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섦을 넘어선, 덴마크에서의 성장

작성자 곽정수
덴마크 MS01 · CONS/ENVI 2013. 05 - 2013. 06 brenderuphojskole

Urban gardening and sustainable living are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허물'벗기 이야기 - prologue. 왜 워크캠프지?>


2011년 대학교 1학년이었던 때, 우연한 기회로 중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러 우리학교에 온 친구들을
도와주는 버디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20살 이전까지 외국에 여행은 자주 했었지만,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었던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많이 서투르고, 나조차 서울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았었지만 외국인 친구들을 처음 사귀어본다는 설렘으로 최선을 다해 버디프로그램에 임했고,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대학교 2학년 끝날 때까지 많은 버디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일본, 중국, 인도, 프랑스 등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버디프로그램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낯설음을 조금씩 지워나갔고, 대학교 3학년이었던 때, 나는 본격적으로 문화에 대한 내 시야를 확장시키기 위해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내가 공부했던 프랑스대학에는 유럽,아시아,미국,아프리카 등 여러 국가에서 많은 교환학생들이 왔다. 매일 같이 외국인 친구들이랑 수업도 듣고, 애기도 많이 하고 그러다보니 서로의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낯설음을 넘어서서 이제 익숙함으로 자리 잡을 때 즈음,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봉사를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같이 장기간 생활하면서 다른 나라 친구들과 깊이 대화를 해보고 그 나라의 문화권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의 틀을 잡은 후, 내 생각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여러 방법들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하였고, 국제워크캠프기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나에게 완벽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국제워크캠프기구는 일단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내가 나의 상황에 잘 맞는 프로그램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최적화된 기관이었다. 먼저 나는 내가 평소에 관심 있어 하던 '환경'분야를 알아보았고, 프랑스 교환학생이 끝나고 난 뒤에 맞는 기간을 선택했더니 MS01 “Urban Gardening and Sustainable Living” 프로그램이 가장 먼저 검색되었다. 프로그램 내용을 보니 Brenderup Folk High School이라는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The sustainable outdoor living area and urban gardening" 을 만드는 봉사활동이었다. 그리고 미리 정해져있는 프로세스보다 직접 아이디어를 내어서 만들어가는 활동이고, 친환경 재료와 재활용 재료들을 혼합하여 만드는 과정이기에 더욱 더 '친환경'적인 마인드를 기를 수 있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이 선택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최고의 선택임을 확신한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나의 '허물'벗기 이야기 그 첫 번째 -우리를 묶어주었던 규칙->

brenderuphojskole 는 우리나라 워크캠프 기관과 오랫동안 워크캠프를 진행했었다. 그래서 작년 brenderuphojskole 워크캠프에 참여하였던 한국인 친구는 밖에서 공동 텐트 같은 곳에서 지냈었는데, 올해는 특이하게도 공동 텐트가 문제가 있어서인지 brenderuphojskole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3주 내내 밖에서 야외취침을 하게 될 줄 알고 워크캠퍼들 모두 에어메트리스, 쿠션 등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 약간 허무했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며 우리 워크캠퍼들 뿐만 아니라 brenderuphojskole 학생들과도 가까워질 생각을 하니 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내 룸메이트는 밀우라는 네덜란드 20살 소녀. 나보다 3살이나 어린 친구는 봉사활동을 하러 9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암스테르담에서 왔다.
