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프랑스, 나를 던지다
SENOUILLAC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올해 초 반복된 일상에 지쳐있을 무렵,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새로운 일을 해도 그 갈증은 풀리지 않았고 나는 아예 낯선 환경에서 나를 던져둔다면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회에 나가기 전 유럽 여행은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단순히 여행에 그치지 않고 문화교류 및 지역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워크캠프가 훨씬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해 지원하게 되었다. 마침 우리 학교에서는 워크캠프 기구와 연계가 되어 있어, 선발된 학생들에게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해주었고 대신 우리는 캠프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원하는 조건에 따라 배정되게 되었다.
내가 합격한 워크캠프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고 대부분 프랑스 워크캠프가 그렇듯 건축/보수 관련된 일을 하는 지역이었다. 다만 가기 전 걱정스러웠던 부분은 그 캠프가 올해 처음 만들어진 것이라 기반이 잘 잡혀있는 다른 지역보다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워크캠프를 간다는 것 자체에 상당히 설렘을 느꼈고 다행히도 같은 캠프에 배정된 한국인이 같은 학교 친구여서 먼저 연락을 한 후 어떻게 준비를 해 갈지 의논을 했다.
워크캠프가 시작되기 전 혼자서 여행을 마친 후, 드디어 당일. 어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며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기차로 무려 12시간을 달려 미팅 포인트에 도착했다. 기차가 연착이 되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이 캠프 지역에 먼저 도착해있을 사이 나는 뒤늦게 역에 마중 나온 리더와 만났다. 그녀는 삼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고, 상냥하고 친절한 프랑스인이었다. 다른 리더 또한 나이는 비슷해 보였고 일본계 프랑스인이었다. 내가 워크캠프 친구들을 만나기 전, 한국에서 내가 만났던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강사들이었고 그들은 직업 상 그런 것인지 몰라도 대부분 엄청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양 친구들은 다들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발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갔는데, 내가 처음 도착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을 때 친구들이 부끄러워하고 조용히 있었던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랬었다. 며칠 동안 생활해보면서 느낀 건 서양 친구들도 생긴 것, 문화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생각하는 것도 성격도 비슷한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한국에도 꼭 있을법한 타입의 친구가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먼저 워크캠프 장소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라 근처에 있는 것이라곤 논, 밭뿐이었고 마트를 가려면 최소 3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했다. 게다가 운동장 옆에 설치된 텐트에서 3주 동안 생활하게 된다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란 생각과 한편에 걱정도 되었다. 무엇보다 세탁기도 없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막막했던 것 같다. 텐트는 4명이서 같이 생활하도록 주어졌는데 나는 한국친구와, 프랑스 친구 한명 그리고 벨라루스 친구 한명과 한 텐트를 사용했다. 그 중에 프랑스 친구는, 18살이었는데 한국 문화에 상당히 관심이 많아 한국 드라마 그리고 k-pop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 정도였다. k-pop이 이제는 유럽에도 널리 알려졌다고 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었지만 실제로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을 보고 한류 붐이 마냥 거품만은 아니구나, 정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있구나 하고 느끼며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날 오전7시부터 12시까지, 우리는 건축/보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캠프에서 차를 타고 5분정도 가면, 교회 및 성이 있는 또 다른 마을이 있는데 우리는 그 근처에 있는 벽을 보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하는 장소를 보고 실망했다. 인포싯에 있는 사진을 보고 성곽보수를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개인 소유의 밭 옆에 있는 작은 돌벽을 부수고 새로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 만들어진 캠프이라는 것이 생각나면서, 일을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벽이 있는 장소는 밭주인 빼고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고, 보기에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인원은 총 14명, 키친 팀을 제외하면 11명인데 모두 그곳에 있기에는 벽이 작았고 자리도 없었기에 3명 정도는 town hall이나 교회에 배치되었다. town hall에서는 그 앞에 있는 주차장에 수풀 더미로 인해 무너진 철망을 다시 세우는 일을 했다. 