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워크캠프, 꿈과 현실 사이

작성자 천혜진
프랑스 CONC 063 · RENO 2012. 06 Bain-sur-oust, France

BAINS SUR OUST 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 길고도 짧았던 3주 &#8211; ‘나’만 알았던 소심녀의 단체생활 감상기 >

프랑스에서의 3주간 워크캠프가 끝난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사실 캠프 처음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다고 하면 거짓말처럼 들릴까.
프랑스가 주는 낭만의 이미지와 맞물려 나에게 지난 6월은 여러모로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게 해 주었던 그런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 꿈은 간드러지게 좋을 때도 있었고, 물론 자다 깨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여러 참가자들 경험담에는 주로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들이 많아보여 내 글이 안좋게 비교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알게 모르게 우리 속마음을 반영해준다는 꿈처럼, 그림 속 가지각색의 친구들과 일상에서 부대끼는 동안 느끼고 배웠던 점을 말하면서 솔직해지고 싶다. 기억되는 순간 거의 모든 일들은 약간씩 왜곡되게 마련이지만, 그 때의 생생함을 되짚으면서 다시 그 꿈을 꿔봐야 할 때인가보다.



1. 이렇게 해서 Bains &#8211; sur &#8211; Oust 로-

올 한해 미국에서 방문학생으로 수학중이다. 여름방학이 무려 네 달이나 되는 바람에 여행을 하고도 충분히 남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비교적 싼 참가비의 밀도있는?워크캠프가 낫겠다 싶어 신청했다.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한 뒤 파리에서 아웃하는 일정으로 계획해서 프로그램들을 찾아보니 이 프로그램이 딱 맞았다. 3주라는 넉넉한 시간동안 브르따뉴 지방에서 친구들과 막노동을?! 여행하느라 먹고 놀고 실컷 즐겼으니 고생도 좀 해보자 라는 생각과 함께 부랴부랴 신청했고, 운좋게 참가하게 되었다. 나중에 보니 다른 프로그램들보다는 마감이 늦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2. 만남과 생활의 시작

미국에서의 봄학기동안 그래도 외국 친구들 보는데 익숙해져서 그런지 처음 사귀는 것은 낯설지 않았다. 더구나 11명 중 한국 친구들이 나를 포함해 4명이나 있어서 적응하는데는 훨씬 수월했다. 단체생활에선 습관적으로 수동적이고 조용한 나는 솔직히 이번 캠프가 성격적 측면에서 나름 큰 모험이었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더욱 고맙기도 했다. 20대때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뿐만 아니라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한 교수님의 말씀이 절실하게 느껴진 때도 이 시기였다.(나중의 사회생&#54875;을 위해서도 그렇고, 이번 생활을 하겠다는 선택은 단순했지만 결국 도전적이었다는 의미이지 하기 싫은 일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고민들을 여유를 갖고 둘러보기도 전에, 우선 캠프의 물리적인 상황들부터도 생각보다 버거웠다. 3주간 침낭생활의 처음에는 텐트 안의 벌레들, 어설픈 생활공간 때문에 씻고 옷 갈아입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였다. 나중엔 개미와 거미들 쯤이야 손으로 휙 싸잡아 훨~ 날려주면 그만이었고, 봉사가 끝난 후 샤워를 한다는 그 자체가 생활의 소소한 행복이 될만큼 적응되었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인가보다. &#61514;

3. 몸이 기억하는, 잊을 수 없는 봉사활동 : 돌담 재정비하기

우리의 일은 프랑스 브르따뉴 지방 특유의 건축양식에 따라 만들어진 오래된 돌담을 재정비 하는 것이었다. 그 중 마을 공동묘지를 둘러싼 큰 돌담면 두 군데를 고쳤다. 아침 8시~9시쯤 일을 시작해서 12시쯤 간식을 먹고 잠깐 쉰 다음 오후 2시까지 일한 후 점심을 먹는것이 주중 스케줄이었다.
캠프를 하고 돌아와서 전역한 지 얼마 안된 선배에게 나 이런것도 했다~ 자랑했더니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좀 무안해지려 했다^^;) 여자가 하기엔 진심 힘들었을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 일이었다. 하루 세 끼에다 치즈, 달달한 디저트까지 신경써서 챙겨먹는 프랑스 문화에서 생활하면서도 살이 좀 빠졌던 건 역시 일 때문이었나? 많아도 하루 5시간정도의 노동이었는데,(정말 말 그대로 노동. 몸으로 정직한 노동이었다) 먹은만큼은 정직하게 일 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던 3주였다.

