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크라이나, 말 안 통해도 괜찮아
Kakadu Kids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란 프로그램은 학교 같은 과의 선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워크캠프는 다른 봉사활동과 다르게 봉사지역까지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는 점과, 봉사 전후의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4월달에 봉사프로그램에 합격,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등 준비를 거쳐서 출발하였다.
7월23일 밤 12시 우크라이나 심페로폴 공항에 이 프로그램의 다른 한국 참가자 재준이와 도착하였다. 공항 직원들부터 시작해서 이곳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던 이곳에서, 다행히 한국인 선교인들이 있었고, 그들의 버스를 얻어타서 심페로폴 공항에서 심페로폴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우리의 집결지는 심페로폴 기차역에서 2시간 떨어진 에파토리아 기차역이었다.
밤 12시 30분. 심페로폴 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숙소를 찾아서 내일 에파토리아로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숙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 어두웠고, 캐리어를 끄는 우리는 이곳 사람들에게 호객의 대상이었고, 인종차별이 남아있는 동유럽이라 우리는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이 말을 거는 것을 뿌리치고 영어가 되는 현지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당장 숙소를 찾고 있는 중이고, 2시간 떨어진 에파토리아 기차역까지 가야한다고 전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택시를 구해주었다. 택시기사와 주위 숙소를 찾아보니 묵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택시기사는 우리에게 400그리븐(5만원)을 주면 에파토리아 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1-2시간거리에 우리는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OK를 했다. 새벽1시부터 2시까지 시속100km이하를 내려놓지 않는 이 택시기사는 엄청난 운전수였다. 앞에있는 차는 모조리 추월하였고, 마주오는 차 때문에 사고가 날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결국 1시간 넘게 고생을 해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택시기사에게 400그리븐을 주니까 돈을 안받았다. 왜 안받냐고 물으니까 한사람에 400씩 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한국과 다른 문화이지만 일단은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일단 돈을 주고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새벽 2시. 이곳저곳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가까운 숙소를 아는 사람은 없었고 새벽3시까지 방황했다. 그리고 한 모텔을 찾았지만 방이 없었다. 그 모텔의 주인에게 1층 로비에서 해가 뜰 때까지 머물러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거절 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건물 앞에서 새벽5시까지 잠을 잤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더 돌아다녀서 미팅 포인트와 호텔을 찾았다. 호텔에서 우리는 미팅시간까지 하루의 여유가 있어서 하루 동안 주위를 여행할 수 있었다.
카카두 캠프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프랑스, 나이지리아, 이집트, 스페인, 불가리아, 체코, 그리스, 한국, 일본, 미국, 터키, 헝가리 등 18명의 봉사자로 구성되었다. 우리의 임무는 캠프에 놀러 온 이 곳 아이들과 끊임 없이 소통하고 여러 활동을 통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37-38도에 육박하는 온도에서 우리는 매일아침 8시에 일어나서 9시무렵 밥을 먹고 각자 프로그램을 짜거나 아이들을 찾아서 놀아주러 다녔다. 처음에는 나와 재준이, 피터(체코 남학생,23), 빠브리나(스페인 여학생, 23)와 Game club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소통하였다. 내가 가져간 공기놀이와 재기차기는 한국의 전통놀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아이들이 즐겨주었다. 첫주가 지나서 2주차부터는 Game club을 없애고, 아이들과 축구를 하거나 캠프장 바로 뒤에 있는 흑해 해변에서 비치발리볼을 하였고, 뜨거운 낮에는 실내에서 보드게임을 하였다. 6시가 되어서는 캠프리더와 봉사자들이 모여서 매일마다 회의를 하였다. 캠프리더는 친절했고, 우리에게 항상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의 회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짜거나, 진행되는 프로그램, 행사들에 관한 참여가 주제였다. 그리고 매일 밤 8시부터 한 시간 동안은 이곳 캠프장 직원들이 기획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공연이나 운동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저녁 9시는 뜨거운 홍차를 줬는데, 이 홍차는 매 끼니 때 마다 주었고, 휴식시간에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37-38도가 넘는 이 곳에서 제대로 된 냉장고 하나 없고, 선풍기도 없는 이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홍차를 마신 것도 좋은 추억인 것 같다. 그리고 매일 밤 9시부터는 디스코 타임이었다. 나는 클럽에 가본적이 없지만 항상 클럽처럼 음악이 나왔고, 이 곳에서도 DJ가 있었다. 조명시설도 있었다. 10시 30분까지 아이들은 매일마다 이곳에서 춤을 추었다.