5월 27일 아침 7시 30분...아침에 일어났는데 아침 먹을 시간이 늦어버린 거의 7시 30분이기에 나는 밀우에게 ‘What??!!!!!!' 라며 벌떡 일어났다. 우선 내 머리위에 있는 탁자에 머리부터 박고 아픈 머리를 만지며 아침을 먹으러! 아침을 먹고 여기 학교에서 열리는 morning assembly 에 갔다. Brenderuphojskole 학교는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도 하지만, 다양한 예술가들도 이곳에서 2주정도 생활을 하며 연구 활동을 하신다고 한다. morning assembly에 가니 이번에 온 뮤지션들, 학생들, 워크캠퍼들이 모여서 교회의 예배시간처럼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 Dennish 노래도 부르고, 특별히 d오늘은 영어노래인 ’what a wonderful world‘ 을 불렀다. 이 노래를 여기서 부르게 될 줄이야. Assembly가 끝난 후에는 이번 프로젝트의 도우미격인 크리스티안 아저씨와, 교장선생님, 워크캠퍼들이 모여서 이 학교에 대해,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장선생님 말씀 중 가장 인상 깊은 말,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사랑을 알겠고, 직접 나라에 가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나라를 안다고 하겠는 가‘ 이었다. 교과서로 항상 알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나라 사람을 만나고 애기해보면 그 나라에 대해 잘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그동안 가져왔던 내 '허물'을 벗고 싶은 욕구가 크게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허물'이란 그동안 가져왔던 고정관념, 편견, 잘못된 태도들이다.
교장선생님 말씀이 다 끝나고, 모두들 식당에 모여 우리만의 규칙을 정했다. 가장 근본적인 규칙을 정하고, 우리가 이 학교와 공존하면서 해야 될 규칙들을 정했다. 모든 규칙들은 서로가 의견을 내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규칙들은 워크캠퍼들이 워크캠프 기간이 끝날 때까지 아무 문제없이 화합을 하면서 지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규칙은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해지기'였다. 하루에 1번은 모두 모여 티타임을 갖고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점이든 불편한 점이든 솔직하게 말 하자였다. 3주동안 우리는 이 규칙을 가장 먼저 가장 잘 지키도록 노력했다. 두 번째 규칙은 이 학교와 공존하면서 해야 될 규칙들, 예를 들면, 아침, 점심, 저녁 전 후 접시들 정리, 화장실 정리 등등. 이것 또한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우리가 있는 날들의 칸을 만들고, 똑같이 칸들 배분하여 서로가 하고 싶은 날들에 이름을 적었다. 주말에 쉬고 싶은 사람은 자기 대신 일할 사람을 찾고, 주중에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주말에 일을 하는 방식으로 학교 일을 분배하였다.
이제 일터로! 첫 날은 여기 스페인 학생이 만든 이상한 병으로 된 집, 이젠 이학교의 골칫거리가 돈 이 집을 무너뜨리는 것. 쉬워 보이는 듯해도, 굉장히 힘들고 먼지도 많이 날리고, 벌레도 많이 나왔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온 시간을 매진했는데, 다 못하고 끝냈다. 일을 마치고, 우리가 정한 규칙대로 '티타임'을 하며 오늘 했던 일에 대한 서로의 생각,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들을 이야기하고 brenderuphojskole 학생들과 축구게임을 하러갔다. 화이트 팀과 컬러 팀의 대결. 우리나라에서는 여학생들이 축구를 하기란 보기 쉽지 않은데 여기서는 축구 중간에 brenderuphojskole 여자학생들도 들어가서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여기 여학생들은 참 중성적인 매력을 지녔다. 축구 중간에 나와서 밀우, 밀로슈, 나, 쑤, 멜리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에피소드1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자.>

한국에서는 물론 외국에서 나는 가족을 제외하곤, 여러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는 등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덴마크 MS01 봉사 프로그램은 약 3주간의 긴 기간 동안 진행되는 봉사프로그램이라 봉사활동지로 떠나기 전날 밤에 굉장히 떨렸던 기억이 난다. 덴마크 MS01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국가 수는 모두 10개국에서 온 워크캠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어떻게 화합을 이루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다.