4. 잊을 수 없는 음식들: 먹는 낙이 절반. 진짜 바게트는 이것!

식사준비는 두명씩 한조를 이루어 당번날에는 나머지 친구들을 위한 3끼를 준비했다. 그 날엔 일을 안하는 대신 식사준비뿐만 아니라 생활공간, 화장실, 샤워실 등 청소도 해야했다. 재료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차로 10분정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서 각 팀별로 할 레시피에 필요한 것들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참가비로 생활비 충당을 하다보니 같은 물건이라도 가장 싼 재료만 주로 골랐다. 아침으로는 빵, 씨리얼, 요거트, 과일, 커피를 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거의 각 나라별 음식을 맛보는 식으로 준비를 했었는데, 썼던 재료는 비슷했다. 파스타, 쌀, 감자, 빵, 다른 야채, 버섯류, 가끔 고기^^; 위주의 식단이었다. 똑같은 재료로 거의 매번 다른 요리를 하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평소엔 밥을 사먹는데 익숙해서 처음엔 요리 자체가 부담이었다. 그리고 한번 준비 할때마다 10명이 넘는 분량을 가늠하는것도 쉽지 않았지만 캠프리더 요한과 다른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훨씬 수월했다. 가끔 요한은 본인이 당번을 자처해서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곤 했는데, 요리를 익숙하게 즐기고 먹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유로운 외국친구들의 태도가 배울만했던 것 같다. 음식을 먹기 전 요리 소개를 간단히 하고(딱보면 알지만 본인들 나라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니) 식사 시작은 꼭 다같이 하는 세심함도 보았다. 친구들 국가별 “잘먹겠습니다” 라는 말을 외치고ㅋ밥을 먹을 수 있었던 약간의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61514;


나는 일도 일이었지만 이 요리준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여기와서 처음 배웠다. 재료준비부터 야채 다듬고 지지고 볶고, 이게 맛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부담과 함께 친구들 먹을 양도 가늠해야되고 먹고 나서는 그 많은 접시들 수저들 설거지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엌 청소. 이게 간단해 보였는데 당번일에는 일을 안하는 것이 이해가 갔다. 한끼 식사 준비부터 마무리까지만 해도 진이 빠질 정도였다. 이걸 매일 해왔을 어머님들을 생각하니 절로 미안하고 존경스러웠다. 앞으로 요리 하게될 일이 많아질텐데, 내 밥을 맛있게 먹어줄 상대방을 생각하며 정성껏 준비하고 그런 시간을 즐기기 위한 연습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5. 여유로웠던 하루 30시간, 기억의 재구성


