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볼리비아, 도난 악몽마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작성자 최규화
볼리비아 TINKU-01 · ARCH/CULT 2012. 07 볼리비아 Incallajta, Cochabamba. Cochabamba

TINKU- WORLD HERITAGE VOLUNTEER INCALLAJTA THE LARGEST INCA CIT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일단,워크캠프기간 동안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제출하려했음에도 어느날 한순간에 카메라와 핸드폰을 도난당하는 바람에 볼리비아 대신 노병현씨께서 찍은 사진으로 대체한다는점,관계자분들께 죄송하고 송구스러울 뿐이다.2012년 8월 17일 난 아직도 그때를 잊을수가없다.지금도 이따금 난 당시 일어난 도난사건으로 인해 악몽을 꾸곤한다.군에 입대한 지금도 당시만 생각하면 치가떨리고 정말 안구에 눈물이 나올정도로 슬프다.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2012년 8월 16일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행 시에라 코르도바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행 시에라 코르도바의 버스를 타기위해 터미널에서 버스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던중.당시 나는 혁명의 전사이자 남미의 영웅인 체게바라의 생가가 위치한 알타그라시아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다시 코르도바로 다녀왔는지라 기진맥진 피곤하고 졸립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이젠 더 이상 무리다 눈꺼풀은 자동으로 감겨오고 나는 에써 정신력으로 버스가 올때까지 버티기위해 눈에 파스와 티슈를 비비면서 애를썻다.어느덧,버스가 도착하고 이제 드디어 푹 잘수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개념없이 카메라와, 핸드폰을 옆자리에 내팽겨치고 잠에 들었다.몇시간 흘렀을까 어느순간 잠에서 벌떡 깨어나니,어느새 부에노스아이레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내가 이렇게까지 피곤했었나,졸린 두눈을 비비며 옆자리에 두었던 카메라를 찾는데…….순간 사라진것이다.카메라가방에 넣어두었던 아이폰과 함께 말이다……맙소사 설마? 좌석밑에 떨어지거나 1층에 떨어졌겠지 라는 1프로의 간절한 희망을 안고 버스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결국 찾을수 없었다.OTL……망했다.나의 그 수많은 추억들이 이렇게 한순간에 모두 사라져버리다니…… 볼리비아에서 찍었던 수천장의 사진과 동영상들,한국에 돌아가면 리포트 작성할 때 사진뿐만아니라 동영상도 넣어야지 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범인을 찾기위해 아이폰 위치추적을 사용하고 아르헨티나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에 수십번 들락날락 다녀오는등,도난당한 나의 카메라와 아이폰을 찾기위해 나는 정말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마침내 범인의 위치를 찾았으나 경찰의 비협조로인해 결국 눈물을머금고 포기하고 말았다.그렇게 허탈해져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돌아다니며 할 수 없이 아이팟을 거금 40만원가량 주고 구입해야만했다.아르헨티나에서는 아이폰을 판매하지않는다는 국내 전기통신법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는 아이폰을 사용할수 없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기에 결국 아이팟을 구입하게되었다.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던날 왜하필 이날에 장대비가 주르륵 내리는 것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지금도 그때를 간혹 떠올려본다.이제는 모두 사라져간 추억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했기에 떠올려보곤한다.그중에서도 내인생에서 평생 잊혀지지않을 그런 소중했던 남미여행의 추억으로 내마음속에 깊이 남게되기를 희망한다.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또방문하고 싶은 볼리비아는 내기억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것이다.그중에서도 내인생에서평생 잊혀지지않을 그런 소중했던 3가지 기억을 떠올려본다.

2주간의 워크캠프 코차밤바 에서
코파카파나에 도착후, 우리는 일정에 맞추기위해 쉴틈도 없이 곧바로 수도 라파스를 건너뛰고 코차밤바행 야간버스를 타게되었다.코차밤바 도착후 또다시 incallajta까지 택시를 타고 드디어 3시간후 도착한 우리의 워크캠프장소를 둘러보았다.2주라는 짧은 기간내에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좋은일,나쁜일,어처구니없던일들, 정말 별의별 사건사고들이 일어났다.무엇보다 가장 어처구니없고 황당했던 사건은 Incallajta에서의 활동을 haen 마친후,코차밤바 도착직후 만나게된 제니퍼와의 첫 만남 화기애애한 분위기 도중에 제니퍼의 주머니속에서 전화벨이 울린것이다.제니퍼의 친한친구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사실.이게 정말 무슨 천정병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이뿐만이 아니라 약 2주간 코차밤바에서 머물면서 물이안나와서 샤워도 못하고 빨래,요리도 제대로 할수없던 것은 정말 고역이였다.덕분에 귀국후에는 물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고 이전처럼 물을 함부로 쓰지않게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물이 안나와서 모두들 샤워도 못하고 불평하는 가운데,어느날 들려온 정수기가 얼마나 다행이었느지 모른다.그만큼 다들 물이 없어서 고생이 극심했었다.빨래도,요리도 하고싶은때에 맘대로 해먹지도 못하고,시설은 이렇게 열약했지만……참 재미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어서 참 뿌듯하고 기뻣다.말이 안통해서 약간의 불협화음이 없지않아 있었지만,강에서 쓰레기를 줍는다거나 캠프리더인 라미로라는 사람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캠프리더로서의 제대로된 책임감 조차없었기에 모두 화가나고 답답하기 그지없어서 분노하기도 했지만,서로함께 요리하며,노래부르며 함꼐 한마음으로 2주간 전세계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보낸 2주간의 코차밤바 워크캠프는 참 값지고 아름다웠다.

