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몽골, 나를 깨우는 여행의 시작
School-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휴학을 하고 승마를 배우다가 자연스레 몽골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신청한 워크캠프. 난생 처음인 해외여행에 그 전에 몽골이라는 국가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던 지라 사전 여행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정보를 얻는데 작은 어려움이 있었다. 심지어 서점에는 몽골에 관한 여행 책자도 없었기 때문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몽골 도착 첫 날, 한국에서 혼자 알아본 게스트 하우스에 자정이 넘어 도착을 하고 둘째 날, 인터넷과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부터 소매치기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를 들으면서 현지인인 척 나홀로 울란바타르 수도를 거닐고, 워크캠프 시작 일인 셋째 날, 미팅포인트를 찾지 못해 30분 가량 20키로가 넘는 여행가방을 매고 왔던 길을 2번이나 왕복한 뒤에야 다른 워크캠퍼들과 만날 수 있었다.
나머지 워크캠퍼들과 합류를 한 뒤 숙소에 가는 길에 몇몇 캠퍼들과 간단한 소개와 인사를 나누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소개를 하고 보니 몽골까지 총 10개국이 참여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각지에서 모인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앞으로 2주 동안 어떻게 지낼지 무척이나 기대되고 흥미로웠다.
학교에 간 첫날, 우리들을 매우 어색히 여겼던 아이들과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캠퍼들 간에도 서먹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걱정도 잠시, 이미 여러 번 워크캠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벨기에 청년과 몽골 스탭의 노련한 리더쉽과 유머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금세 서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몽골에 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놀라운 사실은 몽골의 코리안 드림. 길가에는 한국의 ‘프랑스빵집’이나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집’ 처럼 몇 걸음마다 찾아볼 수 있는 한국 음식점이나 한국 관련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널렸고,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한국인지 몽골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선반에는 한국 식료품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으며 거리에서 울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인으로써 몽골여행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워크캠프에서 만난 한국친구와 함께 마트에 슬리퍼를 사러 갔다가 입구의 경비원에게 영어로 설명을 하는데 경비원이 우리를 보고 “한국인이죠 그냥 한국말 써요” 라고 말을 해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심지어 프로그램이 끝나고 뜻이 같은 참가자끼리 여행을 하는 중에는 고용한 드라이버가 한국에서 2년간 살았던 한국어 능통자(?)라 뜻하지 않게 중간에서 통역 겸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프램그램 도중 극심한 체력소비와 수도의 반 이상이 공사중인 관계로 엄청난 매연 때문에 캠퍼 전원이 몸살에 시달리고, 프로그램 마지막 날의 활동계획을 무척 열심히 토론하여 거의 말다툼까지 일어날 정도였지만 그 날 저녁 모두가 책상에 둘러앉아 나와 또 다른 한국친구가 이틀에 걸쳐 준비한 편지가 모두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이어주기도 했다.
첫날의 어색함과 걱정, 매일매일 돌아가며 준비하는 시장을 반찬으로 먹던 늦은 저녁식사, 리틀고비 사막에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기어오른 돌산과 오밤중 친환경 화장실의 공포에도 뭐가 즐거운지 배꼽이 빠지게 웃었던 기억도 불빛 하나 없는 사막에서 별빛아래 캠프파이어와 여행이 끝난 뒤 새벽에 마지막 친구들을 배웅하고 혼자 남아 잠자리에 들던 마음도…… 셀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과 순수한 아이들, 문화차이를 초월한 워크캠퍼들 그리고 2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를 단순히 워크캠프 참가자가 아닌 친구로써 따뜻하고 유쾌하게 맞아 주었던 현지 스태프들 덕분에 내 첫 해외 경험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나머지 워크캠퍼들과 합류를 한 뒤 숙소에 가는 길에 몇몇 캠퍼들과 간단한 소개와 인사를 나누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소개를 하고 보니 몽골까지 총 10개국이 참여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각지에서 모인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앞으로 2주 동안 어떻게 지낼지 무척이나 기대되고 흥미로웠다.
학교에 간 첫날, 우리들을 매우 어색히 여겼던 아이들과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캠퍼들 간에도 서먹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걱정도 잠시, 이미 여러 번 워크캠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벨기에 청년과 몽골 스탭의 노련한 리더쉽과 유머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금세 서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몽골에 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놀라운 사실은 몽골의 코리안 드림. 길가에는 한국의 ‘프랑스빵집’이나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집’ 처럼 몇 걸음마다 찾아볼 수 있는 한국 음식점이나 한국 관련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널렸고,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한국인지 몽골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선반에는 한국 식료품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으며 거리에서 울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인으로써 몽골여행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워크캠프에서 만난 한국친구와 함께 마트에 슬리퍼를 사러 갔다가 입구의 경비원에게 영어로 설명을 하는데 경비원이 우리를 보고 “한국인이죠 그냥 한국말 써요” 라고 말을 해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심지어 프로그램이 끝나고 뜻이 같은 참가자끼리 여행을 하는 중에는 고용한 드라이버가 한국에서 2년간 살았던 한국어 능통자(?)라 뜻하지 않게 중간에서 통역 겸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프램그램 도중 극심한 체력소비와 수도의 반 이상이 공사중인 관계로 엄청난 매연 때문에 캠퍼 전원이 몸살에 시달리고, 프로그램 마지막 날의 활동계획을 무척 열심히 토론하여 거의 말다툼까지 일어날 정도였지만 그 날 저녁 모두가 책상에 둘러앉아 나와 또 다른 한국친구가 이틀에 걸쳐 준비한 편지가 모두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이어주기도 했다.
첫날의 어색함과 걱정, 매일매일 돌아가며 준비하는 시장을 반찬으로 먹던 늦은 저녁식사, 리틀고비 사막에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기어오른 돌산과 오밤중 친환경 화장실의 공포에도 뭐가 즐거운지 배꼽이 빠지게 웃었던 기억도 불빛 하나 없는 사막에서 별빛아래 캠프파이어와 여행이 끝난 뒤 새벽에 마지막 친구들을 배웅하고 혼자 남아 잠자리에 들던 마음도…… 셀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과 순수한 아이들, 문화차이를 초월한 워크캠퍼들 그리고 2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를 단순히 워크캠프 참가자가 아닌 친구로써 따뜻하고 유쾌하게 맞아 주었던 현지 스태프들 덕분에 내 첫 해외 경험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