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잊지 못할 2주 졸업 전, 아이슬란드에서
Hveragerði – Health and Environmen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 졸업을 1학기만 남겨놓고 있던 시점이였다. 내 대학생활은 남들과 다르지 않게 정말 무난하게 지나갔다. 그렇게 마지막 1학기 까지 마치고 졸업하게 되면 내 소중학 대학시절에 의미있는 경험은 하나도 없이 끝나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을 하고 뭔가 뜻깊은,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단순히 혼자 떠나는 여행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전에 이미 유럽여행을 한 차례 다녀온 나로서는 그다지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디어를 얻던 중, 친누나에게서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누나 친구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나는 급격하게 마음이 동했다. 그래서 바로 참가신청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참가 신청결과는 합격! 그 때부터 출국과 캠프 참가를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워크캠프 참가자와 참가예정인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는 카페에 가입하고, 베낭과 준비물들을 챙기면서 정말 설레는 날들의 연속이였다.
워크캠프에 참가해서 만나게 될 많은 외국 친구들과의 소중한 인연과, 내가 여태 해보지 못한 활동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 껏 부풀어 있었다.
아이슬란드 케플랴비크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아무것도 없다' 였다. 명색이 한 나라의 제일 큰 국제공항인데 주변은 말그대로 허허벌판이였다. 나무 한그루 없는 땅의 끝엔 바다가 있었고 반대편 끝은 눈 덮인 산 뿐이였다. 워크캠프 사무실로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고 드디어 캠프 시작 하는 날이 밝았다.
아이슬란드에서 하는 두번째 워크캠프는 노인 요양시설에서 운영하는 농장에가서 밭일을 돕는 것이였다.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통성명을 한 뒤 우리는 우리가 지내면서 봉사활동을 할 시설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의 요양 시설이였는데 아주 조용하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그곳의 룰은 채식, 금주, 금연이였다. 덕분에 우리는 밤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욕구를 2주동안 참아야 했지만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최고였다. 식사는 항상 다양한 채식 부페로 제공 되었고, 헬스장, 수영장을 활동시간 외에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밭으로 향해서 오이, 토마토 등을 가꾸고 수확했고, 제초작업도 진행했다. 추운날씨에 비를 맞으며 강풍과 싸워가며 제초작업을 하는 것은 사실 엄청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 참가자들은 모두 성실하고 긍정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져있어서 서로 북돋아 가며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활동 시간 외에 우리는 숙소의 거실 같은곳에 모여 서로 준비해온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정말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우리는 2주동안 함께 식사했고, 수영하고, 게임하고 노래하며 정말 친해졌다. 그리고 그 농장의 주인인 요나스와도 일을하며 매우 친해졌다. 그렇게 눈 깜빡 할 사이에 2주가 흘러갔고 우리는 본부가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로 돌아와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우리는 술집에 모여 여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내가 여태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많이 하게되었고, 자유롭게 사는 그들이 한편으로 부럽기도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복학해서 학교를 마치고, 취직해서 일을 하는 무척이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것 들을 하며 살아갈것이라고 했다. 나도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들에게 배웠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방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리라 다짐했다.
워크캠프에 참가해서 만나게 될 많은 외국 친구들과의 소중한 인연과, 내가 여태 해보지 못한 활동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 껏 부풀어 있었다.
아이슬란드 케플랴비크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아무것도 없다' 였다. 명색이 한 나라의 제일 큰 국제공항인데 주변은 말그대로 허허벌판이였다. 나무 한그루 없는 땅의 끝엔 바다가 있었고 반대편 끝은 눈 덮인 산 뿐이였다. 워크캠프 사무실로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고 드디어 캠프 시작 하는 날이 밝았다.
아이슬란드에서 하는 두번째 워크캠프는 노인 요양시설에서 운영하는 농장에가서 밭일을 돕는 것이였다.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통성명을 한 뒤 우리는 우리가 지내면서 봉사활동을 할 시설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의 요양 시설이였는데 아주 조용하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그곳의 룰은 채식, 금주, 금연이였다. 덕분에 우리는 밤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욕구를 2주동안 참아야 했지만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최고였다. 식사는 항상 다양한 채식 부페로 제공 되었고, 헬스장, 수영장을 활동시간 외에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밭으로 향해서 오이, 토마토 등을 가꾸고 수확했고, 제초작업도 진행했다. 추운날씨에 비를 맞으며 강풍과 싸워가며 제초작업을 하는 것은 사실 엄청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 참가자들은 모두 성실하고 긍정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져있어서 서로 북돋아 가며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활동 시간 외에 우리는 숙소의 거실 같은곳에 모여 서로 준비해온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정말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우리는 2주동안 함께 식사했고, 수영하고, 게임하고 노래하며 정말 친해졌다. 그리고 그 농장의 주인인 요나스와도 일을하며 매우 친해졌다. 그렇게 눈 깜빡 할 사이에 2주가 흘러갔고 우리는 본부가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로 돌아와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우리는 술집에 모여 여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내가 여태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많이 하게되었고, 자유롭게 사는 그들이 한편으로 부럽기도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복학해서 학교를 마치고, 취직해서 일을 하는 무척이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것 들을 하며 살아갈것이라고 했다. 나도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들에게 배웠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방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