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세상을 좁게 Parce에서 넓게 Parce, 낯선 곳에
Parce-Sur-Sarth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가 지내게 될 캠핑 장소는 어떤 곳일까 너무나도 궁금했다. Parce-Sur-Sarthe는 올해 2번째 국제워크캠프에 참가,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 봉사를 진행하게 될 곳이었다. 앞서 다녀온 참가자가 남겨놓은 보고서와 사진을 참고해 대충 어느 곳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은 누굴까? 한국인 한 명이 배정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누가 나와 함께할 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한국에서 미리 만나는 것 보다 현지에서 만나는 것이 더 극적일 것 같아 설레는 마음만을 안고 기다렸다.
Le Mans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캠핑장은 기차를 이용해서만 갈 수 있었다. 더구나 파리에서 처음 출발하게 되는 나는 Monparnesse에서 Le Mans으로, Le Mans에서 사브레의 고장인 Sable-Sur-Sarthe로 향하는 기차 두 개를 탔다. 몽빠나스역에서 르망으로 까지는 고속 열차 TGV를 타고 갔고, 사블레 까지는 TER를 탔는데, TER로 갈아타던 때 한국인 친구를 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Sable에서 Parce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를 마중 나온 캠프 리더와 함께 벤에 올라탔고, 우리는 커다란 짐과 함께 캠핑장에 도착했다. 한국의 난지도 캠핑장과 같이, 이곳에도 마을의 ‘캠핑장’이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 커다란 주방텐트와 크고 작은 8개의 텐트를 서로 나눠 가지며 텐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텐트 생활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좋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텐트와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화장실은 너무나도 깨끗했고 샤워실은 뜨거운 물이 나와 절대 감기에 걸릴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밤이 되면 캠핑장에는 주방의 전구에서 나오는 빛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빛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지나가는 차 조차 없고, 캠핑장 근처에는 가로등 하나 없으니 아주 컴컴한 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캠핑장은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으니 밤이 되면 물이 흐르는 소리와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반짝였다. 태어나 은하수를 본 적이 딱 한번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은하수를 볼 수 있었고, 매일 밤 친구들과 함께 별자리를 맞추는 등 현실과는 먼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별이 너무나도 많아서 별자리 조차 분간할 수 없는 그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캠핑은 너무나도 꿈만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무그늘 아래에 매트를 깔고 누워 약 한 시간 가량 낮잠을 자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공놀이 및 프랑스 전통 놀이를 하고, 점심 준비를 도왔다. 밥을 먹고 또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던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면, 지금의 한국 모습이 너무나도 각박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워크캠프 동안에는 여유로운 모습만 있을 수는 없었다. 워크캠프에 캠핑을 하러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 목적은 건물을 보수하는 것. Parce에는 옛날 여인이 남편이 사냥을 하러 갔을 때 그를 배웅하던 탑이 하나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과 동시에 그 탑이 무너져 복구가 시급히 필요했던 장소가 있었다. 그곳을 우리가 보수하게 되었는데, 이 탑은 모두가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미 1년 전 활동에서 무너진 두 개의 탑(여기에는 두 개의 탑이 있었다)중 하나를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 우리의 임무는 나머지 한 탑과 이미 완성된 탑의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돌을 나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줄 곧 배워온 지렛대의 원리를 이때 가장 잘 활용했던 것 같다. 돌의 운반에서부터 돌의 사이사이를 채워 넣을 시멘트를 직접 배합하는 기술을 연마하게 되면서, 작업을 모두 마쳤을 때는, 건축가 혹은 보수 작업을 위한 인력이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직업인’이 된 것만 같았다.
우리 워크캠프는 특이하게도 작업 2주차에 접어드는 때 일을 중단한 적 있다. 리더와 기술자 사이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우리를 노동자처럼 부리던 기술자와 우리는 봉사자이기에 일정한 기술을 연마할 기간과 화목한 작업장 분위기를 주장하던 리더와의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 그 갈등으로 인해 기술자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새로운 기술자가 오기까지 우리는 일을 잠시 쉬었고 나중에는 마을 주민 중 보수에 관심이 있고, 이 탑에 애정이 깊은 분의 도움으로 활동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워크캠프를 하는 동안 일어났던 수 많은 일들을 이 종이 한 두 장에 모두 담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나하나 나열을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를 말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다. 물론, 느낌이라는 것 역시 한번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말이다.
특이하게도 우리 캠프에서는 리더와 기술자와의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보스가 우리 캠핑장을 찾는 등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그런 말이 있었다. 워크캠프는 단순히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노는 것만이 아닌, 일을 하는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그 일을 해결하는 능력 또한 배워가는 곳이라고. 이러한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 때 내가 보였던 반응들과 그 속에서 내가 해야 했던 역할들이 어떤 것이었나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속에서 내가 얻었던 것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때 ‘긍정적이게 반응을 할 것’이었다. 모든 일이든 다 해결이 되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몸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마음의 에너지까지 고갈상태로 만들어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캠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 또한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느끼는 스치는 감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말이 있는 것 같다. 내 대학생활 내 쉽게 접할 수 없고, 또 쉽게 겪을 수 없었던 소중하고 값진 경험. 워크캠프로 인해서 내 시야는 물론이요, 내가 직접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세상 또한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그래서 이번 워크캠프 이후로도, ‘또 가고 싶다. 또 하고 싶다. 다시 만나고 싶고, 다시 도전하고 싶다.’
