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생일 선물 같았던 워크캠프 합격

작성자 장민혜
프랑스 CONC 041 · RENO 2012. 08 ALLEGRE

ALLEG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마음은 있으나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혀서 참가신청서는 써보지도 못하고 국제워크캠프기구 홈페이지만 가끔씩 들어가보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 5월, 공지 게시판에 <비디오 특공대>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프랑스, 독일, 한국, 삼국의 문화교류를 위한 프로그램이자 워크캠프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공고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참가비 및 교통비 지원'이라는 것 이였다. 모집부문은 영상과 k-pop, 그리고 외국어, 이렇게 세 가지였는데, 다행히도 k-pop부문에는 자신이 있어서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참가지원서를 작성했다. 발표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마치 생일선물처럼 합격통보 문자가 왔다. 새로운 경험을 향한 기대를 품고 약 1달 동안 출발을 위한 준비를 했다. 다른 워크캠프 참가자들과는 달리 다른 프로젝트를 함께 해야 했기 때문에 회의에도 참가하고 영상도 찍고 가서 참가자들에게 가르쳐줄 춤을 연습하는 등의 활동이 더 필요했다. 게다가 전후로 합해서 11간의 개인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준비해야 했기에 더욱 바빴다.
정신 없이 시간은 흘러서 출발일인 8월 1일이 되었다. 원래 유럽 중에서 가고 싶은 나라는 영국, 스위스, 체코였기 때문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프랑스라는 국가를 방문하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하고 과연 즐거울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워크캠프 시작날인 8월 3일 아침까지 파리를 즐긴 후에 프랑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기간 동안의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가 더욱 기대되었다. 걱정과 기대에 조금은 긴장한 상태로 미팅포인트인 DARSAC역으로 출발했다. 두 번 환 승을 해야 했는데 두 번째 환승역에서 팀 멤버 중 3명을 만났다. 그들은 프랑스인인 19살 quentin과 pierre, 그리고 독일인인 21살 ariane였다. 통성명을 하고 서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면서 함께 미팅포인트로 향했다. 미팅포인트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차 한대가 있었다. 그 차를 타고 간 곳은 캠핑 장이었다. 다들 College에서 머무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여기에 왜 온 것인지 의아해했다. 그런데 우리를 거기에 데려간 분이 하신 말씀에 다들 일명 '멘탈 붕괴'상태에 빠졌다. 작은 텐트 하나에 둘씩 삼 주간 머물러야 한다는 것 이였다. wifi가 터지는 대학교에서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침낭도 초가을까지 쓸 수 있는 것으로 준비했고 옷도 긴 옷은 얇은 가디 건이랑 바람막이 밖에 없었는데 밤이 되면 우리나라 늦가을에서 초겨울 날씨로 변하는 이곳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삼 주를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머리가 멍해졌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얼이 빠진 네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그 분이 다시 어디론가 향하셨다. 도착한 곳은 워크캠프 활동의 중심지인 '키친'이였다. 여기서 밥도 해먹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거라고 하셨다. 그 곳에는 한국인 참가자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있었다. 한국인인 20살 민진이와 민경이, 독일인인 19살 inken, 프랑스인인 리더 Jean-bapiste, 그리고 중간에 떠난 리더 조쉬랑이 이였다. 그런데 공지된 내용과 달리 독일인이 두 명뿐이라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었기 때문에 총인원이 적은 것이 무척 아쉬웠다. Allegre에서의 첫 날은 외국인 친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리더인 J.B가 분위기를 잘 살려주었고 팀 멤버들도 서로에게 말을 쉽게 걸었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추운 날씨가 문제였다. 침낭과 텐트만으로는 밤 기온을 이겨낼 수 없어서 자는 내내 추위에 떨어야 했다. 더군다나 샤워장과 화장실이 텐트와 멀어서 밤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극기훈련 같았다. 그리고 샤워장에 샤워 칸이 두 개밖에 없었고, 자동 절수기능의 물이 위에서 떨어지는 샤워기라서 꺼지지 않게 계속 온몸으로 뻑뻑한 밸브를 눌러줘야 했다. 심지어 캠핑 장에서 키친까지는 걸어서 거의 언덕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있고 텐트에는 벌레들이 동거를 제안하는 환경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처음 3일간은 우박과 거센 바람을 동반한 비구름이 몰려와서 기온은 더 내려가고 빨래는 할 수 도 없고 캠핑 장과 텐트를 오가는 것마저 힘들었다. 한국인 참가자 한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혼자서 텐트를 써야 던 나는 더 춥고 무섭기까지 했다. 정말 첫 일주일 동안은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내가 이런 곳에서 언제 또 살아보겠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행운이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8월 6일 월요일은 나와 inken이 식사와 청소 당번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일을 하러 나가고 우리는 리더 조쉬랑과 함께 쇼핑, 청소, 설거지, 음식준비를 했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하는 건 처음이라서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청소하는 법도 온돌 식 방문화인 우리와 좀 달랐다. 솔직히 우리나라가 훨씬 깨끗한 것 같다. 그 날 저녁에 남은 한 명의 참가인 한국인 아라 언니가 도착했고, 다음날 조쉬랑이 떠나고 새로운 리더인 amtoine이 왔다.