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Gannat, 6개국 청춘과 함께한 축제
Festival Cultures du Mond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3주간 Vichy와 Clermont-Ferrand에 가까이 위치한 Gannat에서 열리는 세계 문화 축제를 돕는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먼저 프랑스에서 약 10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제 워크캠프 사이트를 통해 프랑스에서 내가 원하는 분야의 봉사활동과 지역을 선택하고 지원했다. 내가 지원한 프로그램은 불어로 원활히 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원했고 영문 지원서와 불어 지원서를 모두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추후에 나는 나의 불어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불어 자격증도 제출해야 했다.
한달간의 유럽 여행후에 Gannat에 도착해서 나는 co-animateur, animatrice, animateur-techinique 3명의 축제 진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나와 같은 자원봉사자들은 각각 터키, 러시아,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덴마크에서 온 참가자들이었다. 초반의 서먹함이 지나고 우리는 끼리끼리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어렸을 때 이후로 텐트에서 잔 적이 없었어서 매트리스가 없는 텐트에서 2명씩 자는 것이 고됬으나 나중에는 간이 매트리스를 빌려서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축제 진행자들과 함께 같이 토론하고 얘기해서 축제를 진행하는 일을 하는 줄 알고 있었고, 나머지 구성원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처음 1주간은 축제 진행에 대해 원활한 소통을 했으나 점점 소통의 부재가 늘어났고 animateur의 명백한 문제점도 있었다. 그들중 animateur-technique는 우리 자원봉사자들 혹은 다른 축제 진행자들까지 -심지어 어머니 나이대의 co-animateur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자란 성인들을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굴고 단순히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명령" 혹은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나와 다른 구성원들이 바라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animateur-techinique, 그는 다른 현지 축제 진행자들과 같이 지내며 우리와의 대화는 단절하다 시피 했고 단순히 지시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묵묵히 일했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아낌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밤에 열리는 cabaret에 가서 다양한 연주회를 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춤을 추며 그 날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아침은 큰 텐트에서 빵과 시리얼과 같은 것들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우리의 숙소에서 2km떨어진 한 고등학교의 식당에서 먹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서 왕복 4km를 다녀야했따. 가끔 일이 없을 때 우리는 돌아가며 각국의 음식들을 하곤 했는데 마지막날 내가 한 불고기와 볶음밥은 인기 만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축제 준비기간에는 축제를 위한 설치물들을 설치하고 간판을 자르고 페인트칠을 했고 축제가 시작된 후에는 감자튀김집, 식당등에서 일을 했다. 하루에 6-7시간은 일을 해야했다. 축제에는 현지에 사시는 할아버지들이 많으셨는데 그 분들 말고도 현지 주민분들은 우리 자원봉사자들을 항상 따듯하게 대해주셨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근교인 Vichy와 Clermont-Ferrand에 소풍을 다녀왔다.
나는 Gannat에서 보냈던 3주가 어학원에 다니며 어학연수를 했던 10개월보다 더 뜻깊게 느껴진다. 봉사활동과 더불어 매일 불어로 얘기를 해야됐기 때문에 불어 실력도 늘었고, 진행자들간의 갈등은 있었으나 다국적 참가자들과 마치 한 가족처럼 지냈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느꼈으며 나의 사고방식도 많이 열렸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분야의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에 다시 꼭 참가하고 싶다.
한달간의 유럽 여행후에 Gannat에 도착해서 나는 co-animateur, animatrice, animateur-techinique 3명의 축제 진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나와 같은 자원봉사자들은 각각 터키, 러시아,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덴마크에서 온 참가자들이었다. 초반의 서먹함이 지나고 우리는 끼리끼리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어렸을 때 이후로 텐트에서 잔 적이 없었어서 매트리스가 없는 텐트에서 2명씩 자는 것이 고됬으나 나중에는 간이 매트리스를 빌려서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축제 진행자들과 함께 같이 토론하고 얘기해서 축제를 진행하는 일을 하는 줄 알고 있었고, 나머지 구성원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처음 1주간은 축제 진행에 대해 원활한 소통을 했으나 점점 소통의 부재가 늘어났고 animateur의 명백한 문제점도 있었다. 그들중 animateur-technique는 우리 자원봉사자들 혹은 다른 축제 진행자들까지 -심지어 어머니 나이대의 co-animateur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자란 성인들을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굴고 단순히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명령" 혹은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나와 다른 구성원들이 바라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animateur-techinique, 그는 다른 현지 축제 진행자들과 같이 지내며 우리와의 대화는 단절하다 시피 했고 단순히 지시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묵묵히 일했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아낌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밤에 열리는 cabaret에 가서 다양한 연주회를 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춤을 추며 그 날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아침은 큰 텐트에서 빵과 시리얼과 같은 것들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우리의 숙소에서 2km떨어진 한 고등학교의 식당에서 먹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서 왕복 4km를 다녀야했따. 가끔 일이 없을 때 우리는 돌아가며 각국의 음식들을 하곤 했는데 마지막날 내가 한 불고기와 볶음밥은 인기 만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축제 준비기간에는 축제를 위한 설치물들을 설치하고 간판을 자르고 페인트칠을 했고 축제가 시작된 후에는 감자튀김집, 식당등에서 일을 했다. 하루에 6-7시간은 일을 해야했다. 축제에는 현지에 사시는 할아버지들이 많으셨는데 그 분들 말고도 현지 주민분들은 우리 자원봉사자들을 항상 따듯하게 대해주셨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근교인 Vichy와 Clermont-Ferrand에 소풍을 다녀왔다.
나는 Gannat에서 보냈던 3주가 어학원에 다니며 어학연수를 했던 10개월보다 더 뜻깊게 느껴진다. 봉사활동과 더불어 매일 불어로 얘기를 해야됐기 때문에 불어 실력도 늘었고, 진행자들간의 갈등은 있었으나 다국적 참가자들과 마치 한 가족처럼 지냈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느꼈으며 나의 사고방식도 많이 열렸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분야의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에 다시 꼭 참가하고 싶다.