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에서 다시 만난 스무 살의 설렘

작성자 노하연
프랑스 SJ27 · RENO/ENVI 2013. 07 Pechbonnieu

WATERING PLACES OF PECHBONNIEU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두 번째 유럽, 두 번째 프랑스

내 나이 스무 살 때, 나는 대학생의 꿈,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처음 떠난 배낭여행으로 많은 나라를 가고 싶은 마음에 약 3주 동안 7개국을 돌아다녔다. 거의 한 나라 당 삼일을 머무른 것이었다. 여행할 당시는 빠르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이곳저곳 관광지를 구경하느라 정신없이 다녔던 기억이 난다. 무튼 첫 배낭여행은 나에겐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첫 배낭여행 후, 나는 간간히 지난 여행을 곱씹으며 추억팔이를 하곤 했다. 그러다 더 이상 추억팔이만으로는 참을 수 없어, 2013년 여름, 나는 또 한 번의 유럽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처음 여행 당시엔 처음이라는 설렘으로 마냥 즐겁기만 했지만 돌아와서 생각하니 많은 나라를 이동하면서 여유롭게 다니기 보단 빠르게 돌아다니며 각 나라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남았더랬다. 그래서 두 번째 여행에선 좀 더 길게 한 나라를 머무르며 단순히 관광지만 다니는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의 삶을 옆에서 볼 수 있는 여행을 했으면 했다. 그래서 찾은 해결책이 워크캠프였다.
내가 선택한 워크캠프 프로그램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Pechbonnieu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환경프로그램으로 마을 중심에 위치한 호수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워크캠프를 선택할 때, 우선 프랑스라는 국가를 선택한 후에는 워크캠프의 내용, 위치보다는 활동기간이 최우선 이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오랜 기간 다른 나라 친구들, 지역주민들과 지내고 싶은 마음에 일단 가능한 날짜에서 기간이 긴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지원서를 제출 한 후 합격 통보를 받고나서야 Pechbonnieu, 내가 삼주동안 지내게 될 지역을 찾아봤다. 허나 찾아봐도 별다른 정보는 없고 Toulouse 근처에 있는 작은 동네라는 것만 알아냈다.
어쨌든 나는 워크캠프에 지원했고, Pechbonnieu로 가야했다. 한국에서 프랑스로 떠나기 전, 나 말고 한국인 지원자 한명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떠났다. 미팅포인트는 Toulouse 기차역으로, 파리에서 출발해 한 번의 환승과 함께 지루한 기차여행 후 미팅포인트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어 다가가니 혹시나 가 역시나 나와 같은 워크캠프를 지원한 참가자였다. 워크캠프 관계자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역 주변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 약속시간이 가까워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WORKCAMP라고 써진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남자 한명이 보여 서로 인사를 하니, 워크캠프의 리더였고 조금 후 두 명의 참가자를 더 찾은 후에 우리는 워크캠프 기간 동안 생활할 곳으로 향했다.
워크캠프를 하는 내내 우리는 마을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생활을 했는데, 학교는 큰 교실하나와 홀, 샤워실, 화장실, 주방이 갖춰져 있어 학교에서 생활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위치 또한 우리가 작업할 호수와도 매우 가까웠다. 한 가지 낯설었던 것은 처음 학교에 도착해서 본, 교실 벽을 따라 쭉 늘어서 간이침대였다. 학교에 도착한 후 각자 침대를 선택하고 선택한 간이침대 위에 침낭을 펴놓았다. 워크캠프 준비 시 유의할 점이 바로 침낭이었다. 간이침대가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침낭은 꼭 필요하다 물론 여름이라 하더라도.
무튼 모든 참가자가 한 교실 안에 간이침대 위 침낭을 놓고 생활을 했는데 처음엔 남녀모두 한 교실 안에서 자는 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할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았고, 오히려 같은 공간 안에서 쉬고 놀고 자면서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워크캠프는 프랑스, 에스토니아에서 온 리더 두 명과 터키, 러시아, 캐나다, 스페인, 벨기에, 프랑스, 한국에서 온 참가자. 총 13명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우리가 삼주 동안 작업할 호수에 갔을 땐 호수 주변은 덤불과 죽은 나무, 쓰레기로 둘러 쌓여있어 언제 이걸 다 정리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나 매일 일정한 시간동안 참가자들끼리 협력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보이지 않던 호수도 서서히 모습이 보이고 주변 덤불과 나무도 정리되면서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 마을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격려도 해주고 간식을 제공해 주셔서 보람도 느끼고 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생전 해보지 않던 육체적 노동을 하며 이것저것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한국에서의 고민들은 오히려 잊고 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일도 거의 끝나가고 워크캠프도 막바지로 향해 가면서 마음 한구석에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한 곳에서 삼주 동안 있으면서 ‘우리’가 된 것이다. 캠프기간 동안 갈등이 없진 않았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었던 기억보단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이 삼주간의 추억은 다른 여행지에서의 추억보다도 깊게 내 속에 자리 잡아 자주 생각날 것이다. 또한 워크캠프 21일 동안의 경험으로, 나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고 그 때의 경험이 내 앞으로의 삶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워크캠프 이전과 이후로 내 삶의 계획이 바뀌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