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잊지 못할 나의 이야기

작성자 김혜미
아이슬란드 SEEDS 047 · ENVI / CONS 2013. 06 아이슬란드 동부

Skriðdalur - Crawling Valley (2: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다녀온지 벌써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캠퍼들의 이름 하나하나 기억나고 아이슬란드 사진만봐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따뜻한 무엇이 올라온다. 솔직히 이정도까지 특별한 기억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엔 그저 아이슬란드에 관한 에세이를 보고 충동적으로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아이슬란드에서 워크캠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지원한 것이었다. 막연히 가보고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나라에서 이제는 특별한 나만의 스토리를 가진 나라가 된 아이슬란드. 그 이야기를 되짚어 보려고 한다.

0. 떨리는 도전
막상 출국 시기가 다가오자 손톱을 물어뜯으며 긴장하고 후회했다. '으,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떻게 2주를 함께 지내지! 게다가 난 낯도 많이 가리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서로 친해지게 되는데 2주는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친해질때쯤 헤어지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난 당시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라서 최악의 경우 끝까지 친해질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도착했다.

1. OMG , 나이에 놀라고 국적에 놀라고.
내가 지원했던 프로젝트의 나이 제한은 20+. 이 나이 조건을 보고도 왜 난 당연히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 올 거라고 예상했던 걸까. 프로젝트 첫날, 나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Hi~' 하며 밝은 표정으로 지프에 짐을 싣는 3명의 백발 노인들. 조엘, 도미니크 부부와 마리앙뚜와네뜨 할머니였다. 8명 중에 3명이 노인, 2명은 30대 이탈리아인 부부, 그나마 나와 같은 또래는 20대 후반의 벨기에 남자 단과 캠프리더인 프랑스인 나타샤. 하지만 단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약간 풀린 눈에 꾀죄죄한 옷차림, 그리고 기괴스러운 웃음소리. 정말 캠프리더마저 이상한 사람이었더라면 난 정말 캠프를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나 빼고 모두 불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8명 중 4명이 프랑스인이었고 벨기에 출신인 단은 모국어는 더치이지만 기본적인 불어는 할 줄 알며 이탈리아부부도 인접한 문화권인만큼 기본적인 불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특히 실비아(아내)는 파리 유학 경험까지 있어서 불어가 유창했다. 물론 그들이 모두 불어를 할 줄 알더라도 영어도 함께 잘한다면 나를 위해, 그리고 워크캠프 원칙적으로 영어로 소통할 것이고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는 프랑스에서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영어를 잘 못하신다는 것이었다. 캠프리더는 의식적으로 영어를 써야한다고 주의를 줬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못알아들으니 결국 불어를 쓰게 되고.. 나에겐 나중에 따로 영어로 말해주고.. 원활하지 못한 소통. 고민은 좀 되었지만 영어가 완전 유창한 모국인들 사이에 있는 것 보다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은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언어의 문제는 2주동안 정말 많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냈다.

2. 아이슬란드 동부에서의 2주
나의 캠프는 아이슬란드의 동쪽에 있었다. 레이캬비크가 아이슬란드 서쪽에 치우친 것을 안다면 동부 캠프로 가는 것이 얼마나 오래걸리는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자체적 Golden circle을 했다. 가는 중간 신기한 지형이 있으면 멈춰서 관광을 하기도 하면서, 캠프에 도착하는데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게 될까. 내가 지원한 프로젝트는 쉽게 말하면 '농장일' 이었다. 시골에 대한 환상이 있는 나로썬 이곳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 꽤 궁금했다. 내심 좀 힘들어도 제대로 된 일을 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시기적절하게도? 농장주 도라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말똥치우기, 양똥치우기, 나무심기, 건초비우기, 잡초뽑기, 비료주기. 2주동안 우리가 했던 일들이다. 이렇게 글로 쓰니 쉬워보이지만 뭐든지 작업량이 많으면 지루하고 힘이 든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엄청난 일을 적시에 모두 끝내야 한다니.. 정말 귀농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3. 워크캠프 갈등의 절정, 양이 죽은 후 첫번째 금요일.
아직도 난 우리가 저녁 9시까지 싸늘한 분위기에서 노동해야 했던 그 순간이 2주 중 첫번째 금요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아기 양이 죽으면서 시작됐다. 이전까지 우리들의 캠프생활은 순항하고 있었다. 적절한 노동량에, 푸짐하고 맛있는 식사와 점점 더 친해지고 있는 우리들. 오히려 그룹에 연장자가 있으니 또래들끼리 있을 때의 눈치보기나 따돌림 없이 단결이 더 잘되었고 특히 마리 할머니와 도미니크 할아버지는 나를 친손녀처럼 귀여워해주셨다.
목요일쯤인가, 도라가 새끼 양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이 새끼 양이 감기에 걸려서 밖에 두지 못하고 따뜻한 실내에 둘 작정이라고 했다. 원래 양들은 집이 있다. 하지만 그 때 쯤 우리가 양들을 집(우리)에서 몰아내고 양 우리 안의, 겨우 내 싸인 똥들을 치우고 있어서 그 동안 나머지 양들은 모두 풀밭에 방치되었다. 그런데 이 똥들이 6개월 동안 바닥에 눌러붙어 있던 것들이라 삽으로 찍어서 퍼내야해서 치우는데 꽤 오래걸렸다. 그런데 새끼 양이 다음 날 감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도라는 양을 잃어서 기분이 많이 상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양 우리 청소를 빨리 마무리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도라가 양을 잃은 것이 유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금요일까지 양 우리 청소를 끝내는 것은 좀 무리였다.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쉬는 시간도 줄이고 묵묵히 일만 했다. 도라는 우리에게 6시가 넘더라도 끝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도 쉴새없는 노동에 좀 지쳤고 좀처럼 불만을 갖지 않는 나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마치 내가 산업혁명 시대의 착취 노동자가 된 기분이어서 화가 났다. 우리 입장을 대변해야 했던 리더와 농장주 도라의 언성이 여기서 높아졌다. 리더는 우리의 입장도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도라는 오늘 이 일을 무조건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도라는 가장 젊은 2명과 가장 나이많은 2명을 징발해서 우리 5명이 일을 마무리했다. 나는 막내였기 때문에 당연히 징발당하긴 했지만 그동안 나보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나와 똑같이, 그리고 더 열심히 일했던 그들의 수고를 알기에 군말없이 장화를 다시 신고 나섰다. 비록 싸늘한 분위기에서 일을 마무리했지만, 양들을 깨끗해진 우리에 집어넣고 출석체크하며 마지막 양까지 들어왔음을 확인했을 때의 그 기분이란! 화끈한 성격의 도라는 그 이후로 다시 마음이 풀렸고 이제는 이렇게 추억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