5월 26일 드디어 날이 밝았고, 코펜하겐 호스텔에서 출발할 때 비가 무척 많이 왔다. 비를 홀딱 맞으면서 센트럴 역으로 갔다. 캐리어 28kg짜리 하나, 12kg짜리 또 하나. 합해서 40kg 무게의 짐을 들고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겨우겨우 센트럴 역에 도착해 middlefart역으로 가는 티켓을 끊고, 역에 4시쯤 도착했는데,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버스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버스가 없단다.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 나에게 우연히 한 덴마크인 할아버지께서 다가오셔서 ‘오늘 버스는 없을 것 같은데, 넌 어떻게 할 거니?’ 라고 물어 보시기에, 나는 ‘잘 모르겠어요.ㅠㅠ’ 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그럼 내가 태워다줄까?’ 하시기에 바로 나온 ‘네 네!^^’
할아버지께서 그러면 아내한테 외국인 소녀를 Brenderup으로 데려다준다고 말하고 와야겠다고 하셔서 middlefart 역 근처 할아버지네로 갔다. 할아버지는 전직 경찰이셨는데, 은퇴하시고 middlefart로 사시고 계셨다. 자식들은 다 코펜하겐으로 갔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한국인은 처음 보셨기에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부모님, 북한, 프랑스에서의 삶 등등. 정말 고마운 Petersen 할아버지. Petersen 할아버지의 이메일주소를 받고 워크캠프 장소 brenderuphojskole 에 잘 도착하였다. 워크캠퍼들이 다 모여서 6시에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저녁 먹을 때 신기한 것은 여기 학생들은 항상 식사 중에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모두가 자리에 앉았을 때 작은 종을 치면서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서로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면 이 시간을 이용하여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모습은 굉장히 나에게 민주적이면서 자유로운 느낌을 주었다. 서로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공간이기에 불편한 점이 있어도 뒤에서 속닥속닥 거리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불편한 점을 말하고 서로가 이해해 줄 것을 요청하는 가장 합리적이면서 효과적으로 말하는 방법. 3주동안 이 공간에서 생활한 결과, 이 '메시지 시간'에서 발언한 불편한 점, 개선해야 할 점들은 다음날이면 모두가 고쳐갔다.
밥을 먹고 우리 워크캠퍼들은 봉사활동의 주최자인 brenderuphojskole 교장선생님인 Ole 씨와 커피를 마시며 이번 봉사활동의 방향에 대해 크게 테두리를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Ole 씨는 '우리는 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당신들이 이 학교 학생들과도 조화롭게 지내서 서로가 함께 어우러져가는 봉사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Ole 씨는 고맙게도 우리를 위해 brenderuphojskole 학생들과 함께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우리는 덴마크 학생들과 함께 ‘서로 알기게임’을 하러 체육관으로 갔다. 거기서 우리는 brenderuphojskole 재학생의 진행으로 첫 번째 '표정 짓기 놀이'를 하며 서로간의 어색함을 풀고, 그다음에 2열로 쭉 앉아서 서로를 보며 '나의 이야기, 그리고 너의 이야기'를 하는 게임을 하였다. 자신은 누구고,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꿈은 무엇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30명이 서로 빠짐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어야 한다는 '경청'의 자세를 배웠던 그 시간. 워크캠프가 끝난 지금도 그때 나누었던 brenderuphojskole 학생들은 물론 워크캠퍼들과의 대화들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에피소드2 <우리는 어떻게 '자전거'를 배웠을까?>

