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호치민, 방황 끝에 찾은 인생의 역전

작성자 권준성
베트남 VPV10-12 · SOCI/KIDS 2012. 07 호치민

Sai Gon Shelters for Orphan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22살 7월 그러니깐 약 1년 반 전에 IWO(International Workcamp Organization) 국제워크캠프를 통해 베트남 호치민으로 해외자원봉사를 떠났다.
떠나기 전,집에서 내 아버지는 " 자기자신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하고 방황하고 헤매는 니가 다른나라에 가서 다른나라 사람을 어떻게 돕냐? 도울수 있냐?"라며 자원봉사를 떠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집에서 금전적인 부분이나 정신적인부분에서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
19살까지 나는 수험생이라는 면죄부 아래 기분대로 하고싶은대로 그렇게 살았다. 그럼에도 남들처럼 대학에 갈수있다 라고 착각하며 말 그대로 학창시절을 즐겼다. 즐김이 과했는지 경찰서,법원을 가게되었고 나는 강제로 봉사를 시작했다. 그땐 미처 알수 없었지만 뭔가를 배웠었다. 그 후 난 대학에 떨어졌고 2년이란 시간동안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을 연장했다. 22살이 되어서야 긴 수험생활에 마침표를 찍을수 있었지만 그때도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며 헌팅술집,클럽,나이트를 배회 했고 그럴때마다 나 자신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있었다.
마침 TV를 보는데 어떤 프로그램에 배우 차인표씨가 나와서 '자신의 인생이 봉사활동으로인해 변하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이때 19살에 배운 뭔가가 마음에서 올라왔고 따라해보자 라는 심정으로 실행력 하나는 확실했던 나는 VMS라는 단체를 통해 한국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IWO를 알게되었고 수중에 돈이 좀 있었기에 당장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처음 이 프로그램에 지원할때에는 아버지 말대로 누군가를 도와야 겠다 보다는 뭔가를 느끼고 바꾸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시작했었다.


프로그램 시작일은 7월2일, 아무런 정보없이 떠난 난 7월1일 오후 9시쯤 베트남 공항에 도착했고 가자마자 덥고 습한 날씨와 정보부족으로 숨이 턱턱 막혔다. 일단 아무택시나 잡고 공항에서 찾아보니 데탐거리라는 여행자거리가 있다고하여 그곳으로 향했고 눈에 보이는 방은 다 돌아다니며 방을 잡고 하루를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자원봉사자의 숙소인 peacehouse로 갔다. 낯선 외국인들과의 첫 대면! 긴장+어색+뻘쭘했었지만 각자의 자기소개를 하고 프로그램 일정을 듣게되었다.
사실 나는 영어를 잘 못했고 내가 가진건 나 조차 감당이 안되는 친화력 뿐이었기에 자기소개때 "I can't speak english well,but i love everyone, chu~"라며 끼를 부렸다.걱정과는 달리 친구들은 반겨주었고 덕분에 잘 어우러져 생활할수 있었다.
친구들은 캐나다,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호주,중국,일본,베트남에서 왔고 다들 소위 말하는 스펙들이 엄청났었다. 그 당시 나와는 달리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에있어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고 나와 비슷한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누며 사는 삶을 꿈꾸며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잘 대해주긴 했지만 괜히 혼자 뻘쭘하고 22년의 세월동안 열심히 살지 않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거기가서 찌질하게 쭈구리고 있으면 뭐하냐 라는 생각을 다행스럽게 했고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앞으로 잘 살면 된다는 마인드로 그들을 대했다
여러가지 술자리 게임을 알려주니깐 되게 좋아했다 특히 후라이팬놀이ㅋㅋㅋ아무튼 결과적으로 잘 어우러질수 있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데 있어서 영어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언어의장벽을 간신히 통과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싶다.
프로그램은 아침 6시에 기상 그리고 8시까지 준비 후 8시부터 4시까지 약 8시간 아이들에게 2주에 거쳐 베트남의 문화를 배우며 그들과 어울리고 환경교육,안전교육,위생교육,나라별 문화,나라별 음식 등을 소개해야된다. 중간에 3시간 점심시간이랑 낮잠시간은 따로준다. 여러가지를 기획하고 짜야하기때문에 제일 중요한건 아이들과 교감과 팀원들과의 교감이다. 프로그램진행중에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못하더라도 계속 시도하는게 중요하다. 다들 전문가도 아니며 같은마음으로 자원하여 참여했기 때문인것 같다.
기본적인 교육 후에는 그 지역의 문화탐방, 아이들과 축구,춤추고 놀기 등 가서 아이들과 재밌게 놀면된다.
대상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이다. 총 두곳의 쉘터 아이들과 2주동안 생활하게된다.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에 내가 스타라도 되는 듯 아이들이 내 손을 잡고 안아주며 환대해줬고 그 뒤로 그냥 내 동생이다 생각하고 재밌게 놀면서 지냈다.
좋은게 생기면 나한테 먼저주고 풍족하지 않음에도 나와 나누려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약간의 팁을 주자면 한국의 전통무예(태권도),k-pop(정말좋아한다),춤(탈춤도 괜찬다 안되겠으면 탈춤이라도 춰라),한국 음식(라면 최고다) 등 준비해가면 인기최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준비를 안해가서 즉흥적으로 태권도,k-pop,등...그냥 할수있는건 다 했다
마지막날엔 공원에서 두 곳 쉘터의 아이들과 캠퍼들이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회 느낌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재밌고 보람찼었다.
그리고 4시이후부턴 자유시간이라 여러곳을 돌아다닐수 있다. 난 자유시간에 베트남 호치민의 명소(전쟁박물관,야시장 등..),밤문화(^^;)를 외국친구들 또는 혼자 즐겼다(단 정해진 일과시간에는 정말 열심히했다).
주말에는 일과가 없는 자유시간이기 때문에 첫째주 금요일에 무이네로 슬리핑 버스를 타고가서 오토바이를 빌린 후 화이트사막,레드사막,요정의샘,피싱빌리지 등을 갔고 두번째주 금요일에는 메콩델타로 떠났다.
여행하는 중에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고 영어+바디랭기지를 통해 같이 웃고 떠들며 페북 친추까지했다