4. 마리앙뚜와네뜨 할머니와 엘렌, 그리고 단.
9명의 멤버 중 워크캠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마리앙뚜와네뜨 할머니다. 마리 할머니는 프랑스인 할머니로, 우리가 함께 하던 기간에 62세 생일을 맞으셔서 함께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 마리 할머니는 유머감각이 뛰어나신 분 같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할머니의 유머를 절대 알아들을 순 없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시고 100% 불어만 쓰셨기 때문에... 하지만 말투와 억양만 가지고도 그녀가 엄청 유쾌한 사람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처음에 할머니가 나에게 와서 불어로 뭐라뭐라 하실 땐 당황했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우린 이상하게도 대화가 되었다. 빨래 네 꺼냐고 챙겨주시고, 잘때 매트리스 하나 더 깔고 자라고 챙겨주시는게, 정말 우리 할머니같았다. 게다가 초코 브라우니는 어쩜 그렇게 간단하게 맛있게 만드시는지! 그리고 여장부같은 큰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고마움이나 놀라움 같은 감정표현을 무척 잘하신다. 나는 한국 기념품을 가져가서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마리 할머니께서 나에게 오셔서 'Merci, present' 를 외치시며 볼에 뽀뽀를 해주셨다. 참 달콤하신 할머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상깊은 사람이 있다. (이번에도) 프랑스인 소녀? 엘렌. 엘렌은 둘째날부터 캠프에 합류했다. 엘렌도 처음에 왔을 때 캠프에 60대 노인이 있어서 당황했지만 실망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엘렌은 대학에서 인권에 대해 공부했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다시 일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중에 교도소에서 일할 계획이라고 해서 나를 흠칫 놀라게 했다. 한국 취준생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 특이한 이력이고 특이한 진로설계이다. 엘렌은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남들을 배려하는게 몸에 베어있었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리고 일도 누구보다도 정말 열심히 했다.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실히 했다. 물론 그녀는 나보다 체력이 받춰줘서 그런것 같긴 하다. 그리고 적당히 유쾌했고 적절하게 자신감이 넘쳤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복싱을 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내가 지금 복싱을 배우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엘렌 때문이다. 그 자신감과 유쾌함, 배려심을 배우고 싶었다. 그녀는 떠날 때도 그녀답게, 레이캬비크까지 우리가 대절한 차를 타고 가지 않고 히치하이크를 해서 갈 작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작별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잠깐 언급한 단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처음에 단을 보았을 땐 좀 무서웠다. 약간 풀린 눈에 몽롱한 말투가 어딘지 섬뜩했다. 하지만 같이 캠프 생활 하면서 그가 벨기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약도 복용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좀 어눌하게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긴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단과는 캠프 기간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나 말고도 다정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센스있는 엘렌이 그를 잘 돌봐주어서 특별히 내가 그와 친해질 계기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캠프가 끝나고 우리는 부쩍 친해졌다. 왜냐하면 캠프가 끝나고 레이캬비크에서 같은 숙소에 3일을 같이 묵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동안 함께 레이캬비크도 돌아보고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요리도 같이 해먹었다. 그도 이 기간 동안 나와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떠나면서 그동안 돌봐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왠지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처음 그를 봤을 때가 생각나면서 괜시리 가슴 뭉클해졌다. 그렇게 단도 떠나고, 이제 나도 레이캬비크를 떠날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귀국 날 아침, 잠시 커피를 마시러 숙소를 나서는데 저쪽에서 단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단! 왜 여기있어?' '비행기를 놓쳤어.' '왜?' '공항검색대에서 보안원이 날 화나게해서 그냥 나와버렸어. 커피 마시러가? 나랑 같이가.'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알고보니 그날 약을 먹지 않은 단이 결국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와버린 것이었다. 결국 그는 그렇게 나에게 마지막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5. 변화
나에게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는 말그대로 '힐링캠프'였다. 사실 살다보면 필요에 의해 만나는 관계도 있고 그래서 가끔은 사람 만나는 일 자체가 피곤할 적이 있다. 그러나 워크캠프에 온 사람들은 진정성이 깊게 느껴져서, 인간관계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안히 쉬다 올 수 있었다. 또한 당시 나는 교환학생 10개월차로, 오랜 타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지루함 속에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 가족의 따뜻함도 느끼고, 자신감도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한편으론 오히려 나이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캠프로 온 것이 나에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후에 또 삶에 지치고 새로운 활력이 필요할 때면 워크캠프가 다시 생각 날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곳으로 또 워크캠프를 다녀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