교회에서는, 교회 한쪽 벽면이 원래 돌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그 위에 시멘트 칠이 되어 있어서 외관상 보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멘트를 긁어내고 자연스러운 돌벽 모양을 복원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예쁘지 않아서 어차피 긁어낼 것이라면 왜 시멘트 칠을 해 두었는가 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리더에게 물어봤으나 대충 얼버무릴 뿐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working site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리더들이 나이가 많고 단호한 성격이라 그런지 잘 대답을 해주지 않고 그냥 일을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그들도 모르고 그냥 일할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어떤 봉사활동을 하던지 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필요성과 목적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과정이 수반되어야 맹목적으로 하는 것 보다 조금 더 보람 있는 봉사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국 미팅 시간에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는 있었으나 친구들 통역을 이용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건축/보수 봉사활동은 처음이라서 힘든 점도 많고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친구들 사이에 어떤 트러블 없이 무사히 끝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루는 기자 분이 다녀가셔서 우리 사진이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처음에 친구들과 인사를 했을 때, 엄청 조용해 보이는 친구들도 많았고 특히 생각보다 너무 어려서 정말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둘째 날부터 나는 몇몇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밤에 악기를 연주하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프랑스 친구가 커밍아웃을 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얘기해서 깜짝 놀랐다. 아무렇지 않게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놀랐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캠프에는 프랑스 여자 리더 2명과 함께 총 14명의 캠퍼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터키 3명, 벨라루스 2명, 프랑스 4명, 영국 1명, 볼리비아 1명, 아르메니아 1명. 하지만 영국 친구와 볼리비아 친구는 둘 다 어머니가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았고 아르메니아 친구는 어릴 때부터 프랑스에 살았던 친구였다. 그래서 14명 중에 반은 프랑스어를 쓰는 친구들이었다. 워크캠프에 오기 전, 영어가 공용어라고 알고 있었고 어떤 후기를 읽었을 때 이런 룰이 엄격해 같은 국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영어를 써야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프랑스 친구들은 심지어 내가 그들 사이에 혼자 있을 때도 서로 프랑스어로 대화했고,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난감했던 상황이 많았다. 게다가 터키에서 온 2명의 여자아이들은 6년 간 베스트 프렌드라 처음에 둘이서 다니고 얘기하고 일도 잘 하지 않았고, 벨라루스에서 온 두 명은 커플이었기 때문에 이들 또한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둘이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같은 국가에서 친구끼리 오게 되면 처음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그런 부분이 오히려 융화되는 데에 방해요소가 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다. 언어적으로도, 우리는 크게 프랑스어, 한국어, 터키어, 러시아어로 나뉘어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그런 부분이 안타까웠다. 오히려 각 국가 당 1명씩 최대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 참여하는 캠프가 있다면 강제적으로도 영어를 쓰게 되기 때문에 각 국가별로 흩어지는 게 아니라 단일감을 느낄 수 있고 조금 더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팅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해 보았으나, 프랑스 친구들은 자신이 영어를 잘 못해서 프랑스어를 쓰는 것이라 했는데 잘 하고 못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건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어, 영어를 둘 다 구사하는 친구들이 통역을 해 주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유일한 프랑스인 친구 2명과 더 친하게 지냈다. 자유 시간에 간단한 프랑스어 표현들을 배우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함께 생활하다보니 대충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능하기도 했다.
