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베를린, 상처를 품은 도시에서의 성찰
Berlin Spri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처음 알게 된건 2년전 런던에서 알게된 친구 소개로 알게 됐습니다. 저는 유학을 하고 있던 유학생이었고 그녀는 워크캠프하고 유럽 여행 계획한 친구 였습니다. 단순히 여행만 하는것도 아니고 단순히 일만 하는 것도 아닌, 다양한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매력에 마침 봄방학을 맞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소개가 갑자기 생각나서 자세하게 알아 보게 됐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1. 캠프소개
캠프는 제가 도착한 공항에서 멀지 않는 거리에 위치 했습니다. 시간 소요를 생각해보면 지하철 10분 전차 10분 기다리는 시간 10분에서 20분 대략 30,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전차에서 내리고 캠프까지 갈 때 약간 해 맸습니다. 숲 속에 있는 방갈로에 이기 때문에 일찍 도착하는, 최소한 해가 저물기 전에 도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인터넷이 지원 되지 않아 2주동안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조건을 본의 아니게 경험하게 되고, 마침 가져온 학교에서 가져온 자료를 토대로 시간 있을 때 마다 논문을 작성하기 했는데, 많이 진전이 되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여섯 명이 같은 한 방갈로에서 지내는데, 위생상태도 좋았고, 베를린 날씨가 추웠지만 방갈로 실내온도는 따듯했습니다. 키친, 다이닝 룸 등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강과 산림으로 어우러진 캠프 여름에 왔으면 많이 즐길 수 있었을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2. 함깨한 사람들
인원은 총 11명으로서, 세르비아, 이태리 친구 2명씩, 일본, 그루지아, 스페인, 우크라이나 각각 1명 그리고 저를 제외하고 한국 친구 1명이 워크캠프를 함께 했습니다. 영국에서 외국 친구들하고 지낸 지도 3년째 넘어가는데, 이들과 같이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첫 번째로는 언어장벽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각자의 나라에서 배운지라 제가 잘 못 알아 듣는 경우도 있고 친구들도 잘 못 알아는 경우 도 적지는 않아 나중에는 말 안 통하는 친구하고 이야기를 자주 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문화차이였습니다. 분명히 이 친구 한명이 그 국가를 성향, 문화를 대변한다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성격차이를 부딪히는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2.1우크라이나 친구는 모든 조원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적대감은 없지만, 그 친구는 작업이 보통 1시에 끝나면 점심 먹으면 1시 반 2시가 되면 혼자 베를린 시내로 나가서 밤 12시 되서 들어와서 작업외에 예를 들어 점심 저녁 식사 준비 장을 보러가는 작업 이외의 공동활동을 참여 하지 않고, 그 친구가 나갈 때 마다 장본 빵, 과일 몇 개씩 가져가는 조원들 눈에는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2.2세르비아 두 친구 는 제가 인터넷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네이버에서 세르비아를 먼저 찾아야 하는 궁금증을 만들어준 친구 입니다. 한 친구 이반이란 친구는 태권도를 좋아하는 친구로 남들이 보통 아는 안녕? 이라는 말보다 차렷 경례 등 태권도 용어 유래 한국의 역사를 알고 있는 친구 입니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친구 입니다. 숨김없이 지나치게 솔직한 친구 이기도 합니다. 일례를 들면, 제가 들고 있는 가방이 여성스럽다 같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도 하고 식빵에 잼하고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살라미를 올려 먹는게 이해가 안 된다 등등, 처음에는 뭐 이런 친구가 있어 저도 똑같이 대응 하니 불쾌 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게 돌+아이 같은 진국 같은 친구 이었습니다. 의사 소통하는 약간 어려움도 있었고, 할 말을 다하고 마지막엔 쿨 하지 못한 소심하게 “never mind~!” 주위 친구들에게 유행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2.3독일 친구 크리스는 우리 조의 리더이자. 그는 진정한 리더였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조원에게 세 개를 주고 두 개를 받는 거에 익숙해야 하고 한 개를 받는 것에 더욱 익숙해 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유일하게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친구였고 조원들이 그에게 많이 의지를 했고 그는 우리에게 실망시키지 않고 끝까지 캠프를 이끌어 갔습니다. 영어 또한 유창하게 잘하는 친구라서 어려움 없이 소통을 하고 제가 관심이 있는 독일의 역사 문화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4 이태리 친구 알렉산드로는, Dinner, Did you have a dinner? 라는 말을 이해 시키는데 10분이 걸렸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저를 다시 생각 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사진 찍는걸 좋아하는 친구 처음에는 취미로 다갔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step by step 6년전 영어 처음 공부했던 레벨로 돌아가서, 어휘도 예를 들면 Compulsory -> nessesary, dissertation -> school work 등 쉬운 단어들로 천천히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천천히 벽을 허물고 조원들의 뒷담화를 하며 많이 친해졌습니다.
