 삶과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느끼는 그들의 이야기는 깊이가 다르고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그들이 생활하는 것의 일체(음식,잠,식사방법,생활 모습 등)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좋은 장점들을 고려해 내가 계획한 여행의 앞부분에 넣어 아프리카에 적응할 수 있는 적응기로 두고, 그들의 언어를 먼저 배우고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참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봉사활동은 2가지 팀을 나누어 번갈아가면서 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는데 하나는 쿠킹이었고 둘은 워킹팀이었다. 쿠킹팀은 하루 3끼를 준비하고 치우는 것을 맡고 워킹팀은 헬스케어센터를 짓는일을 하였는데 날씨가 더운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지나칠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사실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트레이닝을 너무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음식에서 벌레가 나오는 일반적(?)인 것들과 캠프기간내내 점심으로 콩죽을 먹은 것 등도 못견딜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의 열악한 상황을 마치 대변이라도 하듯이 헬스케어센터건물은 날이갈수록 완성체에 가깝게 완료되어갔다. 사실 인테리어나 특별한 기술적인 부분은 거의 없이, 네모의 벽돌건물에 지붕만 있는 그런 건물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2~3일 간격으로 하는 일이 바뀌었는데 도랑을 파고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고 문을 달고 하는 일 등이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난사나라고 하는 캄팔라 외곽쪽의 도시였는데,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수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수도와 30분밖에 거리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매우 정겹고 다정하였다. 서양인들보다 동양인 특히나 한국사람들은 더더욱 볼 수가 없기때문에 늘 관심의 대상이었고 나와 함께하는 것을 즐겁게 여겼다. 캠프에서는 네덜란드 남자 둘과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우간다 청년 10명으로 이루어 졌는데 각자가 섞여서 조화롭게 일을 진행하여 특별한 문제가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캠프파이어를 피워놓고 음악과 춤을 추며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 하였기 때문에 힘든환경속에서도 아프리카인들의 즐기는 그런 모습들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일했던 곳은 난사나라고 하는 캄팔라 외곽쪽의 도시였는데,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수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수도와 30분밖에 거리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매우 정겹고 다정하였다. 서양인들보다 동양인 특히나 한국사람들은 더더욱 볼 수가 없기때문에 늘 관심의 대상이었고 나와 함께하는 것을 즐겁게 여겼다. 캠프에서는 네덜란드 남자 둘과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우간다 청년 10명으로 이루어 졌는데 각자가 섞여서 조화롭게 일을 진행하여 특별한 문제가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캠프파이어를 피워놓고 음악과 춤을 추며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 하였기 때문에 힘든환경속에서도 아프리카인들의 즐기는 그런 모습들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사실 이번 아프리카 캠프는 나에게 예상치 못한 좋은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보통 캠프를 하게 되면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과 우정을 쌓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돈독해지고, 그 사이에 작은 인간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큰 탈이 없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우간다에서 캠프를 하면서 네덜란드 참가자와 한국참가자들의 물건들과 돈이 수차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그것이 캠프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실수였는지 수시로 들락거리는 외부인들의 소행이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캠프에 집중을 할 수 없게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현지 참가자들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왜냐면 모두가 믿고 가야하는 공동체 조직에서 누군가의 물건이 사라졌다는 것은 공동체의 와해의 가장 쉬운 원인이 될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건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옆에있었던 현지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게되어서 결국 나의 이런 판단은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마치 내가 그들을 범인으로 생각하지만 위선을 떠는 것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느끼는 배신감과 좌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간에 오해가 될만한 일을 커지기 전에 공론화 하지 않은 나의 책임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경험에 대한 자만심, 즉 한국에서 수차례의 리더 경험으로 인한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 캠프는 자신이 가진 경험에도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는 점을 크게 깨달았다는 점에서 나에게 매우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가진 리더로서의 경험들과 사람과 사람간에 겪을 수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한 경험에 큰 문제의식이 없이 지내왔다는 것을 이번캠프를 통해 깨달았다. 정확하지 않은 사실로 인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나의 대의적인 생각조차도, 외국인으로서 또한 팀원으로서의 나의 지위를 망각한채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번 캠프는 '나'라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주춧돌을 다시한번 손보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현지 참가자들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왜냐면 모두가 믿고 가야하는 공동체 조직에서 누군가의 물건이 사라졌다는 것은 공동체의 와해의 가장 쉬운 원인이 될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건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옆에있었던 현지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게되어서 결국 나의 이런 판단은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마치 내가 그들을 범인으로 생각하지만 위선을 떠는 것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느끼는 배신감과 좌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간에 오해가 될만한 일을 커지기 전에 공론화 하지 않은 나의 책임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경험에 대한 자만심, 즉 한국에서 수차례의 리더 경험으로 인한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 캠프는 자신이 가진 경험에도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는 점을 크게 깨달았다는 점에서 나에게 매우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가진 리더로서의 경험들과 사람과 사람간에 겪을 수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한 경험에 큰 문제의식이 없이 지내왔다는 것을 이번캠프를 통해 깨달았다. 정확하지 않은 사실로 인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나의 대의적인 생각조차도, 외국인으로서 또한 팀원으로서의 나의 지위를 망각한채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번 캠프는 '나'라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주춧돌을 다시한번 손보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