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페인 란치에고, 잊지 못할 여름

작성자 황지현
스페인 SVIEK036 · ARCH 2014. 07 LOGRONO

LANCIEGO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봉사활동이든 교환학생이든 한 번은 외국에 나가고 싶었다.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어느새 3학년이 되었다. 이 때 나가지 않으면 정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 학교에 올라오는 공지사항을 매일 확인하였다. 그러던 중에 하계워크캠프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았고, 바로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얼마 후 합격소식을 받았다. 참가자들은 국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많은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고 싶어서 스페인을 선택했다. 몇 주 뒤 스페인 란치에고시에서 하는 고고학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다.

Lanciego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Madrid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을 이동해 Logrono시에서 하루를 묵고 Logrono 버스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이동하면 되었다. 전날 호스텔에서 버스시간표를 알아보니까 Logrono에서 Lanciego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두 번밖에 없었다. 제일 늦은 버스가 2시 30분이였고 미팅시간은 6시라 시간이 많이 남아 걱정이 되었다. Lanciego로 이동할 버스를 탔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인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참가자 친구들인가 하는 마음에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Logrono에 도착하고 5명의 친구들과 같이 내렸다. Logrono는 예쁜 시골 같았다. 잘 정비되어 있는 도로 옆에 좁은 골목 사이로 스페인 특유의 갈색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를 포함한 6명의 친구는 바에 앉아 있는 주민들에게 Lanciego’s hotel를 물어봤고, 이 친구들이 앞으로 2주간 같이 지내게 될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익숙하게 우리를 호텔까지 안내해주셨다. 호텔에 도착해서 캠프리더인 이케르와 하비를 만났다. 이케르와 하비는 미팅시간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근처에 있다가 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근처 놀이터에 가서 인사를 하고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된 이유, 국적, 직업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카드게임도 하면서 미팅시간까지 기다렸다.

미팅 시간인 6시가 되었고, 캠프리더 3명과, 나를 포함한 18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우리는 방배정을 받고 참가서약서를 쓴 후,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것과 워크캠프 기간내 지켜야 할 규칙들을 몇가지 들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란치에고호텔은 말이 호텔이지 호스텔 같은 느낌이였다. 첫 날 우리는 호텔에 와이파이가 있지 않아서 매우 당황했다. 캠프리더인 이차쇼가 안내해준 근처 소셜센터도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았고, 나는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스페인 친구들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핸드폰으로 메일을 보내라고 도와주었다. 하지만 불안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 다음날 나는 주민들에게 물어봐서 와이파이가 되는 바를 알아냈고 우리는 2주 내내 바 앞에 옹기종기 모여 주민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우리가 2주 동안 할 일은 대학교 교수, 학생들과 함께 란치에고 근처 밭에 있는 철기시대, 고대시대에 있었던 토기의 조각과 돌담을 찾는 일이었다. 각 자 두 개의 표시막대를 쥐고 두 팀을 나눠 밭 이곳저곳을 살폈다. 처음에는 돌인지 토기조각인지 헷갈렸는데 나중엔 모두 척하면 척 그냥 눈으로 쓱 훑기만 해도 토기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토기조각을 찾기 위해서 밭만 갔던 것이 아니라 가시덩쿨이 가득한 산을 넘기도 했다. 우리는 30도가 넘어가는 날씨에도 가시덩쿨에 찔리지 않기 위해 긴청바지를 입어야 했다. 긴청바지에도 불구하고 청바지를 뚫고 가시가 들어오거나, 신발에 박히고, 팔에 긁혀 피나는 일이 많았다. 나는 특히 팔에 심하게 상처가 났다. 매일 일이 끝나고 시에스타를 보낸 뒤 주민센터 수영장을 갔는데, 상처가 너무 심해 마지막에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느 날은 시의원과 함께 방송사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왔다. 짜여진 각본에 맞춰 우리는 인터뷰와 포즈를 취했고 그 다음날 지역 뉴스와 신문에 나왔다. 인터뷰가 끝나고 시의원을 포함한 방송관계자들에게 교수가 하는 일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그리고 끝나고 타파스와 와인 등을 먹는 시간도 가졌다.

일이 끝난 우리는 점심을 먹고 항상 시에스타 시간을 누렸다. 시에스타는 30분~1시간 정도 잠을 자는 시간인데, 나는 매일같이 3시간씩 자서 친구들이 놀라워했다. 낮잠을 자고 매일 주민센터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했다. 그리고 호텔에 있는 물은 찬물만 나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주민센터 수영장을 이용해야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케익을 만들기도 하고, 캠프리더인 이케르가 반지의 제왕을 정말 좋아해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전편을 다 보기도 했고, 마을 아이들과 함께 축구도 하고, 자신의 국가를 소개하는 시간, 만화책을 이용해서 지갑을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밥을 먹고 나면 10시 정도가 되었는데, 호텔 근처 놀이터에 가서 단체로 여러 가지 게임을 했다. 날이 좋은 날에는 별을 보러가기도 했는데, 이렇게 별이 많고 또렷하게 별자리까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또 주말 밤 호텔 근처에 있는 바에 가서 춤을 추면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마을에 동양인은 오직 나 한 명이였는데, 마을 사람들은 나를 무척 신기하고 궁금해 했다. 특히 할아버지들과 꼬마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쳐다보고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왔다. 아이들은 내가 수영장에 갈 때마다 셀카를 찍자고 했다. 근교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마다 일일히 스페인어로 대답해주었다. 이런 스페인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로 인사를 하면 무척 좋아해 주었다.

