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부에노스아이레스, 꿈을 좇아 지구 반대편으로

작성자 김수지
아르헨티나 SAS_010 · RENO/ KIDS 2012. 08 아르헨티나 villa ocampo

Subir con Conciencia 201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덜컥 휴학을 결정한 것은 지구반대편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목적지는 하나,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내가 밟을 수 있는 가장 먼 세계였다. 오랜 시간 꿈꿔왔던 일이었고 나는 문득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남아메리카는 멀었다. 그 막연하기만 한 거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표현해줬던 것은 다름아닌 비행기 삯이었다. 나는 최소한의 경비만 모이면 바로 떠나겠다는 결심으로 스물 세 살의 뜨거운 여름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여행준비가 시작된 것이었다.

워크캠프를 찾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적은 경비로 긴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해주는 key로써, 나는 워크캠프 스케줄을 중심삼아 여행일정을 짰다. 페루에서 시작해 아르헨티나로 이동하고, 산타페주에서의 2주 워크캠프 일정을 소화한 뒤 칠레로 넘어가는 계획. 생각보다 늦은 시기인 6월의 초여름, 나는 난생 처음 이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워크캠프의 시작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였다. 나는 2주 간의 페루일정을 끝마치고 벌써 한달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던 중이었다. 한 달은 지도 밖으로 나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고 자란 '뽀르떼뇨'를 찾아간 나는 서울에서 배우던 스페인식 스페인어가 아닌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를 배웠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우리는 다함께 야간버스를 타고 산타페주의 villa ocampo로 향했다. 하룻밤 꼬박, 거대한 땅덩어리를 달려 마을에 도착한 것은 훤한 아침이었다. 우리는 새 보금자리에서 잠깐 낮잠시간을 가진 후 테라스에 모여앉아 본격적인 워크캠프의 시작을 함께했다.

일터까지는 집에서 무려 40분이 걸렸다. 대륙의 스케일, 나는 3리터짜리 코카콜라를 보며 비로소 이 나라의 크기와 내가 걸어야하는 시간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깨달았다. 점심을 집에서 먹어야했던 관계로 우리는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걸어다녀야 하는 것이었다.

임무는 무료급식소 리모델링이었다. 기존에 칠해져있던 페인트를 긁어내던 작업 초반에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페인트가루를 뒤집어쓰곤 했다. 하드렌즈 때문에 고생했던 첫 날 이후로 나는 쭉 원데이 일회용렌즈를 사용했다.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하는 내내 우리는 흰 가루를 뒤집어쓰고 전통차 마떼를 돌려마셨다. “¿azucar?” (설탕넣을래?) “sin azucar." (아니, 빼줘.) 나는 설탕없이 마시는 마떼를 더 좋아했다.

나는 워크캠프의 시작과 동시에 한 달 동안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생활에서도 깨닫지 못했던 하나의 큰 위안에 대해 알게되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에서는 그 존재를 전혀 알 수 없었던 siesta, 바로 낮잠시간이었다. 일터는 야외였기에 낮잠장소는 바로 풀밭 위가 되었지만 이미 옷이 더러워지든 얼굴이 타든 신경쓰지 않게 된 우리는 모자 하나 없이 아주 정직하게 낮잠을 즐겼다. 매일 아침 선크림을 챙겨발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까맣게 타고 말았다. 하긴, 나는 애초부터 그렇게 될 것을 알고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르헨티나 출신이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워크캠프 멤버 거의 모두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던 드문 케이스가 바로 내가 참가했던 아르헨티나 워크캠프였다. 더불어 현지 학생, 자원봉사자는 물론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는 아이들과의 교류도 빈번했기때문에 공용어였던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자연스레 기본적인 의사표현에 불과했던 내 스페인어는 급격히 향상되었다. 더하여 한국으로 돌아와 스페인어 OPIc 점수까지 얻게되면서 나의 제2외국어가 스페인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4학년에 된 나에게, 워크캠프는 한 줄의 봉사활동 경험과 하나의 외국어 점수가 추가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어떤 종류의 '마지막'을 앞둔 사람이 느끼는 특유의 감상적 사고, 나에게 그 끝은 항상 남미여행과 워크캠프로 이어진다. 나는 언제 또다시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 모든 것을 털어버릴 수 있을까. 하나 확실한 진리만이 내게 남았다. 정말 간절히 꿈꾸는 것은 이루어진다는 것. 내가 내 세상의 끝을 밟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