매일 PPT로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와 재준이는 한국에 대해서 소개를 하였다. 한국의 지리와 한복, 불국사와 제주도 등 여러 문화재와 예쁜 경치들을 보여주었다. 한국을 대표하여 발표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이 곳 사람들이 흥미롭게 들어주어서 큰 무리가 없었다. 소개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북한과의 관계, 한국인들은 정말 개고기를 먹는지를 물어왔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해서 좋은 방향으로 많이 설명해주었다.
사진들에서 여자아이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아이들은 나와 같은 건물 같은 복도, 숙소를 썼던 Section 9 아이들이다. 나이는, 한국나이로 중2,중3 정도 친구들인데 한국에 비해서 많이 성숙해보였다. 하지만 하는 행동들이나 노는 것들을 보면 아직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랑의 열매와 버터 캔디를 가져갔었는데, 이 곳 아이들은 이것들을 참 좋아했다. 이 곳에서 내 이름이 Su 였는데, 내 별명이 sushka(우크라이나 어로 사탕이란 뜻)가 되었다. 사랑의 열매는 정말 많은 아이들이 좋아했다. 나한테 달라고 찾아오는 아이들까지 있었을 정도인데, 줄 때마다 사랑의 열매의 의미를 알려 주었다. 빨간 3개의 열매의 각각 의미와 sharing에 대해 짧게 덧붙여 주었다. 이 곳 아이들은 정이 많이들어서 마지막날 새벽 5시에 카카두를 떠나는 재준이와 나를 배웅 나와주었다.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렇게 친해지고 나니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봉사자들의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컸다. 이 곳 아이들 말고 봉사자들도 굉장히 사교적이고 재미있는 애들이 많았다. 밤마다 나와 운동으로 내기를 하자고했던 체코의 피터. 나중에는 저녁에 행사로 아이들과 무대를 꾸며서 춤을 추는 순서가 있었는데 나랑 피터랑 둘이서 원숭이 분장을하고 5분동안 아이들과 춤을 췄다. 그 때부터 피터는 monkey 나는 banana 가 별명이 됬다. 스페인의 까르비나, 니나, 그리스의 빠나요따, 미국의 존, 잭 형제, 이집트의 무하매드 나이지리아의 프린스 아프리카 대륙 친구 둘은 부부 싸움하는 것 같이 매일마다 토닥거리고 싸웠다. 보는 내내 웃겼고 다른 봉사자들에게 언제나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프랑스의 로하와 피에르, 불가리아의 니콜라이, 터키의 센자르, 체코의 피터, 빠야, 일본의 까즈, 나라가 기억이 안나는 마리오스, 헝가리의 로런.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이라 이번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되주었다.
봉사자들끼리 흑해 해변에서 바베큐 파티를 할 때가 있었는데, 고기를 모래 위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물로 씻어 먹고, 불이 피워지지 않아서 고생도하는 등 재미있는 추억이 참 많다. 한번은 봉사자들끼리 시내에 있는 마트를 가기 위해서 버스타고 나가서는 돌아올 때는 걸어오자고 계획을 짰다. 밤 9시에 버스타고 출발했다가 여러 번 길을 잃고, 결과적으로 2시간을 걸어서 새벽2시에 돌아왔다. 그 때 길을 잃어서 못 찾아 올 줄 알았는데 운이 좋게 도착했다. 우리는 도착해서 전부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생각해보면 환경은 힘들었지만 재밌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날씨가 더운 것, 사는 환경이 한국만큼 좋지 않는 것은 분명 힘든 것들이었지만, 이 곳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항상 즐거움이었다. 처음 봉사를 신청할 때에는 막연히 ‘국내봉사도 다녀와보고 해외봉사도 다녀와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큰 기대감이 없었지만 다녀오고 나니까 아쉬움도 남고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 봉사 프로그램이 국내에 참 많은데, 그중에 이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왔다는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봉사활동을 해보면서 생각해 보았는데, 봉사활동은 활동을 통해 보람과 성취를 얻고, 함께 하는 사람들 간의 교류를 통해서 자기 발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번 봉사 활동을 통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처음 접하는 낯선 환경에서도 대처하는 법을 배웠고, 다른 나라사람들과 한 곳에서 무리 없이 생활하면서 문화를 이해하였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서 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무척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7월23일 밤 12시 우크라이나 심페로폴 공항에 이 프로그램의 다른 한국 참가자 재준이와 도착하였다. 공항 직원들부터 시작해서 이곳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던 이곳에서, 다행히 한국인 선교인들이 있었고, 그들의 버스를 얻어타서 심페로폴 공항에서 심페로폴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우리의 집결지는 심페로폴 기차역에서 2시간 떨어진 에파토리아 기차역이었다.