3. 봉사활동
일은 대체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워크캠프가 3월 25일에 시작해서 4월 5일에 마무리가 했는데 캠프의 눈은 녹지 않고 숙소는 산림과 강을 끼고 있어 바람을 거세게 불어 날씨가 추워 대부분은 작업은 실외 작업 보다 실내작업을 자주 하게 됐습니다.
마치 군대시절 작업을 떠올리는 몇가지는, 작업을 지휘하는 마리나, 여자이지만, 카리스마 통솔력 리더쉽 군시절 부소대장님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각 방갈로에 있는 화장실 문을 때서 사포 질을 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둘 째 날에는 이층 침대 사다리를 잘라 다시 조립하고 다음날에는 창고에 있는 그네를 꺼내 사포 질로 색을 벗겨내어 다시 페인트 칠하는 작업 했습니다.
페인트 칠, 사포 질 같은 미세하고 섬세한 작업은 저의 성격상 조금 맞지 않아 제가 작업 했던 부분은 다른 친구가 다시 작업 했던 일 도 있었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게 됩니다. 작업 마지막 날에는 야외 작업을 했는데 일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웠습니다. 작업은 간단하게 캠프 내에 죽은 나무 가지 주어 크기 별로 분류 하는 작업이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추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캠프는 제가 도착한 공항에서 멀지 않는 거리에 위치 했습니다. 시간 소요를 생각해보면 지하철 10분 전차 10분 기다리는 시간 10분에서 20분 대략 30,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전차에서 내리고 캠프까지 갈 때 약간 해 맸습니다. 숲 속에 있는 방갈로에 이기 때문에 일찍 도착하는, 최소한 해가 저물기 전에 도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인터넷이 지원 되지 않아 2주동안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조건을 본의 아니게 경험하게 되고, 마침 가져온 학교에서 가져온 자료를 토대로 시간 있을 때 마다 논문을 작성하기 했는데, 많이 진전이 되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여섯 명이 같은 한 방갈로에서 지내는데, 위생상태도 좋았고, 베를린 날씨가 추웠지만 방갈로 실내온도는 따듯했습니다. 키친, 다이닝 룸 등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강과 산림으로 어우러진 캠프 여름에 왔으면 많이 즐길 수 있었을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2. 함깨한 사람들
인원은 총 11명으로서, 세르비아, 이태리 친구 2명씩, 일본, 그루지아, 스페인, 우크라이나 각각 1명 그리고 저를 제외하고 한국 친구 1명이 워크캠프를 함께 했습니다. 영국에서 외국 친구들하고 지낸 지도 3년째 넘어가는데, 이들과 같이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첫 번째로는 언어장벽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각자의 나라에서 배운지라 제가 잘 못 알아 듣는 경우도 있고 친구들도 잘 못 알아는 경우 도 적지는 않아 나중에는 말 안 통하는 친구하고 이야기를 자주 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문화차이였습니다. 분명히 이 친구 한명이 그 국가를 성향, 문화를 대변한다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성격차이를 부딪히는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2.1우크라이나 친구는 모든 조원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적대감은 없지만, 그 친구는 작업이 보통 1시에 끝나면 점심 먹으면 1시 반 2시가 되면 혼자 베를린 시내로 나가서 밤 12시 되서 들어와서 작업외에 예를 들어 점심 저녁 식사 준비 장을 보러가는 작업 이외의 공동활동을 참여 하지 않고, 그 친구가 나갈 때 마다 장본 빵, 과일 몇 개씩 가져가는 조원들 눈에는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2.2세르비아 두 친구 는 제가 인터넷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네이버에서 세르비아를 먼저 찾아야 하는 궁금증을 만들어준 친구 입니다. 한 친구 이반이란 친구는 태권도를 좋아하는 친구로 남들이 보통 아는 안녕? 이라는 말보다 차렷 경례 등 태권도 용어 유래 한국의 역사를 알고 있는 친구 입니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친구 입니다. 숨김없이 지나치게 솔직한 친구 이기도 합니다. 일례를 들면, 제가 들고 있는 가방이 여성스럽다 같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도 하고 식빵에 잼하고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살라미를 올려 먹는게 이해가 안 된다 등등, 처음에는 뭐 이런 친구가 있어 저도 똑같이 대응 하니 불쾌 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게 돌+아이 같은 진국 같은 친구 이었습니다. 