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버몬트, 나를 발견한 한 달
GROWING FRIENDSHIPS IN VERMON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1월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오게 된 나는 3개월 이라는 긴 여름방학을 맞이 하게되었다. 그 긴긴 여름 방학을 어떻게하면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하다가 지인을 통해 워크캠프라는 걸 알게되었다. 7월 워크캠프를 가기전 뉴욕에서 한달동안 머물 여행일정이 있어서 뉴욕과 가까운 버몬트를 선택하였다. 7월 2일, Vermont 공항에서 캠프리더와 그의 강아지 Bunny, 먼저 기다리고 있던 독일과 캘리포니아에서 온 Roman과 Nick을 만났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내가 한달 후 그들과 가족과 같은 인연을 갖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선, 캠프리더의 집에 가서 미리 도착해 있던 다른 참가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국적또한 다양했다. 미국 각지에서 온 미국인들,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독일. 주변을 보아하니 한국인은 나혼자, 아니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미국에 온지 6개월이 되갔던 나였지만, 정말 미국 땅에서 한국인이 한명도 없이 한달동안 지내보는 것은 나로서도 새로운 경험이였다. 그러나 그 경험이 싫지 많은 않았다. 정말 낯선 환경에서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캠프리더와 함께 드디어 Oscars 농장으로 향했다. 차로 한시간이 걸려 도착한 Oscars Farm.. 충격이었다. 전기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칸막이가 있는 샤워실도, 세탁기도, 음식을 해먹는 스토브도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건 푸세식 화장실이였다. 나와 이미 친해진 여자아이들은 이것은 너무 심하지 않냐며,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한달을 살아가냐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나는 불편함 속에서 적응을 너무나 잘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시계를 보지 않고도 한달을 살아 갈 수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농장안에서는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는다. 기상시간, 아침 식사 시간, 취침 시간 등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본인이 일어나고 싶을때 기상하고, 본인이 배고프면 식사하고, 본인이 일하다가 힘들면 낮잠자고, 독서하고, 음악을 듣고.. 모든 것은 본인의 자연시계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함에도 분명히 질서는 존재하여, 혼란은 없었다. Oscars Farm에서의 하루는 이러했다. 침낭안에서 새소리와 은빛 드럼소리를 들으며 기상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장작으로 불을 피워 내린 모닝 커피와 팬케이크를 먹는다. 캠프 구성원 모두가 기상하면 매일은 아니지만 하루의 일과에 대해 가벼운 미팅을 가지고 각자의 일과를 하러 간다. 일단, 하루에 본인이 꼭 해야하는 일과가 있다. 매일 마다 바뀌지만, 요리, 설거지하기, 마루쓸기, 빨래, 거름주기, 잡초뽑기 등을 해야한다. 모두들 설거지를 가장 싫어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본인의 흥미와 역량에 맞추어 캠프리더는 프로젝트를 분배해 주었다. 그 프로젝트는 크게 Gardening, Building, Cooking이 있었다. 나는 조금씩 모두 해보고 싶어 모든 프로젝트를 조금 모두다 배워보기로 하였다. 아침을 먹고나면, 각자 프로젝트를 하러 간다. Garden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기도 하고, 농장에 있던 닭들에게 모이도 주었다. 특히 Building은 내가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연장을 사용하는 법부터, 자를 이용해 나무를 정확히 재고, 자르고 못을 박는 방법까지 모두 배울수 있었다. 농장 언덕에 있는 gazebo에 벽을 설치하기도 하고, 가든 앞에 작은 정자를 만들기 위하여 디자인 부터 시작하여 산속에서 친구들과 나무를 고르고, 자르고, 못을 박고 신나게 일하였다. 물론 이러한 일은 육체적 노동이라 가끔 힘이들면, 나는 요리를 배웠다. 우리의 요리사는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레스토랑을 경영하시다 여름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고싶어 오신 나이가 조금 많으신(?) Walter였다. 그 덕에 우리는 매일매일 너무나 맛있는 이탈리아 파스타를 매끼마다 먹을 수 있었고, 직접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었다. 조금 충격적이였던 것은 그 작은 마을의 오스카스 농장에 캠프리더가 직접담은 김치가 있었다는 것이였다. 캠프리더는 나에게 언제든지 김치가 그리우면 마음껏 꺼내먹으라하셨고, 모두들 이탈리아표 파스타가 질려가던 순간에, 나는 한국음식을 소개해주겠다며,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어 잊지못할 저녁을 먹기도하였다.