어제 ‘지붕’일을 잘한 덕분인지, 새로운 일감이 떨어졌다. 공구창고의 벽을 새롭게 칠했으면 좋겠다는 미션. 그래서 오늘은 역시나 아직도 해결이 안 된 스페인장인의 시멘트 재활용 병집을 처리하는 작업과 지붕작업, 벽돌작업 이렇게 세 가지 작업을 어제처럼 팀을 나누어 하기로 하였다. ‘페인트’칠은 태어나서 한 번도 안 해 본 나는 이건 마치 나를 위해 주어진 운명과도 같은 ‘일’처럼 여겨졌다. 정말 꼭 한번 칠을 해보고 싶어서 재&#59166;리 LTE-A급으로 손을 들어 일감을 차지하고, 밀우, 수현도 같이 하게 되었다. 빨간 통을 들고 이미 색깔이 변색되어버린 공구창고의 벽을 칠하는데,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페인트 칠’은 정말 샤살랄라버젼이고,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맨 위에 달린 거미, 벌레 식구들도 제거를 하고, 유리창에 빨간색이 안 묻게 테이프 막음을 다 하고, 옷에 안 묻게 조심하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손을 쭉 뻗어 위쪽에도 다 꼼꼼하게 다 칠해야하는 현실. 그래도 3인조여서 여자애들끼리 무더위에도 같이 이야기하면서 일하는 게 재미있으니까 뭐가 묻어도, 벌레가 나와도 까르르 웃으면서 할 수 있었다. 덴마크에 오기 전 이탈리아에서 사온 ‘I ♡ Venezia' 라는 후드 티가 있었는데, 이미 여름이고 해서 더 이상 못 입어 작업복으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상상초월로 더워서 이 ‘I ♡ Venezia' 옷을 버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 중 가장 얇은 옷으로 체인지! 주변을 쭉 살펴보니 벽돌 팀도 여전히 덥고 힘들었던지 웃통을 다 벗어재꼈고, 재활용 병집 팀도 마찬가지다.

무더운 날씨에서의 페인트 팀, 벽돌팀, 재활용 병집 팀의 무한 땀으로 오늘 하루 봉사활동은 끝.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내일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다들 서로 ‘넌 내일 뭐할 거니?’ 를 물어보길 수차례. 해변에 간다는 애들도 있었고, 숲에 간다는 애들도 있었고, 그냥 잘꺼라는 애들도 있었다. 여기서 잠깐 국제워크캠프 기구가 정해놓은 규칙을 설명하고자 한다. 봉사시간은 각 나라마다, 기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아침을 먹은 후 8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3시~3시 반까지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워크캠프가 열리는 나라에 대한 문화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즉, 주말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인 것. 나는 내 닉네임을 Travelholicjen 이라 정했을 정도로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은 같이 온 수현이, 그리고 재스퍼, 위도.
그래서 우리 넷은 brenderuphojskole 학교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20분정도 가면 나오는 Ejby 역에 가서 30분 정도를 기차를 타면 나오는 안데르센의 고향 Odense (‘오덴세’인 것 같지만 덴마크 발음으로 운스)에 가기로 했다. ‘안데르센’이라니, 내가 어렸을 적 그렇게 그의 동화를 읽고 자랐건만. 이제야 보게 되니 정말 떨렸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자전거를 타고 Ejby역까지 가야했으나 4명 중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은 나, 위도, 수현이 3명. 재스퍼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고 했다. (하긴 홍콩에 스톱바이로 잠깐 봤지만, 교통이 잘 되어있어서 자전거 없이도 불편한 점은 없더라...) 그래서 나는 재스퍼와 ‘자전거 교실’을 시작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재스퍼와 학교 뒤 도로에서 ‘자전거’한대 가지고 자전거 배우는 것을 가르쳤다. 말이 좋아 가르치는 거지 실상 뒤에서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고, 자잘한 팁들 좀 던져주고 그런 식이었다. 잘 가르쳐질리 만무한 상황. 한 1시간을 도로 한쪽에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왕복하기를 수십 번, 아무 진전이 없어 지친 나는 ‘도대체’ 나는 어떻게 자전거를 배웠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두발 자전거를 배웠던 때는 8살 때, 아빠가 뒤에서 그렇게 잡아주고 있다고 하고 나를 속이고 나는 그걸 굳게 믿고 페달을 밟았을 때, 비로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럼 내가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아빠가 잡아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인가? 