보통 평일에 7시부터 12시까지 일을 끝내고 나면, 점심 식사를 하게 되는데 우리는 항상 식사를 하기 전에 키친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크게 외치곤 했는데 서로 서로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배려하는 것이 인상 깊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4시까지 자유시간이 있고 그 후에는 매일 스케줄이 다르지만, 마을 사람들 집에 초대 받아서 가거나 근처 중세 마을을 방문하거나 수영하러 가기도 했고 캠프에서 activity하고 쉬는 날도 있었다. 또 근처 사과 농장이나, 와인 농장에 견학을 가기도 했다. 우리는 원래 리더가 가지고 있던 차 한 대 밖에 없었는데 마을 측에서 우리에게 이동할 때 필요한 차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으며 세탁기가 없어 working clothes를 세탁해 주기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남부지방 사람들이 여유가 넘치고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항상 웃고 있었다. 또 신기한 점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을을 지나가다가 보이면 bonjour!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항상 바쁘게 생활하다가, 워크 캠프에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고, 나 또한 그들에 동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총 3주 중에 처음 10일이 끝났을 때는 일상에 지쳐 빨리 여행하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마지막 10일은 정말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마지막 주말 international day에 마을 사람들을 모두 우리 stadium에 초대해 각국의 음식을 만들고, 각국의 퍼포먼스를 준비해서 보여줬던 날. 우리가 만들었던 불고기는 정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극찬을 받아서 감동 받기도 했으며, 원더걸스의 nobody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난 다음날까지도 친구들이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어떤 노래의 가사를 우리들에 관해, 마을 사람들의 감사에 보답하는 내용으로 개사해서 Senoulliac, Senoulliac! 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불러주고, 이 노래는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하루는 주변 Gailliac이라는 마을에서 열렸던 wine exhibition에 참가해 다양한 와인도 시음해보고 피크닉도 가고 공연도 보고 불꽃놀이를 함께 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할 때 프랑스 친구가 통역해준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멀리 동양에서 온 여자아이가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과 게다가 큰 도시가 아닌 이 작은 시골마을에 왔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며 용감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의 삶에 대해서도 물어봐서 대답도 해주고 한글도 알려줬는데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알려주면서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워크캠프가 끝나고 난 후, 혼자서 여행을 하면서 3주간의 워크캠프가 정말 많이 그리웠다.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고, 친구들과 생활하던 모습들이 계속 떠올랐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요리하고, 스포츠 즐기고, 놀고 함께 생활하는 것은 정말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우리가 처음에 스스로 룰을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서로가 더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간들, 미팅 시간에 개선해야 할 점을 의논하던 시간들, 모두가 다 서로를 위한 것들이었다. 물론 의견이 맞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또한 배움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훨씬 어린데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일하던 친구들에게서도 많은 것들을 배웠다. 3주간의 생활동안 나는 그냥 혼자 여행만 하면서 다녔다면 얻을 수 없었던 프랑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 그리고 그들의 생활방식, 문화 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워크캠프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이해하는데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친구들과 모두 다시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내가 유럽으로 다시 여행을 가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거나 혹은 친구들이 한국에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내가 합격한 워크캠프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고 대부분 프랑스 워크캠프가 그렇듯 건축/보수 관련된 일을 하는 지역이었다. 다만 가기 전 걱정스러웠던 부분은 그 캠프가 올해 처음 만들어진 것이라 기반이 잘 잡혀있는 다른 지역보다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워크캠프를 간다는 것 자체에 상당히 설렘을 느꼈고 다행히도 같은 캠프에 배정된 한국인이 같은 학교 친구여서 먼저 연락을 한 후 어떻게 준비를 해 갈지 의논을 했다.