의사 소통하는 약간 어려움도 있었고, 할 말을 다하고 마지막엔 쿨 하지 못한 소심하게 “never mind~!” 주위 친구들에게 유행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2.3독일 친구 크리스는 우리 조의 리더이자. 그는 진정한 리더였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조원에게 세 개를 주고 두 개를 받는 거에 익숙해야 하고 한 개를 받는 것에 더욱 익숙해 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유일하게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친구였고 조원들이 그에게 많이 의지를 했고 그는 우리에게 실망시키지 않고 끝까지 캠프를 이끌어 갔습니다. 영어 또한 유창하게 잘하는 친구라서 어려움 없이 소통을 하고 제가 관심이 있는 독일의 역사 문화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4 이태리 친구 알렉산드로는, Dinner, Did you have a dinner? 라는 말을 이해 시키는데 10분이 걸렸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저를 다시 생각 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사진 찍는걸 좋아하는 친구 처음에는 취미로 다갔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step by step 6년전 영어 처음 공부했던 레벨로 돌아가서, 어휘도 예를 들면 Compulsory -> nessesary, dissertation -> school work 등 쉬운 단어들로 천천히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천천히 벽을 허물고 조원들의 뒷담화를 하며 많이 친해졌습니다.
3. 봉사활동
일은 대체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워크캠프가 3월 25일에 시작해서 4월 5일에 마무리가 했는데 캠프의 눈은 녹지 않고 숙소는 산림과 강을 끼고 있어 바람을 거세게 불어 날씨가 추워 대부분은 작업은 실외 작업 보다 실내작업을 자주 하게 됐습니다.
마치 군대시절 작업을 떠올리는 몇가지는, 작업을 지휘하는 마리나, 여자이지만, 카리스마 통솔력 리더쉽 군시절 부소대장님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각 방갈로에 있는 화장실 문을 때서 사포 질을 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둘 째 날에는 이층 침대 사다리를 잘라 다시 조립하고 다음날에는 창고에 있는 그네를 꺼내 사포 질로 색을 벗겨내어 다시 페인트 칠하는 작업 했습니다.
페인트 칠, 사포 질 같은 미세하고 섬세한 작업은 저의 성격상 조금 맞지 않아 제가 작업 했던 부분은 다른 친구가 다시 작업 했던 일 도 있었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게 됩니다. 작업 마지막 날에는 야외 작업을 했는데 일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웠습니다. 작업은 간단하게 캠프 내에 죽은 나무 가지 주어 크기 별로 분류 하는 작업이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추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4. 베를린
우선 제가 가본 유럽국가들의 수도 런던과 파리와 베를린을 비교 할 때는 두 도시처럼 베를린은 화려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베를린은 상처를 많이 가진 도시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독일의 분단에 많은 정보를 알고 가지 못해 많은 궁금했던 점이 있습니다. 베를린은 동독 인데 동 베를린, 서 베를린으로 나누어져 영,프,미,소 분할 통치를 했던 점. 반면 분활 통치를 해야 할 국가는 일본인데 우리나라가 분리되어야 하는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내외 지도자들의 지나친 야망이 만들어진 모델이 아직도 분단된 한국이라면 서로의 용서와 화해가 만들어진 모델은 동,서독의 통일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독일의 통일의 과정을 끊임없이 배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베를린은 화려한 도시는 아니지만 근현대 역사적인 도시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부분별로 보존 되어 있고 동서 베를린을 통과 할 수 있는 Check point Charlie라는 검문소 베를린 돔에 총탄에 박힌 흔적들 동독에서 자유를 표현한 수많은 그래피티(graffiti)들 그외로 나치의 축전 베를린 올림픽 그리고 마지막 마라톤에 우승을 한 손기정선수 아쉽지만 그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있었던 아픔, 베를린은 역사 그 자체의 도시었습니다.