캠프에서의 식사는 아침 7시 점심 2시 저녁 9시에 먹었고, 한국과 매우 달라 틈틈이 과일을 먹어야 했다. 아침엔 비스킷, 빵에 잼, 초콜릿을 발라먹거나 시리얼을 먹었다. 점심, 저녁은 주민분께서 해주셨고 우리는 그룹을 정해 돌아가면서 테이블 셋팅과 설거지만 했다. 점심과 저녁은 주로 2가지 음식이 나왔고 처음엔 스프나 샐러드가 나왔고 두 번째엔 고기, 파스타, 스페인 가정식이 나왔다. 워크캠프를 오기 전 스페인을 여행했던 나는 스페인 음식이 한국음식과 비슷한게 많아 정말 많이 먹었다! 하지만 워크캠프에서는 스페인 가정식을 먹었고, 나한테 음식은 너무 짰다. 처음엔 너무 짜서 먹지 않았다. 가뜩이나 짠 음식에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친구들은 소금을 더 뿌려서 먹었다. 문화충격.. 나는 한 입 먹고 짜다 싶으면 먹지 않았는데, 친구들은 걱정스러움과 의아한 시선으로 보는 거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먹어보려고 했다. 친구들은 항상 식사 때마다 굿이냐고 물어봐 주었고 내 입맛에 맞아 많이 먹는거 같다 싶으면 자신들이 더 좋아했다. 나는 누텔라와 똑같은 초콜릿 노씨아를 엄청 좋아했다. 노씨아가 맛있어서 노래로 흥얼흥얼 거렸는데 나중엔 모두가 따라 불렀다. 노씨아가 있으면 나한테 먼저 먹으라고 주었다. 그리고 음식이 너무 짜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오면 많이 먹었는데, 그 중에서도 생선크로켓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마르게리따와 엘리자벳과는 크로켓을 몇 개를 먹는지 장난스러운 내기도 했다. 캠프 마지막 전 날 이런 나를 위해서 요리해주시는 분은 내가 제일 좋아했던 생선크로켓과 빠에야를 해주셨다. 정말 감동!

캠프 기간에 아댜라와 알무데나가 2틀 차이로 생일이였다. 나는 친구들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고, 한국의 음식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 한국에서 준비해간 호떡과 불고기를 해 주었다. 고소한 냄새에 친구들이 주방으로 나와서 구경을 하였고, 아댜라와 알무데나는 한국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서 같이 요리를 했다. 친구들은 처음 본 음식에도 맛있게 잘 먹어주었고, 음식의 이름과 재료 만드는 법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호떡은 더 먹고 싶어 했다. 인기 폭발하는 음식들을 보며 뿌듯함이 느껴졌다.

주말에는 산세바스티안과 빌바오로 근교여행을 갔다. 산세바스티안은 해변이 있어 휴양지 같고 작은 바르셀로나 같은 느낌이었다. 동양인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나를 쳐다보았고, 해변에서 놀 때는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조개를 주기도 했다. 산세바스티안에 살고 있는 엘리자벳이 맛있는 젤라또 가게와 볼거리를 안내했다. 빌바오를 가기 전 게르니카에 가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것과,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스페인 친구들과 같이 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유명한데 아쉽게도 들어가진 않았다. 대신 미술관을 상징하는 퍼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빌바오 역시 빌바오에 살고 있는 알무데나와 이마놀이 우리를 맛집과 볼거리를 안내해주었다. 주말의 근교여행은 매일 가시덩쿨 속에서 토기조각을 찾고, 좁은 마을에 있는 우리에게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시간이였다.

워크캠프를 떠나기 전 영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무작정 외국을 나가보고 싶었던 나는 워크캠프가 불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었다. 워크캠프가 시작되고 3일은 힘들었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은 같은 국가의 친구들이 몇 명씩 있어 자국어를 쓰며 외롭지 않았겠지만, 나는 혼자 한국인이였고, 동양이였다. 그리고 영어도 잘하지 못해서 정확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웃으려고 노력했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먹어보려 노력했다. 친구들은 몇 개의 단어, 틀린 문법으로 말하는 나에게 올바른 문장으로 다시 물어서 내 의견이 무시당하거나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음식이 내 입에 맞는지 챙겨주었다.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점점 워크캠프에서 하는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 영어실력이 늘어간다고 칭찬도 해 주었고, 워크캠프가 끝나갈 때쯤엔 영어로 장난도 치면서 농담도 하고 내가 하는 농담에 웃기도 하였다. 캠프 마지막 날 친구들은 내 티에 자국어로 편지를 써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식사를 함께 했다. 한 두명씩 떠날 때마다 친구들과 나는 눈물을 흘렸다. 마을에 있는 기간 동안 내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와서 질문도 하고 사진을 찍자고 했던 아이들, 눈만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를 하던 마을 사람들, 친구들과 춤추며 매일 마시던 갈리모토, 전부 누워서 별을 보며 했던 대화들, 모든 것이 아쉬워서 친구들과 나는 펑펑 울었다. 그렇게 캠프리더들과 친구들의 adios! 작별인사와 함께 란치에고를 떠났다.

워크캠프가 끝난 지금 한 친구는 한국인을 만났는데 니가 보고싶다며 연락이 왔다. 지금도 친구들과 sns를 통해 계속 근황을 주고 받고 있다. 짧은 2주의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외국 친구들과 감정을 나누고 지금까지도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 장난끼 많은 세 명의 캠프리더와 하나같이 배려심 많고 유쾌한 17명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무척 행운이었다. 지금은 힘들었던 기억은 나지 않고, 그 곳에서 먹었던 음식, 친구들과 했던 대화, 거기서 듣던 음악들 모든 것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