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분위기가 한층 더 밝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새로운 리더가 문제 덩어리였다. 성격은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인데 책임감이 없고 일을 정말 못했다. JB가 일터 담당이고 amtoine이 키친 담당이었는데 함께 메뉴를 정하고 요리를 못하는 멤버들을 도와주고 지원금을 관리하는 등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앉아있다던가 밖에 나가버리는 등 지원금 사용내역 기록 이외의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결국 이 주 후에 진지한 자리를 만들어서 개선할 것을 요구했으나 마지막 날까지 변한 건 없었다. 한 번은 그가 정말 대형사고를 쳤는데도 사건과 상관없는 다른 리더 JB가 모든 책임을 지고 해결했다. 그 한 명 때문에 분위기가 나빠지는 일도 여러 번 있었고 화가 나는 일도 많았다. 정말 기구에서 신중하게 리더를 선정해서 파견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멤버들이 정말 착해서 나쁜 일이 있어도 좋게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즐겁게 생활 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8시 반까지 키친에 모여서 아침을 먹고 당번을 제외한 멤버들은 9시에 일을 하러 일터로 갔다. 우리가 한 일은 돌계단을 고치는 일이었다. 잡초 뽑기부터 시작해서 튀어나온 돌들을 일일이 골라서 뽑고 그 자리를 맞는 돌을 찾아서 넣고 흙을 퍼와서 덮기, 무겁고 큰 돌과 시멘트로 층 나누기, 콘크리트를 깨부수고 돌들로 채워 넣기, 돌계단을 청소. 그리고 마지막 주에 한 부순 콘크리트들을 높은 언덕 위에 있는 포크레인으로 옮기는 작업까지 3주간 열심히 일을 했다. 하루에 5~6시간 동안 땡볕에서 수많은 먼지를 마시면서 온몸에 흙 범벅이 되고 새하&#50604;던 살이 갈색으로 변하도록 일을 한 결과 3주 뒤에 본 계단은 확 달라져있었다. 정말 깔끔하고 예쁘게 정돈된 계단을 보면서 정말 뿌듯했고 사람도 많이 없는 외국의 외딴 마을에 내 손길이 닿은 계단이 있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일 중간에 2시간의 점심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키친에 딱 들어서면 맛있는 음식냄새와 함께 친구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과 차례차례 깨끗하게 손을 씻고 나와서 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점심을 먹는 것이 정말 좋았다. 오후 일을 끝내고 나면 캠핑 장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키친으로 돌아와서 함께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고 놀다가 저녁을 먹고 새로운 활동 계획을 세우거나 게임을 한 후 다같이 캠핑 장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다. 여기에서의 게임은 전자기기 따위는 전혀 이용되지 않는 게임들이었다. 카드게임만 해도 종류가 정말 많았고 다른 나라 애들이 가져온 보드게임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 소녀 네 명이 공기놀이와 땅 따먹기를 가르쳐줬다. 인기가 가장 많은 건 우리나라 놀이였다. 공기를 달라고 하는 아이도 있었고 땅따먹기해야 된다고 계속 얘기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외에도 우리는 여기에 있는 동안 최대한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 정말 많은 활동을 했다. Allegre안에서 열린 양 축제에도 참가하고, 왕복 2시간을 걸어서 숲 속의 호수로 소풍도 가고, 다른 지역에서 열린 디스코 축제에도 참가하고, 동네에서 열린 벼룩시장에서 쇼핑도 하고, 동네 사람 배 큐브 대결도 열고, 수영장에도 가고, 양 목장에도 가는 등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해볼 수 없었을 귀한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동네 사람들과 스탠팅 홈 파티를 열었던 것과 저녁식사에 초대받았던 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인 심즈에서만 나오던 그 파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고 동네사람들과 말을 잘 안 통해도 함께 즐기는 그 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다섯 시간 동안 정말 긴 저녁식사를 하면서 초대해주신 분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고 소중한 인연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워크캠프는 굉장히 효과적이고 보람 있는 활동이다. 각자의 나라의 요리들을 선보이는 날도 있어서 정말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었고, 각 나라의 간단한 회화들도 배울 수 있었으며, 가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재미있는 전통들도 경험할 수 있었다. 3주라는 시간이 살았다고 하기에는 짧은 기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 1년의 일상적인 삶에서보다 나를 더 많이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쉽게 행복해지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지는 등 정신적인 성장을 많이 한 것 같다. 게다가 새로운 인연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고 어딜 가서든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팀 멤버들과는 생활하면서 서로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고 부딪치지만 닮은 부분들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시준비를 하는 사람으로써 중요한 시기의 한 달을 타지에서 보냈음에도 그 3주를 떠올렸을 때 후회는 전혀 없다. 정말 대학교 1학년들과 수능치고 대학 합격을 기다리고 있거나 발표가 난 아이들은 꼭 한번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 젊었을 때만 할 수 있는 특권이자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평생의 이야기 소재가 될 이 경험으로 내 관심 밖에 있던 프랑스는 그렇게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내 앞에 닥친 인생의 장벽을 넘은 후에 반드시 가족들과 함께 다시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