그럼 여태껏 해도 안 되는 재스퍼는 나를 안 믿나?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한참동안 고민하고 재스퍼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난 착지하는 재스퍼의 얼굴 방향과 , 패달을 밟은 발 패턴 을 보고 깨달았다. 재스퍼는 자신의 발보다는 앞을 보고 페달을 계속 밟아나갔어야 했는데 계속 페달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페달을 밟은 발 패턴 또한 일단 세계 밟고 그 속도로 자전거의 방향을 조절하면서 균형감각을 익혀야했는데, ‘넘어질 것 같은 ’ 두려움 때문에 페달 속도도 느렸고 미리 착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니 균형감각은 커녕, 속도도 안 나와서 조금가다 멈추고, 조금가다 멈추고를 반복한 것이다. 항상 발은 미리 착지를 준비하고 있기에 한 번도 넘어진 적도 없었다. 8살 때의 나는 자전거를 배울 때 복잡한 고민을 안했던 것 같다. 그때는 ‘두려움’이란 것을 크게 겪어보지 않았었고, 하긴 8살이라는 나이에 큰 ‘두려움’을 겪을 만한 사건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저 놀이터에서 넘어지면 넘어지는 거고, 다치면 다치는 거고. 넘어지고 다치고 나서야 아프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면 조금 울고 또 어느새 아픈 것도 까먹고 헤헤거렸다. 그래서 내 허벅지나, 팔에는 한참 넘어져야 할 시기의 자국들이 많이 있다. 허벅지에는 자전거,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졌고, 손에는 화상도 입었던 적도 있었다. 어릴 때는 우리 모두 누구나 큰 ‘두려움’을 안 가졌던 그런 단순함, 소위 무대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 갈수록 우리는 점점 이 정신들을 잊어가고 대신 ‘두려움’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것 하나 도전하더라도 자꾸 보험들을 만들어놓고, 측정하고, 재고. 그러다가 결국 안하고. 사람이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온 ‘두려움’의 허물을 갑자기 벗어던져버릴 순 없다. 대신 나는 영화<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탈출한 방법을 쓰고 싶다. 작은 돌망치로 계속 긁고 긁고 끊임없이 긁으니까 결국 탈출할 수 있었지 않았는가. ‘허물’을 갑자기 한순간에 벗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부위부터 시작해서 차근 차근 벗다보면 언젠간 허물을 벗어던져버릴 날이 올 것이다. 나에게 있어 친구들, 가족, 지인들, 책, 영화, 여행 등은 하나씩 허물을 벗겨주는데 도움을 주는 앤디의 작은 돌망치같은 역할이었다. 이번 워크캠프에서는 ‘네이트’ , ‘재스퍼’가 그 역할을 아주 잘 해주었다. 언제 다 허물을 벗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아직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재스퍼의 자전거 실패요인들을 파악을 하고 재스퍼에게 말했다. ‘내가 뒤를 잡고 있으니까 내가 잡고 있는 것을 발판 삼아서 일단 쎄게 페달을 힘껏 밟고 절대 밑에 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자전거는 많이 넘어져봐야 더 잘 탈 수 있어’ 라고 말했다. 재스퍼는 알았다고 했지만, 머리가 이해하는대로 몸이 안 움직여주는 이 슬픈 상황. 결국 서로 체력적으로 힘들어 수업은 8시가 될 즈음 마무리가 되고, 난 정말 너무 피곤해서 아직 9시도 안되었는데 방에 들어가 잤다. 뒤늦게 언니가 뭐하는지 내 방을 노크했던 수현이는 미친 듯이 곯아떨어져있던 나를 보고 어이가 없어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재스퍼는 다다음날,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잘.혼자서 틈틈히 연습도 하고 그 과정에서 넘어짐에 대한 '두려움'도 잘 극복한 대가이다. 제니 '니 방법이 쫌 먹힌 것 같아' 라고 말해주는 재스퍼의 말에 그날의 피곤함, 지침 등등 복합감정들이 다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나의 '자전거 교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