밤 12시 30분. 심페로폴 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숙소를 찾아서 내일 에파토리아로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숙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 어두웠고, 캐리어를 끄는 우리는 이곳 사람들에게 호객의 대상이었고, 인종차별이 남아있는 동유럽이라 우리는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이 말을 거는 것을 뿌리치고 영어가 되는 현지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당장 숙소를 찾고 있는 중이고, 2시간 떨어진 에파토리아 기차역까지 가야한다고 전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택시를 구해주었다. 택시기사와 주위 숙소를 찾아보니 묵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택시기사는 우리에게 400그리븐(5만원)을 주면 에파토리아 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1-2시간거리에 우리는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OK를 했다. 새벽1시부터 2시까지 시속100km이하를 내려놓지 않는 이 택시기사는 엄청난 운전수였다. 앞에있는 차는 모조리 추월하였고, 마주오는 차 때문에 사고가 날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결국 1시간 넘게 고생을 해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택시기사에게 400그리븐을 주니까 돈을 안받았다. 왜 안받냐고 물으니까 한사람에 400씩 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한국과 다른 문화이지만 일단은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일단 돈을 주고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새벽 2시. 이곳저곳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가까운 숙소를 아는 사람은 없었고 새벽3시까지 방황했다. 그리고 한 모텔을 찾았지만 방이 없었다. 그 모텔의 주인에게 1층 로비에서 해가 뜰 때까지 머물러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거절 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건물 앞에서 새벽5시까지 잠을 잤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더 돌아다녀서 미팅 포인트와 호텔을 찾았다. 호텔에서 우리는 미팅시간까지 하루의 여유가 있어서 하루 동안 주위를 여행할 수 있었다.
카카두 캠프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프랑스, 나이지리아, 이집트, 스페인, 불가리아, 체코, 그리스, 한국, 일본, 미국, 터키, 헝가리 등 18명의 봉사자로 구성되었다. 우리의 임무는 캠프에 놀러 온 이 곳 아이들과 끊임 없이 소통하고 여러 활동을 통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37-38도에 육박하는 온도에서 우리는 매일아침 8시에 일어나서 9시무렵 밥을 먹고 각자 프로그램을 짜거나 아이들을 찾아서 놀아주러 다녔다. 처음에는 나와 재준이, 피터(체코 남학생,23), 빠브리나(스페인 여학생, 23)와 Game club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소통하였다. 내가 가져간 공기놀이와 재기차기는 한국의 전통놀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아이들이 즐겨주었다. 첫주가 지나서 2주차부터는 Game club을 없애고, 아이들과 축구를 하거나 캠프장 바로 뒤에 있는 흑해 해변에서 비치발리볼을 하였고, 뜨거운 낮에는 실내에서 보드게임을 하였다. 6시가 되어서는 캠프리더와 봉사자들이 모여서 매일마다 회의를 하였다. 캠프리더는 친절했고, 우리에게 항상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의 회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짜거나, 진행되는 프로그램, 행사들에 관한 참여가 주제였다. 그리고 매일 밤 8시부터 한 시간 동안은 이곳 캠프장 직원들이 기획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공연이나 운동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저녁 9시는 뜨거운 홍차를 줬는데, 이 홍차는 매 끼니 때 마다 주었고, 휴식시간에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37-38도가 넘는 이 곳에서 제대로 된 냉장고 하나 없고, 선풍기도 없는 이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홍차를 마신 것도 좋은 추억인 것 같다. 그리고 매일 밤 9시부터는 디스코 타임이었다. 나는 클럽에 가본적이 없지만 항상 클럽처럼 음악이 나왔고, 이 곳에서도 DJ가 있었다. 조명시설도 있었다. 10시 30분까지 아이들은 매일마다 이곳에서 춤을 추었다.