5. 참가 후 변화
저도 유학생이라, 영국친구들이라 그룹프로젝트도 참여한적도 있고 다른 나라 친구들하고 일도 해보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녀보고, 사실 영국에서는 영국 친구랑 같이 살고 있습니다. 본론은 외국 친구들과 지내는 게 낯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친구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점 설상가상 날씨도 좀처럼 따뜻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고. 학교 일도 마무리를 못하고 캠프참여 점, 여러 악조건들이 서로 겹쳐 모든 베를린 워크캠프가 전부 좋은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경험 이었습니다. 항상 좋은 기억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글로벌을 외치고 있지만, 세계화 다양성 (diversity)가 항상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킬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때론 좋지 않았던 기억이 더욱 자신을 둘러보게 되고 나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이었던, 2주 동안의 워크캠프가 좋은 경험 이었습니다.
처음 만나본 세르비아, 그루지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친구들과 2주 동안 같은 캠프에 살면서 부딪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워크캠프에 있는 작업도 개인의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업보다 협동심을 통해 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키우려는 의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하는 부분에서 영국에서 세미나 토론을 할 때 만큼 그런 영어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국 보다 더 서로 알아 듣지 못해 어려운 소통을 했었던 게 3년동안 난 무엇을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영어는 제가 평생 가져야 할 짐 같은 존재였습니다.
우선 제가 가본 유럽국가들의 수도 런던과 파리와 베를린을 비교 할 때는 두 도시처럼 베를린은 화려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베를린은 상처를 많이 가진 도시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독일의 분단에 많은 정보를 알고 가지 못해 많은 궁금했던 점이 있습니다. 베를린은 동독 인데 동 베를린, 서 베를린으로 나누어져 영,프,미,소 분할 통치를 했던 점. 반면 분활 통치를 해야 할 국가는 일본인데 우리나라가 분리되어야 하는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내외 지도자들의 지나친 야망이 만들어진 모델이 아직도 분단된 한국이라면 서로의 용서와 화해가 만들어진 모델은 동,서독의 통일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독일의 통일의 과정을 끊임없이 배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베를린은 화려한 도시는 아니지만 근현대 역사적인 도시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부분별로 보존 되어 있고 동서 베를린을 통과 할 수 있는 Check point Charlie라는 검문소 베를린 돔에 총탄에 박힌 흔적들 동독에서 자유를 표현한 수많은 그래피티(graffiti)들 그외로 나치의 축전 베를린 올림픽 그리고 마지막 마라톤에 우승을 한 손기정선수 아쉽지만 그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있었던 아픔, 베를린은 역사 그 자체의 도시었습니다.
5. 참가 후 변화
저도 유학생이라, 영국친구들이라 그룹프로젝트도 참여한적도 있고 다른 나라 친구들하고 일도 해보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녀보고, 사실 영국에서는 영국 친구랑 같이 살고 있습니다. 본론은 외국 친구들과 지내는 게 낯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친구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점 설상가상 날씨도 좀처럼 따뜻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고. 학교 일도 마무리를 못하고 캠프참여 점, 여러 악조건들이 서로 겹쳐 모든 베를린 워크캠프가 전부 좋은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경험 이었습니다. 항상 좋은 기억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글로벌을 외치고 있지만, 세계화 다양성 (diversity)가 항상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킬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때론 좋지 않았던 기억이 더욱 자신을 둘러보게 되고 나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이었던, 2주 동안의 워크캠프가 좋은 경험 이었습니다.
처음 만나본 세르비아, 그루지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친구들과 2주 동안 같은 캠프에 살면서 부딪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워크캠프에 있는 작업도 개인의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업보다 협동심을 통해 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키우려는 의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하는 부분에서 영국에서 세미나 토론을 할 때 만큼 그런 영어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국 보다 더 서로 알아 듣지 못해 어려운 소통을 했었던 게 3년동안 난 무엇을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영어는 제가 평생 가져야 할 짐 같은 존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