돌아보면 일한 시간 외에 우리는 함께 많이도 놀러 다니고 쉬기도 했다. 특히 이 지역은 해가 길어서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어둑어둑해지는 바람에 하루가 30시간은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3주가 아닌 한달은 같이 보낸 것 같은 느낌이다.
캠프 초기엔 마을 시장님과 주민분들이 초대해 주셔서 저녁도 먹고 얘기고 하고, 음악 페스티벌같은 행사가 있으면 거기 또 가서 맥주 한잔 하면서 음악도 듣고.
주말에는 근교로 하이킹을 가기도 했다. 가끔 주민분들이 취미삼아 동네 유적지 가이드도 해주시곤 했는데, 놀랐던 건 적어도 거기서 만났던 브르따뉴지방 사람들은 본인의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이런 일을 전혀 부담없이 즐겁게 하시는게 아닐까 싶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젖소농장을 방문해서 우유와 치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보고. 동네 초등학교에도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가 그 마을의 돌담을 고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곳 문화 자체가 전반적으로 지역민들과 교류를 활발하게 해 주고 본인들 문화도 자연스레 소개하는 분위기였는지, 어찌됐건 이 둘이 맞물려서 3주동안의 생활은 그 마을의 문화와 함께 녹아든 시간이었다. 이래서 프랑스가 문화강국이라고 알려진지도 모르겠다.
한편 차를타고 멀리까지 나가 프랑스 북서쪽인 노르망디지역 해변가에 가기도 했고, 그 아래쪽으로는 전통있는 중세분위기의 소도시 Dinan, 한국의 대학가와 같은 Renne 등 이 캠프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가보지 못했을 프랑스의 알짜배기 지역들을 함께 구경하기도 했다.

이렇게 단체로 움직일때가 아니면 다른 캠프에서도 그렇듯 개인적으로 쉬고, 게임을 하기도, 책을 읽기도(책은 주로 처음에 서먹서먹했을때 들고있기 쉽지만, 가면 갈수록 손에서 놓게된다ㅋ), 농구나 축구, 배드민턴 등 운동도 하면서 그렇게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다녔다. 그땐 일도 힘들고 피곤해서 이렇게 놀러다니는 것 자체도 하나의 일처럼 느껴졌는데,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당시의 기억 역시 좋게 재구성되기 마련인 것 같다. 힘들게 일한만큼 맛있게 밥먹고, 열심히 놀고, 또 지치면 쉬는, 정직하고 기본적인 생활은 균형잡히고 조화로운 삶이란 무엇인가..ㅋㅋ 에 대한 대답을 몸소 체험하게 해주었다. 이 시간들을 함께 한 그 친구들이 갑자기 더 보고싶다.













6. 잠에서 깬 지금, 3주간의 꿈을 기억하며


캠프리더 요한은 이 생활이 꿈같은 것이라 했다. 일한만큼 또 그 댓가로 함꼐 모은 돈으로 먹고 놀고 쉬고.
만나고 헤어지는게 프로젝트 식으로 반복되서 고통스럽다고도 했다. 악몽과 좋은 꿈의 반복일까.

하지만 마냥 좋았던 꿈이라고 하기 힘든적도 있었다. 일한 후 맛있는 바게뜨 먹고 여유롭게 즐기고 하면서 좋을것만 같은 생활 속에서도 알게모르게 팀원들 간 갈등이나 미묘한 신경전 같은 일들이 있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가족, 친구들뿐만 아니라 학교와 직장생활이라는 넓은 사회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갈등들은 외국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도 역시나였다. 3주라는 시간동안 아침부터 잠 잘때까지 함께 있는 사람들이니 더욱 피하기 어려운건 당연했다. 어딜가든 이런건 피할 수 없나보다.

또 그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런 생활이 꿈같은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라 그런지 명목상 그 좋다는 윤리책에 나올법한 그런 공동생활 안에서도 분열이나 욕심, 게으름 간의 불균형이 일어나서 지속되기 어려운게 아닐까 했다. 그리고 그것들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 특히 우리같이 비교적 많은 팀원들을 이끌어 준 리더에게는 여러모로 피곤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겉으로는 내색 안하고 끝까지 책임감있게 우리 모두를 배려해 준 요한에게 이 글로나마 고마움을 표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때의 3주는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 지지고볶고 하는 동안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은 다이나믹한 꿈으로 기억된다. 처음엔 생각보다 어설픈 야영생활때문에 오자마자 떠나고 싶었지만^^; 물리적인 적응은 또한 인간이기에 할만했다. 먼 땅 프랑스에서, 3주 동안이나, 시멘트 바르면서, 시골빵집의 바게트도 먹으면서, 다시 만날수는 있을까 싶은 소중한 인연들과, 언제 또 이렇게 살아볼까. 이 때의 고유한 경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고맙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아 &#8211; 잘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