아무도 몇시부터 몇시까지 일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일을 강요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즐거워서 일을 하고, 일을 하다 힘이들면 그늘에 누워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기타를 연주하였다. 이곳에 온 친구들은 너무나 예술적인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였다. 몇몇 친구들은 그림을 정말 잘 그렸고, 몇몇 친구들은 독서와 글쓰기를 아주 좋아했으며, 몇몇 친구들은 기타를 매우 잘치도 노래를 매우 잘하였다. 나 또한 이곳에서 여러권의 책을 읽었고,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고, 너무나 아름다운 드럼을 배워 연주하였다. 농장 옆에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우리는 일이 끝나고 나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다같이 개울에 풍덩 빠져 놀고, 그곳에서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배가 고파지면 맛있는 저녁을 먹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캠프파이어를 하였다. 매일밤 하였던 캠프파이어는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과 기타와 잠베와 함꼐 노래를 하고, 친구들의 유머와 이야기를 듣고, 게임을 하고, 우리의 언어를 공유하며 서로의 언어를 배웠다. 매일밤이 너무나 즐거웠다. 특히 내가 평생 잊지 못할 버몬트에서의 광경은 밤에 높은 언덕에 올라가 풀밭에 누우면 수많은, 너무나 반짝이는 별들을 맘껏 볼 수 있었다. 평생 한번도 보지 못했던 별똥별은 그곳에서는 흔하지 않은 광경이 아니였다.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정말 평생 잊지 못할 나날들의 연속 이였다. 도착한지 이틀 후,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나와 또 다른 미국 친구한명의 생일 이였는데, 친구들은 나를 위해 꽃밭에서 가장 예쁜 꽃들을 엮어 꽃선물을 주었고, 몇몇 친구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을 주었고, 우리를 위해 산속에서 직접 케이크를 구어 노래를 하며 생일을 축하하였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반쯤 지났을까.. 우리는 문명과 단절된 생활에 조금 답답하기도 하였고, 농장과 가까운 마을에 마침 음악 파티가 있다는 소식을 입수하여 탈출(?)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가까운 작은 마을이 농장에서 도보로 3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3시간이 문제냐며, 걷기 시작하였고, 걷다가 걷다가 결국 히치 하이킹을 시도하였다. 히치하이킹은 영화에서만 보던 것이였는데, 내가 미국에서 히치하이킹을 경험하게 될줄이야…운좋게 히치하이킹을 하여 마을에 도착하여 문명을 만난 우리는 신나게 맥도날드 햄버거를 맘껏 먹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잊지못할 추억을 쌓았다. 그곳의 음악축제에서 우리 친구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 연주를 하고 노래도 불렀다. 또 하루는 캠프리더가 우리를 버몬트의 전형적인 축제인 puppet 축제에 데려가 구경을 하고, 직접 우리가 참가하여 그곳의 문화를 체험해보기도 하였다.
이곳에서는 배운 것이 참 많다. 우선,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나무들 사이에서 하늘을 보며 했던 샤워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우리가 직접 기르던 닭을 잡았는데, 나는 평생 보지 못한 광경이였다. 우리 모두가 함께 닭을 잡고, 털을 뽑고,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음식의 소중함과 그 과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연속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둥글게 앉아 종교, 정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 하였고, 각자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른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은 너무나 흥미 진진하였다. 그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 대해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지 않았고, 그 다름을 인정하며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친구들은 나에게 북한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해 물었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친구들은 나를 통해 한국을 알아가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것을 뽑으라 하면 사람이라 하겠다. 우리는 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헤어짐에 대해 슬퍼하였고, 서로 이제는 마치 우리가 한 가족같다고 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은 다음 미팅은 유럽이라며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아직도 그 친구들 한명한명과 연락하고 있고, 특히 이 캠프가 끝나고 캘리포니아에서 이 캠프중 한 친구를 만났을 떄에는 내가 얻은 것이 정말 많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3개월의 여름방학동안 나는 미국과 캐나다 여러 도시를 여행하였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뽑으라 하면 주저 없이 Vermont의 Oscars Farm 을 뽑는다. 나는 그 곳에서 자연속에서의 삶에 대해 배웠고, 다양함 속에서 어울림에 배웠으며, 더욱더 독립적으로 성장하였다.
