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물한 살, 용기 내 떠난 첫 해외 봉사

작성자 노경선
프랑스 CONC 036 · RENO 2012. 07 Saint-Pal de Mons

Saint-Pal de Mon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 나이 21살이 되도록 외국에 한번도 나가보지 못하고 여행이라고는 어릴 적에 제주도뿐이었다. 나는 단순히 외국으로 떠나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학과 홈페이지에서 ‘워크캠프’ 관련 글을 보게 되었다. ‘해외여행+봉사활동’ 이라는 환상적인 조합인 것이다! 게다가 봉사활동을 유럽에서도 할 수 있다고? 나는 고민할 게 없었다. 꼭 가고 싶었고 가야만 했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라는 생각뿐이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신청을 해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미팅포인트까지 알아서 찾아가야 하는 게 걱정되었지만 나 이외에 한국인이 한 명 더 있다는 걸 알고 그 언니와 연락을 해서 같이 갔다.
처음은 항상 그렇듯 서먹서먹하고 어색했다. 게다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들이었기 때문에 더했지만 나탈리라는 러시아친구가 늦게 도착하는 순간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붙임성이 좋고 엄청 밝고 재밌는 친구였다. 나는 친해질수록 알았다. 난 운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그 덕에 페이스북에 그룹까지 결성해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헤어지는 순간에 펑펑 울었던 게 기억난다. 다같이 모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Concordia는 제2차 세계대전 workcamp 자원 봉사자를 통해 관용과 평화를 위해 1950년에 설립 된 비영리 단체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여성명사로 ‘조화와 평화의 여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3주 동안 ‘Saint-Pal de Mons’이라는 마을에 있는 예배당 복구작업을 했다. 우리는 예배당의 내부 코팅을 벗겨내는 작업 도중에 돔에 그려진 고대 벽화를 발견하기도 했다. 작업도 작업이지만 예배당까지 가기가 힘들었었다. 산을 타야 했기 때문에 평생 할 운동을 몰아서 다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금세 적응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작업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했다. 아침에 일하러 갈 땐 차로 어느 정도 태워주기도 했고, 가끔씩 우리를 불러다가 음식들을 차려주기도 했다. 근처 슈퍼를 가더라도 친절히 대해줬다. 떠나기 전 날에는 마을 분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우리가 작업한 예배당을 구경했고 우리도 각 나라 음식을 조촐하게 준비해 대접했다. 이 때 한국음식은 재료도 없을뿐더러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수박화채를 준비했다. 사이다에 수박을 넣는다는 말에 모두들 놀라더라. 근데 다들 맛있게 먹어줬다.
3주 동안 저녁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서로 준비했다. 나와 언니는 불고기와 짜파게티를 준비했었다. 언니가 불고기를 쌈에 싸먹으면 맛있다고 해서 쌈도 같이 준비 헀었는데 너무들 맛있게 먹어서 뿌듯했다. 불고기 소스를 어떻게 만드냐는 질문도 많이 했다. 리더가 프랑스사람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음식은 심심찮게 먹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쌀보다 밀가루음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갈수록 매운 음식이 간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한국에서 사갔던 햇반에 볶음고추장을 발라먹을 땐 너무너무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아침9시부터 오후4시까지 작업을 했다. 작업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선 자유시간이었다. 이 때 다같이 게임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주로 카드게임을 했었다. 주말엔 다른 마을로 이동해서 마을축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춤추며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쓰면서 기억을 떠올리는 데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앞으로 방학마다 갈 계획을 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