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볼 수 없지만, 함께 꿈을 꾸다
Invisible but visib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not visible but visible
저는 현재 한국항공대에 재학중이며 조종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종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눈이며 아무리 다른 조건이 뛰어나더라도 시력이 나쁘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조종사입니다. 그런 꿈을 가진 제게 있어 가장 의미있게 동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강원 명진학교 camp를 보게 되었고 저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캠프를 시작하고 아이들을 만났을 땐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저는 볼 수있지만 아이들은 볼 수 없었기때문에 무엇이 불편한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어떤 것을 도와줘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내에 계신 선생님께 여쭤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강원명진학교의 camper들은 아이들에게 영어연극과 영어말하기대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해 연극 대본을 짜고 소품을 직접 만들고 영어말하기 대회를 위한 준비를 도와주었습니다. 영어말하기 대회의 주제는 자신의 꿈에 대해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의 영어대본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자신들의 꿈을 정확하고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 20대들의 문제점은 정해진 틀에 박혀 교육을 받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앞만 보고 질주하다보니 대부분 자신의 꿈과 목표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진학교 학생들을 보며 비록 시각의 장애가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우가 아니라, 요즘 젊은 20대야 말로 진정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생각 들었습니다.
약 2주간의 준비 끝에 그 동안 노력했던 결실을 맺었을 땐 너무 기뻤지만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습니다. 아이들이 Camper 들에게 쉽사리 정을 주지 않으려던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헤어지는 날 모두가 울고 아쉬워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무덤덤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안했습니다.
비록 캠프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강원 명진학교를 잊지않고 꾸준히 아이들을 찾아가고, 이젠 선생님이 아닌 형,오빠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합니다.
저에겐 정말 뜻 깊고 제 자신을 되돌아 볼 수있는 계기였습니다.
저는 현재 한국항공대에 재학중이며 조종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종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눈이며 아무리 다른 조건이 뛰어나더라도 시력이 나쁘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조종사입니다. 그런 꿈을 가진 제게 있어 가장 의미있게 동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강원 명진학교 camp를 보게 되었고 저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캠프를 시작하고 아이들을 만났을 땐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저는 볼 수있지만 아이들은 볼 수 없었기때문에 무엇이 불편한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어떤 것을 도와줘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내에 계신 선생님께 여쭤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강원명진학교의 camper들은 아이들에게 영어연극과 영어말하기대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해 연극 대본을 짜고 소품을 직접 만들고 영어말하기 대회를 위한 준비를 도와주었습니다. 영어말하기 대회의 주제는 자신의 꿈에 대해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의 영어대본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자신들의 꿈을 정확하고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 20대들의 문제점은 정해진 틀에 박혀 교육을 받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앞만 보고 질주하다보니 대부분 자신의 꿈과 목표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진학교 학생들을 보며 비록 시각의 장애가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우가 아니라, 요즘 젊은 20대야 말로 진정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생각 들었습니다.
약 2주간의 준비 끝에 그 동안 노력했던 결실을 맺었을 땐 너무 기뻤지만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습니다. 아이들이 Camper 들에게 쉽사리 정을 주지 않으려던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헤어지는 날 모두가 울고 아쉬워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무덤덤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안했습니다.
비록 캠프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강원 명진학교를 잊지않고 꾸준히 아이들을 찾아가고, 이젠 선생님이 아닌 형,오빠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합니다.
저에겐 정말 뜻 깊고 제 자신을 되돌아 볼 수있는 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