죽기전에 가보자 우유니 소금사막
우유니 소금사막을 오래전부터 꼭 한번쯤은 방문하고 싶었다.그 것은 나의 오랜소원이자 간절한 소망이었으니,온세상이 모두 하얗게 보이고,땅과 하늘이 반사되어서 장관의 파노라마 풍경을 볼수 있다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겨울이어서 그런지 원래 우유니지역이 볼리비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라고 말만 들었지,에이 설마 했으나 실제 우유니에 도착하니 추위에 벌벌 떨었다.덜덜덜덜, 더군다나 이른 아침에 도착했으니 말이다.투어를 신청하고 다음날 영국인일행 5명과 함께 2박 3일일정으로 우유니 이곳저곳을 혼다지프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다만 내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내가 처음 상상했던 땅과 하늘이 반사되어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우유니의 광경은 여름에나 볼수 있다는 것이었다…….맙소사,워크캠프 장소를 애꿎이 볼리비아로 정한 것이 바로 이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기위해서 였는데 당시는 겨울이었는지라 소금사막이 모두 꽁꽁 굳어서 물과 하늘이 반사되서 장관이 펼쳐지는 광경은 볼수가 없었다는 것이 내심 아쉽고 볼리비아 여행내내 미련이 남았다.투어 첫째날, 열차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장소에 방문헤 기념사진을 찍은후 콜차니라 불리는 일명 소금마을로 향했다.내가 처음 상상했던 우유니와 직접 두눈으로 본 광경이 상당히 달라 실망하기도 했지만, 다음날 색상이 변하는 5개의 호수와,칠레국경 인근의 사막과,화산을 돌아다니며 우유니에 소금사막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꽤 흥미로웠다.이곳저곳 지프를 타고 돌아다니며 식사를하고,기념사진을 찍는것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함께 투어에 참가했던 영국친구들과 저녁숙소에서 기타를치며 노래를 부르며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그때가 가장 즐겁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에도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정말 죽기전에 꼭 한번 가보자 우유니.이먼 타국 볼리비아땅까지 온내 자신이 고생한 보람을 느낄수있었던 그런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 마추픽추

8월 중순이었던걸로 기억한다.쿠스코에서 보예누나를 만나후,다음날 우리는 곳바로 마추픽추로 향했다.그러나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기위해서는 오얀따이땀보라 하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기차르 타고 가야 했던 것이다.할 수 없이 쿠스코에서 조그마한 봉고차를 타고 오얀따이땀보로 향했다.도착후 커피와,오믈렛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후,마추픽추행 기차 페루레일을 타고 마추픽추 마을이라 부리는 아구아스 깔리엔떼스에 도착,다음날,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모두 마추픽추로 향했다.도중에 지름길을 찾지 못하고 지나쳐서 고생을 했지만 마추픽추에 드디어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하니,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었다.그 유명한 와이나 픽추에는 표가 모두 매진되어서 올라갈수 없었지만 저 멀리서 바라보는 마추픽추의 광경은 정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감동 그자체였다.정말 잉카인들은 몇천년전에 이렇게나 높은 위치에 공중도시를 건설할수 있던 것일까? 귀국후에 마추픽추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정말 외계인들이 건설했던 것은 아닐까? 수천년전에 이높은위치에서 공사를 할수있던 도구나,건설기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하며 생각하던중 나를 지켜본 생활관 동기 한명이 자신이 쿠스코에 다녀왔을떄 잉카박물관에 가면 마추픽추 건설당시의 판화 모습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자리에 왼손엔 채찍을 들고 머리에 금관을 쓴 사람을 볼수있느데 그사람이 바로 행보관이라며,아마 마추픽추 건설에 동원된 행보관들이 악마였기 떄문이라며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지금와서 다시한번 돌이켜보면 정말 당시 동기의 답변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