Le Mans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캠핑장은 기차를 이용해서만 갈 수 있었다. 더구나 파리에서 처음 출발하게 되는 나는 Monparnesse에서 Le Mans으로, Le Mans에서 사브레의 고장인 Sable-Sur-Sarthe로 향하는 기차 두 개를 탔다. 몽빠나스역에서 르망으로 까지는 고속 열차 TGV를 타고 갔고, 사블레 까지는 TER를 탔는데, TER로 갈아타던 때 한국인 친구를 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Sable에서 Parce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를 마중 나온 캠프 리더와 함께 벤에 올라탔고, 우리는 커다란 짐과 함께 캠핑장에 도착했다. 한국의 난지도 캠핑장과 같이, 이곳에도 마을의 ‘캠핑장’이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 커다란 주방텐트와 크고 작은 8개의 텐트를 서로 나눠 가지며 텐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텐트 생활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좋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텐트와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화장실은 너무나도 깨끗했고 샤워실은 뜨거운 물이 나와 절대 감기에 걸릴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밤이 되면 캠핑장에는 주방의 전구에서 나오는 빛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빛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지나가는 차 조차 없고, 캠핑장 근처에는 가로등 하나 없으니 아주 컴컴한 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캠핑장은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으니 밤이 되면 물이 흐르는 소리와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반짝였다. 태어나 은하수를 본 적이 딱 한번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은하수를 볼 수 있었고, 매일 밤 친구들과 함께 별자리를 맞추는 등 현실과는 먼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별이 너무나도 많아서 별자리 조차 분간할 수 없는 그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캠핑은 너무나도 꿈만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무그늘 아래에 매트를 깔고 누워 약 한 시간 가량 낮잠을 자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공놀이 및 프랑스 전통 놀이를 하고, 점심 준비를 도왔다. 밥을 먹고 또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던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면, 지금의 한국 모습이 너무나도 각박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워크캠프 동안에는 여유로운 모습만 있을 수는 없었다. 워크캠프에 캠핑을 하러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 목적은 건물을 보수하는 것. Parce에는 옛날 여인이 남편이 사냥을 하러 갔을 때 그를 배웅하던 탑이 하나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과 동시에 그 탑이 무너져 복구가 시급히 필요했던 장소가 있었다. 그곳을 우리가 보수하게 되었는데, 이 탑은 모두가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미 1년 전 활동에서 무너진 두 개의 탑(여기에는 두 개의 탑이 있었다)중 하나를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 우리의 임무는 나머지 한 탑과 이미 완성된 탑의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돌을 나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줄 곧 배워온 지렛대의 원리를 이때 가장 잘 활용했던 것 같다. 돌의 운반에서부터 돌의 사이사이를 채워 넣을 시멘트를 직접 배합하는 기술을 연마하게 되면서, 작업을 모두 마쳤을 때는, 건축가 혹은 보수 작업을 위한 인력이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직업인’이 된 것만 같았다.
우리 워크캠프는 특이하게도 작업 2주차에 접어드는 때 일을 중단한 적 있다. 리더와 기술자 사이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우리를 노동자처럼 부리던 기술자와 우리는 봉사자이기에 일정한 기술을 연마할 기간과 화목한 작업장 분위기를 주장하던 리더와의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 그 갈등으로 인해 기술자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새로운 기술자가 오기까지 우리는 일을 잠시 쉬었고 나중에는 마을 주민 중 보수에 관심이 있고, 이 탑에 애정이 깊은 분의 도움으로 활동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워크캠프를 하는 동안 일어났던 수 많은 일들을 이 종이 한 두 장에 모두 담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나하나 나열을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를 말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다. 물론, 느낌이라는 것 역시 한번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말이다.
특이하게도 우리 캠프에서는 리더와 기술자와의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보스가 우리 캠핑장을 찾는 등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그런 말이 있었다. 워크캠프는 단순히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노는 것만이 아닌, 일을 하는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그 일을 해결하는 능력 또한 배워가는 곳이라고. 이러한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 때 내가 보였던 반응들과 그 속에서 내가 해야 했던 역할들이 어떤 것이었나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속에서 내가 얻었던 것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때 ‘긍정적이게 반응을 할 것’이었다. 모든 일이든 다 해결이 되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몸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마음의 에너지까지 고갈상태로 만들어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캠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 또한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느끼는 스치는 감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말이 있는 것 같다. 내 대학생활 내 쉽게 접할 수 없고, 또 쉽게 겪을 수 없었던 소중하고 값진 경험. 워크캠프로 인해서 내 시야는 물론이요, 내가 직접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세상 또한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그래서 이번 워크캠프 이후로도, ‘또 가고 싶다. 또 하고 싶다. 다시 만나고 싶고, 다시 도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