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벌몬트, 시간이 멈춘 듯한 10일

작성자 성보미
미국 VFP22-12 · ENVI/RENO 2012. 08 미국 VERMONT

BICYCLE TRAIL BUILDI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워크캠프 이야기를 워크캠프 안에서 썼던 글과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의 글로 나눠서 쓰고자 한다.

2012. 8. 22 – 시간의 상대성

“시간에 돌이 달렸다” 정말 이 표현이 딱 적합하다. 여기 이곳 벌몬트 워크캠프에서의 10일이 나에게는 마치 두 달 아니 100일 같이 느껴졌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식사하고 자고, 하는 노동도 그저 땅 파고 나무 자르고 삽질하고 돌 운반하는 단순노동. 화장실도 없어서 전기, 물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열악한 상황인지라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과 생리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급급하고 점점 하는 대화내용이나 생각하는 것들이 단순해지고 원초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사회에서는 정말 별 것도 아닌 쥐, 모기, 나무뿌리 같은 일에 즐거워하는 것 하며 되게 사람이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고 표현해야 할까? 사회와도 단절되어 있으니까 정말 이성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기 보다는 그저 본능과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이런 단절되고 막혀버린 그리고 본능적일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 하루하루를 보내고 이성을 지키며 내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아주 심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생각하고 바깥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없어지지 않는 길이며 나를 잃지 않는 길이다. 반복적이고 혼자만의 일을 할 땐 늘 조심해야 하며 되도록 사회와 단절되어 혼자 있고자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러워도 억울해도 결국 사회 속에서 남과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인 듯하다. 스스로 멍청해지기 싫어서 스스로 나를 잃기 싫어서 나를 지키고 싶어서 공부를 먼저 찾게 되고 나의 잘못에 대해 회개하고 반성하게 될 줄이야. 정말 이번 10일의 경험은 내겐 너무나도 값진 경험인 듯하다. 나에겐 너무나도 길었던 22살의 여름이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훌쩍 지나가버린 10일일 뿐일텐데 참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 누구와 함께 있느냐 이 모든 것이 그 순간을 행복하게 느끼고 만족하게 하며 매우 아쉬운 순간을 만든다는 것에 다시금 깨닫는 바이다. 행복이란 어찌보면 단순한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있는 무리 속에서 내가 보람되고 내 본성에 부합하는 일을 할 때 가장 시간이 잘 가며 아쉽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가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12. 9. 7 – 여행이란 기차에서 내려오다

이번 8월 한 달간의 여행 테마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홍콩, 뉴욕은 세계적인 도시이고 벌몬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시골. 이번 여행 테마는 가히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시간의 상대성을 피부로 접한 여행이 아닐까? 세계적인 도시를 여행할 땐 가는 곳곳마다 신기한 것 투성이에 감탄을 연발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하루하루가 너무 잘 가고 내일이 기대되고 아쉬움 투성이였다. 반면, 벌몬트는 우선 사람도 거의 없고 한적하고 매우 평화로우며 산은 산이요 물은 그저 물이로다 이런 인생무상이 느껴지는 아주 자연적인 곳이다. 우리가 먹고 자는 곳은 카누라는 배를 타서 노를 직접 저어서 간 오두막집이다. 첫 날, 벌몬트의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자연과 함께 이곳에 풍류를 즐기러 온 것이 아니라 ‘ WORK ’ 일을 하러 온 것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의 경이로움보다는 자연의 불편함을 경험했다. 화장실도 비상시를 대비한 간이화장실 하나뿐이어서 급한 대소변만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1시간 배를 타고 걸어 나가서야 비로소 현대식 화장실이 있었다.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늘 그곳을 지나오곤 했는데 그 때 씻는 것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다. 노동은 인포싯에 명시한대로 중.노.동! 난생 처음으로 삽, 곡괭이, 갈퀴 등 이런 연장을 사용해보았다. 이런 중노동덕분에 손에는 굳은살이 박혀있다. 굳은 살을 볼 때마다 그 때의 힘듦이 기억나, 나에게 끈기와 의지를 선물한 듯하다. 아주 힘든 노동덕분에 상대적으로 쉬는 시간인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 시간에 다른 국적을 가진 참가자와 대화를 하곤 했는데 다들 같은 힘든 일을 해서 그런가? 좀 더 공감되고 이해되고 많이 가까워졌던 것 같다. 우린 이런 힘든 노동을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하고 돌아오는 길조차도 배를 타고, 30분 정도 산길을 걸어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한 후 9시에 바로 취침하였다. 내가 애당초 생각했던 워크캠프와는 정말 달랐다. 일의 특성 때문인 듯하다. 일이 자전거 도로 만들기와 허리케인이 지나간 자리를 복구 하는 것이니 이 프로그램의 초점은 일 인듯하다. 지금 돌아온 후 내게 남은 건 애당초 기대했던 문화교류와 그 지역주민들의 삶이 아닌 나에 대한 고찰과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인 것 같다.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가 되어서일까?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나니까 후회스럽지도 아쉽지도 않다. 그저 만족스럽다. 이번 벌몬트 워크캠프덕분에 살면서 결코 느끼기 어려운 소중한 가치들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소중함. 이것이야 말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으면서도 가장 피부로 와닿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일상에 대한 지루함을 느끼거나 삶에 대한 불만이 가득할 때 난 과감히 벌몬트 워크캠프를 지원하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 고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감사함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