역시나 생각대로 내가 그들을 돕기보단 정말 많이 깨달았다.IWO를 통해 해외자원봉사 베트남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우물 안 에서 내가 최고다를 외치며 살던 내가
상대적으로 가진게 많은 사람이었으나 가진 것을 그저 나를 뽐내는데,내 이익을 위해 혹은 겨우 여자를 유혹하는데 쓰고있었구나..라는 생각에 나의 찌질한 모습과, 한국에서는 생각한것을 표현 하는것과 말을 잘해서 재치있는 나였으나 그곳에서는 내 생각하나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는 '잘 노는 바보'였기에 창피함을 느꼈다.
멋진 세계인들과의 교류로 스스로가 겸손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모든 것이 새로운 '여행'이 주는 신선함에 긍정적인 충격을 받았다.
또 봉사중에 아이들에게 배 접는 법,그 나라 언어 등을 배우며 많이 가졌기 때문에 나누는 것이 아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나눔임을 알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 후 10일뒤 나는 군대에 갔다. 지금 현재 전역 전 말년휴가중이다. 2년동안 고립될수도 있었던 시간이 이 짧은 2주로 인해 열심히 살수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자극제가 되었다. 또 잠깐 시간을 내서 자랑을 하자면 현재는 아프니까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가 주가되는 트렌더스날(트렌드분석)이라는 트렌드헌터 그룹에서 활동중이다.
약 14일간의 짧은 시간이 내 앞으로 남은 인생에 '열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잠자고있던 감정을 깨워서 활발히 움직일수 있게 해주었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후배(내가먼저 갔다왔으니 후배라고 칭하겠다)님들은 망설이지말고 갔다와라,내 스물넷 인생중에 최고의 선택이었다
후배님들도 나와같이 더 큰세계를 느끼고 진정한 자신을 느낄수있는 시간이 되었으면좋겠다.


마지막으로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수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준 iwo(국제워크캠프) 단체에 감사함을 전하며 베트남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젠 막연한 배움이 아닌 나눔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