워크캠프가 시작되기 전 혼자서 여행을 마친 후, 드디어 당일. 어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며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기차로 무려 12시간을 달려 미팅 포인트에 도착했다. 기차가 연착이 되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이 캠프 지역에 먼저 도착해있을 사이 나는 뒤늦게 역에 마중 나온 리더와 만났다. 그녀는 삼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고, 상냥하고 친절한 프랑스인이었다. 다른 리더 또한 나이는 비슷해 보였고 일본계 프랑스인이었다. 내가 워크캠프 친구들을 만나기 전, 한국에서 내가 만났던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강사들이었고 그들은 직업 상 그런 것인지 몰라도 대부분 엄청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양 친구들은 다들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발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갔는데, 내가 처음 도착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을 때 친구들이 부끄러워하고 조용히 있었던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랬었다. 며칠 동안 생활해보면서 느낀 건 서양 친구들도 생긴 것, 문화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생각하는 것도 성격도 비슷한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한국에도 꼭 있을법한 타입의 친구가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먼저 워크캠프 장소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라 근처에 있는 것이라곤 논, 밭뿐이었고 마트를 가려면 최소 3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했다. 게다가 운동장 옆에 설치된 텐트에서 3주 동안 생활하게 된다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란 생각과 한편에 걱정도 되었다. 무엇보다 세탁기도 없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막막했던 것 같다. 텐트는 4명이서 같이 생활하도록 주어졌는데 나는 한국친구와, 프랑스 친구 한명 그리고 벨라루스 친구 한명과 한 텐트를 사용했다. 그 중에 프랑스 친구는, 18살이었는데 한국 문화에 상당히 관심이 많아 한국 드라마 그리고 k-pop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 정도였다. k-pop이 이제는 유럽에도 널리 알려졌다고 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었지만 실제로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을 보고 한류 붐이 마냥 거품만은 아니구나, 정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있구나 하고 느끼며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날 오전7시부터 12시까지, 우리는 건축/보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캠프에서 차를 타고 5분정도 가면, 교회 및 성이 있는 또 다른 마을이 있는데 우리는 그 근처에 있는 벽을 보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하는 장소를 보고 실망했다. 인포싯에 있는 사진을 보고 성곽보수를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개인 소유의 밭 옆에 있는 작은 돌벽을 부수고 새로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 만들어진 캠프이라는 것이 생각나면서, 일을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벽이 있는 장소는 밭주인 빼고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고, 보기에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인원은 총 14명, 키친 팀을 제외하면 11명인데 모두 그곳에 있기에는 벽이 작았고 자리도 없었기에 3명 정도는 town hall이나 교회에 배치되었다. town hall에서는 그 앞에 있는 주차장에 수풀 더미로 인해 무너진 철망을 다시 세우는 일을 했다. 교회에서는, 교회 한쪽 벽면이 원래 돌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그 위에 시멘트 칠이 되어 있어서 외관상 보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멘트를 긁어내고 자연스러운 돌벽 모양을 복원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예쁘지 않아서 어차피 긁어낼 것이라면 왜 시멘트 칠을 해 두었는가 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리더에게 물어봤으나 대충 얼버무릴 뿐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working site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리더들이 나이가 많고 단호한 성격이라 그런지 잘 대답을 해주지 않고 그냥 일을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그들도 모르고 그냥 일할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어떤 봉사활동을 하던지 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필요성과 목적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과정이 수반되어야 맹목적으로 하는 것 보다 조금 더 보람 있는 봉사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국 미팅 시간에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는 있었으나 친구들 통역을 이용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건축/보수 봉사활동은 처음이라서 힘든 점도 많고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친구들 사이에 어떤 트러블 없이 무사히 끝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루는 기자 분이 다녀가셔서 우리 사진이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처음에 친구들과 인사를 했을 때, 엄청 조용해 보이는 친구들도 많았고 특히 생각보다 너무 어려서 정말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둘째 날부터 나는 몇몇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밤에 악기를 연주하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프랑스 친구가 커밍아웃을 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얘기해서 깜짝 놀랐다. 아무렇지 않게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놀랐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캠프에는 프랑스 여자 리더 2명과 함께 총 14명의 캠퍼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터키 3명, 벨라루스 2명, 프랑스 4명, 영국 1명, 볼리비아 1명, 아르메니아 1명. 하지만 영국 친구와 볼리비아 친구는 둘 다 어머니가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았고 아르메니아 친구는 어릴 때부터 프랑스에 살았던 친구였다. 그래서 14명 중에 반은 프랑스어를 쓰는 친구들이었다. 워크캠프에 오기 전, 영어가 공용어라고 알고 있었고 어떤 후기를 읽었을 때 이런 룰이 엄격해 같은 국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영어를 써야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프랑스 친구들은 심지어 내가 그들 사이에 혼자 있을 때도 서로 프랑스어로 대화했고,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난감했던 상황이 많았다. 게다가 터키에서 온 2명의 여자아이들은 6년 간 베스트 프렌드라 처음에 둘이서 다니고 얘기하고 일도 잘 하지 않았고, 벨라루스에서 온 두 명은 커플이었기 때문에 이들 또한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둘이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같은 국가에서 친구끼리 오게 되면 처음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그런 부분이 오히려 융화되는 데에 방해요소가 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다. 언어적으로도, 우리는 크게 프랑스어, 한국어, 터키어, 러시아어로 나뉘어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그런 부분이 안타까웠다. 오히려 각 국가 당 1명씩 최대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 참여하는 캠프가 있다면 강제적으로도 영어를 쓰게 되기 때문에 각 국가별로 흩어지는 게 아니라 단일감을 느낄 수 있고 조금 더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팅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해 보았으나, 프랑스 친구들은 자신이 영어를 잘 못해서 프랑스어를 쓰는 것이라 했는데 잘 하고 못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건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어, 영어를 둘 다 구사하는 친구들이 통역을 해 주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유일한 프랑스인 친구 2명과 더 친하게 지냈다. 자유 시간에 간단한 프랑스어 표현들을 배우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함께 생활하다보니 대충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능하기도 했다.