매일 PPT로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와 재준이는 한국에 대해서 소개를 하였다. 한국의 지리와 한복, 불국사와 제주도 등 여러 문화재와 예쁜 경치들을 보여주었다. 한국을 대표하여 발표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이 곳 사람들이 흥미롭게 들어주어서 큰 무리가 없었다. 소개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북한과의 관계, 한국인들은 정말 개고기를 먹는지를 물어왔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해서 좋은 방향으로 많이 설명해주었다.
사진들에서 여자아이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아이들은 나와 같은 건물 같은 복도, 숙소를 썼던 Section 9 아이들이다. 나이는, 한국나이로 중2,중3 정도 친구들인데 한국에 비해서 많이 성숙해보였다. 하지만 하는 행동들이나 노는 것들을 보면 아직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랑의 열매와 버터 캔디를 가져갔었는데, 이 곳 아이들은 이것들을 참 좋아했다. 이 곳에서 내 이름이 Su 였는데, 내 별명이 sushka(우크라이나 어로 사탕이란 뜻)가 되었다. 사랑의 열매는 정말 많은 아이들이 좋아했다. 나한테 달라고 찾아오는 아이들까지 있었을 정도인데, 줄 때마다 사랑의 열매의 의미를 알려 주었다. 빨간 3개의 열매의 각각 의미와 sharing에 대해 짧게 덧붙여 주었다. 이 곳 아이들은 정이 많이들어서 마지막날 새벽 5시에 카카두를 떠나는 재준이와 나를 배웅 나와주었다.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렇게 친해지고 나니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봉사자들의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컸다. 이 곳 아이들 말고 봉사자들도 굉장히 사교적이고 재미있는 애들이 많았다. 밤마다 나와 운동으로 내기를 하자고했던 체코의 피터. 나중에는 저녁에 행사로 아이들과 무대를 꾸며서 춤을 추는 순서가 있었는데 나랑 피터랑 둘이서 원숭이 분장을하고 5분동안 아이들과 춤을 췄다. 그 때부터 피터는 monkey 나는 banana 가 별명이 됬다. 스페인의 까르비나, 니나, 그리스의 빠나요따, 미국의 존, 잭 형제, 이집트의 무하매드 나이지리아의 프린스 아프리카 대륙 친구 둘은 부부 싸움하는 것 같이 매일마다 토닥거리고 싸웠다. 보는 내내 웃겼고 다른 봉사자들에게 언제나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프랑스의 로하와 피에르, 불가리아의 니콜라이, 터키의 센자르, 체코의 피터, 빠야, 일본의 까즈, 나라가 기억이 안나는 마리오스, 헝가리의 로런.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이라 이번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되주었다.
봉사자들끼리 흑해 해변에서 바베큐 파티를 할 때가 있었는데, 고기를 모래 위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물로 씻어 먹고, 불이 피워지지 않아서 고생도하는 등 재미있는 추억이 참 많다. 한번은 봉사자들끼리 시내에 있는 마트를 가기 위해서 버스타고 나가서는 돌아올 때는 걸어오자고 계획을 짰다. 밤 9시에 버스타고 출발했다가 여러 번 길을 잃고, 결과적으로 2시간을 걸어서 새벽2시에 돌아왔다. 그 때 길을 잃어서 못 찾아 올 줄 알았는데 운이 좋게 도착했다. 우리는 도착해서 전부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생각해보면 환경은 힘들었지만 재밌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날씨가 더운 것, 사는 환경이 한국만큼 좋지 않는 것은 분명 힘든 것들이었지만, 이 곳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항상 즐거움이었다. 처음 봉사를 신청할 때에는 막연히 ‘국내봉사도 다녀와보고 해외봉사도 다녀와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큰 기대감이 없었지만 다녀오고 나니까 아쉬움도 남고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 봉사 프로그램이 국내에 참 많은데, 그중에 이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왔다는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봉사활동을 해보면서 생각해 보았는데, 봉사활동은 활동을 통해 보람과 성취를 얻고, 함께 하는 사람들 간의 교류를 통해서 자기 발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번 봉사 활동을 통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처음 접하는 낯선 환경에서도 대처하는 법을 배웠고, 다른 나라사람들과 한 곳에서 무리 없이 생활하면서 문화를 이해하였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서 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무척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