캠프리더와 함께 드디어 Oscars 농장으로 향했다. 차로 한시간이 걸려 도착한 Oscars Farm.. 충격이었다. 전기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칸막이가 있는 샤워실도, 세탁기도, 음식을 해먹는 스토브도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건 푸세식 화장실이였다. 나와 이미 친해진 여자아이들은 이것은 너무 심하지 않냐며,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한달을 살아가냐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나는 불편함 속에서 적응을 너무나 잘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시계를 보지 않고도 한달을 살아 갈 수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농장안에서는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는다. 기상시간, 아침 식사 시간, 취침 시간 등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본인이 일어나고 싶을때 기상하고, 본인이 배고프면 식사하고, 본인이 일하다가 힘들면 낮잠자고, 독서하고, 음악을 듣고.. 모든 것은 본인의 자연시계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함에도 분명히 질서는 존재하여, 혼란은 없었다. Oscars Farm에서의 하루는 이러했다. 침낭안에서 새소리와 은빛 드럼소리를 들으며 기상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장작으로 불을 피워 내린 모닝 커피와 팬케이크를 먹는다. 캠프 구성원 모두가 기상하면 매일은 아니지만 하루의 일과에 대해 가벼운 미팅을 가지고 각자의 일과를 하러 간다. 일단, 하루에 본인이 꼭 해야하는 일과가 있다. 매일 마다 바뀌지만, 요리, 설거지하기, 마루쓸기, 빨래, 거름주기, 잡초뽑기 등을 해야한다. 모두들 설거지를 가장 싫어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본인의 흥미와 역량에 맞추어 캠프리더는 프로젝트를 분배해 주었다. 그 프로젝트는 크게 Gardening, Building, Cooking이 있었다. 나는 조금씩 모두 해보고 싶어 모든 프로젝트를 조금 모두다 배워보기로 하였다. 아침을 먹고나면, 각자 프로젝트를 하러 간다. Garden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기도 하고, 농장에 있던 닭들에게 모이도 주었다. 특히 Building은 내가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연장을 사용하는 법부터, 자를 이용해 나무를 정확히 재고, 자르고 못을 박는 방법까지 모두 배울수 있었다. 농장 언덕에 있는 gazebo에 벽을 설치하기도 하고, 가든 앞에 작은 정자를 만들기 위하여 디자인 부터 시작하여 산속에서 친구들과 나무를 고르고, 자르고, 못을 박고 신나게 일하였다. 물론 이러한 일은 육체적 노동이라 가끔 힘이들면, 나는 요리를 배웠다. 우리의 요리사는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레스토랑을 경영하시다 여름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고싶어 오신 나이가 조금 많으신(?) Walter였다. 그 덕에 우리는 매일매일 너무나 맛있는 이탈리아 파스타를 매끼마다 먹을 수 있었고, 직접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었다. 조금 충격적이였던 것은 그 작은 마을의 오스카스 농장에 캠프리더가 직접담은 김치가 있었다는 것이였다. 캠프리더는 나에게 언제든지 김치가 그리우면 마음껏 꺼내먹으라하셨고, 모두들 이탈리아표 파스타가 질려가던 순간에, 나는 한국음식을 소개해주겠다며,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어 잊지못할 저녁을 먹기도하였다.