보통 평일에 7시부터 12시까지 일을 끝내고 나면, 점심 식사를 하게 되는데 우리는 항상 식사를 하기 전에 키친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크게 외치곤 했는데 서로 서로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배려하는 것이 인상 깊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4시까지 자유시간이 있고 그 후에는 매일 스케줄이 다르지만, 마을 사람들 집에 초대 받아서 가거나 근처 중세 마을을 방문하거나 수영하러 가기도 했고 캠프에서 activity하고 쉬는 날도 있었다. 또 근처 사과 농장이나, 와인 농장에 견학을 가기도 했다. 우리는 원래 리더가 가지고 있던 차 한 대 밖에 없었는데 마을 측에서 우리에게 이동할 때 필요한 차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으며 세탁기가 없어 working clothes를 세탁해 주기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남부지방 사람들이 여유가 넘치고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항상 웃고 있었다. 또 신기한 점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을을 지나가다가 보이면 bonjour!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항상 바쁘게 생활하다가, 워크 캠프에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고, 나 또한 그들에 동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총 3주 중에 처음 10일이 끝났을 때는 일상에 지쳐 빨리 여행하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마지막 10일은 정말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마지막 주말 international day에 마을 사람들을 모두 우리 stadium에 초대해 각국의 음식을 만들고, 각국의 퍼포먼스를 준비해서 보여줬던 날. 우리가 만들었던 불고기는 정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극찬을 받아서 감동 받기도 했으며, 원더걸스의 nobody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난 다음날까지도 친구들이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어떤 노래의 가사를 우리들에 관해, 마을 사람들의 감사에 보답하는 내용으로 개사해서 Senoulliac, Senoulliac! 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불러주고, 이 노래는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하루는 주변 Gailliac이라는 마을에서 열렸던 wine exhibition에 참가해 다양한 와인도 시음해보고 피크닉도 가고 공연도 보고 불꽃놀이를 함께 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할 때 프랑스 친구가 통역해준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멀리 동양에서 온 여자아이가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과 게다가 큰 도시가 아닌 이 작은 시골마을에 왔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며 용감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의 삶에 대해서도 물어봐서 대답도 해주고 한글도 알려줬는데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알려주면서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워크캠프가 끝나고 난 후, 혼자서 여행을 하면서 3주간의 워크캠프가 정말 많이 그리웠다.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고, 친구들과 생활하던 모습들이 계속 떠올랐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요리하고, 스포츠 즐기고, 놀고 함께 생활하는 것은 정말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우리가 처음에 스스로 룰을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서로가 더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간들, 미팅 시간에 개선해야 할 점을 의논하던 시간들, 모두가 다 서로를 위한 것들이었다. 물론 의견이 맞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또한 배움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훨씬 어린데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일하던 친구들에게서도 많은 것들을 배웠다. 3주간의 생활동안 나는 그냥 혼자 여행만 하면서 다녔다면 얻을 수 없었던 프랑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 그리고 그들의 생활방식, 문화 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워크캠프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이해하는데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친구들과 모두 다시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내가 유럽으로 다시 여행을 가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거나 혹은 친구들이 한국에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