아무도 몇시부터 몇시까지 일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일을 강요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즐거워서 일을 하고, 일을 하다 힘이들면 그늘에 누워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기타를 연주하였다. 이곳에 온 친구들은 너무나 예술적인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였다. 몇몇 친구들은 그림을 정말 잘 그렸고, 몇몇 친구들은 독서와 글쓰기를 아주 좋아했으며, 몇몇 친구들은 기타를 매우 잘치도 노래를 매우 잘하였다. 나 또한 이곳에서 여러권의 책을 읽었고,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고, 너무나 아름다운 드럼을 배워 연주하였다. 농장 옆에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우리는 일이 끝나고 나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다같이 개울에 풍덩 빠져 놀고, 그곳에서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배가 고파지면 맛있는 저녁을 먹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캠프파이어를 하였다. 매일밤 하였던 캠프파이어는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과 기타와 잠베와 함꼐 노래를 하고, 친구들의 유머와 이야기를 듣고, 게임을 하고, 우리의 언어를 공유하며 서로의 언어를 배웠다. 매일밤이 너무나 즐거웠다. 특히 내가 평생 잊지 못할 버몬트에서의 광경은 밤에 높은 언덕에 올라가 풀밭에 누우면 수많은, 너무나 반짝이는 별들을 맘껏 볼 수 있었다. 평생 한번도 보지 못했던 별똥별은 그곳에서는 흔하지 않은 광경이 아니였다.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정말 평생 잊지 못할 나날들의 연속 이였다. 도착한지 이틀 후,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나와 또 다른 미국 친구한명의 생일 이였는데, 친구들은 나를 위해 꽃밭에서 가장 예쁜 꽃들을 엮어 꽃선물을 주었고, 몇몇 친구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을 주었고, 우리를 위해 산속에서 직접 케이크를 구어 노래를 하며 생일을 축하하였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반쯤 지났을까.. 우리는 문명과 단절된 생활에 조금 답답하기도 하였고, 농장과 가까운 마을에 마침 음악 파티가 있다는 소식을 입수하여 탈출(?)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가까운 작은 마을이 농장에서 도보로 3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3시간이 문제냐며, 걷기 시작하였고, 걷다가 걷다가 결국 히치 하이킹을 시도하였다. 히치하이킹은 영화에서만 보던 것이였는데, 내가 미국에서 히치하이킹을 경험하게 될줄이야…운좋게 히치하이킹을 하여 마을에 도착하여 문명을 만난 우리는 신나게 맥도날드 햄버거를 맘껏 먹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잊지못할 추억을 쌓았다. 그곳의 음악축제에서 우리 친구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 연주를 하고 노래도 불렀다. 또 하루는 캠프리더가 우리를 버몬트의 전형적인 축제인 puppet 축제에 데려가 구경을 하고, 직접 우리가 참가하여 그곳의 문화를 체험해보기도 하였다.
이곳에서는 배운 것이 참 많다. 우선,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나무들 사이에서 하늘을 보며 했던 샤워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우리가 직접 기르던 닭을 잡았는데, 나는 평생 보지 못한 광경이였다. 우리 모두가 함께 닭을 잡고, 털을 뽑고,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음식의 소중함과 그 과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연속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둥글게 앉아 종교, 정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 하였고, 각자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른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은 너무나 흥미 진진하였다. 그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 대해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지 않았고, 그 다름을 인정하며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친구들은 나에게 북한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해 물었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친구들은 나를 통해 한국을 알아가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것을 뽑으라 하면 사람이라 하겠다. 우리는 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헤어짐에 대해 슬퍼하였고, 서로 이제는 마치 우리가 한 가족같다고 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은 다음 미팅은 유럽이라며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아직도 그 친구들 한명한명과 연락하고 있고, 특히 이 캠프가 끝나고 캘리포니아에서 이 캠프중 한 친구를 만났을 떄에는 내가 얻은 것이 정말 많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3개월의 여름방학동안 나는 미국과 캐나다 여러 도시를 여행하였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뽑으라 하면 주저 없이 Vermont의 Oscars Farm 을 뽑는다. 나는 그 곳에서 자연속에서의 삶에 대해 배웠고, 다양함 속에서 어울림에 배웠으며, 더욱더 독립적으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